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시네바캉스 서울: 작가를 만나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믿고 싶어서 계속 매달리는 인물들의 이야기”

- <독전: 익스텐디드 컷> 상영 후 이해영 감독과의 대화




이해영(감독) 아까 상영관 앞에서 만난 관객분이 <독전: 익스텐디드 컷>보다 개봉판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하시더라(웃음).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컷이 더 많이 붙어 있으니 <독전: 익스텐디드 컷>이 감독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원래 오리지널 버전이 내 의도가 가장 많이 반영된 버전이다.
사실 처음에는 <독전: 익스텐디드 컷> 제작을 거절했었다. 영화가 두 개의 버전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고, 특히 엔딩에 다른 컷을 넣는 건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개봉 후 정말 많은 분들이 제안을 해주었고, 그래서 일종의 팬서비스 개념으로 만들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감독판’ 잘 봤다고 하시던데(웃음), 감독판은 아니다. 만약 오늘 “독전”이란 영화를 <독전: 익스텐디드 컷>으로 처음 본 분이 계시다면 굳이 개봉판을 다시 보지는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주변에 아직 <독전>을 안 본 분이 계시면 개봉판을 보라고 권해주면 좋겠다.

모은영(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원작에 대한 얘기를 먼저 물어보고 싶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원작은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독전)>(2014)이다. 이해영 감독의 전작을 본 분이라면 <마약전쟁>과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이해영 <독전>의 제작사인 용필름 임승용 대표에게 제안을 받았다. 당시 두 가지 제안을 받았다. 하나는 <마약전쟁>의 리메이크였고, 하나는 여성들이 주인공인 스릴러였다. 그런데 내 전작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경성학교>가 흥행에도 실패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변화에 목 말라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한국에서 데뷔작을 만드는 건 열 명 중 한 명이고, 데뷔작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열 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나는 세 번째 영화까지 흥행이 안 됐다. 연속으로 흥행이 안 되면서도 네 번째 영화를 만든 사람은 내가 알기로 나밖에 없다. ‘아 드디어 삼진 아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독전> 제안을 받았고, 이제 관성의 고리를 끊고 ‘갱생의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사실 두기봉이란 이름은 영화감독들에게는 너무 대단한 이름이다. 이 사람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건 약간 미친 짓이고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고 그냥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많은 분들이 알겠지만 두기봉은 아주 비정하고 하드보일드한 장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고, <마약전쟁>도 뜨겁고 날카로운 ‘남자 영화’다. 하지만 그런 점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심 나도 즐겁고 관객도 즐거운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기도 했었다. 결국 <독전>을 만난 건 내겐 정말 행운이었다.

모은영 <독전>에는 원작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차승원 배우가 연기한 브라이언이다. 기독교적 요소 같은 이 인물의 몇 가지 설정은 한국적 상황을 드러내기에 적절했던 것 같다.

이해영 먼저 ‘이선생’의 정체를 원작과 다르게 설정했다. 그 과정에서 전반부는 진하림(김주혁)이 이야기를 맡아주었고, 후반부에도 강력한 인물이 하나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브라이언이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믿음이라든지 종교에 관련된 뉘앙스가 전혀 없었다. 그냥 재벌 2세, 그냥 봐도 돈 많아 보이는 사람, 그런 심심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차승원 배우가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캐릭터가 너무 재미없다고 하더라(웃음). 그렇게 한 30분 정도 캐릭터가 재미없다는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 내가 왜 혼나고 있지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모든 말발을 동원해 굉장히 열심히 이 캐릭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더 마스터>(폴 토마스 앤더슨, 2013)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이야기도 했었다. 그렇게 한창 설명을 하니 차승원 배우가 방금 그렇게 말한 그대로 써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무슨 말을 했지 하면서 앓아누웠었다(웃음).

그렇게 차승원 배우에게 맞춰서 시나리오를 고치고, 성경도 참고해 가면서 브라이언을 좀 더 한국적이고 괴상하고 기이한 캐릭터로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차승원 배우가 내가 처음에 썼던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정말 재미없었을 거다. 그만큼 차승원 배우는 어떻게 해야 이 캐릭터가 잘 살아날 수 있고 관객이 더 이입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은영 이 영화의 제목은 “독전”인데 영어 제목은 “Believer”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 극 중 모든 사람이 믿음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거나 누구를 믿을지 계속 찾고 있다.

이해영 각 인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이 결국 어떤 것을 믿는다, 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가 믿는다고 믿는 것에 매달리는 자들이다. 원호와 락은 물론 진하림과 브라이언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믿고 싶어한다. 사실 믿음을 커다란 주제로 잡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촬영이 다 끝난 후 후반작업을 할 때 임승용 피디가 “Believer”라는 영어 제목을 제안했다. 처음에 그 제목을 듣고 ‘에? 신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좋은 제목 같았고, 지금은 이 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표현이자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대만에서 <독전>이 개봉했을 때 제목이 “신도(信徒)”였다.

모은영 이 영화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보여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첫 장면을 보면 노르웨이의 설원을 향해 쭉 들어가는데, 마치 정말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면 <경성학교>의 첫 장면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해영 일단 조진웅 배우가 노르웨이의 설원에서 운전을 하는 얼굴이 너무 좋아서 내가 옆에서 계속 찍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카메라를 들고 메모리를 끊임없이 썼고, 조진웅 배우는 직접 운전을 하면서 노르웨이의 설원을 굉장히 오랫동안 달렸다. 그렇게 했던 게 조진웅 배우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막상 갖고 와서 보니 다 쓸 만하지는 않았지만(웃음), 그래도 이 순간들로 영화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오연옥(김성령)과 이학승 회장, 그리고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브라이언의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원호의 얼굴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이 얼굴로 영화를 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원호의 입장에서 보는 플래시백 구조가 만들어졌다. 즉 원호가 이 지난한 여정들을 반추한 다음 락을 대면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엔딩의 뉘앙스가 더 풍성해지기를 바랐다. 역시 엔딩은 익스텐디드 컷보다 오리지널 버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높은 곳에서 찍은 촬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일단 자동차를 드론으로 찍으면 너무 멋있게 느낀다. 약간 설레기까지 한다. 어렸을 때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산길을 달리는 자동차를 카메라가 따라가는 것만으로 이렇게 영화적인 황홀감과 긴장감이 발생하다니. 그래서 <경성학교> 때 이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그런 느낌의 길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다. 한국은 전봇대가 안 걸리는 데가 없다. 그래도 정말 어렵게 그 장소를 섭외해서 찍었는데 나중에 다른 영화에서 그 컷 조금만 잘라달라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웃음).
노르웨이에서는 드론 촬영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불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심하게 흔들렸다. ‘스테디’하게 팔로우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여담을 하나만 얘기하자면, 노르웨이 스탭들이 정말 열심히 일을 하더라. 원호의 차를 현지에서 렌트했는데 헌팅을 다니다 보니 차가 자연스럽게 더러워졌다. 흙탕물이 묻어 있는 그 느낌이 참 좋았는데, 다음 날 현지 스탭들이 너무 깨끗하게 타이어까지 세차를 해놓았더라(웃음). 지금 영화를 보면 희한할 정도로 차가 깨끗하다. 원래 NG인데 어쩔 수 없었다.

모은영 용산역은 매우 일상적인 공간인데 이 영화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사실 기차역이라고 하면 서울역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영화에서는 용산역이 나온다.

이해영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곳에 마약 본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브라이언이라면 마약 공장을 어디에 차리고 싶을까? 나는 돈과 권력이 있고, 마약 제조 기술자야 얼마든지 불러올 수 있고, 모든 걸 선택만 하면 되니까 제일 중요한 건 유통이 아닐까? 이런 고민의 결과 교통의 핵심 지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역이 아니라 용산역인 이유는... 용산역은 원래 뿌리가 없던 곳에 거대한 건물을 도시에 콱 때려박은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한국 특유의 멋없는 느낌을 정말 좋아한다. 용산역도 그렇고 왕십리역도 그렇고, 그런 거대하고 못생긴 건물에 대한 ‘향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시청 같은 건물도 그렇다. 처음에는 원래 있던 예쁜 건물을 뒤에서 덮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 뜨악했는데, 보면 볼수록 저게 바로 서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그런 맥락에서 용산역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관객 1 용산역 장면에서 처음 여름 장면에서는 기둥이 연두색이었는데, 나중에는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다.

이해영 용산역은 공사를 정말 많이 한다. 헌팅을 갈 때마다 주차장 모양이 바뀌어 있고, 한 번 찍으러 갈 때마다 외관이 변한다. 영화의 처음 부분을 찍을 때는 주차장이 연두색이었는데, 나중에 엔딩을 찍으러 갈 때는 다시 페인트칠을 해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중에 CG를 써서 연두색으로 다시 바꾸었는데 방금 지적하신 부분은 내가 놓친 장면이다.
찾아보면 그런 장면들이 꽤 많다. 어딘지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의 몸에 화약이 연결된 선이 보이는 장면도 있다. 그게 마치 줄넘기처럼 움직이는데(웃음)... 그런 장면들이 여전히 있다.

관객 2 영화를 보며 속도감 있는 편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 네 번째 봤는데 감독님이 소리로 어떤 리듬을 살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를테면 오연옥이 라이터를 켜는 소리, 진하림이 볼펜을 놓는 소리, 보령(진서연)이 소독약을 흔들면서 뚜껑을 여는 소리 같은 것들. 이런 부분이 영화의 리듬감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해영 그런 부분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편집할 때 그런 리듬이 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컷이라는 게 그냥 막 넘길 수 없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의 감정이기 때문에 일단 감정에 맞춰 리듬을 만든다. 그런데 가끔은 어떤 소리가 포인트가 되면 좋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바람을 갖고 편집을 한 다음 음악감독이 음악을 붙이면 정말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방금 말한 라이터 소리 같은 건 실제 동시녹음이 아니다.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소리를 섞고, 거기서도 하이(High)를 높이고 로우(Low)를 깎아서 만들어낸 소리다. 다 어떤 의도가 반영이 된 결과물이다. 마지막에 원호와 형사들이 탄 차가 내려가다가 “지원 요청해!”라는 대사가 나오고 그때 딱 맞춰서 자동차가 끼익 소리를 내면서 설 때,  이런 소리와 컷에도 어떤 박자를 맞춘다. 이런 건 나뿐 아니라 많은 감독들이 신경 쓰는 부분일 것이다.

관객 3 <독전>의 시나리오는 정서경 작가와 함께 작업한 걸로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주로 박찬욱 감독과 작업을 했던 정서경 작가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이 아닐까 한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독전>의 제작사인 용필름에서 정서경 작가와 함께 <아가씨>를 제작했었다. 임승용 대표와 정서경 작가가 먼저 <독전>의 시나리오 초고를 만들었다. 그후 내가 <독전>을 연출하기로 결정한 후 정서경 작가의 2고를 받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먼저 시나리오를 다 쓴 다음 다른 작가와 함께 고쳐가는 작업을 했었는데, 이렇게 작가와 처음부터 각본 작업을 함께 한 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서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정서경 작가와 대화를 많이 했다. 함께, 그리고 서로 번갈아가며 4고까지 썼고, 다음에는 내가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거의 1년 동안 13, 14고까지 썼다.
정서경 작가에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정서를 구현하는 방법이었다. 장르물 안에서 정서를 어떻게 놓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들. 그리고 락의 캐릭터도 정서경 작가가 만들었다. 그런 부분이 <독전>만의 유니크한 정서라고 생각한다. 캐릭터 구축과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모은영 거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이해영 <독전>은 장르물을 처음 만든 신인 감독의 영화라서 흠결도 많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그런 부분들을 여러분의 생각으로 많이 채워주어서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과 소통을 할 때 영화가 진짜 영화가 된다는 걸 글로만 알다가 이번에 처음 몸소 느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곳 극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어떤 분에게는 고루하고 어려운 영화, 옛날 영화만 트는 곳으로 느껴져 오기 꺼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도, 감독도 모르고 그냥 시간만 맞춰 와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분명 좋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면 좋겠다.


일시 8월 25일(토) <독전: 익스텐디드 컷> 상영 후

정리 권세미 관객에디터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2018 시네바캉스 서울: 작가를 만나다]


“관객에게 위로를 주는, ‘선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 <리틀 포레스트> 상영 후 임순례 감독과의 대화




정지연(영화평론가) <리틀 포레스트>의 전작이 <제보자>였다. <제보자>가 2014년에 개봉을 한 뒤 거의 4년 만에 다시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데 연출을 임순례 감독이 맡는다고 해서 크게 기대했었다. 어떻게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처음 계기를 듣고 싶다.

임순례(감독) 사실 <제보자>가 끝나고 중국에서 영화 연출 제의를 받았다가 결과적으로 잘 안 되면서 텀이 좀 생겼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중에 <제보자>를 만들었던 제작사의 대표가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리메이크를 제안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40대 중반 남성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 않나? 그분이 평소 만들던 영화와 색깔도 많이 다르다(웃음). 그런데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그 영화를 보고 매우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하더라. “감독님, 저도 한국 관객에게 위로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제안했다. 내가 교외에서 십 년 넘게 생활하고 있고, 소위 ‘자연친화적’ 성향인 걸 알고 <리틀 포레스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봐도 너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볼 때는 재미있게 보지만 보고 나면 뭔가 나도 폭력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또 한국 영화 제작비가 너무 올라가고 있다. 100억, 200억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에 약간이라도 저항을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컴팩트하게, 소소한 이야기를 갖고 위로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정지연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먼저 본 동료가 “내러티브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별 사건도 없는데 재밌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감독님은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한국화’를 해야 했을 텐데, 각색이나 연출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는 고민을 좀 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원작이 너무 ‘일본스러’웠다. 이걸 한국의 상황에 맞춰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같은 농경문화고 같은 농촌이지만 영화 속 음식도 너무 다르고, 결론의 결도 굉장히 다르다. 일단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의 결론에서는 그 마을이 오랫동안 유지한 전통 문화를 주인공이 수용하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을만의 어떤 독특한 전통은 파괴된 게 사실이다.

또 한국 관객은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볼 때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어떤 호의를 품고 봤을 것이다. 이 영화의 느리고 독특한 리듬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 관객수가 만 명에서 이만 명 사이였다. 일본에서도 매니아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큰 흥행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독립영화가 아닌 이상 그보다는 많은 관객이 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원작의 리듬과 호흡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가져올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젊은 여성이 고향 마을에 가서 집 주변에 있는 식재료를 갖고 스스로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엄마가 훨씬 일찍 집을 떠난다. 만약 한국에서 엄마가 어린 딸을 혼자 시골에 두고 가면 어떨까? 이건 그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선택이다. 그리고 단순히 우체부 아저씨가 뭘 가지고 와도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치안과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농촌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걸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치도 함께 고민했다. 관객들이 주인공을 계속 불안하게 지켜보도록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혜원(김태리)의 주변의 친구들이 집을 자주 찾아오고, 고모도 가까운 곳에 살고, 진돗개도 키우는 설정들이 들어갔다. 엄마도 혜원이 좀 더 자란 뒤에 떠나는 걸로 했다.

참고로 제작자가 우리가 만드는 <리틀 포레스트>도 1부, 2부로 나눌지 물어봤다. 내가 그건 안 된다고 했다. <신과 함께>는 관객들이 2부를 기다릴 수 있겠지만 <리틀 포레스트> 1편을 보고 2편을 기다리는 관객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웃음). 그렇게 한 편 안에 사계절을 전부 넣기로 했다. 이런 고민들이 전부 합쳐져 오늘 본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만들어졌다.


정지연 추가로 질문하자면, 일본의 원작은 이야기가 뚜렷한 편이 아니다. 캐릭터들도 다들 활기찬 느낌은 아니고, 차분한 인물들이 느긋하게 지내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더 뚜렷한 편이고 한국 이십 대 청년 특유의 생기 같은 것도 잘 느껴진다. ‘대중적’인 화법을 고려했을 때 어떤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일단 영화에 커다란 서사가 없고, 주변 인물도 친구 두 명과 고모, 엄마, 우체부 정도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 친구들이 양날의 검이었다. 이들 때문에 영화가 지루해지지 않지만, 동시에 이들은 혜원의 혼자 있는 시간을 적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혜원은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라서 혼자 조용히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친구들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웃음). 이 부분을 많이 고민했지만 일단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좀 밝게 가져가고 싶었다.

사실 혜원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어둡다. 시험도 다 떨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도 없고 돈도 없다. 이런 우울한 현실을 우울하게 보여주면 관객도 같이 우울해질 것 같았다. 이런 색깔을 잡을 때 김태리 씨도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런 많은 고민을 가진 배역이 이렇게 밝아도 되나? 같은 고민이었는데, 이 부분은 내가 밝게 가자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밝음을 보여준다고 해서 혜원이 갖고 있는 고민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이 영화의 밝음이 관객을 영화 끝까지 이끌고 독려하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영화 안에 사계절이 다 들어가다 보니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기도 했다. 선택을 해야 할 문제였고, 연출자로서 밝음을 선택했다.

정지연 두 가지가 궁금하다. 하나는 혜원이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정리가 깔끔하게 안 된 상태에서 고향으로 와 헤어지기 전까지 관계를 조금 더 유지한다. 또 엄마와의 관계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엔딩이 약간 열려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엄마가 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혜원이 활짝 웃으며 엄마를 이해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준다. 이렇게 엄마와의 관계가 일본 원작보다 좀 더 커진 면이 있다.

임순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일 크게 잡았다. 나는 혜원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것, 임용고시 도전 같은 여러 가지 결정들이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봤다. 엄마와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혜원으로 하여금 원하지 않은 선택들을 하게 만든 것이다. 엄마로 인한 트라우마가 극복이 안 된 상태에서 연애든, 취업이든, 진로든 계속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걸로 봤다.

하지만 엄마 없는 집에서 1년 동안 요리를 하며 엄마와의 삶을 복기했고, 이를 통해 엄마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확인했고 자연스럽게 본인의 앞으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이런 흐름을 영화의 중심으로 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와의 결별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혜원이 그 일로 심한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지연 감독님은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계속 작품에 녹여냈다. <리틀 포레스트> 역시 취업에 실패한 이십 대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캐릭터들을 통해 청년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제시하고 싶은 희망의 모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건 약간 사소한 건데,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의 엔딩을 보면 주인공이 마을 축제에 가서 전통춤을 춘다. 전통적인 공동체에 녹아드는 결론이다. 그런데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에는 의외로 농촌 공동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다루지 않았다.


임순례 이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을 다뤄보고 싶었다. 요즘 귀농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 친구들이 전부 그곳 사람들과 잘 섞이는 것 같지는 않더라. 농촌에서 살지만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조금은 옛날 세대라서 엔딩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 여러 버전의 엔딩을 구상했는데 그중 하나는 혜원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동네 어르신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그런 모습을 담은 엔딩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젊은 귀농 가족과 인사를 하거나, 동네 마을회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르신들에게 육개장 같은 요리를 대접하는 것도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를 본 우리 스탭들이 경악을 하더라. 무슨 <6시 내 고향>도 아니고 너무 촌스럽다는 거다(웃음). 그래서 마을 공동체에 섞이기보다는 자기 생활을 유지하며 뭔가 협조할 게 있으면 협조한다는 식으로 정리를 했다. 일본은, 특히 시골에는 공동체 문화가 좀 남아 있다고 보는데 한국은 사실 그런 문화가 거의 없다고 본다. 이런 점을 반영했다.

정지연 다른 인터뷰를 보니 감독님이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제일 예쁜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비주얼 컨셉을 많이 신경 썼다고 했는데,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촬영의 기본 원칙 등을 큰 틀에서 들어보고 싶다.

임순례 일단 인물이 많이 없는 영화고, 동시에 김태리 배우가 거의 모든 장면에 다 나온다. 그래서 일단 김태리 씨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자연, 소품 등 모든 피사체들이 굉장히 예쁘게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조리 도구나 음식 플레이팅이나 자연의 색깔 같은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감독인 이승훈 감독이 <최악의 하루>(김종관), <더 테이블>(김종관)을 찍었었다. 그분의 촬영을 보니 여성 배우들을 정말 예쁘게 찍더라. 그래서 추천을 받고 이 영화들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김태리 배우도 잘 찍을 것 같아서 함께하기로 했다.

정지연 사계절을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각 계절마다 3주씩 촬영했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스탭들이 농사도 지었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감독님도 1년 동안 기다리며 영화를 찍는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임순례 어쨌든 사계절 동안 사계절을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계절은 다 실내에서 찍고 인서트만 따로 찍는다든가, 이런 방식은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사계절을 실제로 찍으면서 각 계절마다 어떤 작물이 나고, 하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관광지로서의 아름다움 같은 게 아니라 평범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 워낙 시골을 좋아하고, 영화를 빨리빨리 찍는 사람이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니까... 김태리 배우는 <1987>(장준환)을 찍고 있었고 류준열 씨는 <독전>(이해영)을 찍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배우들이 영화를 찍는 동안 마음속으로 간직해야 하는 정서들이 있다. 그런데 특히 <독전> 같은 건...(웃음). 배우들이 그 감정을 오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라.

관객 1 영화의 영상도 정말 예뻤지만, 소리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눈 밟는 소리라든지, 벌레 우는 소리, 튀김하는 소리 등등. 혹시 특별히 더 신경 쓴 소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이 영화에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보니 시각적 요소는 물론 자연의 소리도 잘 전달하고 싶었다. 특히 대사가 많지 않다 보니 빗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 소리, 음식 먹는 소리 같은 걸 잘 담으려고 했다. 후반 작업할 때도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관객 2 중간에 혜원이 다시 서울로 간다. 거기서 취직을 해서 서울에서 사는 것 같았는데, 곧 다시 시골로 돌아온다. 이때 시골로 온 게 완전히 정착을 하려고 온 건지 다른 목적을 갖고 온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자기는 도시가 더 맞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임순례 서울에 간 건 보증금 빼러 간 거다(웃음). 혜원은 시골에서 정말 귀농을 할 수도 있고 다시 다른 어떤 삶을 살 수도 있다. 정해진 삶은 없을 것 같다. 여기 시골도 완전히 정착을 한다기보다는 ‘아, 봄이다!’ 하며 그냥 몇 달 동안만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임용을 준비할 수도 있고, 재하와 사과를 팔 수도 있다. 여러 선택이 있겠지만 그 무엇을 하든 간에 어쨌든 혜원은 이전의 삶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시 8월 11일(토) <리틀 포레스트> 상영 후

정리 권세미 관객에디터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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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이 신지 전작 회고전 - 불안한 아이들과 우울한 어른들]



홀로 있기 위한 노력

- <이사>(소마이 신지, 1993)



렌코(다바타 도모코)는 홀로 있고자 한다. 소마이 신지의 <이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은 렌이 혼자 있는 모습이다. 어떤 사이즈의 숏으로든 화면 안에는 단지 렌만이 자리하고, 움직이지 않은 채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한다.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렌은 엄마로부터 달아나며, 아빠와 함께 서있기를 거부하고, 같은 반 친구들의 추궁에 불이 붙은 알코올 램프를 엎어버린다. 격렬한 몸부림 끝에 렌은 비로소 혼자 있게 된다. 자신의 동의 없이 결정된 부모의 결별을 무효화하기 위한 렌의 행동은 엉뚱하기보다 일방적이고 위험하며, 크고 작은 결과를 도출한다.


엄마 나즈나와 아빠 켄이치의 노골적인 다툼에 왜 자신을 낳았냐고 소리치는 렌의 일갈은 전반부에 산재한 렌의 돌발 행동과 영향을 압축한다. 렌이 부모와 친구들 틈을 빠져나가거나 그들을 마주보지 않고 계단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자리를 달리하는 건 되려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다. 렌은 화목했던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혼 부모를 둔 전학생과 우연히 함께 장을 보면서 비슷한 일상을 공유하지만 전학생의 이혼한 부모가 재취해 배다른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렌은 충격을 받은 듯 전학생과 같은 공간으로부터 벗어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은 렌은 숨죽여 있기도 하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든 외면하기 위해 집안일을 한다. 보여주는 행동과 달리, 렌은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끝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고통스럽다.



비파호수에서 렌의 정처 없는 발걸음을 따라 마주하는 축제 현장의 볼거리는 화려하지만 왠지 낯설다. 렌의 여름방학 숙제를 궁금해하는 학교 친구들과 부모의 눈길로부터 벗어난 렌은 아무도 모르는 인파 속에서 축제 현장을 지켜본다. 거대한 볏짚이 거센 불길과 함께 타오르는 광경을 보면서 문득 렌이 아무 저항 없이 사람들과 같은 광경을 넋을 놓고 응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장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듯 렌이 앞으로 나서자 축제에 참여하고 있던 또래 소년들이 그녀를 제지한다. 볏짚이 활활 타면서 부서지는 광경은 전반부에서 느끼지 못했던 불가항력을 띠고 있다. 렌의 모든 저항을 무력화하는 불가항력, 그리고 익명의 인파 속에서 렌은 혼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엄마, 아빠가 사라진 가운데 홀로 남은 렌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자기자신뿐이다.


어떤 슬픔과 외로움도 혼자 다독이고 이겨내야 하는 숙제라는 걸 깨닫자 렌은 비로소 그녀가 속한 사회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부모와 마주보길 꺼렸던 렌은 기차에서 엄마에게 이혼 서류를 돌려주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 세 사람이 같이 있는 삶을 불길과 함께 떠나보낸 렌에게 부모의 이혼은 더 이상 분노와 절망의 사건이 아니다. 나즈나와 켄이치는 렌 앞에 놓인 무수한 삶의 순간마다 마주치는 인물이지만 그들의 결정은 그들의 몫이다. 위기일발의 렌이 혼자 숨을 고르던 공간은 넓게 확장된다. 그녀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함께 있을 수 있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은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는 삶의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권세미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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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백 주년 기념 로버트 알드리치 특별전]




“알드리치의 영화에서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 <북극의 제왕> 상영 후 이용철 평론가 시네토크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오늘 시네토크의 제목은 “할리우드: 고전기와 뉴웨이브 사이 어디쯤”이다. 알드리치의 공식 데뷔가 1950년대 초반이고, 1981년에 유작을 찍었다. 할리우드의 1950년대는 약간 애매한 시기인 것 같다. 흔히 1930~40년대 할리우드를 두고 ‘고전기’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1950년대는 전쟁도 겪은 후이고, 30~40년대에는 활동하지 않았던 감독들도 등장한 후라서 ‘고전기’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시대적 매핑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이용철(영화평론가)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은 1918년에 태어났고, 1950년대에 데뷔했다. 아마 감독 중 가장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일 것이다. 로드아일랜드에서 은행업과 출판업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고, 외가에는 록펠러가 있었고, 한 다리 건너면 부통령이 나오기도 하는 - 한 마디로 큰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알드리치는 1940년대에 결혼을 하자마자 LA로 이사했다. 이후 10년 정도 조감독을 하다 감독으로 데뷔한다.

알드리치가 데뷔 초기에 만든 작품 중 <빅 나이프>(1955)라는 작품이 있다. 그 영화에서 감독의 이름을 일곱 명 정도 나열한다. 조지 스티븐스,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존 휴스턴 등. 그런데 그 사람들의 이름 중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는 없다. 그때 이미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는 황혼기에 들어선 때였다. 알드리치는 1918년생인데, 1901년부터 191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 ‘할리우드 고전기’의 마지막에 서 있었던 거다.

그 다음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감독들이 나온다. 우선 1920~30년대에 태어난 감독들, 밥 라펠슨, 로버트 알트만 등이 있고, 그 사람들을 이어서 1940년대생, 그러니까 영화를 학교에서 공부한 세대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가 나온다. 이들은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꽃을 피운 세대였지만 동시에 끝을 내버린 감독들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이르면 ‘반뉴웨이브 영화’들이 등장한다. <아마데우스>(밀로스 포만, 1984), <간디>(리처드 아텐보로, 1982), <애정의 조건>(제임스 브룩스, 1983), <보통 사람들>(로버트 레드포드, 1980) 등. 그리고 알드리치는 고전기와 뉴아메칸 시네마 사이에 위치한다. 스튜디오는 막을 내리던 시기였고, 사뮤엘 퓰러나 니콜라스 레이 등의 감독이 당시에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세 감독이 두 시기 사이의 다리를 놓아준 거라고 볼 수 있다.

알드리치는 스타일보다 인물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 감독이다. 알드리치 영화에는 고전기엔 상상도 못 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1962)에 나오는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을 포함해 고전기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어택>(1956)은 전쟁영화인데, 보통의 ‘고전’ 전쟁영화라면 나쁜 놈은 독일군, 착한 영웅은 미국인으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게 아니다. 겁 많고 용기 없는 대위가 주인공으로 나와 병사들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고 결국 일을 그르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어택”이지만, 내용은 “어떻게 소위가 대위를 죽이게 되었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쟁영화는 그 전에 나오지 못했다.

조안 크로포드가 나오는 <가을의 낙엽>(1956)은 로맨틱한 영화인 것처럼 시작하는데, 사랑을 고백한 남자가 알고 보면 사이코패스다. 이렇게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는 알드리치 영화의 경향은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미합중국 최후의 날>(1977)이라는 후기 작품을 보면 놀랍게도 보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을 공개 처형하는 내용까지 나온다.

알드리치의 영화가 스타일 측면에서 엄청난 매력은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등장인물들은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 큰 영향을 준다. <조지 수녀의 살해>(1968)에서는 레즈비언 클럽의 모습을 아주 긴 롱테이크로 보여주고. 레즈비언 섹스를 그대로 화면에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에는 아주 충격적인 시도였다. ‘정상’이 아닌 인물들을 일관되게 등장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알드리치가 현대 영화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김보년 그렇다면 뉴아메리칸 시네마를 어떤 개념으로 봐야할까. 뉴아메리칸 시네마는 ‘고전 할리우드’ 만큼이나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용철 영화에 있어뉴웨이브’를 정의하기 난감한 나라가 영국과 미국인 것 같다. 프랑스는 확실하다. 주동자, 집중된 시기, 선언이 확실히 있다. 미국은 그나마 시발점이 된 하나의 영화, <이지 라이더>(데니스 호퍼, 1969) 때문에 선명한 부분이 있긴 하다. 1969년에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스튜디오들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그런데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폭발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다가 오히려 몰락시킨 게 바로 그 스튜디오들이다.

당시 소니가 <이지 라이더>를 배급했고, 이 영화가 흥행하며 스튜디오들은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늙은 영화를 안 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스튜디오들는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맞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려고 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죽여버렸다. 방법은 간단하다. 돈을 준다고 약속한 뒤 주지 않은 것이다. 피터 폰다에게 <하이어드 핸드(The Hired Hand)>(1971)라는 영화를 찍게 하고는 배급을 안 해준 경우도 있었다.

UCLA의 젊은이 중 영화를 가장 잘 찍는다고 소문난 사람들이 모여서 집도 사고 장비도 사서 만든 조에트로프(zoetrope) 스튜디오가 있었다. 이 스튜디오도 다른 스튜디오들에 의해 비슷한 이유로 해체된다. 1970년대가 지날 즈음 보수적인 시대가 오면서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는 진다. <대부>(1972)나 <스타워즈 4>(1977) 같은 영화들이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정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묘비에 가깝다.

알드리치는 스튜디오로부터 간섭을 막는 방법을 일찍 알았다. 알드리치는 자기 회사를 세운다. 당시 감독들은 보통 스튜디오에 의해 고용되었지만, 알드리치는 회사를 세워 직접 연출과 제작을 한다. 10여 년 동안 조연출을 하면서 깨우친 걸 수도 있고, 젊은 시절 재무를 전공한 사람이기도 했다. 알드리치가 데뷔 전 꿈꾸던 직업은 프로듀서였다. 하지만 르누아르나 채플린, 조셉 로지 같은 위대한 감독들과 작업을 하면서 감독을 꿈꾸는 사람이 된다.

김보년 알드리치 감독은 1930~40년대에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1950년대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해 1980년대까지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들을 보면 뉴아메리칸 시네마와 교집합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용철 알드리치의 영화적 뿌리는 고전기에 있다.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이 사람의 뿌리는 고전기 장르물에 있다. 작가적인 스타일에 욕심이 많았던 사람도 아니다. 알드리치는 웨스턴, 누아르, 사회물 등 여러 장르를 찍었는데, 그건 사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다는 것과 같다. 그는 고전기적 장르 영화 안에 자기만의 인물들을 꽂아넣는 감독이었다.

김보년 알드리치와 같이 떠오르는 사람으로는 사뮤엘 퓰러, 샘 페킨파 등이 있다. 이런 마초들의 영화라 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던 감독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용철 알드리치의 작품들이 마초 영화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알드리치는 자기가 원해서 특정 장르의 영화만 찍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메이저 스튜디오에게 돈을 받아서 아르바이트처럼 작품을 만들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때 주로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버트 랭카스터, 버트 레이놀즈 같은 남성성을 대표하는 배우들이다. 알드리치가 언젠가 그런 얘기를 했다. 자기도 뮤지컬이나 멜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데 스튜디오들이 제안한 배우들을 데리고서는 마초 영화밖에 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알드리치는 ‘마초 감독’으로 착각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무척 예민한 작품을 찍은 것도 사실이다. 알드리치 영화에 찍혀있는 마초라는 낙인은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오해도 있는 것 같다. <허쉬 허쉬 스윗 샬롯> 같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을 만드는 데 성의 구분을 두지는 않았다.

김보년 오늘 함께 본 <북극의 제왕>은 보기 전부터 악명을 너무 많이 들어서 굉장히 ‘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영화의 결론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르신들이 젊은 세대를 향해 보내는 응원, 또는 충고의 영화 같았다.


이용철 알드리치의 영화 중 특히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은 관객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크게 주는 편이다. <허쉬허쉬 스윗 샬롯>(1964),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조지 수녀의 살해> 같은 영화들은 좀 공포스럽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은 그렇게 무서운 편은 아니다.

<북극의 제왕>에는 탄생 비화가 있다. 알드리치의 초기 대표작 중 <더티 더즌>(19670이 있다.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관객들이 알드리치의 이름을 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폭스는 <더티 더즌>의 주인공이었던 리 마빈과 알드리치의 만남을 다시 한 번 성사시키려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북극의 제왕>이다. 사실 <북극의 제왕>을 몇 년 동안 준비했던 건 샘 페킨파다. 페킨파가 원래 이 영화를 파라마운트와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폭스가 뺏어온 거다. 샘 페킨파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못 만들어서 짜증나긴 하지만 나도 알드리치의 팬이니 알드리치 정도면 괜찮다고. 개인적으로 알드리치가 만들었기 때문에 훨씬 고전적인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참고로 <북극의 제왕>은 흥행에는 실패했다).

알드리치 영화 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는 <롱기스트 야드>(1974)가 있다. 이 영화에서 알드리치는 시스템을 조롱한다. 당시 기준으로 ‘정상’을 벗어난 사람들을 모아 목표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권력층과 시스템을 조롱하는 거다.

아웃사이더에 관한 이야기로 오늘 시간을 끝내면 좋겠다. 알드리치는 권력가의 아들로 태어나 양쪽을 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층 중 얼마나 한심하고 야비한 사람이 많은지도 봤고, 할리우드에서 10여 년 동안 밑바닥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걸 자기 작품에 투영하지 않았을까. 알드리치는 아웃사이더 주인공을 통해 투쟁과 승리, 이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알드리치 영화의 반 이상에서 주인공들이 죽는다. 이 사람의 영화에서는 죽음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아웃사이더의 투쟁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주인공들을 죽였을까? 알드리치는 아웃사이더가 소중하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이들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비극적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즉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알드리치의 영화에서 죽음은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루저의 훌륭한 죽음은 평범한 사람들의 승리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쟁 끝에 명예롭게 죽는 건 시시한 승리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알드리치의 마지막 작품인 <캘리포니아 돌스>(1981)의 원제는 “…All The Marbles”다. ‘운명’, 또는 ‘하늘에 맡긴다’는 이 말의 뜻이 알드리치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기고 죽는 건 하늘만이 안다, 죽든 살든 싸워 보자. 그게 이 영화의 주제다. 일견 바보스러워 보이는 여성들이 처절하게 싸운다. 그리고 운명은 하늘에 맡기고 나는 내 삶에서 투쟁하겠다는 것이 알드리치의 영화의 일관된 주제다. 그걸 알고 보면 <캘리포니아 돌스>가 코미디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울게 되는 영화다. 이 일관된 주제를 떠올리면서 알드리치의 영화를 한 편씩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번에 <북극의 제왕>을 포함해 알드리치의 영화를 여러 편 다시 봤다. 마초 감독이라는 단순한 인식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알드리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일시 7월 1일(일) 오후 4시 <북극의 제왕> 상영 후

정리 황선경 자원활동가

사진 여해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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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가즈오 특별전: 물러서지 않는 카메라]



“당시 오쿠자키의 심정이 여전히 궁금하다”

-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 상영 후 하라 가즈오 감독과의 대화




변성찬(영화평론가) 하라 가즈오 감독이 거의 13년 만에 새 작품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을 발표했다. 1972년에 첫 작품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8편의 영화만 만들었다. 과작의 감독인 셈인데 이번 영화제에서는 그중 6편을 볼 수 있다. 먼저 감독님의 인사를 듣도록 하겠다.

하라 가즈오(감독) 어제 한국의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식사를 했다. 지금 제작 중인 작품들의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다들 아주 훌륭한 작품들이라 나도 질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 연출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느 쪽이 더 재미있는지 싸우는 세계다. 젊은 감독들에게 지지 않겠다. 이게 내 인사말이다.

변성찬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에너지’와 ‘문제적 인물’이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무엇보다 인물이 갖고 있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에너지의 또 다른 원인은 인물과 카메라 사이의 관계에 있다. 인물과 카메라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본 <천황 군대는 진군하다>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생각한다. 먼저 오쿠자키 겐조라는 이 문제적 인물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영화를 시작했는지 듣고 싶다.

하라 가즈오 매년 1월 천황에게 인사를 하는 의식이 있는데 이때 오쿠자키가 파칭코 구슬을 쏘는 사건을 일으켰다. 한 기자가 이 사건을 역사적인 사건이라 생각하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게 영화화 제안을 했다. 영화를 찍기로 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오쿠자키의 재판정에 몰래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카메라는 찍으면 ‘지~’하는 소리가 크게 났고, 결국 재판정에서 나와야 했다(웃음). 그리고 10년 동안 아무것도 찍지 못했다.

10년 뒤, 나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촬영 현장에 촬영 보조로 참여했다. 그때 감독님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더니 오쿠자키 겐조라는 남자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당시 이마무라 감독님은 극영화를 찍고 있던 때라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이 없었고, 나는 다큐멘터리를 두 편 찍었었기 때문에 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오쿠자키를 만났다.


변성찬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쿠자키가 감독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카메라와 인물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생긴다. 감독님은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얼마나 예측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긴 얘기가 될 것 같다. 내가 오쿠자키보다 20살 정도 어리다. 오쿠자키는 나같이 어린 사람이 감독인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다. 오쿠자키는 종종 ‘하라 씨는 감독이 아니라 촬영하는 사람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찍으면 된다’고 말했다. 촬영 중간에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편집을 한 뒤 어느 쪽이 더 재미있는지 비교해 보자는 말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돈이 엄청 많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만두겠다고, 오쿠자키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 젊은 카메라맨을 고용해서 8mm로 싸게 찍으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내가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웃음).

처음 제작을 시작했을 때 어떤 영화를 만들지 함께 논의했었다. 그때 오쿠자키는 전쟁 영화를 만들어도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는 어떤 ‘사건’을 저지르고 싶어했다. 일본에서는 매년 교과서 문제가 생긴다. 일본의 전쟁 행위를 설명하는 말을 조금 약한 표현으로 바꾸면서 생기는 문제다. 그 뉴스가 나왔을 때 오쿠자키는 문부대신을 ‘타겟’으로 삼으려 했다. 실제로 문부대신이 탄 차를 자신의 차로 들이받겠다는 말도 했다. 또 꽃다발에 칼을 숨기고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가 난동을 부릴 테니 그걸 찍어달라고도 했다. 그런 사건을 찍는 건 괜찮지만, 거기에 얽혀 오쿠자키가 체포되면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에 담긴 인육과 관련된 내용을 내가 제안했다. 오쿠자키가 당시 병사들을 찾아가 진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았었다. 오쿠자키는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면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면 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웃음).


변성찬 오쿠자키가 체포되면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다고 했는데, 결국 영화의 끝부분에 그게 현실이 된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실제로 그는 중대장에게 총을 쏘려고 했다. 감독님과 사전에 얘기가 된 일인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영화의 삼분의 일 정도가 지났을 때 오쿠자키는 이미 중대장을 죽이겠다는 결의를 했다. 나에게 중대장을 죽이는 걸 찍어달라고도 말했다. 내가 살인을 제안한 게 아니다. 오쿠자키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감독이 출연자에게 뭔가를 제안하고 거절당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지만 출연자가 살인을 하겠다고 감독에게 말하는 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찍어야 할지 말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오쿠자키는 그걸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찍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더라. 오른손으로는 촬영을 하면서 왼손으로 살인을 막을까, 같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촬영하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살인을 전제로 한 현장에 가서 촬영을 하는 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오쿠자키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고 그냥 촬영을 하겠다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쿠자키는 내가 촬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두 번 다시 살인 장면을 찍어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변성찬 감독님의 말을 들으니 오쿠자키가 더 알 수 없는, 굉장히 예외적인 인물인 것 같다.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두 번의 공백이 있다. 1974년에 <극사적 에로스>를 만들고 다음 작품인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를 1987년에 발표했다. 이게 첫 번째 공백이고 두 번째 공백은 촬영만 8년이 걸린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다. 오쿠자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천황 군대는 진군하다>를 만드는 데까지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렸나?


하라 가즈오 촬영 시작에서 오쿠자키의 구속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 그런데 뉴기니에 갔을 때 찍은 필름을 몰수당했다. 그 촬영 분량이 내가 생각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없어지면서 - 나는 마지막 장면이 없는 영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절망적인 마음으로 일 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 필름까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기고 거의 포기한 상태로 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니 영화를 완성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어서 그때부터 1년 정도 편집을 했다. 그래서 제작에 총 5년이 걸렸다.


관객 1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에 대한 질문이다. 전반부에는 희생자의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하는데 후반부에는 황당하게도 오쿠자키의 아내가 실제 인물의 대역으로 출연한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감독님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질문이다. 감독님은 영화 안에서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르는 것 같다. 무리를 해서라도 이 인물을 완전히 파헤치겠다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이 작품뿐 아니라 <극사적 에로스>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전략을 취하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영화 촬영이 진행되면서 유족들이 오쿠자키와 함께 다니는 것을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부담을 느꼈고 결국 같이 행동하는 것을 거절했다. 그 후 오쿠자키는 ‘대역’을 쓰고 싶다며 내 어머니에게 그걸 부탁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이상해서 거절을 했고, 결국 오쿠자키의 부인이 출연하게 됐다. 오쿠자키는 ‘리얼리스트’다. 상대방은 대역인 줄 모르니까 일단 죄송하다는 사과를 받을 수 있을 거라 계산한 것이다. 혼자 가는 것보다 유족과 같이 가는 게 사과를 받기 더 쉬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고 그게 대의명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오쿠자키 특유의 리얼리즘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유족이 있는데 죄송하지 않냐’고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질문에 답을 하자면... 오쿠자키는 원래 중고차를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중고차를 파는 오쿠자키의 일상을 찍어도 이 영화에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쿠자키는 천황제를 부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고, 나는 그의 그런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당신이 하고 싶은 걸 카메라 앞에서 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이를 통해 오쿠자키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다.


변성찬 감독님의 말을 들으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인물이 상황을 주도하고 감독님은 그를 관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촬영 이전 단계에서는 감독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 2 인도네시아 촬영 분량을 모두 몰수당했다. 아마 위령제를 지내지 않았을까 추측했는데, 어떤 장면을 촬영하려고 했었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려면 30분은 더 걸릴 것 같아서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 보겠다. 촬영을 하던 시기가 그 지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때라서 촬영 허가가 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뇌물을 써서 일 주일간 있을 수 있는 비자를 받았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에 갔는데 오쿠자키가 호텔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했다. 그런데도 오쿠자키는 계속 자기가 천황에게 파칭코 구슬을 쐈고, 이곳 뉴기니에서 살아남은 남자라고 얘기했다. 결국 경찰이 군인을 불렀고 중위 정도쯤 되는 군인이 호텔로 왔다. 오쿠자키는 그에게 비싼 요리를 시켜주고 뇌물을 주고, 내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까지 주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오쿠자키는 자신이 전쟁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전우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게 연기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일단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국 군인이 오쿠자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그렇게 오쿠자키가 포로로 붙잡혔던 마을까지 함께 갔다. 여기서도 이장 같은 사람에게 뇌물을 주면서 여러 장면을 찍을 수 있었고 더 높은 계급의 군인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비록 뇌물을 썼지만 오쿠자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대 사무실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이 촬영 허가를 받았냐고 물으며 지금까지 촬영한 필름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겁을 먹고 일단 필름을 다 꺼냈더니 오쿠자키는 그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서 갖고 갈거면 갖고 가라고 외쳤고, 통역자는 겁을 먹고 도망갔다. 통역도 없는 상태에서 결국 필름을 다 몰수 당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분량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되면서 너무 힘이 없어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여기까지만 얘기하겠다(웃음).


관객 3 오쿠자키 겐조가 출소 후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오쿠자키는 한이 많이 맺혀서 그런지 폭력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것 같았다. 감독님은 오쿠자키의 이런 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하라 가즈오 오쿠자키는 감옥에서 12년 동안 복역했다. 그 사이에 나에게 편지가 왔다.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의 2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12년 동안 고민했는데 결국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있는데 그중 오쿠자키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있었다. 성인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었는데, 오쿠자키가 출소하자마자 차를 태워 도쿄까지 갔다. 그리고는 SM을 소재로 한 성인 영화에 출연을 시켰고, M 역할을 견디다 못한 오쿠자키가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촬영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소동까지 촬영해서 판매했고, 오쿠자키는 화가 나 고베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베에서 혼자 8년 동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8년 동안 나를 증오하고 원망했다고 전해 들었다.

폭력에 대한 얘기는 어렵다. 폭력이라는 말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 폭력에는 여러 레벨이 있다. 국가의 폭력은 전쟁 같은 것이다. 국가는 군대나 경찰도 소유하고 있다. 이런 국가에 대항하려면 돌을 던지는 식의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

영화 안에서 오쿠자키가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 두 번 정도 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자세히 보면 진짜로 때리는 것이 아니다. 전우들을 찾아다니며 처형이나 인육에 대한 얘기를 들으려 하지만 상대는 당연히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맞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폭력이라는 낯선 순간에 노출되며 숨기고 있던 걸 드러내는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아마 폭력이 없었다면 인육을 먹었다는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에 갇혀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육체적으로 자극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폭력을 쓰는 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대장의 아들에게 총을 쏜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 오쿠자키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폭력을 쓸 것이라고 얘기한 건 테러리스트의 논리다. 개인적으로 테러리스트의 논리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런 논리를 이루는 배경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이런 현실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오쿠자키가 앞으로도 계속 폭력을 사용할 것이라 얘기한 부분은 편집자가 빼려고 했다. 편집자는 이 장면을 빼지 않으면 사람들이 천황과 전쟁을 비판하는 오쿠자키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 나도 그 말에는 동의했지만 오쿠자키는 폭력을 통해 국가에 저항하는 사람이었고, 그 말을 빼버리면 영화가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될 것 같았다. 편집자와 엄청 싸웠지만 결국 이 장면은 넣기로 했다.


관객 4 <전신소설가>에서 ‘여러 사실들이 겹쳐져 있는데 그중 선택을 하기 때문에 픽션이다’라는 소설가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한 출연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도 전쟁의 참상 같은 것을 직접 목격하면 불편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아마 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관을 살해하겠다고 나선 오쿠자키를 따라가지 않은 감독님의 선택에 공감한 쪽이다. 감독님은 현실을 전부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어떤 ‘정도’를 지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하라 가즈오 영화를 찍기 전에는 이런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고, 이런 영상을 담아야겠다고 머릿속으로 정말 많이 생각한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면 항상 30% 정도만 겨우 찍을 수 있는 것 같다. 찍을 수 없는 게 압도적으로 많다. 현장에서 찍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고, 찍고 싶지만 조건이 안 맞아서 못 찍는 것도 있다.

일단은 가능하면 다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찍지 못했던 그 조건까지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찍을 수 없었던 장면들을 생각하다 차기작의 주제를 찾을 때도 있다. 오늘 같은 이런 대화 자리도 영화를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다. 어떤 생각으로 찍었는지 말하면서 장면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생각하며 이해가 깊어진다.


변성찬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는 30년 전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적 에너지, 사회적 에너지가 바래지 않고 남아 있어서 새삼 놀라웠다. 필름 촬영이라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에서 만들어졌지만 찍지 못한 ‘구멍’ 같은 부분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늘 자리를 마치도록 하겠다.


하라 가즈오 말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오쿠자키가 중대장을 죽이겠다며 총을 들고 갔을 때 그 총은 장난감총을 개조한 것이었다. 그 총은 오쿠자키를 지지하는 사람이 준 것이었고, 오쿠자키는 그 총이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오쿠자키가 중대장의 집에 갔는데 중대장은 없고 아들만 나왔다. 당시 오쿠자키는 중대장의 아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났고, 그래서 이 총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처음부터 오쿠자키가 사람을 죽이려는 분명한 살의를 갖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때 오쿠자키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그걸 표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이처럼 여러 시각을 동원해도 풀 수 없는 문제들, 이런 인간의 불가사의한 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를 하면 세 시간 정도 더 필요할 것 같다(웃음).




일시 6월 16일(토) 오후 2시 30분 <천황 군대는 진군한다> 상영 후

정리 김혜령 자원활동가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