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오후 이탈리아의 신예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 상영 후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세계’란 주제로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가로네의 영화적 토대부터 이탈리아의 현재까지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얘기들이 오간 그 현장은 가로네 영화를 좀 더 깊게 조망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적 토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하나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큰 전통인 네오리얼리즘이다. 네오리얼리즘은 카메라를 들고 무엇을 판단하는 입장이 아니다.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제시된 사실들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네오리얼리즘은 마테오 가로네의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의 첫 번째 미학의 토대였다. 또 하나는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적 교양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인데, 네오리얼리즘과 같은 윤리적 사실주의 한편에 이탈리아식 코미디가 있다. 이탈리아식 코미디의 특징이라면, 그 당시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패러디하는 것이다. 거울을 비추듯 사회적 이면을 다루기 때문에 헛웃음이 나고 때로 눈물이 나기도 하는 그런 웃음을 준다. 이런 코미디 장르는 1960년대에 유행했는데, 60년대에 들어서면 네오리얼리즘은 거의 없어진 상태였고, 소위 작가감독들 중에서는 펠리니나 비스콘티 정도만 대중들과 소통되는 정도이지, 안토니오니나 파솔리니 같은 감독들의 영화는 대중들에겐 어려웠다. 대신 일반 관객들은 주로 코미디영화들을 봤다. 가로네가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코미디적인 부분들을 자신의 데뷔작에 담았다는 데에는 관객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태도가 보인다. 비교적 출발을 잘한 것 같다. 그 이후에 계속해서, 가로네는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2002년 <박제사>를 만들면서 그런 자신의 미학적 태도를 180도 바꾸는 변화를 보여준다. <박제사>를 만든 제작사는 판당고라는 현재 이탈리아의 영화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제작사다. 판당고의 프로듀서가 도미니코 프로카치라는 능력있는 제작사인데, 가로네는 <박제사>를 만들면서 그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미학적 방향을 틀었다고 볼 수 있다.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본인의 꿈을 영화적으로 실현한 영화가 바로 <박제사>라고 할 수 있다. 필름 느와르 장르 영화로 대단히 표현주의적이고 장식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로네의 영화를 보고 ‘필름 블루’라고 표현하듯이, 느와르영화인데 주로 검은색보다는 푸른 색에 대한 감각이 두드러진다. 현재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와 함께 프로그래밍되어 상영되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을 가로네가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 <박제사>를 보면 폴란스키의 영화가 많이 떠오를 것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드라마이고, 장신적인 표현들이나 색깔들, 조명들과 같은 인공적인 부분들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또 한 가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아트시네마의 다음 프로그램으로 준비되어 있는 마리오 바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마리오 바바를 소개할 때 보통 B급 호러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주로 소개되지만 마리오 바바가 다른 많은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그런 부분들만은 아닌 듯 하다. 마리오 바바는 화가다. 그의 표현력, 특히 색을 이용한 표현력은 웬만한 화가보다 낫다. 가로네 같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마리오 바바의 영화들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 들을 대단히 잘 이용하고 있는데 분명히 가로네가 마리오 바바에게서 배운 점이 있다. 가로네 영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그와 폴란스키, 마리오 바바 사이에는 공통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가로네는 <박제사>로 칸 감독주간에 초청을 받아 호평을 받고서 다음으로 <첫사랑>을 만든다. <박제사>와 <첫사랑>은 미학적으로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다. 그리고 만든 영화가 바로 <고모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로네는 네오리얼리즘에서 출발했던 사람인데, 판당고 제작사를 만나면서 <박제사>와 <첫사랑>이라는 폴란스키 스타일의 심리드라마를 연속해서 만들고서, <고모라>를 통해 처음에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네오리얼리즘 미학으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2008년 칸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마테오 가로네는 <일 디보>의 파올로 소렌티노와 함께 현재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히게 된다. <고모라>의 원작은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논픽션이다. 사비아노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가로네보다 더 멀리 갈지 모르는 작가이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사비아노는 27살 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나폴리 출신으로 철학과를 나왔다. 마피아라는 말은 특정한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조직범죄를 말한다. 마피아들은 주로 이탈리아 나부에서 활동하는데, 활동하는 지역에 따라 조직의 고유 이름이 있다. 사비아노의 원작과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캄파니아에서 활동하는 카모라이다. 우리가 코폴라나 스콜세지의 영화를 통해서 알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시칠리아의 마피아가 더 유명하지만 최근에 이탈리아에서는 이 카모라에 관한 문제들이 더 많이 기사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카모라 조직을 사비아노가 취재 하면서 대학생때부터 지방지나 잡지에 르포를 썼었고, 본격적으로 써낸 작품이 바로 『고모라』이다. 책이 나오자 카모라는 공개적으로 사비아노에 대해 살해명령을 내렸다. 움베르토 에코는 작가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했고 다른 많은 지식인·작가들이 나서서 이탈리아 정부는 사비아노의 신변을 보호해야한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반응 역시 대단하다. 사비아노를 지지하는 독서모임 같은 것을 하면서 함께 모여 『고모라』를 읽는 행사를 한다. 작가에 대한 지지와 열성이 높지만 불행하게도 현재까지도 카모라는 사비아노에 대한 살해위협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원작을 가로네는 용기있게 영화로 옮기게 된 것이다.



<고모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나폴리라는 도시는 자연풍광이 굉장히 아름답고, 베네치아와 더불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이탈리아 도시 중의 하나지만 수위 이탈리아의 남북문제의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남부와 북부의 차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적인 것만 따져도 남부는 북부의 절반이 안 된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마피아들의 활동 지역 역시 대부분 남쪽에 있다.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고 사랑받는 도시이지만, 실업률도 굉장히 높고, 영화에도 나오지만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지역경제의 일정부분을 빼어가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 지역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바로 카모라이다. 시칠리아의 마피아와 다른 점은 영화에서도 강조되듯이, 경제 쪽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시칠리아의 마피아들은 과거에 독립운동도 있었을 정도로, 육지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앙 정부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70년대 시칠리아에서는 중앙 정부에서 보낸 관리들을 마피아들이 암살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측과 전면전 비슷한 면모를 띄게 될 때 나폴리 마피아는 정부와 싸우는 대신 경제 활동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대사들은 모두 나폴리 지역어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막이 없다면 이탈리아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악센트가 대단히 센 나폴리 지역어를 쓰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 역시 지역어로 가사를 붙여 부른 노래들이 주로 나온다. 음악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마피아들이 나올 때 대중음악이나 락음악을 들려주는 점들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참조한 듯하다. 또 한 가지 이탈리아 남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일하다’는 말에 있는 것 같다. ‘일하다’는 말을 남부 사람들은 ‘피곤하다’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일반적인 편견들, 남부 사람들의 노동률이 낮은 것, 게으름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예가 되었다. 물론 그런 부분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 속에는 남부와 북부 문제의 차별이 응축되어 있다. 남부는 과거에 대부분 농촌지역이었고, 북부는 공업지역이었다. 과거에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지주의 입장에서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소작농의 입장에서는 일을 한다는 말을 쓰기 주저되었을 것 같다. 착취당했던 남부 사람들의 피해의식 같은 것이 말 속에도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모라>는 크게 4개의 에피소드로 진행 된다. 첫 번째는 나폴리 북부의 스캄피아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자막에도 나왔지만 유럽에서 마약밀매 거래량이 제일 많은 지역 중의 한 곳이다. 그곳의 아파트가 나오는데, 과거에 60~70년대를 거치면서 하층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은 건물인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범죄지역으로 빈민굴로 바꾸어버렸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토토와 살해당하는 마리아, 돈 치로 그 세 사람이 나온다. 토토는 커서 카모라 단원이 되는게 꿈인 소년이다. 마리아의 남편은 감옥에 있는데 아들이 다른 파의 조직에 들어 가버리는 바람에 보복을 당하게 된다. 돈 치로는 그저 돈심부름하고 대가를 받으면 되는 사람인데 조직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어느 한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는다. 토토의 입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그 지역의 질서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가로네는 마피아의 질서가 자연으로 변해있는 곳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폴리 혹은 스캄피아만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잘 만들어진 갱스터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마피아의 질서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는 것은 단지 나폴리의 이야기로만 보이진 않는다. 두 번째는 에피소드는 마르코와 치로, 십대 갱스터의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는 갱스터 장르를 많이 이용하고 있고, 또 <박제사>나 <첫사랑>같은 영화에서 보여줬던 장식적인 화면들을 많이 쓰고 있다. 마르코와 치로는 드팔마의 <스카페이스>의 주인공에 매혹된 소년들이다. <스카페이스>에서 알파치노가 연기하는 토니 몬타나 흉내를 내면서 자기들도 언젠가는 조직의 두목이 되고, 나폴리지역을 장악하는 그런 꿈을 꾸는 친구들이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폭력이다. 역시 알레고리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다. 제도권의 질서에 따라 노력을 했을 때 그 노력의 상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문명사회에서의 당연한 바람인데, 나폴리처럼 카모라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에선 문명사회에서 제공하는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했을 때 돌아오는 대가가 대단히 낮고 그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십대들이 폭력에 호소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게 정말 나폴리만의 문제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가 던지는 경고가 분명히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프랑코 역할을 맡은 사람은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적인 배우인 토니 세르빌로이다. <일 디보>에서 줄리오 안드레오티를 연기하기도 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이탈리아 북부지역 산업지역에서 독극물을 받아와 남부에 묻는 과정을 다룬다. 합법을 가장한 불법행위로 소위 전형적인 카모라의 사업이기도 하다. 나폴리의 카모라가 시칠리아의 마피아 코자노스트라와 다른 점은 서류상으로는 사실상 모두 합법적인 것으로 꾸며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거다. 그 같은 경제행위가 과연 나폴리에서만 일어나는 경제행위일까. 가로네는 그런 부분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참고로 원작에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고, 그 에피소드들 가운데 가로네가 선택을 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다뤄지는 부분들에 대해서 가로네가 강조하고 싶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단히 상징적인 에피소드다. 사실상 일반적인 경제행위라고 할 수 없는 행위가 벌어졌을 때 마피아는 축적을 하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죽어간다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들어있다. 마지막으로는 재단사 파스콸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가 중국인들을 교육할 때 하는 말이 있다. 휼륭한 재단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인내와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두 단어는 영화의 재단사 뿐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탈리아의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같은 것 중에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말이 많고 하는 특징들이 있지만 사실 파스콸레같은 캐릭터가 전형적인 이탈리아인의 모습 중의 하나이다. 파스콸레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자신이 갖춘 실력으로 묵묵히 일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카모라가 사업을 장악하고 있는 탓에 카모라와 관련된 쪽이 아니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어 기사화되는 것으로 짐작컨대 그 지역에 불법으로 들어온 굉장히 많은 중국인들이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류산업은 고급패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인들 또는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영화는 착취의 부분, 이웃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로네는 <고모라>를 통해 마피아의 질서가 스캄피아의 아파트에서만 한정적으로 일어나면 좋겠지만 그곳의 매카니즘이 이탈리아의 다른 곳, 나아가 유럽문명에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정리 | 장지혜 (관객 에디터) 사진 | 이호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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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티브’의 미셸 시망은 2008년의 영화를 꼽는 자리에서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를 수위에 놓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고모라>는 이탈리아 정치영화의 뛰어난 귀환을 의미한다. 사회 곳곳에 파고든 범죄의 심각성을 모자이크 스타일의 구성을 통해 폭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미셸 시망의 극찬은 동명의 원작 소설가 로베르토 사비아노가 극중 범죄조직 ‘카모라’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영화화를 밀어붙인 마테오 가로네의 용감함에 기초한다.

<고모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나폴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항의 면모를 품은 곳도, 피자 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낭만적인 여행지도 절대 아니다. 죄악과 탐욕으로 몰락한 성경의 ‘고모라’처럼 나폴리 역시 도시 곳곳에 스며든 악의 세포로 빠르게 쇠락해가는 중이다. 특히 마약과 매춘은 물론이고 패션 산업과 심지어 쓰레기 처리까지, 나폴리를 근거지 삼아 이탈리아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카모라의 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카모라의 범죄에 개입된 인물은 특별히 너나 할 것 없다. 위로는 카모라의 수장부터 아래로는 빈민가의 어린아이까지 나폴리는 도시 전체가 카모라가 뿌려놓은 범죄의 거미줄로 카르텔 되어있을 정도다. 그래서 마테오 가로네는 10여 명이 넘는 인물을 통해 이탈리아 범죄 특유의 피라미드 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가로축으로는 카모라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두 소년을, 세로축으로는 조직을 위해 의상실을 운영하는 중년남자를 위치시키고 그 주변으로 가난하고 평범한 이웃들을 점점이 박아놓아 일상이 범죄인 나폴리의 충격적인 실상을 그려나간다.


이들의 행위는 결국 지독한 가난을 벗고 어떻게 해서든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싶다는 이탈리아의 집단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평범한 이들의 검은 욕망은 카모라와 같은, 시칠리아 마피아의 세력을 훨씬 뛰어넘는 범죄조직이 암약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토양으로 기능한다. 극중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낼 수 있을지언정 결코 성취할 수는 없다. 철저히 카모라의 이득을 위해서만 그 욕망이 존재 가치를 가질 뿐 쓰임새가 없어지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폭력을 동반한 검은 욕망은 가난으로 대물림되고 그 와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를 살상하는 현대판 고모라의 신화가 완성하는 것이다.

<고모라>가 소설의 영역에, 영화의 영향력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카모라의 폭력 카르텔이 만 천하에 폭로된 까닭이다. 원작자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수년간의 잠입 취재를 통해 카모라의 조직체계와 핵심인물, 범죄 수법을 폭로하는 탐사저널리즘의 개가를 일궜고 (소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열 살도 안 넘은 꼬마 아이가 카모라에 들어가겠다며 방탄복을 입고 총알을 막아내는 충격적인 신고식의 실상을 알 수 있었을까?)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뛰어난 영화화로 전 세계가 나폴리의 실상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원작자와 감독은 여전히 카모라의 협박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화가 현실을 뒤바꿀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 관심 갖도록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고모라>는 증명한다. 2008년의 영화일 뿐 아니라 2000년대를 대표하는 범죄영화의 걸작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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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은 <이민자들의 땅>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두 명의 알바니아 소년 겔티(줄리안 소타)와 지니(라자 소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영화 한 편을 끌고 간다. 삼촌과 함께 조그만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두 형제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혼잡한 로마에서 자리 잡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불만이 있다면, 이제 나이도 좀 먹었겠다 한 방에서 형제가 함께 묵으려니 불편한 게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간의 사정을 파악한 삼촌은 알고 지내던 젊은 사진사의 집에서 두 조카가 지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지만 겔티는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다.

<손님들> 역시 <이민자들의 땅>에서처럼 실제 인물이 등장해 연기를 펼치는 등 리얼리즘의 면모를 과시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극영화적 요소를 드러내며 가로네가 일관되게 유지해왔던 다큐멘터리적 연출에 분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해, <손님들>은 두 소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와중에 성장영화의 형태를 강하게 내비친다. 굳이 <이민자들의 땅>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인물을 다시 전면에 내세워 장편을 시도한 것에는 가로네가 극영화로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의도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이다.


이는 극중 두 형제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는 것처럼 가로네도 여러 시도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듯이 보여 흥미롭다.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면, 겔티는 감독의 심정이 간접 투영된 분신처럼 새롭게 느껴진다. 사진사의 집을 나와 얼마간 방황하던 겔티는 30년 전 로마로 상경한 리노라는 노인을 만난다. 리노는 몇 년 전 집을 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중인데 겔티는 그런 노인을 보며 지니를 생각하고 그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 그리고 가로네 감독은 또한 겔티(와 지니)에게서 앞으로의 영화적 활동을 모색한다. 그렇게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고 현실은 또한 영화를 모방하는 법이다. 적어도 가로네의 영화는 삶과 현실을 진실을 추구한다.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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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라>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마테오 가로네의 초기작은 최근작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박제사> <첫사랑> 등 원작소설을 끌어와 극영화를 만드는 최근과 달리 초기작들은 실제 삶에 초점을 맞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마테오 가로네의 장편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은 이민자들이 이탈리아에 터를 잡고 생활하는 모습을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나이지리아 매춘부, 알바니아 소년 노동자, 그리고 이집트에서 온 주유소 직원 등 이민자 자신이 직접 출연, 인공성이 가미되지 않는 일상을 카메라 앞에 그대로 노출한다. 다만 그들이 발붙인 땅은 모든 것이 풍요로운 도시와 거리가 먼 메마르고 황량한 곳으로 그들의 이탈리아 내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배경의 척박함으로 증명이 된다.

그 때문에 <이민자들의 땅>은 ‘가로네 버전의 네오리얼리즘’ 혹은 ‘1990년대에 되살아난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틀린 평가는 아니지만 그것이 가로네가 자국을 바라보는 비극적인 관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이탈리아 내 이민자들이 결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도 동정심 대신 질긴 삶의 생명력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이는 가로네가 이후 영화에서도 줄곧 유지하는 극중 인물과 소재를 대하는 윤리이자 영화적인 태도다. 그는 자신이 다루는 소재를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해당 인물 속으로 들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986년 예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촬영감독 보조로 영화 일을 시작한 가로네는 일찍이 카메라가 비추는 현실 그 이면까지 바라보는 방식을 일찍이 터득했다. <이민자들의 땅>을 발표하고 나서도 극중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1998년 이 영화에 출연했던 알바니아 소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손님들>에서 다시 다루게 된다. (허남웅_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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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테오 가로네의 '로마의 여름'


로마 출신의 마테오 가로네가 고향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그에게 지역성은 가로네의 영화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만 <로마의 여름>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로마의 풍경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은 극중 변호사 출신의 예술 감독 로셀라(로셀라 오르)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탓이 크다.

정확한 사연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로셀라는 인생에 혼란을 느껴 어딘가에서 요양을 하다가 돌아온 인상이 짙다. 로셀라가 보기에 로마에 있던 친구들도, 풍경도 어딘가 많이 변한 것 같다. 다만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어느 수도사로부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너무나 변모한 로마의 모습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로네는 <로마의 여름>에서도 여전한 네오리얼리즘의 면모를 포기하지 않지만 현실의 풍경보다 로셀라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가미하지 않은 무정형의 필터는 <로마의 여름>에 이르러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활용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고 주관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감정을 포착하려 든다. 그뿐이 아니다. 사실주의에 가까웠던 전작과 달리 <로마의 여름>에서는 극중 인물들의 관계에 입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은유적인 상황도 마다하지 않는다.

로셀라가 로마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살바토레(살바토레 산소네)는 연극무대에 쓰일 지구모형을 제작 중에 있다. 완성 후 연극 스태프들과 함께 이를 옮기려 하지만 방문보다 큰 까닭에 빼는데 애를 쓴다. 그리고 결국엔 감정이 폭발하여 지구모형 사용은 없었던 일이 된다. 근데 그 광경은 꼭 지구에 발붙여 사는 우리들이 사는 풍경과 다르지 않다. 아마도 로셀라가 로마에 돌아와서도 여전한 혼란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자신을 포함한 그런 인간들의 반목과 갈등 때문이다. 그렇게 지구는, 세상은 흘러가는 법이다. 그것 역시 우리네 삶의 풍경인 것이다. (허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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