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밍량의 행자혹은 만주장정연작에 대하여

 

차이밍량의 행자연작은 현재진행형이다. 붉은 법의를 입은 맨발의 승려가 침사추이, 타이페이, 마르세유, 동경 등 도심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가로지르는 여정을 변주한 연작이다. 차이밍량은 현장 법사의 천축국 순례를 영화화하는 시대극을 염두에 뒀었지만 이 계획을 변경해 2012년부터 꾸준히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차이밍량은 행자보다 慢走長征(만주장정)”이란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영화에만 머물지 않고 행위예술로 발을 내디딘 행자연작은 지금까지 다섯 편이 국내에 소개 및 상영, 공연이 이뤄졌다. 전시, 연극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차이밍량의 도전을 자극하고 있는 행자연작을 구성하는 총 8편의 중, 단편영화 그리고 무대극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무색(無色)>, <행자(行者)>, <금강경(金剛經)>, <몽유(夢遊)>(2012)

 

행자연작의 문을 연 <행자>(27)는 중국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 ‘YOUKU’가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뷰티풀 2012>를 구성하는 4편의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이 영화에서 홍콩의 침사추이를 배경으로 붉은 법의의 승려로 분한 이강생은 고개를 수그린 채 양손에 각각 빵과 다른 먹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간다. 맨발이 땅으로부터 떨어져 온전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데 20초 이상이 소요되는 승려의 도보는 그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게 보일 정도로 비교된다. 한편, 사람들은 멈춰 서서 승려를 둘러싸고 그의 도보를 구경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외진 공간에 이르러서야 승려는 비로소 빵을 한 입 베어 문다.

<행자>보다 앞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무색>(2012, 20)에서 승려는 두 개의 공간을 넘나든다. 그는 대만의 도심에서 군중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한편, 미로에 가까운 순백의 공간을 걸어 다닌다. 2012년은 행자연작의 작업이 양적으로 가장 활발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상영된 바 없는 <금강경>(2012, 20)<몽유>(2012, 20)<행자>와 함께 僧人行走三部曲(승인행주삼부곡)’으로 불리기도 했다. 두 단편은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대만관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으며, 대만관이 조성한 “Architect/Geographer: Le Foyer de Taiwan” 전시를 중심으로 극 중 붉은 법의의 승려가 전시 공간을 걸어 다니면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켜 대만의 풍경과 지리를 예찬한다.

 

<무색><천교는 보이지 않는다>(2002) 상영 후 차이밍량과의 대화

https://www.youtube.com/watch?v=m-7Jt4-1i_c

 

<물 위 걷기(行在水上)>(2013)

 

미얀마,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태어난 6명의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남쪽에서 온 편지>(2013)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물 위 걷기>(2013, 30)는 차이밍량의 고향, 말레이시아 쿠칭을 조명한다. 붉은 법의의 승려는 차이밍량이 태어나고 자란 쿠칭의 주택가를 중심으로 복도와 계단을 느리게 걷는다. 카메라는 승려의 발밑에 놓인 웅덩이에 고인 물에 비친 이미지를 주목한다. <물 위 걷기>는 홍콩과 대만의 도심과 다른, 원시와 도시 문명이 공존하는 쿠칭의 풍경과 더불어 차이밍량의 유년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사적인 단상이자 명상이다.




 

<서유(西游)>(2014)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승려의 느리게 걷기는 계속 된다. “행자연작의 주된 모티브가 서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승려의 순례라는 점을 상기하면 <서유>(2014, 56)행자연작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하나의 방점이 되는 영화다. 단지 아시아에서 서구로 수행의 무대가 되는 지역의 성격이 변화를 겪을 뿐만 아니라 전작에서 오롯이 붉은 법의의 승려만이 집중했던 느리게 걷기를 지켜보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강생이 연기하는 승려가 아닌, 드니 라방의 얼굴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동굴에 가까운 지하 공간으로부터 마르세유의 거리로 향하는 승려의 발걸음과 화면 절반을 차지하는 드니 라방의 측면 얼굴을 번갈아 보여준다. 두 인물과 무관해 보이는 장면에서 거울에 비치거나 창 밖 너머로 승려는 계속 걷고 있다.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롱 샷으로 현저한 대비를 이루며 분리돼 있던 두 인물의 시공간은 마르세유 투어 버스가 지나가면서 하나가 된다. 드니 라방은 승려의 보행을 단지 지켜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모방한다.

 



 

<노 노 슬립(無無眠)>(2015)

 

2012년에 이어 다시 기획된 <뷰티풀 2015>을 통해 발표된 <노 노 슬립>(2015, 35)에서 붉은 법의의 승려는 아시아로 돌아와 동경에 도착한다. 하지만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는 그 동안 행자연작에서 집중했던 승려의 보행으로부터 눈을 돌려 승려가 화면에 없는 도심의 인파, 지하철 유리창 밖 야경,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있는 젊은 남성의 나신 등에 초점을 맞춘다.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느린 걸음걸이가 구경거리가 되거나 비교가 되던 승려는 지하철 근교의 외진 육교 위를 홀로 걸으며, 목욕탕에 이르러 수행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이로 인해 이목을 끄는 대상은 안노 마사노부의 육체다.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사우나를 들어갔다가 목욕을 마치고 나선 분주한 젊은 남성의 움직임과 비교했을 때, 붉은 법의를 벗어놓은 승려는 망중한을 즐긴다. 캡슐 호텔에서 온 몸을 뒤척이며 한참을 잠들지 못하는 젊은 남성의 불면 뒤에 등장하는 승려의 숙면은 달콤해 보인다. 이는 <행자>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시킨다.

 



 

<당나라 승려(玄奘)>(2014)

 

<행자>를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행자연작이 발표되는 가운데 작년 가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개된 <당나라 승려>(2014)는 스크린을 벗어나 무대극으로 진행됐다. 붉은 법의를 착용한 승려는 이 공연에서 불경을 찾아 천축으로 향했던 당나라 승려, ‘현장법사의 이름을 부여 받는다. <무색>의 백색 공간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도화지 위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현장은 그가 잠든 사이, 검은 옷의 화가 카오 준혼이 목탄으로 그려 넣은 선들을 따라 전작에서 보여준 느린 걸음으로 도화지 위를 慢行(만행)’한다. 스크린에 국한되지 않는 행자연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과 두산아트센터의 공동 기획으로 마련된 컨템포퍼리 토크에 참여한 차이밍량은 예술가의 동시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아래 정성일 평론가와 나눈 대담에서 "행자" 연작을 언급했다. 아래 첨부한 동영상에서 위 연작의 작업을 추동하는 느림에 대한 차이밍량의 생각을 그의 유려한 화법과 함께 들어볼 것을 권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전히 끝나지 않은 "행자"의 여정은 앞으로 어떤 시도와 변화로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그 전에 이번 "2016 대만 영화제"에서 행자의 궤적을 경험하거나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참고

아시아예술극장 & 두산아트센터 기획 컨템포러리 토크:

차이밍량, 정성일 대담 중 느림, 만행” https://www.youtube.com/watch?v=t20Ign2cxlA

 

아시아예술극장 & 두산아트센터 기획 컨템포러리 토크: 차이밍량, 정성일 대담(풀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extoc7iLv10

 


권세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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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네마테크건립과 관련한 의견서

영화를 사랑합니다서울시네마테크 건립을 바랍니다.

 

행정자치부장관님,

그리고 중앙투자심사 위원님들께 드립니다.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은 영화인과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의 오랜 염원입니다.

이제 다음 한 주면그 염원의 성사 여부가 결정됩니다한국의 심장이 뛰는 서울, 2천만 명이 숨 쉬는 수도권에서 이제라도 우리의 자부심과 긍지가 될 세계 영화의 역사와 다양함의 보고가 탄생하길 바랍니다현명한 결정이 내려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현행법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문화시설은 행정자치부의 중앙투자심사에서 승인을 받게 돼 있습니다그래야 국고의 지원은 물론사업의 집행도 가능합니다서울시는 작년 12월 서울시네마테크 건립’ 계획서를 행자부에 제출하였습니다그러나 행자부는 중앙투자심사 결과 유사·중복성수익성 보완을 이유로 반려(’16.02)하였고서울시가 수정보완해 재 제출한 계획서에 대해서는 국가사업으로 추진 필요를 이유로 다시 반려(’16.05)하였습니다이에 서울시는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향후 지원을 검토해 볼 수는 있지만 당장 국가사업으로 추진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차제에 수익성을 보안해 다시 제출하였습니다이렇듯 그간 지적된 모든 사항에 대해 충분한 수정과 보완을 하여 제출한 바금번 세 번째 심사에서는 반드시 승인이 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화시설에 대해 수익성을 우선시해 따지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수익을 낼 만큼 시민들이 이용할까를 이유로 시설 건립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수익성이 있다면 이미 민간자본이 투여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반려 사유였던 국가사업으로 추진 필요는애석하게도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그럴 생각이 없음이 확인됐습니다그럼에도 심사의견인 국가사업 추진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관 부처 설득에 몇 년을 더 보내야 한다면십중팔구는 동 시설의 건립 무산이란 길을 밟게 될 것입니다지난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는유사사업인 복합상영관 건립 계획을 잡아놓고도 비용을 제때 쓰지 않아 전액 불용처리된 바 있고그 후에는 아예 매년 예산편성 논의에서 배제해 왔기 때문입니다게다가 최근 영화진흥위는 시설투자나 각종 지원사업 대상에서 수도권 배제 원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일례로 지난 2015상영관이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아리랑시네센터의 지원금이 끊겼습니다심사의견을 존중하나 국가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는 뜻입니다.

 

내심 위와 같은 생각에서행자부의 두 차례에 걸친 반려에 의아함을 품었던 게 사실입니다반려 사유가 1, 2차 때마다 변했다는 것도 납득이 어려웠습니다.

최근 언론에 유포된 문화계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보았습니다그래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서울시가 추진하기 때문에 두 차례나 반려된 것일까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입니다물론 저희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번 세 번째 심사에 우리는 큰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행정자치부장관님중앙투자심사 위원님,

본 서울시네마테크 건립은 중구청이 부지를 제공하고 서울시가 건축비용을 투자합니다국비는 한 푼도 투여되지 않습니다그게 우려스러워 국가사업으로 추진 필요를 언급한 거라면첫 삽만 함께 뜨지 못할 뿐 함께 할 방법은 너무 많습니다자칫 첫 삽도 영원히 뜨지 못하는 우가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부산엔 부산시네마테크가 있습니다파리는 한 도시에만 프랑세즈와 포럼데지마주가 있습니다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그리고 2천만 명의 수도권 시민 역시 영화문화의 보고이자 우리들의 긍지가 될 시네마테크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모든 준비는 되어있고 심사위원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만 남아있습니다부디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2016.10.20.()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한국영화제작가협회한국영화감독조합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한국독립영화협회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여성영화인모임영화마케팅사협회),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독립영화전용관확대를위한시민모임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284)

이보롬강다희강래오강민영강성경강소영강수진강주연강현주고두현고상석고혜정곽두리구도영권세미권순태권애진권오혁김경아김기열김나연김도란김동현김문정김미경김상민김성오김수진김영나김예원김유경김유진김은희김은희김지은김현구김혜령김화범김희경나영정노은실류동길류진아류하양문주영문현희박동권박미애박병규박병준박서진박선희박세준박예하박인청박지영박지영박진수박진용박진후박찬옥박희정배준남백종관백종관변재목사공태정서지민서지은서혜원석영화선숙성하훈성희영손문수손영성송규학송홍종송효정신종훈안선영안용우안준용안혜림양윤모엄상호엄유나오세범오은교오정민오지연우순옥우주인윤강로윤성호윤자영윤지석윤지현이길보라이다슬이득선이보경이상현이선아이영경이영희이오림이용배이은경이은지이은지이인훈이재준이종호이주현이준호이지영이춘희이충직이현아이혜경이호정임대근임쎄정임주희장경례장민경장우진장인욱장제민장지혜장혜원장혜인전선유정민석정보라정상희정세영정우현정원주정재원조성원조영천조윤선조장미조정의민조정준조지혜조현우준상지정엽진교현최건영최경민최미연최범찬최용성최정단최현지추병진,하성태한상균한태영홍미진홍상우홍승연홍지영홍지영홍태경황길모황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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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1914-1977)의 탄생 백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올해 랑글루아 백주년 행사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 벌일 예정이다. 랑글루아는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 영화의 역사에 그저 이름만 있던 영화들을 살아있게 했다. 시네마테크의 상영 덕분이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아버지이자 영화 프로그래머란 직업의 창시자로, 영화의 아이들(cine-fils)이 그러하듯 적어도 이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 의미로든 그의 아이들이다. 그의 특별함은 탁월한 열정뿐만이 아니라(그는 시네마의 종사자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열정passion이라 여겼다), 그것을 어떻게 전시하고 조직하는가에 있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역사에 정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요하기 때문이다.

 

랑글루아는 영화와 관련해 손쉬운 합의를 도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의 종사자들에게 무조건적인 우정을 보내기도 했지만, 또한 치명적인 증오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 치명적 결과는 알다시피 1968년에 있었던랑글루아 사태로 벌어졌다. <랑글루아의 유령>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클로드 샤브롤이 지적하듯이랑글루아 사태는 그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명성, 그리고 그가 필연적으로 양산한 적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영화의 역사는 친구만이 아닌 적들과의 전투의 흔적들이다. 우리의 동료이자 친애하는 적들. 자연스럽게 어떤 친구들은 적으로 돌아서고, 또 반대로 그를 시기했던 이들이 친구가 되기도 했다. 가령,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못지않은 아름다운 벨기에 시네마테크의 설립 자인 자크 르도는 그의 적대적 경쟁자였다. 물론 나로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와 친구들과의 돈독한 우정이다. 특별히 랑글루아와 그의아이들중의 한 명인 주앙 베르나르 다 코스타(1935-2009)와의 우정의 관계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베르나르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를 포함해 페드로 코스타 등 포르투갈 감독들이 존경했던 포르투갈 시네마테크의 관장이었다. 베르나르는 젊은 시절에 리스본에서 영화사의 위대한 고전들과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5-60년대 리스본에서는 정치적 검열과 문화적 빈곤, 그리고 고립주의 때문에 과거의 영화와 만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1958, 23살의 나이에 그는 처음으로 파리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를 방문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의 고백. “극장문을 열고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전함 포템킨>, <국가의 탄생>, <일출>, 그리고 <잔다르크의 수난>과 같은, 글에서 많이 읽었던, 사진들로만 보았던 영화들을 내 눈앞의 스크린으로 마침내 보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을?” 영화는 늘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가 의미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았던 영화들을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우리가 기대하는 영화들은 언제나 아직 보지 못한, 하지만 존재하게 될 영화들’(고다르)이다. 그 후, 베르나르는 굴벤키안 문화재단의 영화부문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1973년 랑글루아의 도움으로 리스본에서로셀리니 회고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리스본의 시네필들은 랑글루아가 대동한 로셀리니를 극장에서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무방비 도시>가 상영되는 오프닝 행사에서는 상영 후에 기립박수와 함께자유 만세파시즘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난무했다고 한다.

 

이런 훈훈한 우정에 더해 나로서는 그들의 우정을 넘어선 차이 또한 주목한다. 거부하고 싶더라도 우리는 결국 랑글루아의 키드이겠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시간대, 조건에 있기에 친화성 못지 않게 거리를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스본의 베르나르 또한 파리의 랑글루아와는 다른 프로그래밍을 해야만 했다. 마치, 파리의 고다르와 저 남미의 글라우버 로샤가 만났을 때 로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들은 영화를 해체하고 있는데 우리는 해체할 영화가 없으니, 먼저 영화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랑글루아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저급한 것과 고급한 것의 문화적 기준을 거부하는 프로그래밍으로 유명했다. 그는 심지어 좋은 영화만 선별한 것이 아니라 아닌 모든 영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작품이 좋은지 누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 영화사는 그 반대의 진실을 언제나 보여주었었다. 반면, 베르나르는 주로 작가들의 회고전에, 그리고 다소 교훈적이고 영화사의 위대한 정전의 작품을 상영하는 데에 치중했다. 이는 1970년대 리스본에서 절실했던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관객을 늘리고 좋은 작품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작들을, 그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영화들을 소개하고 보다 근본적인 영화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 치중했다.

 

 

 

파리의 랑글루아는 상상적인 프로그래밍을 꿈꾸었다. 그는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가정한 프로그래밍, 가령 이 가상의 관객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들이 하루 동안 종일 영화를 볼 경우에 서로 이질적인 영화들의 자유로운 배치로 영화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다리를 놓는 비밀스러운 기획을 하기를 원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영화적 이미지들이 그려내는 비밀스러운 성좌의 구축. 이미 시네마테크를 설립하기도 전에 그는 샹젤리제의 작은 공간을 빌려서시네마 판타스티크Le Cinéma Fantastique’라는 제목의 기획전을 개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에 랑글루아는 어떤 휴식 시간도 없이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연달아 상영했다. 장 엡스탱의 <어셔 가의 몰락>(1928),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그리고 폴 레니의 <라스트 워닝>(1929). 이 세 편의 정해진 주제와 기획의 의도는 분명치 않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이전에, 그리고 다음 영화와의 관계에 영화가 놓여지기를 원했다. 라울 월쉬의 영화 전에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미조구치의 영화 다음에 히치콕의 영화를 상영하는 식으로. 계몽적인 기획의 주제보다는 삼투현상에 의한 영화 교육을 믿었던 것이다. 종종 랑글루아의 영화박물관의 전시는 심지어 연대기도 그 어떤 꼬리표도 달지 않은 전시물들의 배치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전통적인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랑글루아의 그런 방식의 배치에 비전문가라는 경멸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고물상의 무질서한 배치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라는 비난들. 하지만 상상의 시네마크는 이런 꿈이었다. 어느 날, 루브르 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모든 전시물들의 꼬리표를 제거하고 마음대로 예술품들을 뒤섞어 버린다. 그 다음 날 관객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박물관에 들어와 연대기도, 주제도 무시된 채 무질서하게 배치된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게 된다. 그런 날들이 오게 되면 더 비밀스러운 예술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이 어떤 일관된 기준 없이 선택한(친구들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는 고유의 일관성과 철학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들이 상영되는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다. 정말 영화를 즐기고 싶다면 이 무질서한 영화들의 사이, 우연한 관계와 배치에 더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드린다. 위계와 통제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 짐 자무시의 영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을 상기하고 싶다. No Limits, No Control.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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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치밀한 기록이 더 큰 생명력을 가진다

- 김동원 감독이 말하는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 전투 3부작'


올해로 8회째인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주인공은 김동원 감독이다. 영화제 마지막날이었던 24일은 그가 선택한 <칠레 전투> 3부작이, 약 4시간 반 동안 상영되었다. 마지막 3부 상영 후 이 작품을 선택한 김동원 감독과의 시네토크에서는 비껴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들과 다큐멘터리가 가진 기록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동원 감독은 영화 속에 나왔던 빅토르 하라의 노래 ‘우리 승리하리라’를 찾아 관객들과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영화제 대미를 장식한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공교롭게도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첫 날의 하루 전에 의도치 않게 이 영화를 틀게 되었다. 우연처럼 상영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하셨고, 어떻게 이 영화를 어떻게 접하게 되셨고, 다시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김동원(영화감독):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처음 들은 건 86, 7년 쯤인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이 쓴 책에 남미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는데, 그 때는 볼 방법이 없었고, 90년대 지나서 책에 있던 영화들을 구해볼 수 있었다. 그 때 시네마 누보 운동과 맞물려 쓰이는 용어인 ‘제 3영화’들이 현실과 치열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라고 소개 되었는데, 사실 조악한 비디오 화질이라 그런지 (영화에 대해) 실망한 경우가 많았다. 98년도에 인권영화제를 통해 <칠레 전투>를 보았는데, 4시간 반이라는 것을 알고 겁을 먹었으나 한 번 보기 시작하니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보게 되었다. 그 다음에도 몇 번씩 보면서 새로운 디테일들이 새록새록 다가오면서 매번 나에게 큰 영화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있었던 현장들, 상계동부터 최근에 용산이나 강정 같은 곳의 주민들 얼굴이 떠올랐고 투쟁 과정들이 영화와 오버랩 되는 걸 많이 느꼈다.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이 끝까지 가졌던 희망의 크기가 지금 나에게 어느 정도의 크기로 남아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성욱: 새롭게 다가오는 디테일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이 다큐를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면.

김동원: 이 영화를 보고 영화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 얼만큼 의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는 72년부터 73년까지 1년여 동안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포함해 제 3부작이 완성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감독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1부, 2부는 주로 부르주아들의 반혁명, 즉 그들이 어떤 논리로 아이옌데를 공격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는가에 대한 논리와 과정들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반면, 노동자들과 민중의 시각에서 아이옌데 집권 하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실험들과 민중이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노동자들과 민중의 역량을 따로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1부, 2부에서는 아무런 음악이 깔리지 않는다. 구즈만 감독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1, 2부를 묘사하고 있다면 3부에서는 애잔하게 편곡된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준다. 이는 구즈만 감독의 주관적인 정서일 수 있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1부, 2부에서는 감독이 중립적이지는 않되 최대한 객관적이려 하는 태도였다고 한다면, 3부에서는 자기 속내를 마음껏 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이 자기 자신을 억누르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맨 마지막에 자기의 표현을 하긴 했지만, 그 표현마저 절제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구즈만 감독이 이 영화를 끝내고 당연히 망명을 해야만 했다. 쿠바에서 편집을 하고 세계 곳곳을 유랑하다가 95년 즈음 20년 만에 (칠레에) 돌아왔다고 한다. <칠레 전투>를 90년 초 무렵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 장면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 나오는 사람들을 몰아넣고 학살했던 국립 경기장 같은 장소들, 영화를 찍다 죽은 카메라맨인 호로세 뮬러의 가족들도 만나는 것을 엮어서 <칠레, 끈질긴 기억>을 만들었다. 그 영화도 인권 영화제에서 봤는데, 구즈만 감독은 첫 영화인 이 영화에서부터 최근의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까지도 아이옌데 시절과 혁명기의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가들은 한 가지 주제에 평생을 매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도 다른 주제의 영화들은 없는 것 같다. <칠레, 끈질긴 기억>에서 보면 젊은이들이 20년 전에 조국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이 영화를 보여주는데, 여기저기서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흐느끼기도 한다. 구즈만 감독은 역사에 대한 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평생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김성욱: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8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기록 되었던 부분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옌데 정권 시절에 구즈만 감독도 극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가, 지금은 극영화를 찍을 때가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다른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현장성 있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록이 가진 힘이 다른 다큐멘터리보다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건 이후에 ‘재구성’해나가는 게 아니라, 현장의 중심에서 기록을 해나갔다는 것 자체가 크게 와 닿았다.

김동원: 다큐멘터리는 기록을 하는 영화지만, 최근에는 기록보다는 감독의 주관성을 표현하는 데 더 많이 쓰이기도 한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대상을 제작 주체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태도인 것 같다. 그만큼 대상을 존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구즈만 감독이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지만,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절제하는 태도를 보인다. 누가 기록하느냐 보다 ‘기록됨’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일 것이다. 영상시대에는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지 않으면 글로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하더라도 묻혀진 역사가 되고 말지 않나. 요새는 ‘찍(히)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시각적으로 확인할만한 기록, 대중들이 다가갈 만한 통로가 없으면 수많은 역사들이 묻히고 만다. 칠레의 9‧11에 관한 영화들은 이 영화 말고도 많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의 무게감을 가진 기록물은 없는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옌데 집권 3년 동안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건이 어떤 변증법적인 충돌을 가지면서 전개되었는지 이 영화만큼 꼼꼼하게 찍은 기록물이 없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솔라나스 감독의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가 당시에는 더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솔라나스 감독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스타일의 힘은 강하지만 기록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 와서 평가를 하자면 솔라나스가 실험했던 화려한 수사, 강렬한 톤은 구즈만의 냉정한 톤이 가진 영화적 힘에 못 미친다고 본다. 결국 치밀한 기록이 훨씬 더 큰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리: 지유진(관객에디터) 사진: 김윤슬(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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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지속적으로 파장을 주며,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시인 김경주가 말하는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지난 2월 16일,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의 상영이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시인 김경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그는 영화 속의 크리스토퍼와 같이 곧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날 것 같은 차림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여행에 관한 책을 쓴 그는 <인투 더 와일드>와의 특별한 만남과 영화에 대한 각별한 인상을 전했다. 시인의 언어로 표현된 <인투 더 와일드>에 대한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보고 나면 시인이 추천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 관한 영화로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 <인투 더 와일드>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도 드물다. 김경주 시인은 실제로 여행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테마에 집중했을 거 같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점을 좋아하셨는지.

김경주(시인): 이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당히 늦게 알게 되었다. 홍대에서 오랫동안 작업해오고 있는데, 유명한 레코드 가게인 레코드포럼을 지나가다가 <인투 더 와일드>의 영화음악을 듣게 되었다. 인상 깊은 음악들은 펄잼이라는 밴드의 보이스 보컬로 활동했던 에디 베더가 작업한 것이다. 음악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가게로 들어가 에디 베더가 새로운 음반을 냈느냐고 주인에게 여쭈었다. 에디 베더는 더 이상 새로운 음반을 내지 않는데 한 영화감독이 그에게 특별히 영화음악을 의뢰해서 탄생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이 음악을 들었다. 음악만 듣다가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함께 보고 싶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나,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가 어떤 책을 가지고 다녔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설명되어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는 헨리 소로의 책이나 잭 런던의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토퍼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밀도 높은 경험을 제공해줬던 영화였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교감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추천했다.


김성욱: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경주: 다큐멘터리북이기 때문에 구성이나 편집은 거의 비슷하다.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크리스토퍼에 대한 정보는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특히나 크리스토퍼가 좋아해서 틈틈이 ‘중얼거리는’ 다양한 문장들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진다.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는 사숙으로 책만이 진실을 전해준다고 믿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결들을 내 언어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 ‘중얼거림’들이 중요했던 것 같다.


김성욱: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간성이 매혹적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안에서 부모의 시간이었던 60년대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 크리스토퍼는 1968년에 태어났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 1990년대는 걸프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인투 더 와일드>는 6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여행과도 같고, 크리스토퍼는 그 속에서 히피나 사회에서 뛰어났던 인물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

김경주: 물론 영화에서 68세대의 히피문화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비트세대라고 부르는 잭 런던,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에 대한 강한 오마주가 영화에서 느껴진다. 그러한 이 영화만이 가진 결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나는 배낭여행지 1순위로 크리스토퍼의 버스가 꼽혔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보면 공유하고 체험하고 싶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면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인투 더 와일드>는 그만큼 지속적인 파장을 주는 영화다.


김성욱: 나이가 드니까 떠나는 청년보다 청년을 바라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이 와 닿았다. 시대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90년대 초는 부시에 의해 걸프전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영화의 중간 중간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그 점이 환기된다.

김경주: 크리스토퍼가 죽기 전에 ‘행복은 실재할 때, 함께 할 때만 존재한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헨리 소로의 『월던』의 행간에 새겨 넣는다. 개인의 가족사나 행복의 공유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개별적 관점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가족사,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반추하게 되었다.



관객1: 현실을 봉합하지 않더라도 크리스토퍼가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크리스토퍼가 가족문제를 집착을 하고, 가족에게 복수하는 느낌이 강해서 안타까웠다.

김경주: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켰을 때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질 것 같다. 당시 68세대에 대한 시대적인 혼란, 가부장, 억압된 미국 사회 등 크리스토퍼가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 가족이라는 결속력뿐만 아니라고 본다. 영화에 삽입된 에디 베더의 ‘Society'라는 곡에는 ‘내가 사라지면 사회는 나를 그리워해줄까’라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내러티브 외에도 또 다른 내러티브가 음악에서 등장한다.


관객2: 크리스토퍼는 화폐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돈을 태워버린다. 사실 가족주의는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원작의 주인공은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감독은 오히려 가족주의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경주: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무비를 동생의 목소리를 통해서 가족주의로 이끌고 가는 느낌이었고, 생선의 비늘처럼 자꾸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작가는 크리스토퍼의 여동생이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으로 보았다. 원작이 르포 형식이기 때문에 감독 숀 펜이 그것들을 모두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크리스토퍼가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시대적인 결을 보면, 인물을 이해하기 더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 듯, 모를 듯싶지만 분명히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는 느낌이 든다. 답을 찾기 보다는 그 느낌에 충실하면 좋을 것 같다.


김성욱: 끝으로 시인들이 영화를 볼 때 어떠한가가 궁금하다. 어떤 영화에 매혹을 느끼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들으면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한다.

김경주: 예술 장르마다 그러한 것들이 있겠지만 시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이 있다. 시에서 그것은 행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의 행간과 같은 존재는 침묵인 것 같다. 속도가 빠른, 목적이 분명한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침묵이 잘 표현된 영화를 좋아한다. 내러티브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견디면서 생기는 균열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정리: 배동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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