2010. 2. 9. 20:37ㆍ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뱀파이어>는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제작된 무성영화로, 프랑스 무성영화의 중요한 시네아스트 중 하나인 루이 푀이야드를 거장의 반열에 올린 결정적인 작품이다. 191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총 400분이 넘는 상영시간에 10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리즈물이다.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루이 푀이야드는 당시 유행했던 연속극 형식의 영화들을 제작하는데 특출한 재능을 보였고, 그가 연출한 영화들 중 상당수는 이후 만들어진 범죄영화들의 기반이 되었다. 푀이야드의 <팡토마>(1914)와 <뱀파이어>(1915), 그리고 <쥐덱스>(1916) 세 영화는 범죄물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며, 이 중 <뱀파이어>는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며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영화다.
<뱀파이어>는 ‘흡혈귀들’이라는 제목의 영화지만, 사실 이 영화 속 흡혈귀들(Les vampires)은 프랑스의 강력 범죄 집단의 이름으로 1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신문기자 필립 게랑드와 그의 동료 마자메트가 뱀파이어 악당들을 추적하고 소탕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마치 한편의 역사극을 보는 것처럼 빠른 이야기 전개로 시종일관 관객들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결말로 흘러갈수록 내러티브 자체는 다소 허술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주목하게 되는 것은 선과 악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채 사건들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온전히 선의 편에 서서 악을 추적하는 인물은 필립 게랑드 뿐이고, 그의 동료인 마자메트와 뱀파이어 집단의 몇몇 인물들은 자신이 있던 위치에서 계속해서 이동해가며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이 영화로 명성을 얻은 여배우 무시도라가 연기한 뱀파이어 집단의 핵심인물 '이르마 벱(Irma Vep)'은 특유의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로 관객을 매혹시켰으며, 당시 사회가 요구하고 계승해오던 윤리의식에서 크게 벗어난 행동들을 보여주었다. 쉽게 여러 남자들과 교류하며 범죄 집단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유분방한 캐릭터였던 이르마 벱은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인물로 전쟁이 가져다주는 불안감과 계급사회에 억눌린 많은 사람들에게 도피처 역할을 했다.
추리소설과 범죄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뱀파이어>는 엄청난 희열을 선사한다. 각 에피소드에서 핵심이 되는 장치들을 중심 소재로 삼아 사건을 이어가는데, 각 에피소드들의 제목이 되기도 했던 암호퍼즐, 마취가스, 시체 등의 장치들은 모두 범죄에 사용된 도구라고 한다. 대부분의 범죄물에서 빈번하게 다뤄지는 장치로 영화는 이런 장치를 수차례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관객에게 미스터리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또한 영화는 배경과 분위기에 따라 각각 다른 색의 필름을 사용한 독특한 형식을 표방하는데 이는 범죄 스릴러의 재미를 더욱 확고하게 다져준다.
이후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나 프리츠 랑, 루이스 부뉴엘 등의 예술가에게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올리비에 아샤야스의 <이마베프> 또한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리메이크한 작품). <뱀파이어>는 범죄물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역사적 위치에 놓여있는 영화이지만 영화가 지닌 다양한 방식의 연출과 실험들은 21세기를 사는 작금에 비춰보아도 영화사의 초기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유쾌하고 경이롭다. (강민영)
*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선택
뱀파이어//Les Vampires//The Vampires
1915|386min|프랑스|B&W|35mm|12세 이상 관람가
* 상영일정
1/15 (금) 19:00 개막식 후 <에피소드 1, 2>
1/20 (수) 13:30 <1-4부>
16:00 <5-7>
19:00 <8-10>
2/10 (수) 13:30 <1-4부>
16:00 <5-7>
19:00 <8-10> 상영후 강연//정성일
2/21 (일) 13:30 <1-4부>
16:00 <5-7>
19:00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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