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 웰즈와 아나크로니즘

지난 8월 21일 오손 웰즈의 <위대한 엠버슨가> 상영 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현대성’이란 제목의 영화사 강좌 마지막 시간이 이어졌다. ‘오손 웰즈와 아나크로니즘’을 주제로 열린 아닐 강좌의 강사는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맡았다. 그날 현장을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지금 보신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손 웰즈가 처음에 편집했던 버전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고, 오리지널 버전은 아직 볼 수가 없는 상태다. 오리지널 버전은 132분인데 지금 보신 버전은 88분이고, 심지어 몇 개의 장면은 웰즈가 연출하지조차 않았으며 그나마 웰즈가 연출한 장면들조차 순서가 많이 바뀌어있는 상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 공개된 이래로 지금까지 영화 비평가들에게 ‘어디까지가 영화 비평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해오고 있다. 삭제된 장면들은 볼 수 없지만 스크립트, 시나리오, 그리고 웰즈가 내렸던 연출 지침 등은 남아있기 때문에 원래의 영화를 어느 정도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사료들을 토대로 ‘이 장면은 원래 이런 것이었어, 몹시 탁월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영화 비평인가 하는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먼저 이 영화에 얽힌 사건들을 말씀드리며 웰즈가 처음 만들려고 했던 것을 상상적으로라도 그려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웰즈가 영화를 만들고 나서 개봉 이후에 다시 본 첫 번째 영화가 <위대한 앰버슨가>라고 하는데,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차라리 이 영화에 가해진 일을 모르는 채로 죽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것이다. 웰즈는 자신 몰래 행해진 편집들만 아니라면 이 영화는 <시민 케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렇게 불완전한 판본으로 남게 된 이유에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텐데, 하나는 흔히 회자되는 대로 ‘뛰어난 예술가의 영혼을 억누른 사악한 헐리우드 제작사들’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웰즈 자신의 심리적인 기벽과 성격적인 결함이 이 영화를 시작부터 파탄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이다. 찰스 히건 같은 평론가는 웰즈가 이 영화의 후반작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것은 완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주장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로버트 캐링거라는 학자의 것으로, 그는 RKO에 남아있던 여러 자료들을 모아 <위대한 앰버슨가>의 일종의 텍스팅적인 복원을 시도하여 <위대한 앰버슨가의 복원>이란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 실린 자료들 자체는 후에 평론가들이 많이 참조하게 되었지만, 그가 시도하는 오이디푸스적인 맵핑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엄청난 셰익스피어주의자였던 웰즈가 어떤식으로도 <햄릿>을 연출한 적이 없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햄릿>이 그의 자전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조너선 로젠봄은 캐링거의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이 영화에 일어난 일은 당시 웰즈가 처해있던 제작 상황을 보는 것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대한 앰버슨가>의 촬영이 끝나고 바로 1주일 후에, 웰즈는 차기작으로 계획했던 <잇츠 올 트루>의 촬영을 위해 브라질로 떠나게 된다. 리오 카니발 장면이 꼭 필요했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당시 <위대한 앰버슨가>의 편집 담당은 로버트 와이즈였는데, 웰즈는 그와 전화와 전신으로 연락을 해가며 원격 편집 감독을 했다. 이런 방식은 한 달여 동안 순조롭게 이루어져 132분짜리 오리지널 판본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42년 3월, 당시 RKO의 수장이었던 조지 셰퍼는 와이즈에게 영화 길이를 좀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 했고, 와이즈는 이를 웰즈에게 전한다. 웰즈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사이, 무작위의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지널 판본의 첫 사전시사가 진행되었다. 관객들로부터 회수된 설문 결과는 그리 처참한 편이 아니었지만, 당시 참가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상영장의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경영진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이틀 후에 임의로 17분을 단축시킨 115분 버전의 시사회를 한 것인데, 이번에는 설문 결과가 조금 더 호의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웰즈는 이후에 영화를 더 단축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에 따라 웰즈는 여러 가지 수정안들을 미국으로 보내지만, 마침내 셰퍼는 웰즈의 동의 없이 재촬영을 결정한다. 결국 재촬영 분량들을 끼워 넣고 러닝타임을 단축시키고, 장면들의 순서를 바꾼 상태로 <위대한 앰버슨가>는 결국 42년 8월에 개봉했고, 처참히 실패했으며, 웰즈는 다시는 헐리우드에 발붙일 수 없게 된다.

이런 대략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원래 웰즈가 만들려고 했던 <위대한 앰버슨가>를 상상적으로나마 그려보고 나서야 여기서 드러나고 있는 아나크로니즘, 시대착오적 감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웰즈의 몇몇 특이한 영화들, 대표작인 <시민 케인>이나 후기의 걸작 <한밤의 종소리>, 혹은 <위대한 앰버슨가> 못지 않게 수난을 겪다 결국 미완으로 남겨진 <돈키호테> 같은 영화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사라져간 귀족적 용맹함에 대한 송가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휄즈는 실제로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미덕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어떤 매너나 예법,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던 시대에 대하 향수가 아니라, 매너나 예법을 넘어서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고 그것이 생기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대에 대한 향수다. 이 영화에서 어린 시절의 조지는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런 소년이 마을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사실 웰즈적 영웅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그들 모두가 자신의 시대에 충실한 채로 남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구식이 되었음을 알고도 그것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구식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구식으로 남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웰즈의 인물들은 전자다. 조지 역시 그런 사람이고, 심지어 유진조차도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자신이 예견했던 시대와 어긋난 사람이 된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꽤 중요한데, 이 인물에게는 웰즈의 좀 다른 측면의 아나크로니즘이 투영되어 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이 흔히 뒤쳐진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나크로니즘이라면, 발명가인 유진은 자신의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불러들이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 시대가 왔을 때는 그 시대와 자신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는 사람이다. 사실 이 영화를 거듭 볼수록 가장 웰즈적이라고 느껴지는 인물은 조지가 아니라 오히려 유진이다. <위대한 앰버슨가> 같은 영화들을 만들던 시기에 웰즈는 혁신가였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이 길을 닦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영화들의 시대가 왔을 때 그는 구식 인물이 되어있었다. 예언적이라고까지 말하는 건 아니지만 유진이라는 인물은 웰즈가 느꼈을 시대에 대한 어긋남이나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인물들은 타임머신이 발명된다고 해도 자신과 맞는 시대를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시대와의 어긋남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들이다. 남아있는 판본들과 사료들을 통해서 재구성해보면, 이러한 웰즈의 시대착오적 영웅들의 딜레마가 가장 잘 표현된 영화가 바로 <위대한 앰버슨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 박예하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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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드 팔마, 희생자의 비명

‘2011 시네바캉스 서울’이 한창인 지난 8월 14일 오후 브라이언 드 팔마의 <드레스드 투 킬> 상영 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현대성’이란 제목의 영화사 강좌 세 번째 시간이 이어졌다. ‘브라이언 드 팔마, 희생자의 비명’을 주제로 열린 이 날 강좌에는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나섰다. 그는 드 팔마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과감성과 저열함을 끝까지 끌고 온 감독으로 체질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드 팔마 영화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현대성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들을 여기에 옮겨 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보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무엇인지를 따라가게 만들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텔레비전으로 중학생 무렵에 봤었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과 <태양은 외로워>가 그런 작품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오늘 보신 <드레스드 투 킬> 같은 류의 영화로, 고등학교때 보았다. 일종의 체질적으로 몸에 와닿았던 영화다. 영화의 리듬 자체가 몸에 딱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개인적으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 감독 중에 체질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역시 뛰어나지만 체질적으로 몸에 달라붙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작가들보다 드 팔마를 좋아하는 건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일종의 B급스러운 저급함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는 마지막에 리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했던 말들의 상당수가 드 팔마의 심중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굉장히 더러운데 너는 내게 매력을 느끼냐’는 식의 말이다. 일종의 도발로, 드 팔마가 자신의 영화로 사람들에게 했던 도발과 비슷한 뉘앙스로 느껴졌다. 7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감독들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정할지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데, 이들은 주로 두 가지 경향을 보였다. 보통의 경우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추구하는 제작방식을 따라가면서 스스로가 갖고 있던 60년대적인 모던한 경향들을 추가해가며, 일종의 고급화를 해가는 방식을 택한다. 드 팔마의 경우, 똑같이 상업적인 세계로 들어가려 했고 <캐리>나 <퓨리> 이후에 실제로 그런 세계로 진입하기도 했지만,당시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저열하게 평가되던 하위성들을 끌어당기며 나아갔다. 저급함과 하위성을 정치적 함의가 담긴 언더그라운드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팜므 파탈>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과감성과 언더그라운드 성격을 이렇게 까지 끌고 온 사람은 드 팔마가 유일하다는 생각이다.

<드레스드 투 킬>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양산했으며 영화가 개봉했을 때 페미니스트들의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 드 팔마로서는 80년대에 들어 나름대로의 전략을 세웠던 첫 번째 작품이다. 전략이라는 건 이 영화가 왜 히치콕의 영화를 가져왔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드 팔마가 히치콕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할리우드 고전영화 세계 안에서 끌어올 가장 적절한 대상을 히치콕으로 설정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히치콕 정도의 작가를 자신의 영화 안에 가져오면 비판이나 비난을 받을 위험이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히치콕을 완전히 패러디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령, 이 영화에서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살인 장면에서 볼 수 있다. 드 팔마 영화에는 언제나 살인이 등장하며 그 장면들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특징적인 도구를 사용한 살인이라는 점이다. 총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를테면 <바디 더블>에서는 드릴이, <스카페이스>에서는 전기톱이, <자매들>에서는 식칼이, <드레스드 투 킬>에서는 면도칼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도구성, 어떤 것이 매개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도구들 때문에 살인의 시각적 표상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자면, 칼의 종류는 다르지만 <싸이코>의 살인 장면에서도 <드레스드 투 킬>과 마찬가지로 칼로 여자를 찔러서 살해한다. 그러나 <싸이코>에서는 실질적으로 몸에 상처를 만들지는 않는다. 직접적인 피부 손상을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6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미국영화에서 신체 손상이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드 팔마의 경우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몸에 대한 손상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살해되는 순간의 시각적 표상성의 변화들을 만들어 간다. 다시 말해 편집이나 미장센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살인 시퀀스에서 면도날에 의한 손상은 몸의 상처뿐만 아니라 필름의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드 팔마 영화의 살인 장면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언제나 살인에 증인이 입회한다는 점이다. 드 팔마의 모든 영화들, 특히 오늘 보신 <드레스드 투 킬>에서 살인과 관련된 모든 장면에는 살인자와 피해자 외의 제 3의 인물이 입회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일종의 꿈 시퀀스는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살인 시퀀스에는 리즈가 입회해있고, 기차에서의 살인 시퀀스에도 여러 명의 흑인들이 있다. 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점이다. 살인 장면을 살인자-희생자-관객의 3자 게임으로 구성하지 않는 것이다. 그랬을 경우에 발생하는 감각적인 쾌락을 증인을 경유해 비켜가고 있는데, 여기에는 드 팔마라는 감독에게 영화사적 영감을 준 역사적 건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언제나 스스로 이야기 하는, 드 팔마의 영화를 특징짓게 된 몇 가지 사건들이 있다. 첫 번째는 베트남전이다. 드 팔마는 베트남전 반전 투쟁의 기운이 있었던 시기에 영화를 시작했던 베트남의 자식이다. 실제로 초기 드 팔마 영화는 굉장히 정치적이었으며, 그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는 고다르다. 물론 안토니오니나 혹스, 히치콕 등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드 팔마와 고다르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은 영화사적으로나 시기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정치적인 암살들, 특히 존 F 케네디의 암살이다. 특히 JFK의 암살이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단순히 사건적인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 자체가 미디어를 경유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JFK의 암살 순간은 소리도 없는 8mm 영상으로 촬영되었다. 나중에 파솔리니 역시 이 제프루더 필름에 대해 이야기한 바이지만, 사람의 죽음의 순간이 필름에 기록되었으며 그것은 심지어 한 테이크인 롱테이크이다. 그러나 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컷들이 필요하게 된다. 이해하기 위해서 그 장면을 분석해야 하는데, 그 분석의 도구로서 영화적 도구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몽타주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나중에 <블로우 아웃>에서 명백히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드레스드 투 킬>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나고 있다.

<드레스드 투 킬>은 결국 드 팔마 자신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피터라는 인물은 드 팔마와 거의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인물을 통해 드 팔마가 이 영화를 만들 즈음의 정신사가 어떠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피터는 일종의 발명가로, 드 팔마 역시 뭔가 새로운 것을 창안하고 창조하려 했던 사람이고, 스스로 명칭을 정할 수 없는 영화들을 만들어 내었다. 극 중에서도 피터가 기계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자 어머니가 ‘이름은 붙여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데, 그 때 피터는 그 기계에 피터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부분은 드 팔마의 자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드레스드 투 킬>은 드 팔마가 연출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전권을 구사한 첫 번째 영화였기 때문에 그의 자의식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피터는 자신의 발명품에 스스로의 이름을 붙여줌으로서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는데, 이를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더블로서 기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드 팔마는 영화에서 언제나 더블을 만들어 낸다. <바디 더블>, <캐리>, <퓨리> 모두가 그 예라고 볼 수 있는데, <드레스드 투 킬>에도 수많은 더블들이 존재한다. 피터와 리즈의 대화 장면에서 피터는 ‘컴퓨터 만드는 것을 중단하고 내 안에서 여자를 한 명 만들어야겠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여자를 창조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드 팔마가 보여주는 더블의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엘리엇과 바비 간의 더블 관계는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빌어 온 것이기 때문에 드 팔마 스스로 창조한 부분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고로 그 둘 간의 더블 관계에 집중해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해석했을 때 <드레스드 투 킬>은 단순한 <싸이코>의 재탕이며 드 팔마는 뛰어나긴 하지만 결국 히치콕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 정도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안이하다. 이 영화에는 그외에도 수많은 더블들이 있으며, 이들을 다 연관 지어 전체적인 영화를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 해보면, 먼저 피터는 드 팔마의 구현체로서 더블을 이루고 있고, 극중에서 자신이 만든 기계와도 더블을 이루고 있다. 이는 영화를 만드는 작가의 무의식과 영화 이미지 간의 더블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드 팔마는 지속적으로 이런 관계를 영화에 등장시키곤 한다. 또한 케이트는 당연히 리즈와 더블을 이루고 있다. 이 점 또한 <싸이코>와 다른데, <싸이코>에서 마리온과 그 여동생이 일종의 짝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여동생의 존재성은 미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케이트에서 리즈로 전이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며, 이는 엘리베이터 시퀀스가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살해당하는 케이트가 내미는 손을 잡는 또 다른 손이라는 설정은 리즈가 단순히 하나의 목격자를 넘어서 케이트의 더블로 형성됨을 보여준다. 동시에 리즈 역시 더블을 갖고 있다. 이런 수많은 관계들을 통해 반복되는 장면들이 나타나며, 영화가 전체적으로 순환성을 갖게 되기도 한다. 결국 이 더블이라는 부분들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읽어나가는가, 또 더블의 관계가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된 피터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또한 <캐리>에서부터 기원한 영화들의 궤적에서 보자면 일종의 홈무비다. 즉, 가족에 관한 영화라는 말이다. 이 영화 바로 직전에 드 팔머는 <홈 무비>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리즈와 피터가 함께 하는 것, 이 둘의 결합은 중요하다. 리즈는 악몽 속에서 깨어나 비명을 지르는데, 그 순간 피터가 달려온다. 앞서 말했지만, 영화의 카메라는 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 거기에는 영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케네디의 죽음의 순간을 담아낸 영상도 마찬가지로 소리는 담겨있지 않다. 비명소리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야 말로 드 팔머가 추구했던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의 마지막 말은 이 영화와도 연결된다. '폐허를 보며 괴물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의 절규에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역사의 끔찍한 사건은 반복될 것이다. 드 팔머는 다음 영화로 <블로우 아웃>을 만들었고, 거기서 녹음기사인 존 트라블타는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영상에 넣게 된다. 물론 그것은 대단히 비극적인 미국의 초상이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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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알드리치, 남성적 허세와 유희

‘2011 시네바캉스 서울’이 한창인 지난 8월 7일 오후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피닉스> 상영 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현대성’이란 제목의 영화사 강좌 두 번째 시간이 이어졌다. ‘로버트 알드리치, 남성적 허세와 유희’를 주제로 열린 이 날 강좌에 강사는 오승욱 감독이 자리하였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가 함께 진행하며 흥미로운 대담을 펼쳤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진행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가 맡았다. 남성 영화에 대한 애호와 <피닉스>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들을 앞 다투어 이야기하며 열띤 대화의 장을 펼친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올해 초에도 로버트 알드리치의 영화 <북극의 제왕>을 추천해서 상영했고 <피닉스>도 함께 추천해주셨지만 당시에는 상영하지 못했다. 대신 여름에 <피닉스>가 걸맞을 것 같아 이번에 틀게 되었다. 오승욱 감독을 소개한다. 말씀하신 대로 정말 초등학교 2학년 때 이 영화를 보셨는지?
오승욱(영화감독): AFKN에서 봤고, 김산이라는 만화가가 있는데 이걸 ‘불사조 날아오르다’라는 제목으로 만화화하기도 했다. 주인공 소년이 헹글라이더를 만들어서 탈출하는 것으로 나온다.

김성욱: 영화는 남성의 몰락을 얘기하고 있다. 여러 유형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것과 사막이라는 공간이 흥미로웠는데 어떠셨는지?
오승욱: ‘남성의 허세와 유희’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60년대 중반 이후 알드리치의 영화는 50년대 영화와 다르게 ‘남성들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한다.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남성을 얘기하는 미국 영화감독이 둘 있다. 물론 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남성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감독들도 있다. 하워드 혹스와 존 포드가 대표적인데 존 포드는 남성들의 얘기를 할 때 그들의 존엄성을 얘기한다. 그는 결정적인 클로즈업을 한두 번 밖에 안 쓴다. 남성이 윤리적 결단을 내렸을 때 그 존엄성에 대한 존경을 담으려 한다. 한편 하워드 혹스는 주인공들의 관계 속에서 남성의 섬세한 면을 다룬다.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담아낸다. 50년대까지 미국영화의 이러한 남성상을 샘 페킨파와 로버트 알드리치가 바꿔놓는다.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클로즈업은 부조종사인 리처드 아덴보로가 기장인 제임스 스튜어트와 싸우면서 무식함을 지적할 때 쓰인다.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알드리치의 남성상에 방점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알드리치는 남성으로서 버텨왔던 세계가 무너질 때 그 남성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얘기하고 싶어 한 것 같다. 페킨파의 경우 남자를 아름답게 보여줄 때는 남성들이 제정신이라면 도망가야 하는데 무언가에 히스테릭하게 반응해서 죽으러 갈 때다. 용기 있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는 게 아니라 바보짓하는 남성들에게 만가를 바친다고 해야 할까. 알드리치와 페킨파는 그 이전과 다르게 남성들의 비애를 담았던 것 같다.

김성욱:
이 남성들만이 등장하는 영화에 특이한 장면 중 하나가 후반부에 신기루처럼 여자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다리를 부상당했던 친구가 부인 사진 한 장을 떨어뜨리고 죽는 장면과 더불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부인 사진 가졌던 사람이 죽고 중사는 여자의 신기루에 사로잡히고 플레이보이 잡지를 보던 사람과 기타 치던 사람은 초반에 죽어버린다. 이런 장면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오승욱: 남성 얘기를 하다보면 여성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남성 영화들에는 남성이 여성을 학대한 것에 대한 죄의식과 그 여성이 언제든지 자신을 박살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것이 남성의 동력이 되고 폭발한다. 레오네와 페킨파, 마틴 스콜세지의 70~90년대 영화가 그렇다. 여성에 대한 죄의식과 두려움을 다룬 이들 작품들에서 여성이 부재하더라도 그 여성의 귀기라는 것이 남성들을 계속 괴롭힌다.

김성욱:
몇몇 배우들은 그들의 내력과 영화가 연동되는 것 같다. 하디 크루거는 어릴 때 히틀러 소년단이었고 2차 대전에 참전했고 이후 영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제임스 스튜어트도 2차 대전 때 비행기 조종사로 활약했고 초반에는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에 나오다가 나중에 안소니 만이나 히치콕의 영화에서 굉장히 히스테릭한 인물로 등장한다. 또 젊은 세대인 크루거를 보면서 “앞일을 이끌어가겠지만 미래를 못 볼 것 같다”고 한다. 한편 중사는 이런 식의 재난 영화에선 곧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캐릭터다. 내러티브의 도덕적 논리로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중사를 비겁하다고 할 수 있지만 대위를 아버지로서 바라봤다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가 생일에 팬케이크을 만들어줄 때 아버지는 자기를 군대에 보냈다. 그래서 중사가 대위 앞에서 가부장성에 대한 반항을 표출한다고 보았다. 군인으로서는 비겁하지만, 아버지에 반항하는 아들의 입장에선 강한 모습이다. 속 내용은 결국 자기 죽기 싫다는 건데, 다른 한편으론 ‘그 때는 반항 못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오승욱:
50년대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는 남성을 얘기할 때 아버지 아들 손자 이렇게 얘기한다. 60년대 들어서 알드리치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없다. 아들도 없다. 알드리치도 자기 아들을 플레이보이 보는 배우로 출연시켜서 곧바로 죽이지 않나. (웃음) 아버지 아들 손자 이 얘기는 60년대 남성을 다룬 영화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알드리치나 페킨파에서 남성들의 관계는 일 때문에 혹은 싸움 때문에 전장에서 맺는 관계이다. 횡적인 관계다. 70년대에 보수로 돌아선 영화가 <대부>이다. 코폴라는 아버지 세대를 복원한다. 관계 속에서 남자를 다루는 것이 진보라고 하긴 그렇지만, 아버지 없고 아들한테 물려주는 것 없고 자기들끼리 놀다가 자기들끼리 폭사하는 것이 <대부>나 폰다 가족들이 찍은 <황금 연못>보다 인상적이다. 알드리치의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이다. 허세라고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온갖 허세가 총출동한다. 대표적인 것이 ‘괜찮아 잘 될 거야’ 식이다. (웃음) 위기를 위트 있게 표현한다. 리처드 아덴보로와 제임스 스튜어트가 싸우는 장면이 있다. 서로 삐지고, 제임스 스튜어트는 ‘아 루... 루... 미안해’ 하면서 후회하고, 루는 축 처진 어깨로 가고 있고, 그 다음 혼자 있는 아덴보로한테 스튜어트가 가서 아무도 안 웃을 농담 하면 서로 용서하는. 이 영화는 그런 것의 총집합이다. 지금 봐서는 비웃음 밖에 안 된다. 싸우면 그 다음날 안 보지 않나. 상처나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진 않지 않나. 알드리치 영화에선 둘이 힘을 합쳐서 가야하니까 그렇게 한 거고 또 그런 식의 화해 직후에 안 좋은 일들이 터진다. 서푼짜리 위안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는 것을 곳곳에 배치한 게 좋았다. 특히 영화 다 끝날 때 와서야 여기까지 힘들게 온 것을 하디 크루거가 모형 비행기 만들던 사람이라는 말로 다 무너뜨려버린다. 노동자들도 비웃음거리로 그려지는데, 남성이 노동으로 존재한다는 가치가 일차 대전 후부터 서서히 없어져버렸다. 남성 노동의 가치가 당대 미국에서 의심받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이천 년대 들어서 계속 해서 의심받고 있지 않나. 자본가와 서비스하는 사람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흙을 파내고 엎는 것과 무엇을 만드는 것에 가치가 없다고 보고 있다. 당시 미국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그 사람들이 노동하고 있다. 다들 구조되고 나서도 특별히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중사는 구속될 것이고 하디 크루거는 앞으로 모형 비행기를 만들고 있을 것이고 여태 그나마 가치 있었던 노동 역시 우스갯거리가 되어버렸다. 영화 마지막에 그들은 살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운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물을 향해 찾아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 놈들 술 처먹었냐’고 한다. 알드리치가 생각하는 갱생을 해봤자 술주정뱅이로 살거나 요행히도 육백 미터 가서 살고, 그러고 나서도 물 먹는 것 말고 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웃음이 드러난다. 동시에 감동적이기도 하고.


김성욱: 그 부분을 보고 유희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탈출 후를 과장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들이 큰일이지만 하나의 장난을 치렀던 정도의 수준으로 담백하게 뽑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생존자들이 특이한 것 같다. 하디 크루거는 새로운 것 창조해낼 수 잇는 사람이고 제임스 스튜어트는 과거의 전투 조종사인데 리처드 아덴보로는 이 둘을 엄마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또 다른 한 명, 회계사는 신실한 종교심이 있는데 자비심이 없다. 두 명의 건달 같은 노동자들은 돈도 제대로 못 받고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대위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탈영병에 가까운 중사가 살아남는다. 거기에다 조그만 하천 같은 것에도 기뻐하는 그 정도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알드리치식의 미국의 새로운 세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오승욱: 이후의 영화 <더티 더즌(1967)>을 봐도 정상인이 하나도 없다. 미국이라는 가치가 진짜 옳았는지 모르겠지만 원래는 프런티어 정신, 청교도 정신, 남자의 명예 이런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인상 깊었던 것이 대위가 죽는 장면이었다. 다른 영화에선 그들의 죽음에 값진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렇지 않고 다리를 절어 쓸데없기 때문에 놔둔 낙타만 있고 그것을 향해 제임스 스튜어트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무덤에 묻어주지도 않고. 어네스트 보그나인도 막노동으로 쓰이지만 쓸모없어지자 버려진다. 왜 버려졌는지 이유도 모르고 버려지고, 이 사회에 대해서 뭔가 기여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고장 나서 버려진다. 남자가 할 수 있는 것 아무 것도 없다, 남자로 산 것에 프라이드를 가지는 것이 별 가치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남성의 명예, 프라이드, 관계 돈독하기 위해 농담 던지고 받아주고 서로 웃고 떠드는 것은 사막의 일이 벌어지고 나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자기들의 가치를 다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사람들의 영화는 많지 않다. 몰락해가는 남성의 히스테리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안소니 만도 보여주고는 있지만 남성들을 아예 집단으로 절망하게 만들고 히스테리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리: 최용혁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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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치미노, 할리우드의 저주받은 감독

지난 5일 저녁, ‘2011 시네바캉스 서울’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현대성’에 대한 영화사 강좌의 첫 번째 시간으로 아메리카 뉴시네마에 종지부를 찍은 전설적 작품,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의 강좌가 있었다. 너무 빨리 성공과 실패를 맛 본 ‘저주 받은 감독’ 치미노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할리우드가 혁신의 에너지로 넘치던 예외적인 시대에 대해 돌아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김영진(명지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재밌게 보셨는지? 영화가 좀 우울하다. 하여튼 몇 번을 봐도 지독한 엔딩이다.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이 있는데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고 한다. 왜 꼭 죽여야 했을까? (웃음) 이 영화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상업적 재앙으로 기록된다. 1100만 달러의 예산으로 기획됐다가 총 3500만 달러가 들고 흥행수익은 100만 달러 좀 넘었다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작 배급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영화 한 편 때문에 부도가 났다. 아시다시피 치미노의 두 번째 영화인 <디어 헌터>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굉장한 예술적 권력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디어 헌터>의 결혼식 장면이 굉장히 긴데, 그 삽입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다더라. 헌데 치미노가 우겨서 그 장면을 넣었고 결과적으로 그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성공했다. 이러한 전례 때문에 이 영화는 제어가 안 된 거다. 비사에 의하면 편집할 때 치미노가 사설 경호를 붙여서 편집실 앞에 세워놨다고 한다. 그렇게 최종 편집으로 내놓은 것이 5시간 20분이었다. 이 3시간 40분 버전은 타협 끝에 간신히 나왔다. 3500만 달러는 지금으로 치면 3억 5천만 달러나 같다. 따라서 엄청난 광고에, 관객이 들 때까지 무제한 상영이라는 파격적인 계약을 하고 뉴욕에서 프리미어를 했다. 그런데 인터미션 때 치미노가 리셉션을 꾸려놓은 2층에 올라와보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어디 갔냐’ 물으니 홍보하는 사람 말이 ‘다 집에 갔습니다.’ 그렇게 된 거다.
미국 평론가들도 한 명의 예외조차 없이 경쟁하듯 이 영화를 씹어댔다. 마치 예술적 방종의 사례인 것처럼. 사상이 불순하다 해서 공격받고, 자본주의의 최악의 사례로서 공격받고. 치미노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다. 게다가 1985년인가에 ‘파이널 컷’이라고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쓴 책이 있는데 그걸로 두 번 죽었다. 치미노는 광적인 완벽주의자여서 일주일에 한명씩 자르고 계속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었더라는 에피소드들이 적혀있다. 농담 반으로 사실 약간 술 먹으면서 찍은 느낌도 있다. 도저히 미국 영화에 나올 수 있는 샷들, 엄청나게 광포한 에너지가 있잖나. ‘파이널 컷’에 그 비슷한 증언도 있다. 치미노는 ‘그 책은 전부 픽션’이라고 하며 그 책의 저자를 아직도 증오한다고 한다. 또 이 영화에 대해 한줌의 후회도 없다고 하고 5시간 20분짜리 원판을 자기 집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실패로 말미암아 치미노의 경력은 곤두박질 쳤다. 그는 미국 영화의 이단아 같은 존재이다. 아메리카 뉴시네마 마지막에 나타났다가 반딧불처럼 짧게 빛나고 사라졌다. 비슷한 시대에 등장한 위즈 키드라고 불렸던 영화 신동들, 코폴라, 스콜세지, 스필버그, 루카스 그룹과도 다르고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고전영화에 대한 자의식으로 장르를 일신하거나 수정했던 아메리칸 뉴시네마와도 다르다. 그는 건축과 연극을 전공했고, 연기도 좀 해보려고 기웃거렸다. 글재주가 이스트우드의 눈에 들어서 영화계에 들어왔고 그렇게 찍은 게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 나오는 <대도적>이다. 그런데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장렬한 엔딩을 찍은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다. 이상하다. <택시 드라이버>가 나온 1976년만 해도 스콜세지와, 폴 슈레이더가 마약하면서 굉장히 폭력적이고 어두운 영화를 찍어서 성공했다. <할리우드 르네상스>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폴 슈레이더가 극장에 가보니 어떤 영화의 줄이 엄청나게 서있었다더라. 어떤 놈인지 좋겠다하고 가서 봤더니 자기가 썼던 <택시 드라이버>였다고 한다. 그렇게 어두운 영화가 흥행할 줄 몰랐던 것이다. 불과 3,4년 차이인데 <천국의 문>은 대중들이 바라지 않는 영화가 돼버렸다. 시대는 레이건 시대로 넘어가고. 그 직전에 몇 개의 사례가 있었다. 스필버그는 <1942>라고 진주만 전투를 크레이지 코미디로 찍었고, 마틴 스콜세지가 찍은 <뉴욕뉴욕>도 있다. 재즈시대에 대한 엘레지를 갖고 있는. 역시 언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루카스가 그 영화를 보고 ‘형 결말만 해피엔딩으로 바꾸면 2000만 달러는 더 벌 수 있어’라고 말해서 한동안 절교했었다고 한다.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으로 정말 지옥에 갈 뻔 했다가 깐느에서 상을 타면서 간신히 본전을 했다. 그 뒤 <원 프롬 더 하트>란 영화를 찍고 스튜디오를 무시한 채 자체배급하려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개 중 가장 야망이 컸던 영화는 <천국의 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웨스턴에 수정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존 포드 같은 경우 미국의 신화가 이룩되는 모습을 묘사하잖나. 치미노의 관심은 그것이 파괴되는 과정이었다. <천국의 문>은 서부의 역사를 먼저 온 지주들과 이민자들 간의 계급투쟁의 역사로 그려내고 있다. 공권력은 무력하다. 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치부를 건드린 것이다.
본인은 ‘차마노’라고 발음한다는데 마이클 치미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부 쪽 피고, 아마 필생의 꿈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언젠가 찍어야지 생각했는데, <디어 헌터>로 인해 기회가 너무 일찍 찾아왔고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삼십대 후반에 찍을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는 여한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3억 5천만 달러의 돈을 핸들링해서 바라던 대로 찍고. 망하면 어떤가. 몇 십 년 지나 여기 한국에서도 보고 있는데. (웃음) 형식적으로도 굉장히 특이하다. 그에게는 미국 영화에 대한 존경이 없는 것 같다. 베르톨루치가 80년대 말에 한 인터뷰를 보면, 자신은 자타공인 시네필이었고 오슨 웰스 같은 감독의 미국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카메라 워킹을 배웠는데, 요즘엔 거꾸로 미국영화 감독들이 자기 카메라 워킹을 의식하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게 치미노라는 얘기를 한다. 기본적으로 달리나 트랙을 깔아놓지 않으면 안심 못하는 스타일 있잖나. 아니면 줌으로 밀고 들어가거나. 미국 영화엔 잘 없는 부분이다. 또 굉장히 음영이 짙은 조명을 쓴다.
그런데 치미노는 감정이 과잉이긴 과잉인데, 좀 다른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장면이, 아무래도 삼각관계 같은 것 좋아하니까 (웃음) 주인공이 처음에 엘라(이자벨 위페르)를 만나는 장면이다. 굉장히 독특하다. 엘라는 기존 서부극에선 절대 주연이 될 수 없는 여자다. 학교 선생이나 클레멘타인 같은 여자가 주연이 되어야지. 이 여자는 포주다. 그러면서 숙녀의 품위도 가지고 있고, 또 자수성가한 비즈니스맨이기도 하다. 아르빌(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어찌 보면 좀 부적절한 래링 관계인데 둘이 만나서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카메라가 움직이거나 인물이 움직이거나 둘 중 하나다. 파이가 왔다 갔다 하고 그 와중에 벗을 건 다 벗고 침대에 들어갔다가 선물을 사왔다니까 바로 뛰어나가고. 그냥 야생이다 야생. 그 사람들은 문명인이지만 그 살고 있는 곳과 행동하는 리듬 자체가 야생이다. 지금으로 치면 선물로 벤츠 뭐를 사준 건데 그걸 보란 듯이 몰고 가는 것 아닌가. 세레모니 중인 교회 앞을 확 지나가고, 분란이 일어나고. 엄청나게 불경한 묘사인데 그것 자체로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이는 어떤 미국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정적이 흐르면서 엘라가 강에서 나체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여성, 자연, 어머니라는 시각적 메타포는 뭐 클리셰일 수도 있고 존 포드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것이지만. 그러고 나서 엘라가 아르빌과 걷다가 하늘을 딱 보면, 맑은 줄 알았던 하늘이 흐려진다. 이런 식의 묘사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게 DVD같은 걸로 보면 그런가 보다하지만, 저는 이 작품을 중고등학교 때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그 큰 스크린으로 봤을 때 이런 감정의 스케일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평단과 관객을 화나게 한 건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무시였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없고 덩어리져있다. 지금은 절판 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의 할리우드>라는 책에서 로빈 우드는 제일 마지막 장에서 치미노가 그러한 구성을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한다. 치미노는 건축가다. 캐릭터와 개연성을 촘촘히 설명하지 않고 공간 그 자체에서 벌어진 일을 계속 블록 식으로 쌓으면서 보여주는 형식적 혁신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무례한 영화가 없다. 주인공들이 삼각관계인 것을 한 참 지나서 알게 되지 않는가. 미국 영화 보통의 화술이라고 하면,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을 찍으며 남북 전쟁을 남 출신 북 출신의 연애담으로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집중하더라 이거다. 개인의 로맨스가 전면에 서고 역사는 배경이 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연애담이 주가 아니다. 영화 첫 부분에 하버드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미국이 전통 없는 나라인데 굉장히 전통 있는 척 하지 않나. 총장의 연설도 공허하지만 사회적 의무들을 강조하고. 허례허식처럼 보이는데 엄정한 의식이 있다. 이 틀을 깨는 게 아르빌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그 다음 단락으로 건너뛴다.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하버드 때와는 너무 다른 얘기다. 거기서 맹세했던 것들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는 세계다. 고로 치미노는 로맨스 부분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만큼의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홀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롤러 스케이트 신고 댄스하는 게 어딨나. 지금 보기엔 굉장히 멋진 스펙터클인데, 현장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당시에는 스텝들이 치미노가 드디어 돌았다고 했다더라. 저게 예정으로 5일인데, 실제로 한 3주 찍었던 것이다. 그러니 제작비가 안 늘어나겠는가. 그리고 엘라는 언제 저렇게 저 커뮤니티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나 싶다. 심지어 그 댄스 시퀀스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통적인 이야기이라면 뭔가가 있었을 텐데 치미노의 관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게 이어지는 게 또 왜, 쳐들어온다고 할 때 격론이 벌어지잖나. 제가 볼 땐 댄스 시퀀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오스의 에너지. 보통 영화였다면 선악의 대립으로 묘사했을텐데 완전히 카오스다. 이런 식의 형식이 통할 수 있다고 했던 게 <디어 헌터>였고, 아 좀 아니구나 했던 게 이 <천국의 문>인데.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게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약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전통적인 할리우드 시스템이 붕괴되었을 때. 엄청난 세대 교체가 일어난 것 아닌가. 코폴라가 서른두살에 대부를 찍었는데, 이건 신의 은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약관 32세의 감독이 세상 다 산 듯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코폴라는 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 뒤로 더 나은 영화를 만들지 못했고. 스필버그는 심지어 20대에 <죠스>를 찍었다. 영화들이 펑펑 터지니까 경영자들도 잠깐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게 <디어 헌터>까지 이어지고, <천국의 문>까지 간 거다. 뭐 웨스턴? 존슨 주의 전쟁? 마지막에 장렬한 전투씬이 있겠네. 투자한다. 뭐 이렇게 된 건데(웃음) 끝내는 실패한 거다. 공교롭게도 바톤을 터치한 사람들이 스필버그와 루카스이고.
어쨌든 치미노는 끝내 재기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필생의 프로젝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이나 <죄와 벌>을 영화화하는 거였다고 하는데 누가 투자하겠는가 (웃음) 또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진을 이미 너무 빼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어 오브 드래곤>도 흥미롭고 엄청 격렬한 피로가 있다. 미키 루크하고 존 론인가가 사무실에서 말싸움하는 샷 보면 진짜 미국영화 같지 않게 잘 찍었다. 지금이야 홍콩영화가 한 때 무조건 360도 돌리고 해서 그저 그렇지만, 당시에는 진짜 놀라운 스타일이었다. 그 뒤로 잘 안돼서 유감이지만, 네 편까지는 상당히 흥미롭다. <천국의 문>도 시대적 상황과 잘 만났으면 성공했을 지도 모를 영화다. 저는 TV에서 많이 축약된 버전으로 처음 봤는데 굉장히 근사했고 좋아하는 영화다. 오늘 긴 영화 보시느라 여러분이 수고하셨다. (웃음) 이 여름바캉스 동안 계속 즐거운 영화 감상하시라.

정리: 백희원(관객에디터) 사진: 조유성(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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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진실에 대한 안톤 체호프의 보고서

지난 8월 6일 오후 ‘러시아 모스필름 특별전’ 섹션에 마련된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갈매기> 상영 후 '안톤 체호프와 문학'이란 제하의 두 번째 특별강좌가 열렸다. 강사는 체호프로 석박사 논문을 썼을 만큼 체호프 전문가인 성균관대 러시아문학과 오종우 교수가 나섰다. ‘인간 존재의 진실에 대한 안톤 체호의 보고서'란 주제로 20세기 현대문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체호프 문학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오종우(성균관대학교 러시아문학과 교수):
좋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 왠지 하늘 색깔이나 거리의 풍경이 달라진 듯하고, 마음속에서 여러 느낌들이 생기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영화예술이 갖고 있는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영화를 보고났을 때의 감흥은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아남아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우리 삶의 어떤 동기나 힘이 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영화, 넓게는 예술이 갖고 있는 힘이 아닌가 싶다. 오늘 본 영화 <갈매기>는 잔잔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절제된 격정이 존재한다. 이 느낌이 우리의 삶 속에 반영되거나 투영될 수 있는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먼저 세계문학사에서 체호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체호프는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연 작가이다. 체호프 이전의 문학은 그 안에 사상과 철학이 녹아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문학과 사상·철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와 같은 작가들이 그렇다. 문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예술의 한 분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학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어에서는 문헌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즉 문학은 허구적인 이야기들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빗대서 철학이나 사상을 담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체호프 이전의 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다. 하지만 체호프는 문학을 사상과 철학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예술로서의 문학을 얘기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이 어떤 행위를 하는 데에 있어 그에 대한 사상과 철학에 대한 논리적인 진술이나 설명이 없다. 예술 작품은 논리적이거나 일상적인 언어로 백퍼센트 번역 혹은 환원되지 않는다. 바로 그 부분에 예술이 갖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체호프의 작품은 이러한 예술에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현대문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체호프는 ‘좋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은 한 잔의 보드카를 마시는 일과 같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보드카는 무색, 무취, 무미한 술이다. 때문에 음미하며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한 잔을 툭 털어 넣으며 마시게 된다. 이때 보드카의 작용은 미각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거나 ‘이해한다’고 하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한다는 의미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머리로 아는 지식은 결코 삶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으로 알아야 진짜 아는 것이다. 실천될 수 있는 진정한 지식은 우리의 감각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 이 시대에 갖는 중요한 의미이며, 체호프의 가치도 여기에 있다. 예술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 행위가 아니다. 예술은 감각과 관련되기 때문에 예술을 통한 앎은 우리의 몸과 함께 하며, 따라서 이때의 앎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다. 체호프가 보드카에 빗대어 한 얘기도 바로 이것이다. 보드카가 가슴으로 마시는 술인 것처럼 좋은 예술 역시 머리가 아닌 우리의 가슴을 통해 반응한다.
체호프에게서 중요한 것은 문학이 삶의 진실을 담는다는 것이다. 체호프 작품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인생은 짧은 거야, 그러니 잘 살아야해’는 말이 있다. 이는 그가 예술가로서 우리에게 남긴 아주 큰 의미를 함축한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진실에서 벗어나거나 괴리감을 갖는 통념들의 문제를 다룬다. 통념에 갇혀서 모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니까 거기에 안주하면서 우리는 진실로부터 멀어져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게 된다. 이는 체호프에게 가장 예리하게 발견되는 점들이다. 일반적인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사실과 진실은 일치되곤 한다. 우리는 종종 사실을 곧 진실로 받아들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지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해석된 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들은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사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백퍼센트 객관적인 사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들을 분석해서 범죄를 밝히는 법이 득세를 하는 시대는 한편으로는 타락한 시대이다. 로마가 그랬다. 여러 가지 정황들, 사건들의 사실들을 종합해서 판결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진실 혹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에서는 인간들의 타락을 볼 수밖에 없다. 각각의 개인의 해석들을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해석력이라는 것은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체호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 역시 이 해석력의 문제이다.

영어에서 ‘general’과 ‘universal’이라는 두 단어는 모두 ‘일반적인, 보편적인, 두루 통용되는’이라는 비슷한 뜻을 지닌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general’은 ‘종류’라는 뜻의 라틴어가 어원으로, 즉 같은 종류의 것이 널리 퍼진다는 것이다. 반면 ‘universal’의 라틴어원은 '하나'와 '귀결'이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두 단어는 외형적인 뜻은 같아도 그 본질적인 뜻은 서로 다르다. 'general'이 똑같은 종류의 것들이 널리 퍼지는 것이라면, ‘universal'은 단 하나가 세상 모든 것의 의미를 갖는다. 이 세상에는 'general'한 듯하지만 'universal'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사랑’이 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랑이 존재하지만 사랑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 모든 사랑도 똑같은 건 하나도 없다. 많은 듯하지만 하나로서 전체가 된다는 점에서 ‘예술’과 ‘생명’ 개념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명은 'general'한 형태로 아주 많은 것 같지만, ‘철수’라는 존재는 단 하나이다. 인간 존재라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한편 'general'한 것의 아주 대표적인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체호프는 그의 작품에 사상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행간에서 경향을 찾아 내가 자유주의자이니, 보수주의자이니, 확고하게 규정지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나는 자유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점진주의자도, 성직자도, 무신론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단지 자유로운 예술가이고자 한다. 나는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 내게 신성한 것은 모든 형태의 거짓과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진실에 대한 아주 절대적인 자유이다. 이것이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강령이다.’
‘우리가 단순히 좋다고 하는, 그리고 우리를 취하게 하는 작가들은 하나의 공통된,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어디론가 가서 거기서 당신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온 몸으로 그들에게 어떤 목적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작가들은 사실적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 그러나 당신은 각각의 논쟁들에 목적의식들이 스며들어 있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배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 그 이상은 알바 아니다.’
이는 체호프의 아주 중요한 예술관이다. 우리가 통념처럼 갖고 있는, ‘주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general'한 것이다. 하지만 체호프가 얘기하는 것은 ‘해석한 주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은 사실들을 마치 보고서처럼 쓴다는 것이 아니다. 체호프는 사실들을 각각의 해석력을 갖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함으로써 ‘universal'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대단한 인간 신뢰가 담겨있다. 체호프 이전의 작가들은 교사가 되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체호프는 객관적인 것을 냉철하게 보여주며, 독자에게 해석하라고 한다. 이것이 체호프의 현대적 가치이다.


체호프는 모스크바의 의과대학에 입학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잡지에 콩트를 쓰기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의사의 봉급보다 작가의 원고료가 훨씬 많았다. 우리는 문학과 예술을 관념의 유희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체호프에게 있어서 예술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이는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만났을 때 냉철하게 그 병의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이는 작가로서의 체호프와도 연결된다. 현실을 바라볼 때, 감정적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으로는 현실과 조응하는 진정한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 현실의 냉정한 문제들을 예리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체호프가 불쌍한 사람들의 몰락에 대한 얘기들을 유머라고 쓴 것은, 그것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진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독자 스스로 해석하기 바랐던 것이다.
『갈매기』는 주요 인물의 자살로 끝나는 이야기임에도 체호프는 이 작품이 코미디라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는 인물은 한 명도 없는 이 작품은 자기가 바라는 바와 자기가 처한 현실의 괴리를 다루고 있다. 코미디의 중요한 요소는 어긋남, 불일치이다. 『갈매기』의 인물들의 삶들이 그렇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갈매기』 이야기를 본 딴 것으로, 역시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꿈은 현실로 와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고도를 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진실을 통찰하지 못한 통념의 문제는 체호프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 물론 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갈매기』에는 극중극 형식으로 니나의 중요한 독백이 있다. 그녀는 독백을 통해 생명과 해석과 같은 것들이 물질에 의해 사로잡혀서 그 생명력을 잃은 끔찍한 현상에 대해 얘기한다. 이처럼 체호프는 우리에게 삶과 인간 존재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강하게 얘기한다. 그는 작품은 우리가 삶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얻게 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