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0. 17:43ㆍ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영화읽기] 카르멜로 베네의 <카프리치>
여러 방면에 재능이 많은 카르멜로 베네는 모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영화보다 소설과 연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가장 매혹적이고 특색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그의 다섯 작품을 볼 때, 이러한 현실은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영화적 광기라는 베네만의 독특한 특징이 요즘 시대의 관객들에게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다소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다.
1969년에 만들어진 베네의 두 번째 장편영화 <카프리치>는 그의 전작과 같이 현대 이탈리아에서의 삶에 대한 환각적이고 비선형적인, 궁극적으로는 종말론적인 시선을 보여 준다. 베네의 전작들과는 달리 <카프리치>는 특별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영화 클라이맥스의 난폭한 자동차 사고 장면의 연속은 영화가 만들어지던 1969년도에는 충격적으로 보였겠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저 잘라낸 화면들이 느리게 재생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복장도착자의 정사 장면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카프리치>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은 영화의 마지막 ‘황금시대’로 여겨지는 1960년대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얼마나 기묘한 영화들이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독특하고 매혹적인 타임캡슐과 같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특별히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그저 비현실적인 짧은 이야기들의 연속일 뿐이다. 영화는 베네 자신이 연기하는 한 불만스러운 공산주의자가 자신의 상사와 함께 도로에 접어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각각 망치와 낫을 들고 싸운다. 한 매혹적인 나체의 여자가 있고, 뒤에는 한 나이 많은 남자가 침대 위에 누워 있다. 귀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그는 그녀와 잠자리를 갖기 위해 애쓴다. 베네와 그의 여성 동료는 한 부서진 차의 뒷자리에서 격렬한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Alberto Moravia)는 카르멜로 베네의 작품을 ‘정신 분열증 환자의 정신 착란 그 너머까지를 끌어올린, 부인에 의한 신성모독’이라고 평가했다. 방향 감각의 상실은 베네의 근본적인 목표로 보이며, 빠르고 일관성없는 편집과 카메라 렌즈 앞에서의 흔들리는 물체 등이 이를 드러낸다. 장면의 전환이 잦고 논리와 이야기의 흐름에 의한 시각적 장치들은 매우 중요하게 자리한다. 베네의 회화적 감각은 매우 두드러져서 대부분의 할리우드 감독들조차 할 수 없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이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전반적인 인상을 강렬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이해되기’보다는 단순히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자료: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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