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

변영주 감독이 말하는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감독 변영주가 추천한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상영 후 시네토크가 열렸다. 어린 시절, 멜빌의 영화에 매혹되었던 기억을 비롯하여 <그림자 군단>에 대한 감흥, 멜빌 영화의 현대적 특징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 날의 대화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추천할까를 고민하면서 영화적 매혹을 강렬하게 느꼈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보시던 비디오를 통해 <암흑가의 세 사람>(1970)을 처음 접했었다. NHK에서 방영되었던 일본어 더빙판을 녹화한 비디오였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화에 대한 느낌은 굉장히 강렬했다. 나중에서야 당시 보았던 영화가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멜빌의 영화 중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1967) 같은 영화들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훨씬 더 어울릴 영화가 <그림자 군단>(1969) 같다는 생각을 해서 추천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때 읽었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라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왜 나는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특정한 어떤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게 되는가. 반면 특정한 인물을 증오하고 혐오할수록 왜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 가는가.” 오늘 보신 <그림자 군단>과도 잘 맞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폭압이나 독재와 싸우는 일은 멋진 일이 아니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화 속 레지스탕스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계속해서 잡히거나 도망가거나,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죽일 수밖에 없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독일군에게 위협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불의에 항거한다는 것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이상과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 군단>은 실제 레지스탕스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원작이고, 멜빌 감독 자신도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었다. 마틸드 역을 연기한 시몬느 시뇨레은 부모가 유태인으로 독일에서 탈출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감독과 배우들이 그 때의 기억을 명백하게 갖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일이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였다. 멜빌 감독의 영화는 다이렉트하면서도 굉장히 힘이 있다. 멜빌의 영화를 흔히 장르 영화라고 하지만, 단지 스타일로서의 장르가 아니라,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으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악의가 아니었건, 누군가가 겁에 질렸건 간에 ‘잘못된 일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굉장히 명백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이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나의 아버지 세대를 이해해 본적이 없었다. 왜 아버지에게는 내 가족과 삶의 안정 이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 이를테면 대의, 올바름, 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철이 든 이후에는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었고, 언제나 서로 굉장히 방어적이었다. 하지만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을 읽다가, 청춘이라는 것이 살아야한다는 강박과 공포로 대치된 인생을 산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정과 삶 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훨씬 역사의 과오에 대해 훨씬 더 냉정해지는 것, 그 앞에서 정말 명징해지는 것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그 세대가 그 세대의 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사는가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1: <그림자 군단>이 주제적인 측면 외에, 스타일이나 형식, 연출에 있어서 현재에도 호소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 궁금하다.

변영주: 멜빌의 영화가 놀랍도록 현대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장르라는 것은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하기가 쉬워진다. 장르로서의 완벽한 자기 구조를 갖게 되면 관객에게는 구조 자체가 낯설지 않기 때문에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다 어려운 이야기, 어떤 심층의 이야기를 숨겨서라도 표현하고 싶을 때 장르라는 것이 용이하다고 생각한다. 멜빌은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와 같이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느와르 장르의 이야기 구조를 가져오는데, 그러한 방식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고조된 감정과 상황에서 더욱더 당대의 향기를 맡기가 쉬워진다. 당대의 질서, 그 세대의 감정에 대해 알기 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멜빌의 영화는 미학적으로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영화에 담겨있는 시대적 공기라든가 하는 것들이 훨씬 현대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탁월하다. <그림자 군단>의 경우 실제 인물들을 참조해 캐릭터가 만들어짐으로써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최대치를 담을 수 있었고, 그래서 러닝타임이 긴 편임에도 매 순간 긴장감이 있다. 일본어 더빙판으로 멜빌의 영화를 보았던 어린 시절, 내용을 알 수는 없어도 영화에 매혹되었던 건, 쇼트와 쇼트를 연결하는 방식과 카메라의 움직임들에서의 김장감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관객2: 멜빌의 영화 중 <그림자 군단>이 요즘 시대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변영주: 물론 지금의 우리가 레지스탕스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웃음) 우리가 어떤 것들을 바라고 꿈꿀 때 그것이 어느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필리핀 감독 닉 데오캄포의 <혁명은 유행가 가사의 마지막 후렴구처럼 다가온다>는 영화가 있다. 혁명이든 변화든 우리가 바라는 어떤 세상은 어느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은 굉장히 지지부진할 수 있고,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유행가의 후렴구를 떠올리듯이 그렇게 혁명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자면, 올바르다는 것, 정의롭다는 것은 끊임없이 검증되어져야하고,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주인공이 내레이션을 통해 갈등하듯이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그 다음 걸음을 가기가 힘들다. 그런 면을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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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없이 건조한 레지스탕스 필름누아르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장 피에르 멜빌은 프랑스 영화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볼 때 비평가들이 정의하기 어려운 감독 중 하나이다. 그럴만한 사정은 있다. 미국영화를 추앙했던 누벨바그리언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영화들에 미국의 양식을 이식하는 것을 회피했던 것에 비해 멜빌은 미국식 장르를 프랑스 영화계에 전용한 ‘파리의 아메리카인’이었다. 멜빌의 노작들은 장르(필름 누아르나 하드보일드 범죄영화)에 대한 페티시즘이 미학의 경지로 승화된 사례를 제공한다. 차갑고 건조한 그의 범죄영화는 냉소주의와 비관주의, 어둠과 연결되는 장르의 특성을 양식화된 표현을 통해 제공(<바다의 침묵> <도박꾼 밥> <사무라이>)했다. 

 

<그림자 군단>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조셉 케셀의 1943년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2차 대전 말기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필립 제르비에(리노 벤츄라)가 이끄는 조직의 요원들이 체포와 구금, 고문, 탈출을 반복하는 과정이 별 다른 사건없이 건조하게 묘사된다. 케셀의 소설이 레지스탕스에 대한 것이었다면 멜빌의 영화는 저항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다. 정치적 행위로서의 저항이 아니라 실존적 양식으로서 저항 행위를 다룸으로써 그는 텍스트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삭제한다. 프랑스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깔았지만 영화는 범죄 누아르와 스파이 영화를 교배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게슈타포를 경찰, 레지스탕스들을 범죄조직이나 첩보원으로 바꾼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멜빌은 레지스탕스 스토리(멜빌 자신이 점령기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를 범죄 누아르의 자장 안으로 밀어 넣는다.
 

어떤 장면들은 흡사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타일에 대한 접근방식, 사운드, 특히 과묵한 인물들의 내면을 진술하는 나레이션은 노골적으로 브레송 풍이다. 극적이나 심리적이기를 거절하고 철저하게 현상적인 기술에 그치는 나레이션을 암송하는 인물들은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삶을 견디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림자 군단>에 만연한 것은 심리적 동기화나 감정을 배제한 냉혹한 묘사, 침묵, 생략이다. 이를테면 펠렉스나 장 프랑소와에게 행해지는 고문의 과정은 생략된다. 필립의 조직원들은 미래가 없을뿐더러 과거도 없다. 필립은 자신이 엔지니어라고 말하지만 직업은 그의 임무와 어떤 연관성도 맺지 않는다. 장르의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따라 멜빌은 특정한 방식으로 입고, 말하고, 행동하고, 죽음을 맞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한다. 따라서 그들이 입는 옷과 중절모, 자동차, 총, 시가, 어둡고 한적한 거리에서의 달리기 따위가 더 중요하다. 

‘저항’이라는 세상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묘사하는 이 영화가 유일하게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있다는 그것은 ‘죽음’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조직원 마틸드(시몬느 시뇨레)의 처형 장면에서 이런 사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장은 타살도 자살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마틸드의 운명을 단정하고 그를 암살하지만 죽음의 순간 마틸드의 눈빛은 이와 같은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그녀는 정말 조직이 자신의 명줄을 끊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이 순간 <그림자 군단>은 언제나 죽을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짊어진 실존의 부조리함을 다룬 영화가 된다.

장병원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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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고양이 찾기> 상영 후 변영주, 이해영, 홍세화와 함께한 토크 지상중계

 

<태양 없이>, <제5단계>, <숨은 고양이 찾기>가 연달아 상영되던 이른바 ‘크리스 마르케 데이’였던 지난 12월 1일,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사로 오픈토크가 열렸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이 진행한 이날 오픈토크의 특별한 손님으로는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가 참석하였다. 영화와 정치에 대해 날카로운 이야기가 오갔던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해영 감독과 제가 계속 오픈토크를 하고 있다. 이번 달은 무슨 주제로 해야 되나, 뭔가 대선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이런 얘기를 하던 차에 꼭 모시고 싶었던 분, 홍세화 선생님을 성공리에 모시게 되었다. 먼저 영화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객석 쪽 질문을 받아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 제 기억으론 크리스 마르케의 몇몇 작품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됐고, 오늘도 1시부터 계속 상영이 있었다. 오늘 함께 본 <숨은 고양이 찾기>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홍세화(진보신당 전 대표): 이 영화를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영화가 참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원제가 ‘장대에 올라선 고양이’ 이런 뜻인데 그 의미가 뭘까, 이런 생각을 쭉 하면서 봤다. 그 중에서도 저는 파리 광경이 나오니까 그 부분이 더 정감이 갔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 있는데, ‘파리는 항상 이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화를 낸다’고 했다. 그러니까 웃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으르렁거린다는 것이다. 데모현장의 표현도 그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 것 같으면서 알쏭달쏭하다.

변영주: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그 다음 단계의 시네마 베리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시네마 베리테는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하고 사운드도 다른 사운드로 구현이 된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가서 개입을 한다. 그로 인해서 갑자기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 주제와 연관이 된 것처럼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마르케는 마치 그 다음 단계처럼, 자기가 만들어내는 영화 안에서도 시퀀스와 시퀀스가 서로 긴장을 하고 서로 교류를 한다. 제가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뭉뚱그려서 얘기하는 걸 보면 저도 되게 어렵게 봤다는 거다(웃음).

이해영(영화감독): 말한 내용 중 핵심은 없었다(좌중 웃음).

변영주: 재미도 있지만 어렵다. 저는 김성욱 프로그래머한테 물어봤다. ‘저 고양이 실제 있는 그림이야? 없는 그림이야?’ 실제로 저 시기에 시위현장에서 자주 보이던 고양이 그림이라고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말을 빌리자면, 몇 년 동안 이 시기 파리를 중심으로 한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혼란을 흡사 아주 오래 전부터 지켜봐왔던 누군가의 시선처럼 지켜보는 그런 이미지의 영화인 것 같다. <숨은 고양이 찾기>라고 하면서 보이는 프랑스의 현실. 이를테면 좌파들도 결국 시라크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위도 있고, 중간 중간 보이는 우파들의 시위도 있다. 일단 홍 선생님께서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당시의 프랑스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홍세화: 프랑스는 결선 투표제를 채택하여 대통령을 뽑을 때 총 두 번 투표를 한다. 2002년 봄 1차 투표 때 현직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가 20%로 1등을 하고 2등은 사회당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이 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팽은 3등을 하리라고 봤다. 그는 프랑스 실업자가 300만이면 이주민 노동자 300만 명을 쫓아내면 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극우 후보가 1차 투표에서 2위를 하게 되는 이변이 일어난 거다. 젊은이들이 당연히 조스팽이 되리라 생각해서 투표 안 하고 놀러갔다는 속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결선 투표에 가게 되니까 우파인 시라크와 극우파인 장 마리 르팽이 결선에 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결국 결선투표가 82대 18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이게 프랑스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해영: 영화에 나온 고양이 캐릭터 이름이 ‘또마’다. 또마를 그리는 화가는 퐁피두 광장에서 거대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화가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제가 이 화가를 만나 본 적이 있는데, 당시 <29년>이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던 2008년이었다. 주인공이었던 류승범 씨와 카페에서 술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마침 그 카페 벽에다가 또마라는 분이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그때 그분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벽에다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MB정권 초기였고, 이런 민감한 소재의 영화를 과연 만들 수 있을지 불안감과 조바심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면서 영화를 준비했던 때였다. 어쩌면 프리프로덕션하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그런데 결국 영화는 엎어졌다. 영화가 엎어지니까 갑자기 이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때 그 분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말하자면 한량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의 삶보다 내가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이 나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더 찾아보니까 홍대에도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관련 상품도 많이 나와 있어서 제 차에 또마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몇 년이 흘러서 오늘, MB정권 말기에 <26년>이 저와 관계없이 개봉을 했다. 크리스 마르케, 또마, <26년>이 묘하게 겹치면서 환기가 된다. 두 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다. 지금 정권 말기가 되면서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제가 알기론 어떤 정권 말기에도 이 정도로 영화가 이렇게 집중되어 나온 적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 이 정권이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 극장에 걸려있는 정치적인 독립영화 혹은 상업영화중에서 혹시 보신 게 있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 말대로 여타 어떤 정권 말기에도 이렇게 정치적인 영화가 상업영화 독립영화 가릴 것 없이 봇물처럼 나온 적이 없었다. 그중 굉장히 좋았던 영화도 있었다. 사실 독립영화는 언제나 정치적인 소재를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다. 이를테면 <두 개의 문>. <26년>이라든가 <남영동 1985>의 경우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으려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고, 혹여 그랬을 때 상영이 되지 못할까 봐 개봉시기가 조절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이해영 감독이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미 투자가 얘기되고 캐스팅까지 다 된 영화가 갑자기 엎어진 건 초유의 일이었다.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디액트나 독립영화전용관 등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누군가에 의해 쫓겨나는 건 상상을 못 했었다.

홍세화: 저도 <두개의 문>이랑 <부러진 화살>을 봤다. <화차>는 아직 못 봤다(웃음). 사실 제가 영화를 잘 못 본다. 앞으론 자주 봐야겠다.

이해영: 필요에 의해서 나오는 영화들이고 다음 정권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앞당겨 개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 입장보다 관객의 소비패턴이, 영화를 보는 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의 전부라는 면죄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만 소비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가 수단의 기운에 편승해서 졸속 제작 되었다면 위험한 일일 것이다.

 

변영주: 다시 <숨은 고양이 찾기>로 돌아가서,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누가 몇 프로가 되건 1, 2등이 결선으로 간다는 것인지.

홍세화: 50%가 넘지 않으면 그렇다. 그러니까 1차 투표에선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사표에 대한 우려 없이 찍을 수 있다. 1차 투표는 내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것이고, 2차 투표는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반대편을 찍는 것이다.

변영주: 그럼 우리는 2차 투표만 하고 있는 거다(웃음).

홍세화: 지금 우리 경우처럼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는 일은 프랑스에선 있을 수가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는 결선 투표제를 한다. 대선은 2주, 국회의원은 1주 만에 뽑는다. 투표일이 일요일인데 투표율도 높은 편이다.

변영주: 르팽이 처음 출현했을 때는 지역정당으로 시작을 했었다. 당시 프랑스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그런 정당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이젠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도 많이 보수화되었고 우익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 숫자도 그만큼 늘어난 거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보면서 우경화되어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르팽처럼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공격적인 언설도 분명 있다. 분명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도 동시적으로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홍세화: 아무래도 보면서 견주게 된다. <르몽드>는 사설에서 극우파가 결선에 나오게 된 상황 자체가 “프랑스의 수치”라고 했었다. 거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동안 좌파, 지식인, 문화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배경도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은 노동의 분업체계 안에서도 위계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소위 중도좌파들은 조직된 노동이나 상층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노동이 위계화 되면서 하층들이 좌파들로부터 버림받는 상황이 됐다. 이때 이들에게 접근한 게 바로 극우파였던 거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북유럽에서도 극우세력이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게 그런 문제에 있다. 보통 20대 80의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상위 20이 80을 갖고 있고 하위 80이 나머지 20을 갖고 있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이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만 제대로 작동하면 된다. 왜냐면 80만 제대로 투표하면 되니까. 그런데 지난 4.11 총선에서도, 월 소득 100만원이 안 되는 층에서 투표한 사람들 중 새누리당 지지율이 71%였다. 그만큼 서민층 내지 극빈층이 오히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이다. 비록 역사적 배경이나 층위는 다르지만 이렇게 견주어 볼 수는 있다.

 

 

관객1: 이 영화를 보면서 68혁명과 <몽상가들>이란 영화를 떠올렸는데, 시위에 참가하려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친구가 ‘네가 화염병을 던지려고 달려 나가는 순간 넌 네가 적대시하는 사람과 동일해져’라고 말한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병을 들고 뛰어나가는 사람도 아닌, 어떻게 보면 어정쩡한 자리에 있다. 사람들이 제게 ‘너는 누구와 연대하고 있어?’라고 물어볼 때 ‘나는 모두와 연대하고 있다’고 답하는데 그들은 그걸 ‘아무와도 연대하고 있지 않다’는 말로 듣는 것 같다. 두 사람 이상이 같은 꿈을 꾸려면 그 방법이 무엇일지 질문 드리고 싶다.

홍세화: 우선 68혁명이 갖고 있는 사회적 변혁의 추진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것이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려면 회사에 남편의 동의서를 제출했어야 했다. 그만큼 가부장적인 사회였는데 68혁명 이후에는 엄청난 격변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하게 활동들이 있을 텐데, 이것이 문화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핵심은 사회적 존재인 ‘나’가 그 안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건 자기 능력에 따라, 자기 적성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다르다. 그리고 화염병을 던지는 순간 저들과 똑같이 된다는 얘기는, 싸우는 과정 자체가 싸움을 통하여 우리가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를 닮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 한국 같은 사회에서 그걸 지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건 각자가 고민 속에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속에서 스스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관객2: 두 분 감독님께, 요즘 나오는 정치적인 영화, 정치적인 엔터테인먼트, 새누리당이나 MB를 희롱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저소득 계층들에게 정말 설득력을 가지고 손을 내밀 수 있을지, 그럴 수 있다면 그 영화들이 제안해야 할 바가 뭔지 궁금하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은 정치인으로서 느끼셨던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홍세화: 제가 지난 1년 동안 진보신당 대표 자리를 맡았다. 글 쓰는 서생으로서 정치를 보았을 때와 현실 진보정치는 역시 다른 것이었다. 현실정치를 겪으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걸 알게 되어서 또한 좋은 일이다. 제 삶에 있어서 현실 진보정치에서의 1년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1년이었지만, 결국 유의미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고통이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고통이다.” 힘들었지만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해영: <26년>도 <남영동 1985>도 <MB의 추억>도 아직 못 봤지만 이런 생각은 든다. 실제 역사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희생자나 유족 분들이 아직 살아있는 사건을 다루는 영화라면, 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분노를 같이 공유하자, 그것만으로 소비되면 굉장히 위험한 것 같다. 감정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영화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적절하게 이상적인 답안을 준 영화가 <두 개의 문>이라고 본다.

 

 

관객3: 두 분 감독님이 크리스 마르케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두 분께서는 마르케의 어떤 면모를 좋아하시는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께서 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허무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들은 한국사회에도 많이 나오는 얘기인 것 같다. 진짜로 젊은이들의 무관심이 현실 제도정치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는지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개인적으로 크리스 마르케뿐만이 아니라 시네마 베리테 감독들을 좋아한다. 우리가 현실세계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건 극영화로 만들건, 결국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세계관, 취향, 영화적인 관점, 그 모든 것들에 의해 반영된 현실이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과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 현실이 아닌 것과 현실, 자기의 주관 또는 세계관과 현실세계의 어떤 것들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긴장감, 이런 것들이 시네마 베리테 영화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공부가 된다.

이해영: 저는 크리스 마르케의 사진 작업들을 많이 봤다. 사진 작업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건 사람을 바라볼 때 아무런 편견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같은 태도였다, 크리스 마르케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이따금 찾아볼 때마다 그런 태도가 환기되는 것 같다. 즐기기보단 교과서 같은 작품들인 것 같다.

홍세화: 프랑스 정치에선 시위상황이 굉장히 유희적이다. 한편 한국에선 요즘 시위도 거의 없고, 모순이 의식을 통해 엄청나게 통제되거나 물리력에 의해서 억압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수평적으로 비교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사회적 모순이 첨예한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모순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정치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은 대단히 두려운 거다. 아예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차라리 누가 좋고 싫고, 이렇게 접근이나 가능하면 모르겠는데, 아예 담을 쌓는 현상은 그 분들 대다수가 혐오하는 정치를 계속 혐오스럽게 놔두는 가장 강력한 정치 현상이다. 한마디로 탈정치라는 건 그 혐오스런 정치를 계속 혐오스럽게 놔두는 강력한 정치적 행위다.

변영주: 마지막으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떠오르신 몇 가지 생각이 있으시다면?

홍세화: 투표 잘 해야겠다. 영화운동, 문화운동, 정치운동, 뭐든지 운동이라는 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현실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피치 못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 또 하나는 지금 제가 강조하려는 것인데, 바꾸어야 할 현실로서의 의미다. 똑같은 현실이란 말에서 우리의 경우는 전자의 의미가 너무 강하다. 그만큼 현실을 변화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에 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은 좀 더 적극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는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에 장벽 같은 것이 있다. 선거판만 보더라도 엄청난 단절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와의 관계가 적대 관계지 경쟁 관계가 아니다. 소통, 소통 하지만 장벽 내에서의 소통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정말 사유하는 존재라면 이 장벽을 어떻게 깰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나름대로 사회비판의식을 갖게 되고 세상 보는 눈을 얼핏 뜨게 되는 경우는 스무 살 안팎에서, 선배 잘못 만나면 길이 열리게 된다(웃음). 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장벽을 뚫어서 어떻게 하려는 시도보다는 비판에 머무는 건 그것이 제일 쉽기 때문이다. 어떤 작업이든 벽을 뚫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과제가 아닌지, 그렇게 생각한다.

변영주: 요즘 극장에서 독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영화가 다양하게 상영되지 못한다. 정말 이게 상영이냐. 많은 분들이 대기업 욕을 하신다. 그러면 그들이 영화를 그만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건 영화계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질서의 어떤 리얼한 단편이다. 단순히 대기업이 정신을 차리는 걸로 끝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해야 하지?’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작은 영화들은 여전히 설 자리를 잃고 말 거다.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정말 투표를 잘 해야 하는 건 개개인의 삶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은 단순히 불쌍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 우리는 어떤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건지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정말 놀라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과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내 삶 안으로 다가오는 순간 세상이 또 한걸음 전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영: <두 개의 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연분홍치마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 친구들 영화 하는 걸 보면, 다음 정권은 독립영화인들이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정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정권이었으면 좋겠다.

변영주: MB정권 들어와서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정말 힘들어졌다. 갑자기 지원이 끊기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행되기도 했지만, 그걸 지켜줬던 유일한 힘이 관객들의 관심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고, 오늘 자리해주신 여러분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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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주목할 만한 프랑스 영화들을 상영하는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 French Cinema Now’이 겨울의 문턱인 11 13일부터 12 9일까지 약 한달 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장 뤽 고다르나 클로드 샤브롤처럼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노장에서부터 압델 케시시나 자비에 보부아처럼 상대적으로 최근에 데뷔한 감독들, 여기에 특별 섹션을 따로 마련한 크리스 마르케까지 총 12명의 감독이 만든 프랑스 영화 17편이 소개될 예정이다.  영화가 함께 프랑스 영화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먼저 주목할 건 거장들의 근작.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감독들 -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아녜스 바르다, 샹탈 아커만 등 프랑스 누벨바그(새로운 물결)를 이끌었던 감독들이 최근 작업한 영화들, 고다르 스스로 세계 속의 흐름에 관한 영화라 칭한 <필름 쇼셜리즘>부터 계급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 샤브롤의 블랙코미디 <둘로 잘린 소녀>, 19세기 프랑스의 귀족사회를 그린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랑제 공작부인』을 영화화한 자크 리베트의 <도끼에 손대지 마라>, 그리고 조셉 콘라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샹탈 아커만의 <알마이에르가의 광기>까지 거장들의 근작을 만날 수 있어 이들의 영화적 관심사가 어디로 옮겨갔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미 프랑스 영화의 중견 감독으로 자리 잡은 압델 케시시의 <생선 쿠스쿠스> <블랙 비너스>, 자비에 보부아의 <신참 경찰> 등 일상성을 영화에 끌어들이면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문제의식으로 현대 프랑스 사회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영화들도 소개된다.

 

그리고 특별히 올해 우리 곁을 떠난 크리스 마르케를 기리며 마련한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작은 특별전 크리스 마르케 오마주섹션에서는 영화사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던 그의 대표작 5편을 상영한다. <아름다운 5>, <태양 없이> 등 그의 대표작 다섯 편을 만날 수 있는 이 섹션은 영화의 정치적 역할과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에 상영하는 17편의 작품들은 한 편 한 편이 그 자체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놓칠 수 없는 영화들이다. 이번 상영작들에서 어떤 관객들은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읽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떤 관객은 프랑스 이주민의 문제를, 또는 여성 재현의 문제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번 특별전은 프랑스 영화의 경향에 대한 의견과 지금 시대를 향한 고민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에는 특별히 유운성, 정지연, 김성욱 영화평론가의 강연과 좌담 및 변영주, 이해영 감독의 오픈 토크도 준비했다.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강연은 12 1일 오후 3 30 <5단계>,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의 강연은 12 6일 저녁 7 30<필름 쇼셜리즘>, 정지연, 김성욱 평론가의 좌담은 12 9일 오후 3 <아름다운 5> 상영 후 진행될 예정이며, 변영주, 이해영 감독과 함께하는 오픈 토크는 12 1일 저녁 7 <숨은 고양이 찾기> 상영 후에 열려 영화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 11 13일부터 12 9일까지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며, 일반관객은 6,000, 청소년은 5,000, 관객회원과 노인, 장애인은 4,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작품정보와 상세 일정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에서 확인 가능하고 인터넷 예매는 맥스무비, 예스24 등 지정 예매처에서 할 수 있다. (문의 02-741-9782)

 

★ 특별행사

오픈 토크 Open Talk

평소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변영주 감독과 이해영 감독이 참석해 영화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이야기를 나눈다.

일시: 12 1() 19:00 <숨은 고양이 찾기> 상영후

게스트: 변영주 감독, 이해영 감독 등

 

시네토크 Cine Talk

영화에 대한 강의를 듣고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토크 자리

일시: 12 1() 15:30 < 5단계> 상영 후

강사: 유운성(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일시: 12 6() 19:30 <필름 소셜리즘> 상영 후

강사: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일시: 12 9() 15:00 <아름다운 5> 상영 후 좌담

게스트: 정지연(영화평론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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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가 시작된 첫 주 주말이었던 지난 7월 29일 오후, 존 카펜터의 <괴물> 상영에 이어 변영주, 이해영 두 영화감독이 진행자로 나선 세 번째 오픈토크가 열렸다. 이번 토크의 주제는 ‘우리 시대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고 초대손님으로는 공포영화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허지웅 영화평론가와 <습지생태보고서>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최규석 작가가 함께했다. 그 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 이 자리는 구성이 재밌다. 공포영화 전문가 허지웅 평론가와 현재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이해영 감독, 그리고 공포영화를 잘 안 보고, 안 좋아하는 최규석 작가와 제가 함께 하게 됐다. (웃음) 최규석 작가님은 <괴물>을 어떻게 보셨는지.

최규석(만화가): 재밌게 봤다. 외계인 얘기는 왜 나오며 괴물들의 목적은 대체 뭔지, 안 풀리는 떡밥들이 너무 많아서 헷갈리긴 했다.

허지웅(영화평론가): 공포영화는 늘 그 시대의 가장 무서운 것들을 끌어온다. 존 카펜터의 <괴물>(1981) 이전에 하워드 혹스의 <괴물>(1951)이 한 편 더 있다. 이 두 영화는 둘 다 존 캠벨의 「거기 누구냐?」는 중편소설이 원작이다. 하워드 혹스의 영화가 다루는 것이 외부로부터 온 우리와 다른 것, 당시로서는 공산주의, 즉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메타포였다면, 존 카펜터의 영화는 우리 사이에 언젠가부터 같이 존재해왔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다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피아를 식별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이해영(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존경한다. 초반에 괴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 교과서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변영주: 이 영화에서 신기했던 건, 보통의 신체강탈자가 굉장히 공격적인 반면 이 영화에서의 변이된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시치미를 떼거나, 자신들도 전혀 모르고 있다.

허지웅: 캠벨의 원작 소설에서 인물은 외계인에게 자기 몸을 뺏기고 나면, 자신이 외계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인간일지,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이해영: 최규석 작가님은 공포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셨다. 이런 식의 신체강탈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최규석: 어렸을 때는 필립 K. 딕 소설 처럼, 과거 S.F.소설들에서 자기 정체성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현실이 아닌 요소에 대해선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영화를 보면서 놀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의 기복보다 훨씬 더 담담하게 본다.

이해영: 워낙 작가님의 만화가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런 종류의 영화들은 작가님의 작품 성향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최규석: 오히려 침입으로 인한 공포 같은 것 보다, 굉장히 작은 실수로 인해서 편하게 살고 있던 자신의 인생이 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런 것이 제겐 가장 큰 공포인 것 같다.

허지웅: 개인적으로 끔찍한 장면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나 대사에서 공포를 느낄 때가 많다. <신체강탈자의 침입>(1956)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그들이 여기에 있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장면이 있다. 갑자기 화면을 향해 달려오면서 관객을 바라보며 소리 지르기 시작하는데, 너무 소름끼쳤다. 약간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변영주: 저는 타임슬립이 무섭다. 내가 가고 싶은 시대로 가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공포다.

이해영: 요즘 유독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 복고라는 코드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 소외 받거나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것을 과거의 낭만이나 추억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허지웅: 원래 사람들이 불행하면 과거를 끄집어낸다. 반면 행복하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공간, 우주 같은 곳에 가보자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즘 한국 사회는 굉장히 불행한 것 같다.

이해영: 타임슬립이라는 코드는 굉장히 슬픈 것이다. 현재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지웅: 7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영화에서 괴물이 카리스마를 가진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70년대 후반 갑자기 좀비라는, 군중으로서의 괴물, 무리로서의 괴물이 나타났다. 그게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텍스트 속에서 변형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사실 어느 사회든 괴물은 소수이기 때문에 지탄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괴물이, 좀비가 절대다수가 되고 나 혼자 사람으로 남게 된다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누가 괴물일까. 이번 상영작 중 하나인 <지상 최후의 사나이>라는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규석: 카리스마적인 괴물이라고 한다면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 혹은 외부의 적일 수 있는데, 이후에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그만큼 민중들 사이에서의 신뢰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불신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허지웅: <괴물>에서 피아식별이 안 되는 것에서 오는 공포도 그렇고,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주변에 적, 또는 적은 아니더라도 나와 생각이 너무 많이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느슨한 계율에 의해서, 이를테면 같은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묶여버리고 그러다 이제 와서 어떤 식의 커밍아웃에 의해 굉장히 큰 분쟁을 만들어내게 된다.

최규석: 그런 것 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형태의 공포인 것 같다. 어떤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을 때가 아닌, 도시에 나와서 따로따로 살게 되면서 갖는 타인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가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식의, 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존재했었는데, 그런 신뢰 자체가 깨져버린 상황이 아닐까.

 

 

허지웅: 그런데 그런 신뢰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변영주: 그런 신뢰라는 것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영화로 보면 <마더>가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공동체, 관계, 신뢰, 혈연이라는 것들이 폭력적인 것이고, 원시적이고 괴물 같은 것, 무서운 것을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줬던 것 같다.

허지웅: 갈수록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현실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야기 속에서 찾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다크 나이트> 3부작 같은 경우도 내내 공동체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해, 매번 어떤 신념이 깨어졌을 때 다른 신념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좀비영화 같은 경우 급진적인 대안으로서의 공포물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허지웅: 이 영화의 특수효과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사용했다. 얼마 전에 나온 <괴물>의 프리퀄 영화에서는 괴물을 CG로 처리했는데, 정말 너무 안 무서웠다.

이해영: 영화에서 시각효과의 날이 무뎌지기 시작한 건 영화인들이 CG가 만능이라고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시각효과는 실제로 어떤 물건을 만들어 놓고 찍은 것이기 때문에 가상의 그래픽이 절대 대체할 수 없다.

최혁규: 특수효과 보다도 디자인이 정말 훌륭한 것 같다.

허지웅: 특수효과와 디자인을 모두 롭 보틴이 담당했다. 상대적으로 이름은 덜 알려져 있지만, <로보캅>이나 <세븐>, <파이트 클럽> 등의 영화를 했었다. 훌륭한 장인이다.

최규석: 특히 개가 갈라지는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 (웃음) 보통 괴물이라고 하면, 원래 존재하는 생물의 디자인을 변형하거나 결합하는 형태로 만들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맥락과 전혀 다른 형태가 나온다. 창조적이다.

 

관객1: 이런 장르의 영화들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 혹시 추천하는 공포영화가 있나.

허지웅: 가장 좋은 건, 영화의 원작들을 찾아보면서 비교해보는 방식이다. 만약 오늘 존 카펜터의 <괴물>을 보셨다면, 하워드 혹스의 이전 작품을 찾아보시고, 두 영화의 원작 소설을 같이 찾아본다면 정말 재밌다. <신체강탈자의 침입>의 경우, 50년대 돈 시겔 감독과 70년대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버전이 있고, 최근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인베이젼>이 있다. 원작 소설인 잭 피니의 『바디 스내쳐』도 번역이 되어 나와 있다.

 

관객2: 최근 공포 영화의 경향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변영주: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소설에서 주인공 여자아이는 원한을 가진 영혼이 누군가에게 들려져 있는 상태를 해결하는데, 그녀에게 어떤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본사회는 이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듣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최근에 영미권 장르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펴낸 책을 읽었는데, 종말을 묘사하는 방식이 특징적이다. 이전과 같은 거시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내밀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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