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멜로물이 지닌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만을 그대로 수학적으로 만든 영화 같다”

- 김태용 감독이 말하는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

 

지난 1월 26일,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김태용 감독이 추천한 <세이사쿠의 아내> 상영 후 시네토크가 열렸다. 김태용 감독은 필름으로 영화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보다는 영화가 자신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관객으로서의 재미라고 말했다. 이 영화가 준 강렬함에 탄력을 받은 듯 영화와 사랑, 삶의 태도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오고 간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김태용 감독이 친구들 영화제 때 처음으로 추천한 영화가 <우묵배미의 사랑>이다. 지난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 이번에는 <세이사쿠의 아내>를 추천하고, <만추>도 만들었는데,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는 여성에 대한 정념이 강렬하게 표현되었다. 영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김태용(영화감독):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이 영화를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영웅 이야기를 보고 싶었나 보다. 나이가 들면서 영웅 신화가 다 깨져가고, 멜로적인 감수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도 여전히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나에게 ‘영웅’들이다. 멜로영화 안에서는 두 세계가 부딪친다. 사실은 살면서 약간 비겁하게 부딪칠 때가 많은데, 영웅들의 신화를 보다보면 얼마나 용기 있게 두 세계가 정면 돌파 하는가에 대해서 느끼지 않나. 그런데 사실 사랑은 두 세계가 맞부딪치는 그 용기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이 두 세계를 하나처럼 만들어지게 하는 다른 외부의 부딪침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속성 자체가 두 사람 자체도 부딪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외부의 힘 때문에 하나처럼 되는 느낌이 있어야 ‘우리’가 유지된다고 본다. 사랑은 상대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아도 유지가 안 되고, 다른 세계의 공격이 없어도 유지가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세이사쿠의 아내>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비극처럼, 멜로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가장 숭고한 아름다움을 액기스로 뽑아서 이 영화에서 그대로 수학적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그만큼 얼마나 자기를 감정에 내던지고 우리 둘이 만들어낸 세계와 다른 세계가 맞부딪칠 때도 얼마나 용기 있게 싸우고 있는가에 대한 영화다. 그런 생각에서 이 아름다운 멜로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다.

 

김성욱: 이 영화에는 노출신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물리적인 특성이랄까, 정신적이거나 감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몸이 갖고 있는 물리성의 느낌이 굉장히 많이 느껴졌다. 인물에 대한 것과 사랑에 대한 감정을 물성으로 표현해내는 영화의 방식들이 와 닿았다.

김태용: 어떤 영화를 볼 때 첫 컷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 민감하게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얼굴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이 여배우는 일단은 위태로워 보이는데, 그 위태로움이 약함이 아니라 어떤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자기를 내던질 줄 아는 느낌도 있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땐 여배우가 매력적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구조적으로 영화에 접근했기 때문에 인물이 와 닿지는 않았는데, 다시 봤을 때 여배우의 힘이 많이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영화가 에로틱하다고 하는데, 마스무라 야스조의 다른 영화들, <문신>이라던가 <붉은 천사> 등을 보면 훨씬 더 노출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나도 이 영화가 가장 야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웃음)

 

 

김성욱: 이 영화에서 사람의 눈을 찌르는 행위가 갖는 사랑의 정념의 표현과 전쟁에서 죽은 자에 대한 칭송, 이 두 가지를 극단적으로 대비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찌른 것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표현 자체가 사랑의 행위에서 나온 결과인데, 전쟁이라는 것은 의미 없이 사람들을 죽여 버리고 그에 대해서 칭찬을 한다. 오늘 다시 보니 전쟁에서 돌아오는 장면과 환영하는 의식을 치르는 장면들이 굉장히 길게 느껴지더라.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장면들과 남편의 눈을 찌르는 행위가 연결되고 대비되면서 (여배우의) 고립된 느낌이 많이 부각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김태용: 오늘 영화를 보면서 유난히 재미있게 봤던 지점들이 마을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마치 무성영화 변사처럼 계속 설명을 해준다. 그 지점이 '눈'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마라, 남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라 등의 대사에서 ‘시선’이라는 표현으로 타자라는 다른 존재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다. 드라마 내적으로 본다면, 이 남자가 명예를 잃은 뒤에 여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굉장히 감정적인 비약이 있다. 이 감정적인 비약을 이야기적으로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해지는데, 영화 안에서는 ‘눈’이라고 하는 매개 자체가 이 남자를 비약적으로 확 발전시키는 계기를 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눈과 관계 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먼 짐승>이 촉각적인 사랑과 정념, 욕망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욕망의 본질에 접근하기 보다는 욕망을 둘러싼 편견과의 싸움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욕망을 직접적으로 본다면 에로틱하지 않은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정서와 부딪칠 때 에로틱한 느낌이 더 드는 것 같다. 여배우가 더 많이 노출하고, 성적학대를 당해도 에로틱한 느낌이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여자의 정서와 의지가 맞닿아서, 더 에로틱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관객1: 영화 속에서 세이사쿠는 전적인 피해자이다. 부인은 세이사쿠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다시 혼자되고 싶지 않다는 열망 때문에 일을 저질렀는데, 거기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세이사쿠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매도하고 백안시한다. 그런 소름끼치는 집단성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김태용: 말씀하신 대로 (집단의) 잔혹함이라고 하는 게 영화의 기본 베이스인데, 세이사쿠라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열망과 의지와 이성적인 결정에 대해 여자는 조롱을 하고 있다. 어떤 공동체에 위협을 느끼는 불편한 순간들이 있을 때 개인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들이 생기는데, 이 영화는 정확하게 그 폭력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하나의) 세상이다. 개인적으로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 다루는 영화는 재미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을 세상으로 보고 난 후에 개인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정확히 그 폭력의 무자비함, 무지몽매한 것으로 보이는 세상 앞에서 외롭게 서 있는 두 개인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폭력에 대해서 훨씬 윤리적으로 접근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2: 영화를 보는 도중 헤이스케(오카네의 사촌)가 마음에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로맨스 중간에 껴 있는 제 3자의 역할, 즉 관객의 눈이 되어주는 캐릭터 같기도 하다. 이 감독의 다른 영화에 관객의 눈과 일치하는 변두리의 인물이 더 나타나는지 아니면 그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굉장히 기능적인 인물이다. 그의 기능에 대해서 내가 받았던 느낌은 사회적인 약자나 사랑을 지켜봐주는 친구 같은 존재일 수도 있지만, 약속과 관계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동체나 국가와의 이념과는 상관없이 개인과 개인이 맺는 약속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영화 내에서 밀도 높은 약속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한 국가 혹은 어떤 가치에 이르려는 개인의 약속에 대해서는 조롱하지만, 각각의 개인들이 해왔던 약속에 대해서는 지켜야하는 주인공들 같은 느낌이다. 어떤 가치와 개인 간 약속과의 대립 혹은 차이. 어떤 인간이 더 솔직한가, 더 용감한가, 어떤 것이 더 재미있는가. 이런 의문을 던져주게 했던 기능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관객3: 작년에 <부운>을 추천하신 것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계속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영화들을 추천하셨다. 감독님도 사랑을 하는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실 텐데, 이와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개인적인 영감을 많이 얻으시는지.

김태용: 내가 관객으로서 영화를 좋아하는 건 어떤 장르영화든, 어떤 멜로영화를 통해서든 어릴 때 영화를 보고 나오면 달라진 나를 느끼는 게 좋았다. 왜소한 나에서 변화하는 느낌. 최초의 영화는 <킹콩>이었다. 홍콩 영화나 어떤 멜로 영화도 그렇고, <랜드 앤 프리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래,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해"라는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몸을 움직이게 하는 영화들을 개인적으로 관객으로서 좋아했다. 지금은 공교롭게도 멜로 영화들이 삶에 용기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다.

 

관객4: 이 영화가 멜로라고 하기에는 두 남녀 간의 감정이 비약적으로 넘어간 부분이 있고, 기대했던 감정적인 수위보다 묘사가 덜 된 것 같다. 또, 두 세계의 충돌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어떤 아름다운 충돌의 경험이 있으신지. 예를 들면 다른 직업이라던가, 다른 나라라던가. (웃음)

김태용: 멜로의 영역을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서 나와 다른 사람을 둘러싼 또다른 사람과 우리는 얼마나 닮아있는가 우리 둘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에 집중하는 게 멜로영화라고 크게 개념을 정한다면 이 영화만큼 그걸 정면 돌파하고 있는 영화는 없다. 그래서 가장 강한 멜로 영화이다. 멜로적인 로맨스라는 개념으로 영화를 보면 아닐 수 있다. 두 세계의 충돌의 경험은 많이 가지고 있다. (웃음)

 

정리: 지유진(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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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 시네마테크

2013 친구들 영화제, 성황리에 개막!

 

1월 17일, 어느덧 여덟 번째를 맞는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은 ‘관객들의 선택’을 통해 선정된 우디 알렌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여느 때 보다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으로 객석은 모두 매진되었고, 극장은 개막작과 영화제에 대한 기대들로 가득 찼다. 성황리에 열린 ‘2013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현장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지난 1 17, 저녁 7 30분 종로 3가 낙원동에 위치하고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개막식이 열렸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앞 매표소에는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고, 올해의 친구들을 비롯한 영화문화계 인사들이 극장을 찾았다. 이날 행사의 사회는 2006년 첫 영화제 때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함께해준 권해효 배우가 맡았다. 사회자 권해효 배우는 첫 영화제 때 이 공간은 참 춥게 느껴졌지만, 오늘 관객으로 꽉 찬 이 극장을 보면서 8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말로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지난 한 해,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이해 다채롭게 진행했던 부대행사들을 소개했다. 여러 스폰서들의 다양한 재능기부와 참여로 시네마테크의 발전 기금이 마련되었고,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알리는데 보다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시네마테크 어워즈를 개최해 지난 10년 동안 시네마테크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줬던 감독과 배우, 단체들에베스트 프렌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후원보고가 끝난 후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의 개막 선언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오랫동안 함께해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정해주신 영화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뜻 깊은 시간이 아닌가 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좋은 영화,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이상한 우정

다음 순서로는 영화제 상영작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트레일러 상영이 이어졌다. 2012, 시네마테크 10주년을 맞이해 만들어진 김종관 감독의 트레일러에 이어 올 한 해 동안 상영될 새로운 트레일러의 연출은 윤성호 감독이 맡았다. 권해효 배우는충격적인 트레일러였다앞으로 모든 관객들이 이상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지 않을까 싶다며 농담을 던졌고, 트레일러에 출연해열연을 보여준 정우열 작가는그냥 그림 하나 그리면 된다고 해서 왔다가 현장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설명했다. 윤성호 감독은현장에 와 준 연기자들이 할 수 있는 제일 값어치 있는 일을 시켰던 것 같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제가 1년 동안 극장에 앉아 두고두고 보려고 만든 트레일러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성호 감독은 트레일러의 자막에 대한 질문에, 중간의 자막들은 <전함 포템킨>의 대사, 마지막에우리들의 이상한 우정은 시네마테크가 후원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어느 작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제에 참여하는친구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김태용 감독은 추천작인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격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 계속 배워가는 것 같다. 60년대 영화를 보면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매혹

마지막으로 영화제 개막작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 대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의 소개가 이어졌다. “관객들의 선택작이기도 한 이 영화와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모두 1930년대 대불황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이 꽤 어려운 시기이기도 해서 이 영화가 선택된 데에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에 미국에선 영화관을 영화를 보러 가는 공간만으로 여기진 않았다고 한다. 할 일 없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기 위해, 젊은 친구들은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연애를 하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고, 거리가 추울 때 영화관은 사람들의 휴양소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오늘 보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그런 영화관에 대한 매혹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현실과 환상 간의 선택이라는 어려운 질문이 담겨 있는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부딪히는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정말 어려운 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조건에서 일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삶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예외적인 일탈의 장소였고, 지금 여기에서 다른 위치와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통해서 슬픔과 기쁨을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11년을 맞고, 8번째를 맞은 친구들 영화제가 이런 기쁨과 슬픔, 감정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영화관으로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개막식이 끝나고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가 상영되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함께 웃었고, 슬픔 또한 함께 공감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기쁨과 매혹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날의 상영이 모두 끝나고, 극장 근처의 공간에서 진행된후원 파티에서 관객들은 다시 삼삼오오 모여 술과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송은경,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_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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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 지상중계

 

지난 5월 17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한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에 참여하기 위한 5인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 - 내가 사랑한 영화들, 극장의 추억”이란 주제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이날 행사 진행은 시네마테크의 오랜 친구인 변영주 감독과 이해영이 감독이 맡았고 초대손님으로 진행자의 절친인 김태용 감독을 비롯해 시인 심보선 씨, 그리고 뮤지션 정바비 씨가 함께 했다. 1부 프로그램으로 파리의 시네마테크를 최초로 설립한 앙리 랑글루아를 다룬 다큐, <시티즌 랑글루아>가 상영되었고, 본격 오픈 토크는 상영 후에 이어졌다. 평소 아트시네마의 경직되고 무거운 분위기를 넘어서 자유롭고 장난스러운 농담과 영화관에 대한 애정, 소소한 추억이 오가며 관객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 진행을 맡은 저와 메인 MC를 맡은, 최근 방송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해영 감독 외에 특별히 초대손님으로 2~30대의 젊은 여성들의 심장을 두드리는 뮤지션, 정바비님과 심보선 시인님, 그리고 김태용 감독님을 모시고 시네마테크 개관 10주년 기념 오픈 토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이해영(영화감독): 우선 1부 행사로 <시티즌 랑글루아>를 상영했는데 다큐 다 보시고 나서 어떠셨는지 소감부터 듣고 싶다.

정바비(가수, 작곡가): 영화에 고전 영화 장면이 시의 적절하게 삽입되면서 영화 만드는 분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묻어났다. 만약 내가 영화인이라면 이 메타적인 작품에 감동 받으면서 봤을 것 같다.

심보선(시인, 사회학자):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오늘 랑글루아에 대한 영화를 보니까 총을 들고 프린트를 지키는 애정이 내 영화의 애정에 비할 바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영화감독):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화가 사실 가치가 있어서 좋아 한다기 보단, 영화를 좋아하게 돼서 가치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저 분이 영화가 아닌 시나 나무를 만났어도 소중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지키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열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해영: 영화 속 ‘시간은 곧 공간이다’라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서울에는 시간을 담고 있는 공간들이 철거가 진행되면서 많이 사라졌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변영주 감독님은 많이 괴로하시면서 보시던데.

변영주: 괴로워하지 않고 재밌게 봤다. 영화를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이 어디선가 들은 인물들이지 않나. 영화를 열심히 보던 시기에 힘들게 보았던 작품들이 나오면서 두근거린 느낌도 나서 좋았다. 이 자리는 사실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원했던 것보다 대단한 자리였다. 초대 손님들도 많고 저희가 축제처럼 관객 분들을 무대로 모시면 애정에 가득 차서 시네마테크 나가면서 관객회원으로 등록 하게 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부흥회 느낌(웃음),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데울 수 있었음 했는데, 영화로 데운 것 같다. 심보선 시인에게 영화를 어찌 사랑하게 되셨는지 묻고 싶다.

심보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영화관에 데려갔고, 어두운 곳에서 아버지가 저를 데려 가셨는데 눈앞에서 스크린이 환한 빛처럼 펼쳐졌다. 그게 <메리 포핀스>였다. 영화라는 매직을 어린 아이가 처음 경험한 것. 어두워서 무서워하다가 눈앞에서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로워하며 봤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 사건으로 영화적 첫 경험은 마술이었다.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하셔서 TV의 영화 프로그램 있으면 보여줬다.

이해영: 처음 영화가 <메리 포핀스>라니 참 시적이다. 정바비씨는 어땠는지?

정바비: 저는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많이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음악이었고 영화는 엔터테이먼트였다. 2004년 대학생 시기에 아트시네마의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을 교수님이 보라고 추천하셔서 보러왔다. 그레타 가르보가 처음으로 웃는 스파이 영화 <니노치카>였는데 극장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였다. 이를 계기로 영화에 대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집에서 팜플렛을 찾아봤는데...(2004년 11월 에른스트 루비치전 팜플렛 꺼내며) 재밌는 말이 있었다. 트뤼포가 말하길 ‘예술가는 두 종류가 있는데 관객이나 독자 없이도 잘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있다면 반대로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보람을 느낄 수가 없는 감독이 있다. 루비치는 후자에 속하는 감독이다’고 했다. 저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 루비치가 와 닿았다.

 

 

이해영: 김태용 감독님은 영화와 첫 사랑에 빠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처음 본 영화는 <킹콩>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촌형이 시내 나가서 여자 친구랑 영화 보는데 데리고 가게 된 거다. 그 때 기억에 영화는 너무 무서웠다. 지금 보면 그렇게 많이 무섭진 않지만 신기하고 마술적인 느낌이었다. 어리석게도 다큐와 극영화의 구분도 못했다. 근데 계속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안했고 시네필로 자라지 못했다. 대학교 때 극장의 경험이 영화를 하게 만든 건 아니고, 선배들이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조연출로 일했다. 연출부 일을 돕는데 신비한 경험이었다.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현상을 하는 메카니즘에 빠져서 영화를 하고 싶어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비디오 세대로, 문화학교 서울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이고 복사한 저화질의 영상을 보면서 영화를 꿈꿨다.

이해영: 변감독님은 어떠신지? 맞먹고 막대하긴 하는데 저보다 엄청난 선배님이시다. 대화를 하다보면 영화 관련 서적에서 본 것 같은 역사적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겸상하면서 들을 기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렇게 들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변영주: 방금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1992년 93년 사이에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다큐멘터리가 뭔지 모르고 만들었다. 첫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어떤 누구보다 이 영화가 끔찍하다는 걸 알았다. 그 뒤 정말로 감독이 되고 싶어졌다고 결심했다. 문화학교 서울 이전에는 유학한 선배들이 지령을 받은 것처럼 비디오를 카피해서 소포로 보내서 복사본들을 계속 만들었다. 저는 <미치광의 피에로>가 흑백영화인줄 알았을 정도였다. 근데 일본의 다큐 영화제에서 초청해서 많은 다큐를 접했다. 그러면서 영화사적인 작품들 중 내가 본 게 없구나. 과연 나는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혼식 비디오 찍고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아 파리로 갔다. 파리스코프를 사서 영화를 하루에 8편에서 9편 보러 다녔다. 아프리카 영화를 불어자막으로 볼 때는 마음대로 줄거리 상상을 하면서 봤다. 두 달 동안 미치도록 영화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젠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영화제목을 기억 못하지만, 그렇게 많은 소극장 시네마테크들에서 다양한 영화들 중 뭘 봐야할지 고민하고 아쉬워했다. 그 시간이 제가 아직까지도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가장 큰 힘 중에 하나다. 만약에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낮은 목소리> 만들 때 나의 부모님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만들었을 거다. 이 감독님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던 시기가 언제인지?

이해영: 일단 영화에 사랑에 빠지게 된 건, 80년대 초등학교 때 MTV를 보면 전 세계 영상언어가 만국 공통어일 때,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E.T>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지만 어려웠다. 다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다가 영사사고가 일어나서 중간에 끊겼었다. 영화가 마법 같다고 다들 얘기했지만 영화의 물리적인 면을 깨달았다. 청소년기에는 홍콩영화 전성기라 동시상영관에서 <천녀유혼>, <첩혈쌍웅>, <영웅본색> 을 수십 번 봤다. 그러면서 영화랑 친해졌다. 8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좋아했는데, 지금보다 그 시기의 영화들 이 창작할 때도 많은 자극을 준다. 그러면서 특별히 영화기 멀리 있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를 해볼까 마음먹을 때도 큰 결단이 필요하진 않았다. 김 감독님과 반대로 요즘 저는 영화가 무섭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극장에 관한 추억이라면, 동시상영관 의 풍경은 엄청났다. 콘서트 장에 온 것처럼 영화에 열광하면서 봤다. 아이돌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뜨거운 분위기가 영화가 누군가를 열광시킬 수 있구나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극장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정바비씨부터 말씀해 주신다면.

 

 

정바비: 아트시네마가 박물관이거나 성스러운 공간이지만, 평소에 영화하시는 분들이 젠체하는 느낌을 받는다.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보는데, 한 아저씨의 징글벨 멜로디의 벨소리가 울렸다. 세 번 넘게 흘러나오는데도 아무도 저지를 안 해서 결국 그 아저씨에게로 가 핸드폰을 꺼내서 벨소리를 껐다. 그 아저씨는 약간 취한채로 깨어 있어서 공포스러웠다.

심보선: 저는 영화를 혼자 많이 보러 다녔는데, 극장에서 담배를 피면서 군복을 입고 보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저한테는 군대에 있을 때나 혹은 대학교 다닐 때도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사실은 그 때는 영화 보러 혼자 가는 건 이상하게 봤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런 공간은 혼자 편하게 보고 쏙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이다. 멀티플렉스는 이벤트나 데이트 공간으로 혼자 가려면 용기를 내야한다.

이해영: 멀티플렉스는 고기 집에 가서 혼자 삼겹살 먹는 느낌이고, 여기는 기사식당 같다.

변영주: 전 멀티플렉스도 혼자 자주 간다.

김태용: 저도 극장 혼자 많이 간다. 혼자 가서 영화 보는 것 좋아하는 편이고. 좀 다른 이야긴지만 <가족의 탄생>을 개봉하고 그 영화를 곧 내릴 것 같아서 극장에 혼자 가서 봤다. 너무 촌스럽게 마지막 크레딧 올라가면서 눈물이 났다. 사람들 이름 올라가면서 이 영화가 내린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불 켜지고 혼자 울고 있는데 뒤에서 당시 씨네 21 기자 분이 나를 알아보더라. ‘감독님 뭐하세요, 우세요? 자기 영화 보고 우세요?’ 묻는데 변명할 수 없고 부끄러워서 도망갔다. (웃음)

변영주: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개봉한 날 낮에 <화차>를 봤다. 제 앞에 계시는 아저씨가 전화를 받으셔서 영화가 아닌 그 분을 보게 되었다. 가서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영화 중간 이후를 그 분 때문에 보질 못했고, 끝나고 보니 극장에서 일하시는 분이신데 ‘감독님이 첫날 영화 보러 왔네?’라고 해서 황당했다.

김태용: 99년에 <여고괴담 2>로 데뷔했을 때 멀티플렉스가 없어서 제작진이 극장에서 영화를 제대로 상영하는지 돌아가면서 체크했다. 영등포에 명화극장 밑에 명화 나이트가 있는데, 극장가서 보니까 거의 대사도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 영사기사에게 말씀드렸는데 소리를 크게 틀어놓으면 나이트에서 불평이 온다고 얘기했다.

이해영: 지금은 그런 일들이 많다. 요즘은 멀티플렉스라 상영관들 환경이 통제가 잘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볼 때 사운드가 너무 안 들려 영사실에 올라갔다. 소리가 너무 작다고 얘기했는데 결국 싸운 적 있다. 무대 인사를 하러 부산에 갔는데, 덕환이랑 기다리다가 몰래 들어가 반응을 봤다. 한 중년 남자 분께서 덕환이 립스틱 바르는 장면에서 아저씨가 갑자기 ‘뭐꼬 변태아이가!’라며 화를 내서 조용히 나왔다.

 

변영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제 관객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될 것 같다. 나는 영화와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 얘기하고 싶으신 분은 손들고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란다.

관객1: 저는 48시간 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행사가 있어서 보게 되었다. 전 세계 107개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인데, 48시간 동안 시나리오 작성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임이다. 올해 서울에서도 준비하고 있고, 10월 19일에 시작하여 누구나 출전할 수 있다. 시작하기 15분 전에 주인공 이름, 직업, 들어 가야하는 대사와 소품을 주고 촬영 직전에 장르를 추첨해서 맞춰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해영: 영화가 순발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데. 순발력이 왜 가장 중요한 기준인지?

관객1: 순발력을 측정한다기보다는 잠시 쉬고 있는 감독님들에게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행사다.

변영주: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사랑과 극장의 추억 대해 얘기해보았으니 다음은 관객의 입장으로서 개선되어야할 점과 시도하면 좋을 것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도 듣고 싶다.

정바비: 개인적인 로망으로, 같이 영화를 봤던 여성분과 또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만남, 애프터에 대한 판타지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하는 장치나 테크닉이 필요한 것 같다. 영화관에서 우연히 만난 분과 잘 된 경우 있지 않는지?

관객2: 관객 분이 인터뷰를 할 때 아트시네마에서 연인을 만났고 다시 여기서 헤어지셨다고,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아트시네마 밖에 없다고 말씀을 했었다.

이해영: 몇몇 대도시들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가면 라운지가 잘되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다. 건전하게 영화에 대해서 토크가 가능하고 네트워크가 관객들끼리 생길 수 있는 환경인데, 아트시네마 로비에 있다 보면 앞의 공간이 잘 활용이 안 되는 것 같다.

변영주: 정바비씨의 로망이 시네마테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슬쩍 맞은편에 앉아서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그런 애프터가 가능한 공간이 시네마테크에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심보선: 얘기를 듣다보니까 정바비씨에게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극장 앞에서 친구랑 커피 숍에 앉아있는데 밖에 비가 오고, 할머니가 곱게 단장을 하시고 우산을 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극장 앞을 계속 서성이기 시작하는데 마치 스텝을 밟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시작했는데도 친구랑 같이 그 할머니를 걱정했었다.

정바비: 가사가 될 만 한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심보선 시인님의 팬이다. 시낭송회에 예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시 낭송회는 지금 분위기보다 더 많이 무겁다. 좀 힘들었던 경험으로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시낭송회에서 빵을 꺼내 먹었다. 그 옆에 있던 일행분이 움직여서 말리는 줄 알았더니 음료수를 꺼내서 주었다. 순간 너무 웃겨서 손톱으로 누르고, 혀 깨물고 죽은 사람 생각하고 그랬는데...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고 싶었다.

 

이해영: 심 시인님은 극장에 바라는 게 없으신지?

심보선: 비슷한데, 학교 다닐 때 씨네꼼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었었다. 같이 한 황동엽이라는 친구가 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감독의 길로 들어섰고 <도가니>를 만들었다. 그때 씨네꼼의 목표는 영화를 보고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자였다. 영화를 통해서 우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홈커밍 데이라고 해서 갔는데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문화가 깨졌다. 사실 공간적으로 바깥에 테이블을 놓고 배치한다고 해서 될까 의문이다. 요새만큼 토크가 많은 시대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토론자들은 무대 위에, 관객들은 아래에, 객석은 꽉차있지만 교류가 없는 게 전반적인 경향이다. 그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다른 장르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고민을 이 공간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

변영주: 공간이 만들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야기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두 분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해영: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거다. 정책 문제와 영화인들 참여가 문제지만, 사실 교류가 가능한 가상의 공간에 대한 갈증을 공유하는 것을 잊지 않을 거다. 이제 자리를 마감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한다.

김태용: 아까 말처럼 시네마테크 분위기가 무거운데 이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극장에서는 혼자 영화보고 나오지만 여기 시네마테크에서는 관객들을 한번 보게 되는 습관을 보게 된다. 그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낀다. 10주년을 축하하고 이후 10주년을 기획하는 자리인데 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가에 대해 많은걸 느끼게 해서 좋았다.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언제일지 기약은 없다.

정바비: 언니네 이발관 1, 2집에서부터 줄리아 하트, 바비빌, 가을방학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더 많은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아까 그 사연을 보내주시면 참고하겠다.

심보선: 우울한 상황은 두 가지, 시를 못 쓴지 너무 오래됐거나 혹은 영화를 못 본지 오래되었을 때다. 비록 모든 관객이 아는 친구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에 대해서 같이 감동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세분 감독님한테 좋은 영화 계속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영화 없으면 저는 죽는다.

 

김태용: 영화 만들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몸담은 곳이 생각보다 좋은 곳이라는 걸 극장에서 느낀다. 그 점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많이 뵈었으면 좋겠다.

이해영: 저도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식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변영주: 마무리를 하자면,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마테크로서 좌석수가 작아져도 상관없으니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에서 시네마테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오늘을 시작으로 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넘어서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30일부터 인디포럼 영화제가 시작된다. 문득 랑글루아가 해임되어진 뒤 상황들이 흡사 6년 전 정부가 새로 만들어지고 문화부 장관이 바뀌면서 발생한 일들이 떠올랐다. 인디포럼은 소송비도 모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인데, 관객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2012년도 독립영화가 어떤지 열심히 봐주는 거다.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하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어느 순간 관객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정책이 와도 신경 안 쓸 수 있고, 올바른 문화들이 만들어질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윤서연(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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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김태용 감독이 선택한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을 관람하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상영 직후 진행된 시네토크에는 많은 여성관객들이 참여해 김태용 감독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물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의 비극성과 슬픔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진지한 자리이기도 했다. 사랑의 대서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올랐다는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작품선택을 하면서 여러 편의 작품이 오갔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살인 사건>도 있었고,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 <부운>은 김태용 감독과 잘 어울리는 선택인 것 같다. 오늘 보면서 예전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김태용 감독이 선택했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작년에 개봉했던 김태용 감독님의 <만추>라는 작품도 떠오르기도 했다. 사랑을 찾아 떠나려는 유랑의 느낌, 공간을 떠도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러티브는 굉장히 심플하다. 두 남녀의 만남, 이별, 재회의 문제를 다룬다. 예전 상영했을 때, 여성관객들 중 일부가 ‘왜 저렇게 찌질한 남자를 쫓아다니는 거지’라고 분노를 하기도 했는데.

김태용(영화감독):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고 했더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영화에 나오는 남자를 대부분 너무 싫어했다. 지금 우리가 보면서 좋아할 만한 인간형은 아닌 것 같다.(웃음) 말씀을 듣다 보니까 <우묵배미의 사랑>, <만추>가 맥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사랑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관계의 역사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 <만추> 작업을 할 때는 어떤 시점, 찰나의 순간에 집중을 했지만 기회가 되면 이런 식의 사랑의 대서사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마다 생각난 영화가 <부운>이다.


김성욱: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보면 내향적인 남녀가 자꾸 바깥으로 나가려는 과정을 그린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런데, 하나는 내면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는 시도이다. 이 둘에게 필요한 것은 연애의 공간이다. 그래서 가정의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부각되지 않고 도리어 여관 같은 떠도는 일시적인 공간이 주를 이룬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첫 시작도 인도차이나라는 공간이었고, 영화의 마지막은 일본의 남단 끝이다. 이런 식으로 바깥으로 나가려는 인물들의 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만추>의 경우에도 여자가 점차 조금씩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진전되는 과정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이나 비극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극단에 서 있는 작품이 이 영화다. 프레임 안에 있는 인물들을 염려하기도 하고, 잘 살기 바라기도 하고, 비극이나 슬픔을 향해 달려갈 줄 알면서도 그런 비극성에 관심이 많았다. 이게 그런 것의 정점에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멜로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영웅들, 자기 사랑을 확실히 하고 능력도 있고 설득시킬만한 힘이나 여유도 있고 꺾이지 않는 멜로드라마 영웅들의 느낌이 있는데, 이 영화의 영웅이 아닌 사람들은 스크린 안에서 우리를 너무 불안하게 만드는 게 있다. 그런데 스크린 밖에서도 계속해서 우리를 쫒아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감정에 대해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 비극을 향해 끝임 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아주 정점으로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인 것 같다.


김성욱:
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들이 연인이 됐을까도 궁금한 부분이다. 세 개의 플래시백이 나온 것 같은데, 이들의 사랑의 순간을 보여준다. 두 가지가 <만추>를 떠오르게 했는데, 남녀의 사랑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계절적인 기후, 공간의 변화가 영화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만추>에서도 공간과 기후를 담아내고 싶었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태용: <만추>를 찍을 때도 공간의 핵심은 날씨라고 생각했고, <부운>을 보다 보니까 날씨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우리보다 큰 무언가의 느낌이 영화 안에 날씨나 공간으로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조건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 공간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기후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보면 그런 느낌이 많다. 인도차이나는 햇빛 좋을 때는 지상낙원이지만, 비가 와서 한번 우기가 지나가면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래서 풍요로움과 고통스러움을 같이 지배하는 것도 날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데, 사소한 장면이 기억난다. 함께 걸어가다가 갑자기 무좀이 있다는 남자주인공을 여자주인공이 쳐다보다가 ‘우리 부부같이 보인다’는 말을 슬쩍 던지는 장면이다. 두 남녀가 이런 식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굉장히 많다. 어떤 장면을 인상 깊게 보았나?

김태용: 새로운 여자가 등장할 때, 여자의 바스트샷이 항상 들어가는데 그게 묘한 느낌을 들게 한다. 심지어 마지막에도 섬의 하녀를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웃음) 두 사람이 계속해서 걷는 게 나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할 정도의 트랙킹 샷도 많이 나오는데, 지금의 스테디캠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다. 영화가 묵묵히 앞뒤로 따라가면서 걷는 것을 찍는데, 둘이 걷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따라가는 느낌의 샷들이 뭔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처음에 인도차이나에 있을 때, 주인공 남녀가 대화하는 순간에 하녀의 샷이 하나 들어가 있다. 순간적으로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러티브로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원작에는 남자가 하녀를 임신시킨 게 있다. 그런데 그걸 알고 나서도 이게 내러티브적인 설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구도 안의 안정적인 느낌이 파괴되거나 인물의 내향성이 시선을 경유해서만 이 화면에 무언가의 감정이나 효과를 전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둘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의 설명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최종적으로 이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서는 것 또한 설명되기 어려운 것 같다.

김태용: 원작 소설은 안 봐서 모르겠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여자를 따라가게 만든다.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여자의 등장방식도 그렇다. 그래서 이 여자를 중심으로 우리는 영화를 본다. 우리가 이 남자를 그나마 보는 건 여자가 그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마지막에는 사라지고 남자만 남게 된다. 초반부터 여자가 남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 보여주어서 끝도 그렇게 맺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감독이 영화의 엔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뼈저리게 고민하고 만든 것 같다.



관객1: 슬프고 비참하지만 또한 굉장히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은 이 <부운>이라는 영화의 어떤 점에 끌리셨는가?

김태용: 인물들이 좀 안쓰러웠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각났던 게 컸다. 우리는 어떤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하는 선택을 옹호하고 응원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내가 옹호하고 싶지 않은 감정, 실패, 실수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후자의 영화가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올바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약하게 선택하고 실패하는, 우리가 옹호하고 응원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서 이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한 영화가 있었나 싶다.

김성욱: 현실적으로 이 영화의 이야기나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어려운데, 이끌림은 분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로 멀리가고 싶다는 단순한 표현들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전쟁 때문에 인도차이나라는 곳으로 간 건데, 거기서 사랑의 순간을 맛보게 되는 역설이 있다. 마지막에도 저 멀리 일본의 남단으로 가게 되는데, 마치 죽으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안착이라는 느낌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소 꽤나 폐쇄적이고, 밀실적이다. 하지만 연인들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런 연인들의 공간을 찾아나가는, 이끌려가는 영화인데 문득 그런 와중에 여자의 선택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도덕적인 질문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관객2
: 마지막에 삽입된 ‘꽃은 빨리 지고, 괴로움은 끝도 없도다’라는 자막이 인상적이다. 제목인 ‘부운’은 뜬구름 또는 덧없음에 대한 것인데, 맨 마지막 자막은 사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없음을 잡아내려는 일본미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태용: 일본 미학을 잘 모르지만 마지막 ‘꽃은 빨리 지고 괴로움은 끝도 없도다’ 문장은 영화에 약간 반하는 지점이 있다. 영화의 톤은 무상하고 쓸쓸한 것을 깔고 있지만 캐릭터들이 계속 보여줬던 그 방식은 그렇게 덧없지는 않았던 느낌이다. 덧없음보다는 슬픔 혹은 무력함에 가까웠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지막 문장은 이 영화를 만들고 문장을 넣었다기보다는, 원래부터 그 내용인데 나루세 미키오 감독이 이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과해져서 반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이 감독의 특징이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좀 장면이 실제 소설에 있든 있지 않든 간에 인물들이 꼼지락 거리면서 서로를 무언가를 나누게 하는 애정, 그리고 비를 맞으면서 돌아오는 과정, 사과를 깎아주는 과정, 이 때 남자의 눈빛이 자상함으로 많이 바뀌어져 있다. 배우와 연출자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면서 캐릭터가 만들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끝에 예정되어 있던 표제어와 다르게 캐릭터가 바뀐 게 아닐까 싶다.


김성욱:
이 영화의 라스트에서 문득 <만추>의 엔딩을 떠올려봤다. 앞에 있었던 두 개의 플래시백은 여자에 속한 것 같은데 마지막 플래시백은 남자에게 속한 것 같아서 과거의 기억을 둘이 이제 공유한다는 느낌이다. 그것이 주는 무상함이 있지만 죽음의 순간에 와서야 비로소 가까스로 사랑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마칠 시간이다. 최근에 단편영화 촬영을 끝내고 편집 작업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김태용: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는 안정감보다 영화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정서적인 감정을 자신의 균형감을 잃을 만큼 끌려가는 감독 같아서 개인적으로 더 호감이 가고, 궁금한 영화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올해 안에는 작업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가을에는 영화를 찍고 싶다. 판소리 영화인데 많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웃음)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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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

10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가족의 탄생>의 피 한 방울 나누지 않는 가족처럼 ‘따로 또 같이'의 가치, 전혀 타인끼리 마음을 여는 감정에 주목하는 김태용 감독의 최근작 <만추>(2010)를 함께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특히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는 <페스티발>의 이해영 감독과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감독,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패널로 참여, 김태용 감독의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이 영화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다루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먼저 영화에 대한 느낌들을 간단히 듣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김태용(영화감독):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아하는 동료 감독들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쁘다. <만추>를 상영한다고 했을 때, 이 영화를 가을에 보면 참 좋겠다, 혼자만의 어떤 생각들을 가지기에 좋은 시간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참석한 분들을 보고 나니 그렇게 되기는 힘들겠고, 오늘은 술을 먹어야할 것 같다. (웃음)
이해영(영화감독): 이 영화를 오늘 세 번째로 봤다. 두 번째 볼 때까지는 좋은 영화인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뭔가 가슴이 저릿한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보면서 가슴이 저릿하고 멜로적으로 감동을 받았다. <가족의 탄생>을 굉장히 좋아해서, 감독으로 살면서 저런 영화를 한편 정도 만들면 여한이 없겠다 생각할 정도인데, 오늘 <만추>를 다시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축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영주(영화감독):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탕웨이보다 현빈씨가 눈에 띄었었다. 통속적일 수 있는 연기를 통속적이지 않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전반부를 정말 좋아한다.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떤 감성을 전달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는 처음에 탕웨이가 버스를 타고 올 때 길이 보이는 듯하다가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팬하면 탕웨이의 얼굴이 보이고, 그렇게 이어지는 감정들이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만추>의 김우형 촬영감독이 최근에 <고지전>를 촬영했는데, 화면의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전투 장면을 넓게 잡아서 옆으로 쭉 따라가는 그 사이즈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사이즈 같은 느낌이 있다. <만추>에서도 마찬가지로 보통 촬영을 할 때 배우의 섬세한 움직임을 따라가거나 명백한 화면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어느 순간 기다리면서 바라볼 줄 아는 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미(영화감독):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탕웨이와 현빈이 마지막에 버스를 타고 달리는데, 안개가 가득한 풍경을 원경으로 찍고 둘이 주고받는 대화가 목소리로만 들리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다. 내가 왜 여기서 눈물이 나는지, 도대체 언제부터 나의 감정이 쌓였던 것인지 질문하게 되면서 영화를 더듬어가며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힘이 있다. 대개의 영화에선 감동을 주기 위해 힘을 주는 포인트가 있기 마련인데,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는 그런 것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어느 순간 툭 터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변영주:
편집을 할 때 감독으로서 가장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 쇼트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이다. 어디까지 보여줘야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감정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데, 한편으로는 <만추>에서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너무 견고하게 쌓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 말씀하신 것처럼 감독은 사실 단순하게 쇼트 하나를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을 찍을 것인가도 있지만,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어디까지가 이 쇼트의 운명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만추>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쇼트가 더 이상 이야기를 가지고 가야하는 의무감이 없어진 상태로 남겨진 그 순간에 대한 매혹이었다. 죽은 시간을 다루는 쇼트들에 대한 고집이나 집착이 생겼던 것 같다. <만추>가 말과 말의 행간처럼, 쇼트가 필요 이상으로 긴 지점들이 있는데, 어떤 의무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쇼트 때문에 생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것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약간 지루하거나 과잉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것 때문에 내가 감정을 가져야하는 지점을 지나서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 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김태용 감독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확실한 두 남녀의 헤어짐의 슬픔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된 감정을 모로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갖게 되는 영화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영화가 피부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피부, 피부적인 접촉, 만남,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조금씩 피어오른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 감정이 피어오르는 상태에 도달하고 영화는 끝나는데, 바로 그 지점까지를 영화가 충실히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탕웨이가 모텔에서 금이 가 있는 문에 부딪혀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마치 자기 몸에 뭔가 부딪혔을 때의 통증이라는 감각을 떠올리게 되는 듯하다. 어떤 사람과 새롭게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문에 금이 가고 깨져있는 그 상태와 굉장히 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사물들을 통해서 접촉, 만남, 감정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굉장히 피부적인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할 수도 있고, 애매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경미: 감독과 영화가 닮아 있는 분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분이 있다.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왜 항상 마음이 흔들릴까를 생각해보면, 감독님이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실제로 감독님과 얘기 나눌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근조근 얘기하시는데 어느 순간 슥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한 가지 질문은, 두 남녀가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어서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감독님이 어디까지 디렉션을 주셨던 건지 궁금하다.
김태용: 그 장면은 리허설을 많이 했다. 워낙 공간이 좁고, 그런 씬은 액션 씬과 비슷해서 합을 맞추고 거기에 맞춰 카메라가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감정대로 움직일 수 있는 씬이 되기는 어려웠다. 결과물은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해야 하는 씬이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질문을 숙제처럼 가지고 찍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식의 호감을 갖게 되는 때, 그것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유혹이든, 연민이나 열망, 욕정, 혹은 사랑이든 뭐든 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어떤 순간은 과연 어떤 것일까. 흔히 사랑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확실한데, 그 사랑을 막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믿기지가 않았다.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를 믿는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전제를 두고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에 약간의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만추>는 사랑이 없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방 안에서 물리적으로 부딪히고 하는 것도, 서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나의 마음보다 몸이 먼저 가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닫은 사람이 움직이는 데에 힘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모텔 안에서도 둘은 그 안에서 어떠한 분명한 감정도 없다. 분명한 감정 없이 몸을 움직여서 하게 되는 상황으로 연출을 하게 된 것 같다.

이해영:
보통 남성감독이 만든 멜로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절절히 느껴진다. 그런데 <만추>에서는 특이하게도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의 입장에서 현빈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웃음) 영화의 모든 사연과 아픔은 모두 탕웨이에게 있는 반면, 현빈에게는 긴장감은 전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탕웨이는 자신이 어떤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를 매 순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현빈은 자기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자신의 재능과 매력을 너무나 잘 알아서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연기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만추>에서의 현빈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김태용: 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실제로 탕웨이와는 너무 편하고 친구 같았다. 탕웨이와는 애나라는 캐릭터의 디테일한 모든 움직임을 시연 하면서 같이 캐릭터를 만들어갔는데, 현빈의 캐릭터에 대해선 디테일한 디렉션을 거의 주지 못했다.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영화를 찍을 때 내가 현빈이 되어서 탕웨이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마음을 열 생각도 없고, 욕망도 없데 갑자기 누군가 내 인생에 푹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었다.

관객1:
데뷔작으로 공포영화인 <여고괴담2>을 만드셨는데, 어떻게 <만추> 같은 영화를 만드시게 됐는지, 그리고 특별히 시애틀을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김태용: <여고괴담2>도 사실 사랑 영화다. 영화를 만들 때, 장르적인 것보다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이 둘은 어떻게 될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공포든 다른 무엇이든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시애틀은 일 년에 55일 정도만 해가 뜰 정도로 워낙 흐린 날씨다. 가을, 겨울에는 자살률도 높고, 약간 신비로울 정도로 안개와 비로 항상 축축해 있다. <만추>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 때, 가을이란 것을 기후의 느낌과 공간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에서 담아내고 싶었고, 그런 이유로 시애틀을 선택하게 되었다.

관객2: 영화의 일관된 톤을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 컨셉 조율하는 과정이나 헌팅하실 때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
김태용: <만추>는 영화적인 무드가 중요한 영화이다. 무드를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촬영과 미술이 있는데, 영화의 룩과 관련된 부분은 사실 김우형 촬영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이 두 분이 다 하셨다. 워낙 잘 하셔서 연출자로서는 배우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었고, 많은 힘이 됐다. 두 분이 기본적이 준비를 처음부터 같이 해줬고, 두 배우는 현장에 미리 와서 두 달 동안 같이 리허설을 했다. 사전에 준비하고, 얘기했던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배우들이 있어서 짦은 촬영 기간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관객3: 포크 장면에 대해 궁금하다. 아마도 애나가 훈이 자기를 위해서 싸웠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가 첫사랑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하는 데에 그 장면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사실 애나의 삶에 많은 책임이 있을 수 있는 인물인데도, 미안하다고 말한 뒤 무언가 더 덧붙이지 않고 장면이 끝난다.
김태용: 그 장면의 리허설을 하면서 감을 도저히 못 잡았었다. 너무 웃겨서도 안 되고, 너무 슬퍼서도 안 되는 어떤 지점, 웃다가 갑자기 ‘어, 이게 뭐야’ 이런 느낌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감정이 과해서 애나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슬픔이 너무 확 오고, 어떤 때는 너무 가볍게 가다보니 애니가 울 때까지도 우리의 웃음기가 아직 남아있게 되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원하는 만큼,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으로 나온 것 같다.


관객4: 영화가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몽환적인 느낌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안개의 역할이 궁금하다.
김태용: 안개는 이 영화의 제일 중요한 요소다. 가만히 보면 <만추>는 정말 단순하고, 어떤 것도 숨기는 것 없이 툭툭 가는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다른 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만추>는 안개를 깔고 봐야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안개를 걷고 보려고 하면, 오히려 이 영화를 제대로 못 본다고 생각한다. <만추>의 안개는 단지 미장센의 역할 이상으로 이 영화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제일 큰 요소인 것이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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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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