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치밀한 기록이 더 큰 생명력을 가진다

- 김동원 감독이 말하는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 전투 3부작'


올해로 8회째인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주인공은 김동원 감독이다. 영화제 마지막날이었던 24일은 그가 선택한 <칠레 전투> 3부작이, 약 4시간 반 동안 상영되었다. 마지막 3부 상영 후 이 작품을 선택한 김동원 감독과의 시네토크에서는 비껴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들과 다큐멘터리가 가진 기록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동원 감독은 영화 속에 나왔던 빅토르 하라의 노래 ‘우리 승리하리라’를 찾아 관객들과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영화제 대미를 장식한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공교롭게도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첫 날의 하루 전에 의도치 않게 이 영화를 틀게 되었다. 우연처럼 상영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하셨고, 어떻게 이 영화를 어떻게 접하게 되셨고, 다시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김동원(영화감독):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처음 들은 건 86, 7년 쯤인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이 쓴 책에 남미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는데, 그 때는 볼 방법이 없었고, 90년대 지나서 책에 있던 영화들을 구해볼 수 있었다. 그 때 시네마 누보 운동과 맞물려 쓰이는 용어인 ‘제 3영화’들이 현실과 치열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라고 소개 되었는데, 사실 조악한 비디오 화질이라 그런지 (영화에 대해) 실망한 경우가 많았다. 98년도에 인권영화제를 통해 <칠레 전투>를 보았는데, 4시간 반이라는 것을 알고 겁을 먹었으나 한 번 보기 시작하니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보게 되었다. 그 다음에도 몇 번씩 보면서 새로운 디테일들이 새록새록 다가오면서 매번 나에게 큰 영화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있었던 현장들, 상계동부터 최근에 용산이나 강정 같은 곳의 주민들 얼굴이 떠올랐고 투쟁 과정들이 영화와 오버랩 되는 걸 많이 느꼈다.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이 끝까지 가졌던 희망의 크기가 지금 나에게 어느 정도의 크기로 남아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성욱: 새롭게 다가오는 디테일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이 다큐를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면.

김동원: 이 영화를 보고 영화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 얼만큼 의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는 72년부터 73년까지 1년여 동안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포함해 제 3부작이 완성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감독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1부, 2부는 주로 부르주아들의 반혁명, 즉 그들이 어떤 논리로 아이옌데를 공격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는가에 대한 논리와 과정들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반면, 노동자들과 민중의 시각에서 아이옌데 집권 하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실험들과 민중이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노동자들과 민중의 역량을 따로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1부, 2부에서는 아무런 음악이 깔리지 않는다. 구즈만 감독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1, 2부를 묘사하고 있다면 3부에서는 애잔하게 편곡된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준다. 이는 구즈만 감독의 주관적인 정서일 수 있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1부, 2부에서는 감독이 중립적이지는 않되 최대한 객관적이려 하는 태도였다고 한다면, 3부에서는 자기 속내를 마음껏 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이 자기 자신을 억누르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맨 마지막에 자기의 표현을 하긴 했지만, 그 표현마저 절제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구즈만 감독이 이 영화를 끝내고 당연히 망명을 해야만 했다. 쿠바에서 편집을 하고 세계 곳곳을 유랑하다가 95년 즈음 20년 만에 (칠레에) 돌아왔다고 한다. <칠레 전투>를 90년 초 무렵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 장면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 나오는 사람들을 몰아넣고 학살했던 국립 경기장 같은 장소들, 영화를 찍다 죽은 카메라맨인 호로세 뮬러의 가족들도 만나는 것을 엮어서 <칠레, 끈질긴 기억>을 만들었다. 그 영화도 인권 영화제에서 봤는데, 구즈만 감독은 첫 영화인 이 영화에서부터 최근의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까지도 아이옌데 시절과 혁명기의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가들은 한 가지 주제에 평생을 매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도 다른 주제의 영화들은 없는 것 같다. <칠레, 끈질긴 기억>에서 보면 젊은이들이 20년 전에 조국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이 영화를 보여주는데, 여기저기서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흐느끼기도 한다. 구즈만 감독은 역사에 대한 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평생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김성욱: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8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기록 되었던 부분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옌데 정권 시절에 구즈만 감독도 극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가, 지금은 극영화를 찍을 때가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다른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현장성 있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록이 가진 힘이 다른 다큐멘터리보다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건 이후에 ‘재구성’해나가는 게 아니라, 현장의 중심에서 기록을 해나갔다는 것 자체가 크게 와 닿았다.

김동원: 다큐멘터리는 기록을 하는 영화지만, 최근에는 기록보다는 감독의 주관성을 표현하는 데 더 많이 쓰이기도 한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대상을 제작 주체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태도인 것 같다. 그만큼 대상을 존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구즈만 감독이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지만,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절제하는 태도를 보인다. 누가 기록하느냐 보다 ‘기록됨’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일 것이다. 영상시대에는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지 않으면 글로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하더라도 묻혀진 역사가 되고 말지 않나. 요새는 ‘찍(히)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시각적으로 확인할만한 기록, 대중들이 다가갈 만한 통로가 없으면 수많은 역사들이 묻히고 만다. 칠레의 9‧11에 관한 영화들은 이 영화 말고도 많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의 무게감을 가진 기록물은 없는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옌데 집권 3년 동안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건이 어떤 변증법적인 충돌을 가지면서 전개되었는지 이 영화만큼 꼼꼼하게 찍은 기록물이 없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솔라나스 감독의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가 당시에는 더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솔라나스 감독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스타일의 힘은 강하지만 기록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 와서 평가를 하자면 솔라나스가 실험했던 화려한 수사, 강렬한 톤은 구즈만의 냉정한 톤이 가진 영화적 힘에 못 미친다고 본다. 결국 치밀한 기록이 훨씬 더 큰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리: 지유진(관객에디터) 사진: 김윤슬(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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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지속적으로 파장을 주며,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시인 김경주가 말하는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지난 2월 16일,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의 상영이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시인 김경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그는 영화 속의 크리스토퍼와 같이 곧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날 것 같은 차림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여행에 관한 책을 쓴 그는 <인투 더 와일드>와의 특별한 만남과 영화에 대한 각별한 인상을 전했다. 시인의 언어로 표현된 <인투 더 와일드>에 대한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보고 나면 시인이 추천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 관한 영화로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 <인투 더 와일드>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도 드물다. 김경주 시인은 실제로 여행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테마에 집중했을 거 같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점을 좋아하셨는지.

김경주(시인): 이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당히 늦게 알게 되었다. 홍대에서 오랫동안 작업해오고 있는데, 유명한 레코드 가게인 레코드포럼을 지나가다가 <인투 더 와일드>의 영화음악을 듣게 되었다. 인상 깊은 음악들은 펄잼이라는 밴드의 보이스 보컬로 활동했던 에디 베더가 작업한 것이다. 음악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가게로 들어가 에디 베더가 새로운 음반을 냈느냐고 주인에게 여쭈었다. 에디 베더는 더 이상 새로운 음반을 내지 않는데 한 영화감독이 그에게 특별히 영화음악을 의뢰해서 탄생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이 음악을 들었다. 음악만 듣다가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함께 보고 싶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나,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가 어떤 책을 가지고 다녔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설명되어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는 헨리 소로의 책이나 잭 런던의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토퍼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밀도 높은 경험을 제공해줬던 영화였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교감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추천했다.


김성욱: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경주: 다큐멘터리북이기 때문에 구성이나 편집은 거의 비슷하다.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크리스토퍼에 대한 정보는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특히나 크리스토퍼가 좋아해서 틈틈이 ‘중얼거리는’ 다양한 문장들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진다.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는 사숙으로 책만이 진실을 전해준다고 믿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결들을 내 언어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 ‘중얼거림’들이 중요했던 것 같다.


김성욱: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간성이 매혹적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안에서 부모의 시간이었던 60년대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 크리스토퍼는 1968년에 태어났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 1990년대는 걸프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인투 더 와일드>는 6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여행과도 같고, 크리스토퍼는 그 속에서 히피나 사회에서 뛰어났던 인물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

김경주: 물론 영화에서 68세대의 히피문화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비트세대라고 부르는 잭 런던,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에 대한 강한 오마주가 영화에서 느껴진다. 그러한 이 영화만이 가진 결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나는 배낭여행지 1순위로 크리스토퍼의 버스가 꼽혔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보면 공유하고 체험하고 싶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면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인투 더 와일드>는 그만큼 지속적인 파장을 주는 영화다.


김성욱: 나이가 드니까 떠나는 청년보다 청년을 바라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이 와 닿았다. 시대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90년대 초는 부시에 의해 걸프전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영화의 중간 중간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그 점이 환기된다.

김경주: 크리스토퍼가 죽기 전에 ‘행복은 실재할 때, 함께 할 때만 존재한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헨리 소로의 『월던』의 행간에 새겨 넣는다. 개인의 가족사나 행복의 공유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개별적 관점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가족사,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반추하게 되었다.



관객1: 현실을 봉합하지 않더라도 크리스토퍼가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크리스토퍼가 가족문제를 집착을 하고, 가족에게 복수하는 느낌이 강해서 안타까웠다.

김경주: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켰을 때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질 것 같다. 당시 68세대에 대한 시대적인 혼란, 가부장, 억압된 미국 사회 등 크리스토퍼가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 가족이라는 결속력뿐만 아니라고 본다. 영화에 삽입된 에디 베더의 ‘Society'라는 곡에는 ‘내가 사라지면 사회는 나를 그리워해줄까’라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내러티브 외에도 또 다른 내러티브가 음악에서 등장한다.


관객2: 크리스토퍼는 화폐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돈을 태워버린다. 사실 가족주의는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원작의 주인공은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감독은 오히려 가족주의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경주: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무비를 동생의 목소리를 통해서 가족주의로 이끌고 가는 느낌이었고, 생선의 비늘처럼 자꾸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작가는 크리스토퍼의 여동생이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으로 보았다. 원작이 르포 형식이기 때문에 감독 숀 펜이 그것들을 모두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크리스토퍼가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시대적인 결을 보면, 인물을 이해하기 더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 듯, 모를 듯싶지만 분명히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는 느낌이 든다. 답을 찾기 보다는 그 느낌에 충실하면 좋을 것 같다.


김성욱: 끝으로 시인들이 영화를 볼 때 어떠한가가 궁금하다. 어떤 영화에 매혹을 느끼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들으면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한다.

김경주: 예술 장르마다 그러한 것들이 있겠지만 시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이 있다. 시에서 그것은 행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의 행간과 같은 존재는 침묵인 것 같다. 속도가 빠른, 목적이 분명한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침묵이 잘 표현된 영화를 좋아한다. 내러티브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견디면서 생기는 균열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정리: 배동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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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역사의 새로운 시각들이 힘을 갖고 반향을 일으켰던 시기의 영화   

- 민규동 감독이 말하는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지난 2월 16일, 민규동 감독의 선택작인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상영 후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들을 열렬히 지지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애정을 갖고서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있는 민규동 감독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선택작들 중 가장 의외의 선택이라는 인상도 잠시, 시네토크가 끝날 즈음 민규동 감독이 만든 역사극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여러 편을 추천해 주셨는데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는 <남부군>(1990)을 상영하게 되었다. 처음 선택하신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민규동(영화감독): 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독일군의 패배를 다룬 전투 영화 <벌지 대전투>(1965),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작인 <미행>(1998)이나 <뮤직 박스>(1989), <레미제라블>의 예전 버전의 영화 등을 추천했지만 모두 상영이 어려웠다. 해방 공간에 대해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보니,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즈음 <닥터 지바고>(1965)를 봤다. 두 영화 모두 사상적인 압박 속에서 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부군>은 당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당시 흥행에도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 번쯤 언급하곤 했던 영화였다. 


김성욱: 90년대 초에 <남부군>, <우묵배미의 사랑>(1990), <그들도 우리처럼>(1990) 같은 영화들, 대학가에서는 자주제작으로 만든 영화들이 나왔다. 사회적인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고, 소비에트 붕괴나 천안문 사태 등 여러 면에서 사회 격변기였다. 감독님은 90년대 초반, 그 시절에 어떻게 살아가고 계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90년대 전세 값이 급하게 올라서 파동이 있었다. 어딜 가도 비싸다 보니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시도하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제는 못 버틸 거라는, 세상이 곧 뒤집혀질 거라는, 낭만적인 혁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남부군>과 같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고, 우리가 잘 몰랐고 언급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이런 분위기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전쟁이나 빨치산, 좌우대립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들이 언급되면서 역사에 관심이 없었거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굉장한 카오스를 겪으며 흔들리게 된다. 그 흔들림에서 오는 에너지들이 문화에 반향을 일으켰었다. 『태백산맥』이 워낙 깊이 있고 진동이 큰 문학이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남부군』은 상대적으로 얕고, 또한 전향을 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수정주의적이고 타협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도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빨치산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격하게 비난하는 시각과 더 흔들림 없는, 진짜 빨치산을 그리기에는 너무 온정적이지 않느냐는 비판 사이에 묘하게 위치하고 있었다. 



김성욱: <벌지 대전투>나 <남부군>처럼 주로 대규모로 인물이 등장하고 소셜한 관계들을 다룬 영화들을 선택하셨는데. 

민규동: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많았지만, 그렇게 굉장히 큰 필드에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문제, 국가 사이의 정치적인 역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런 것이 주는 긴장과 재미를 즐겼던 것 같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작은 영화들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소우주로 넓혀내는 개인에 얽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전쟁과 혁명을 다룬 그런 큰 영화들을 떠올려보다가 <남부군>까지 온 것 같다. 


김성욱: 이런 류의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 보셨나. 

민규동: 이 영화는 <피아니스트>(2002)처럼 한 인물을 끝까지 따라간다. 안성기 씨의 시점으로 존재하고 중간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인물들이 많다. 실화에 많이 근거하다 보니 실제 공간, 실제 인물들에 맞춰져 있어 전형적이지 않는 인물 배치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실제 일지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균형을 맞추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그리도 빨치산 내에서의 인물군을 잘 뽑아서 균형 있게 배치하려고 많이 노력하신 것 같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처럼 <피아니스트>와 전체적인 이미지의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피아니스트>를 만들면서 로만 폴란스키가 염두에 둔 하나의 이미지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것, 완전히 폐허 더미가 된 가운데 혼자 서 있는 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남부군>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안성기 씨가 하얀 눈밭에 혼자 남겨져 있거나 시체들이 뒹구는 가운데 혼자 서 있는 상태의 느낌들이 크게 와 닿는다. 

민규동: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적인 부분, 따뜻한 점들을 덜어내고, 좀 더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녔으면 좀 더 냉정한 시선들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김성욱: 근래에 나왔던 전쟁을 다룬 영화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당시에는 이런 내용을 다루면 굉장히 문제가 많이 됐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북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날 대학에 헬기가 뜨고 최루탄이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거나 본다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이나 세상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나라에서 진압을 할 정도였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영화들을 편하게 볼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 오히려 무관심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의미가 없어진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영화를 보려고, 혹은 만들려고 했던 힘들이 증발되고, 이제는 전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재미가 담보되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데 정말 좋은 세상이 오겠지?’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불안하게 던지는데, 시간이 지나 그 의미는 없어지고 이미지만 남게 된 지금의 순간이 묘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김성욱: 90년대 초반에는 영화를 전복적인 예술로 봤던 것 같다. 상업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대중적 동원의 측면에서 영화를 하나의 스펙타클의 장으로도 봤던 것 같다. 자주제작의 영화들이 대학에서 상영될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가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에서 <레미제라블>(2012)을 보면서 혁명에 대한 찬가를 듣게 되는데 그 느낌이 묘했다. 이런 영화들을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보고 있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규동: 어떤 박제를 바라보는 느낌이지 바리케이드에 서있는 그 절절함의 의미를 이해하는 느낌은 아닐 것 같다. 예전에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주인공이 빨치산에 끌려가 의도치 않게 혁명에 종사하다가 탈출하고 죽어갈 때 당시에는 정말 그 인물과 함께 행군하는 느낌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환희 같은 것이 절절하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모두 다 이미지화된 것 같다. 


관객1: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들에 대해 너무 감정 묘사가 직접적이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반응이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정말 뭔가 말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느낌이다. 

민규동: 이야기의 선택에 있어서 남다른 지점이 있으신 것 같다.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선택했을 때는 그 방향이 명백한 것 같고, 그런 감독님의 역사적, 철학적 입장을 반영하는 가장 적합한 얼굴이 안성기 씨라는 생각이 든다. 안성기 씨의 얼굴은 잘생겼고, 지식인 얼굴이기도 하고, 휴머니즘을 담고 있고, 연륜도 있고, 그런데 뭔가 성욕은 제거되어 있다. 더 자신을 학대하는데 익숙하고,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데 서툰 지점들이 비슷하게 영화에 결기가 이어지고 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사람을 끌어가려는 어떤 결기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가 선택을 강요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없게 하고,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이다. 감독님의 행동가로서의 어떤 확고한 지점들이 계속 있는 것 같다. 


관객2: <남부군>과 비교해서 <태백산맥>(1994)과 <하얀 전쟁>(1992)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태백산맥』은 긴 서사시이고, 어떤 한 인물도 평면적이지 않게 입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태백산맥>은 소설이 갖고 있는 진지함이나 무서울 정도로 깊이 바라보던 시선이 많이 희석되고 결국은 별로 모난 것 없이 안성기 씨가 바라보던 시선처럼 상식적인 메시지밖에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를 많이 노출했었다. <하얀 전쟁>도 비슷하게, 전쟁의 무의미함과 남겨진 트라우마에 대한 메시지 자체는 굉장히 상식적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특별한 자극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군의 모호한 입장에 대해 좀 더 문제제기하고 깊이 있게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정지영 감독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긴 하지만 열렬히 지지하기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이런 영화들을 선택한 데에는 차기작에 대한 생각들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민규동: 차기작이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남녀 간의 멜로드라마를 써놓은 것이 있고, 40년대 해방공간의 느와르, 전쟁직후의 첩보멜로를 써놓고 구상 중이다. 좀 더 열어놓고 스스로도 궁금해 하고 있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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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작가들이 공유하는 공기가 그들 영화의 특


징을 만들어 낸다


이용철 평론가에게 듣는 그가 추천한 ‘Unseen Cinema’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친구로 참여한 이용철 평론가는 ‘Unseen Cinema’ 섹션에 포함된,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쉽게 만나보기 어려웠던 영화 세 편을 추천했다. 그리고 지난 7일과 8일 양일간 그가 선택한 세 편의 영화 <마르케타 라자로바>,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마을을 위한 레퀴엠>가 연이어 상영되었고, 8일 저녁 마지막 상영작인 <마을을 위한 레퀴엠> 상영 후 이용철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영화를 선택한 개별적 이유와 각 영화들에 특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그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이용철(영화평론가): 이번에 유운성 평론가와 함께 Unseen cinema를 맡게 됐다.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은 <마르게타 라자로바> <마을을 위한 레퀴엠>,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이렇게 총 세 편이다. 내일이 추석 연휴날인데 이런날 <마을을 위한 레퀴엠> 같은 영화를 배치한 시네마테크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사실 개인적인 취향은 웨스턴과 느와르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이번에 뽑은 영화는 취향과 상관없는 영화다. 세 작품은 취향에 따라 선택한 게 아니라 개별적인 이유에 따라서 선택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강연의 전반부는 <마르케타 라자로바>,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후반부는 데이빗 글래드웰 영화의 특성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마르케타 라자로바>는 몇 해 전 광주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다. 2004년 광주영화제에서 시네마스코프 시절의 명작들을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 더글라스 서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니콜라스 레이의 <파티 걸>, 프리츠 랑의 <문플릿>과 같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꼭 시네마스코프 작품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를 다니면서 봤던 무르나우의 <파우스트>나 프리츠 랑의 <니벨룽겐> 같은 작품들이 줬던 스크린의 위대함과 거대함을 한 번 더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마르케타 라자로바>.

흔히 체코 영화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감독들은 이리 멘젤, 밀로스 포먼, 얀 네멕 등일 것이다. 프란티세크 블라칠은 서구에서조차도 많이 거론된 감독이 아니었고, 90년대 이후에 조금씩 거론되고 재평가됐다. 왜 블라칠의 영화가 묻혀 있었을까? 아마도 그의 영화가 체코의 뉴웨이브 작품들과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뉴웨이브 작품은 소련이나 공산당의 부패와 같은 현실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비판을 했다. 반면에 블라칠 감독은 역사적 소재를 무게 있게 다루었다. 젊은 영화의 흐름에서 봤을 때 그의 영화는 구시대적 영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블라칠이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억압 받는 자유의 문제다. 이런 것을 시대극에서 표현하는 방식은 종교 문제를 다루며 이데올로기의 도그마를 비판하는 형식으로 드러난다. 블라칠은 그것이 아무리 선의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자유와 영혼을 억압한다면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의 가장 큰 특색은 정교하게 구성된 이미지에 있다. 다른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영화가 짧든 길든 한 장면도 허투루 만든 장면이 없다. 블라칠 영화의 이미지를 보면 그가 영화라는 미디어에 접근하는 자세를 볼 수 있다. 그의 이미지에는 이야기를 위해서 소모되는 이미지가 하나도 없다. 그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집과 도구, 그리고 자연을 비출 때 어떤 각도에서 어떤 속도로 보느냐에 따라 미적 외향을 갖춘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증명한다.

다음 추천작은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원래는 이 영화를 추천한 것은 아니었고 페이 모 감독의 1948년 작품인 <작은 마을의 봄>이라는 중국 영화를 추천했었다. 이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이유는 신파라는 것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생각보다 신파라는 것에 훨씬 더 모던한 것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쉽게 폄하하는 신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으면 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선택한 작품이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조너선 로젠봄이 말했듯이,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의 재미와 연기를 떠나서 스토리텔링하는 방식에 있다. 특히 이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은 제리 가르시아와 루이스 부뉴엘이다. 부뉴엘의 <자유의 환영>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영화 모두 고야의 그림으로 시작하고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방식도 유사하다. 물론 말하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고전영화 중에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재밌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막스 오필스의 <윤무>. 이 영화와 가장 전복적인 형태를 띈 영화가 <자유의 환영>이고, 그사이 어느 지점에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가 자리하고 있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와 매우 유사한 한국 영화가 있는데, 바로 손영성 감독의 <약탈자들>이다. 어쨌든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기발한 방식의 영화라는 측면에서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를 추천했다.



마지막 추천작은 데이빗 글레드웰의 1975년작 <마을을 위한 레퀴엠>이다. 영국의 정부 지원 하에 제작되던 다큐멘터리가 일정 부분 성공을 이루자 나중엔 각 산업별로 다큐멘터리 지원을 하게 된다. 데이빗 글래드웰은 이 다양한 분야 가운데 교통 산업 분야의 다큐멘터리를 담당하면서 1960년대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회화를 전공한 사람으로 그가 주로 맡았던 역할은 편집이다. 그가 편집을 했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린제이 핸더슨 <이프>라는 영화가 있다. 글래드웰이라는 사람이 공공의 선이나 교육을 위한 다큐멘터리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영화는 실험적이고 탐미적이다.

<마을을 위한 레퀴엠>에 대해 영국의 한 비평가는 이 영화가 선언이 아니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바로 이점이 내가 이 영화를 여러분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이유다. 보통 영화들은 자기가 고집하는 것에 대해 선언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을을 위한 레퀴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영화라는 것이 굳어진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부드러운 유기체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과거와 현재, 사라진 것 다가오는 것, 침묵과 소음, 탄생과 죽음, 찰나와 기억을 강요하듯이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층을 쌓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그것에 스며들도록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감독의 생각에 동의를 할 수도 비판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글래드웰의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슬로우모션이다. 그는 모든 영화에서 슬로우모션을 사용하는데 그가 슬로우모션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그가 다루는 대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가 사용하는 소재들은 항상 사라지고 있는 것들, 곧 잊혀질 것들, 곧 죽을 것들이다. 글래드웰은 그런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감독이다. 피사체들은 영화에서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곧 사라지고 죽을 것들이다. 이것들은 영영 보지 못하게 될 것들인데 글래드웰은 이런 피사체들에 가능한 긴 시간을 부여하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시간을 더 줌으로 인해 그들이 가진 시간을 늘려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구스 반 산트의 <앨리펀트>도 이와 유사한 측면에서 슬로우모션을 사용한다.

요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들은, 소위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고 직접 영화를 서로 보지도 않고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젊은 감독을 만나 예전에 내가 본 영화들과 당신의 영화가 비슷하다라고 하면 그 젊은 감독은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카피했다, 하지 않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공유하는 것처럼 작가들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영화들의 특징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정리: 최혁규(관객에디터) | 사진: 이유정(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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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령처럼 빨려 들어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면 좋겠다"


단골 관객 이현미 씨를 만나다!


어쩐지 낯익었다. 극장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시는 분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의 시네토크가 끝나고 막 떠날 채비를 하는 이현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언제부터 시네마테크와 인연을 맺으셨는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열심히 다닌 지는 한 2007년부터다. 그 전에는 회사일 끝나고 틈틈이 보다가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리면서’ 본 것 같다. 회계 쪽 일을 하는데, 하는 일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극장을 다니면서 자극을 많이 받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시간적 제약이 마음에 걸려 (비교적 가기 쉬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갔는데 필이 꽂히고 나니까 시간은 문제가 안 되더라. 영화를 본 후 기록을 하다보면 어느 해인가부터 개봉영화 보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월등히 많이 본다. 영화를 직접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다. 그 뒤로 마치 유령처럼 빨려 들어가 서울아트시네마를 계속 다니게 됐다.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를 보셨는지.

개인적으로 괴기영화나 피 튀기는 영화는 안 좋아해서 지난주에 상영한 <지옥인간>은 거부했는데, 그 외의 작품들은 시간표에 나름대로 체크를 해놓았으니 다 보게 될 것 같다.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무엇인가. 

시네마테크 추천작인 <내일을 위한 길>이 좋았다.


오늘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다. 일단 친구들의 선택작이고, 어느 감독이 추천했다고 하면 궁금해져서 다 보고 싶다. 특별히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가 아니라면 무조건 와서 다 보는 편이다. 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중에 그 감독의 영화를 또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사전정보가 없더라도 일단 봐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 원래는 영화만 보는 것도 힘드니까 시네토크는 안 듣고 집에 갔는데 시네토크를 듣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 의문점이 남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해주면 해소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여유가 되면 시네토크도 들으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말씀해 주신다면.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본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영화여서 살짝 졸수도 있는데 ‘이게 뭐지’ 싶어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아마 감독님이 추천하신 다른 작품도 찾아서 보게 될 것 같다.


이제까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특별전이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연합대사관에 다니고 있다. 불어를 하는 게 수월하니까, 아무래도 프랑스 영화를 제일 많이 보게 된다. 2011년 11월에 했던 <프랑스 영화 황금기 전>이 관객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좋았다. 내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같은 곳에 직접 가서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를 모아서 왕창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특별전을 다 보고 나니까 프랑스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때 ‘아, 그 영화’하고 딱 나와서 대화가 통하고 얘깃거리가 풍부해졌다. 그 점이 무척 좋았다. 관객들은 70년대 이후의 최근 프랑스 영화를 더 많이 보나보다. 그 특별전에서는 3, 40년대 프랑스 영화를 많이 틀어서인지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특별전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프로그램 한 번 할 때 필름을 외국에서 수급해 와서 2주 내지 3주 안에 다시 돌려보내야 하니까, 그 2, 3주 동안 내가 이곳에 있어야 이 영화들을 다 볼 수 있지 않나. 가끔 시네마테크가 있는 파리나 브뤼셀에 가서 보면, 같은 유럽이고 가까워서인지 필름 수급이 수월한 것 같다. 프로그램 북을 보면 어떤 감독전, 어떤 특별전을 할 때 일 년 이런 식으로 긴 시간동안 하더라. 이 사람 작품은 매주 월요일 상영 또는 첫째 주 무슨 요일, 이렇게 프로그래밍해서 그 감독 작품을 보고 싶으면 한 번 놓치더라도 이후에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도록 한다. 유럽 시네마테크에 가서도 모르는 감독이 태반인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았던 작품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관객들의 마음과 같이, 전용관이 생겨서 안정적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이 곳을 다니고 싶다. 농담 삼아 나이 들면 여기에 와서 수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드나들며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전용관이 빨리 생겨서 그 곳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필립 느와레가 나왔던, 70년대 영화인가, 예전에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인 <녹슨 장총>(한국 개봉 제목 <추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인터뷰글/ 지유진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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