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절대 담배 안 끊겠다는 반항심으로 만들었다”

- <소공녀> 상영 후 전고운 감독 시네토크





정지혜(영화평론가) <소공녀>는 물론 미소의 이야기지만 서울이란 도시의 주거 형태가 어떻게 분화되고 있는지, 어떤 지경까지 처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 공간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을 것 같다. 영화의 출발 지점에 대해 먼저 듣고 싶다.


전고운(감독)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소이지만 또 하나의 주인공은 서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 남으려 하다가 잃어버리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소공녀>를 만들 때는 정권에 대한 불만도 정말 컸다. 이걸 어떻게 간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마침 담뱃값도 오르더라. 내 생각에 정말 말도 안 되는 큰 인상폭이었다. 그런 분노들에서 처음 시작했다.


정지혜 잊혀진 도시의 풍경을 기록하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말은 광화문시네마가 제작한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말 같기도 하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광화문시네마의 영화들을 본 관객은 공간에 대한 서로 다른 탁월한 해석들을 보았을 것이다. 특히 고시원, 단칸방 등 젊은 청춘들이 머무는 공간을 중요하게 묘사하며 인물을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소공녀>의 미소는 집을 포기하고 담배와 위스키라는 취향, 나아가 사랑의 대상을 지키려 한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란 의문도 사실 좀 들었다. 미소에게 자신이 머무는 공간, 자신이 살아가는 서울이란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전고운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그냥 자기가 나고 자란 터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분들은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미소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다른 도시에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미소가 서울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서울은 미소의 모든 것이 담긴 곳이고, 미소가 버텨야 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살기에 너무 비싸지면서 발붙일 곳이 점차 줄어든다.


정지혜 ‘미소’의 이름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미소는 친구와 동료, 타인에게 미소를 보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관객은 감정이입을 주로 주인공에게 하고 다른 인물들에게는 배타적인 감정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소공녀>를 볼 때는 미소 주위의 인물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된다. 미소와 미소의 친구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려 했는지 듣고 싶다.


전고운 처음 친구들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미소에 공감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평범한’ 사람들은 미소의 친구들이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했고 미소에게 거부감을 가졌다. 그리고 실제 미소처럼 살고 있는 소수의 친구들만이 미소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나에겐 그 차이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미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소공녀>를 미워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친구들을 밉지 않게 그리는 것이었다. 만약 미소를 이해하지 못해도 친구들을 통해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지혜 그 친구들 중 광화문시네마의 멤버도 있었을 것 같다. 광화문시네마는 영화를 만들 때 시나리오 개발부터 함께 힘을 모으는 걸로 알고 있다. <소공녀>의 경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 다른 감독들이 지향하는 게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쪽으로도 잘 열려 있기 때문에 다른 감독의 작품에 각색으로 참여할 수 있다(웃음).

<소공녀>의 경우에는 친구들이 나를 무서워해서 그런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깔끔하게 ‘재밌다’, ‘이대로 찍어도 되겠다’고 말해주었다. <범죄의 여왕>이나 <족구왕>은 장르 영화다 보니 아무래도 계속 많이 고쳤는데, 이번에는 약간 ‘네 맘대로 해라’ 느낌이었다. 대신 엔딩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논의했다.  


정지혜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미소의 나이가 조금 더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전고운 시나리오를 쓰고 나면 어떻게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처음 쓴 시나리오는 분위기가 좀 더 어두웠고 주인공도 나이가 많았다. 주인공의 나이 들어가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투자-개발 과정에서 나이를 조금 낮추었고, 그러면서 작업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됐다.


정지혜 <소공녀>는 도시에서 혼자 자신의 취향을 지키면서 나이 들어가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감독님의 개인적 고민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 같다.


전고운 내 첫 번째 장편 영화라서 미소처럼 철저하게 내 취향을 지키지는 못했고, 조금 내 색깔을 눌러가면서 만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살고 어렵게 취직도 했는데 돈은 부족하고, 취미생활도 없어지고 바빠서 친구도 못 만나는 이런 이상한 구조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을 하며 만들었다. 영화를 다 찍고 난 후 나에게 영화가 미소의 담배와 위스키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정지혜 광화문시네마 멤버들은 서로의 영화에 짧게 출연을 하기도 하는 등 품앗이처럼 협업을 한다. 동시에 상업영화의 틀에서 다른 제작사나 투자사와도 함께 일을 한다. 어떤 어려운 점이 있는지, 또는 어떻게 계속 광화문시네마가 지속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일단 우리는 ‘광화문시네마’ 소속 멤버 이전에 개인이고 친구다. 친구가 다른 곳에서 영화를 만들면 당연히 친구로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좀 쑥스럽지만, 사랑이다. 사랑밖에 없는 것 같다(웃음). 영화를 찍으면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고,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즐거움 말고는 얻을 게 없다. 광화문시네마의 시작이었던 <1999, 면회>를 만들 때도 술자리에서 얘기를 하다가 재밌겠다면서 서로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내가 친구에게 받은 건 다음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이런 사랑과 책임감의 바톤 터치가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사랑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우리가 서로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부족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천재가 아닌 사람들이라서 뭉칠 수밖에 없다.


정지혜 전고운 감독은 광화문시네마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대표로서 어떤 영화를 지향하는지 듣고 싶다.


전고운 다섯 감독의 취향이 전부 다른데 우리는 그걸 암묵적으로 존중해 준다. 사실 연출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게 정말 어렵다. 어쩔 수 없는 시니컬함으로 상대의 작품을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나랑은 다르지만 잘하는 게 있다는 태도를 분명히 가진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취향은 서로 다양한 게 더 재밌기도 하다.


정지혜 연출도 해야 되고 기획과 제작도 해야 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전고운 특별한 피로감은 없다. 우리는 장편영화 찍는 걸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누가 아이템을 가져오면 그걸 무조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 아, 한 가지 피로감이 있다면 세금이다. 버는 건 없는데 세금을 내라고 한다(웃음).


정지혜 정말 큰 피로감일 것 같다(웃음).




관객 1 엔딩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는데 처음 엔딩이 궁금하다.


전고운 미소가 마지막 친구집에서 쫓겨난 다음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독일에 있다고 한다. 장면이 바뀌면 미소가 베를린에서 흰머리를 한 채 똑같이 가사 도우미로 일하면서 양주를 마시고 길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게 처음 엔딩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뭐냐’고 하더라. 그래서 고민 끝에 지금 엔딩으로 바꾸었다.

내가 제일 보고 싶었던 건 미소가 주는 카타르시스였다. 나는 영화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만 봐도 희열을 느낀다. 누가 이걸 길게 찍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찍어보기로 했다. 엔딩은 정말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해 봤다. 미소가 담배밭에서 직접 담배 농사를 짓는 것까지 생각했었다(웃음).


관객 1 미소의 머리가 나중에는 백발로 바뀐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전고운 영화는 결국 시각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미소의 마지막은 남들에게는 포기지만 자신에게는 선택이다. 그 선택의 결과를 충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흰머리를 떠올렸다. 약 설정은 그 다음에 집어넣은 것이다. 실제 존재하는 병으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내가 상상해서 만든 병이다.


관객 2 오늘로 14번 봤는데 볼 때마다 재밌다. 미소의 라이터가 궁금하다. 미소는 가난한데 좋은 라이터를 쓴다. 어떤 설정이었는지 듣고 싶다.


전고운 미소가 어떤 라이터를 쓸지 열심히 고민했다.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라이터 선물을 받는다. 미소는 그 선물 받은 라이터를 소중하게 오랫동안 쓰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라이터는 지포라이터인데 소리는 뒤퐁라이터다. 그 ‘핑’하는 소리가 짧은 음악 같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아는 사람은 눈치를 챌 수 있는 나만의 유머였다.


관객 3 영화에서 유머가 많이 느껴졌다. 평소 즐겨보는 영화나 드라마, TV 프로그램이 궁금하다.


전고운 연출을 잘한 영화는 다 좋아한다. <대부>, <에일리언>, 미카엘 하네케, 마이크 리 등 다양하게 좋아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만족한 영화는 별로 없다. 코미디에서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언젠가 <블루 재스민> 같은 영화를 한 번 만들고 싶다.


관객 3 여성 감독으로서 자신이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차별점이라기보다는 자신감이 있다. 여성 캐릭터를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남성 영화의 문화에서도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남성 캐릭터도 잘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둘 다 잘할 수 있는 게 내 장점이다(웃음). 많은 경우 남성 감독들은 여성 인물을 너무 평평하게 만들거나, 공중에 띄워놓거나, 사람처럼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정지혜 결말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다. 마지막에 미소는 텐트에서 살기를 선택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지키며 산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걸까 고민해 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곳에 있는 미소의 모습을 마음 편하게 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특히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데, 미소의 마지막 거처에 대한 고민을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전고운 그 텐트는 내 나름의 풍자였다. 고작 위스키와 담배라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취향을 지킨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너무 힘든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텐트까지 쳐야겠냐?’ 같은 느낌이었다(웃음). 갈 데까지 가 보고 싶었다. 담뱃값 아무리 올려봐라, 나는 절대 안 끊겠다 같은 나름의 반항심이었다.

마지막 엔딩을 너무 마음 아파하며 보는 분들이 있는데, 내 주위의 ‘미소’들은 드디어 자신의 공간이 생긴 거라며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하더라. 보는 위치에 따라 영화를 보는 감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점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관객 4 나는 오늘로 11번 봤다. 시나리오집도 읽었는데 영화에는 없는 장면이 있었다. 미소가 재경(김예은)의 집에서 일하다 잠깐 잠들었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아 해고당하는 장면이었다.


전고운 사실 그 장면도 촬영을 했지만 너무 신파로 흘러갈까 봐, 미소를 너무 불쌍하게 몰아가는 건 안 좋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편집을 했다. 관객을 좀 덜 지치게 만들고 싶었다. 정말 많이 고민을 한 편집이었고, 감독의 자리가 힘들다는 걸 새삼 느꼈다.


정지혜 미소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선한 인물이다. 나중에는 거의 감금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는데도 감사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떠난다. 이런 예의와 품위가 어떻게 가능할까.


전고운 미소 캐릭터에 영감을 준 내 친구들은 정말 미소처럼 착하다(웃음).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예의바른 친구들이다.

나는 이 사회에 제일 필요한 건 선인이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을 외롭지 않게 해주고,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회는 언제부턴가 그런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착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영화를 만들며 그런 가치가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정지혜 영화를 만들 때 어떤 과정이 제일 즐거운지.


전고운 내 영화 만들 때 말고는 다 즐겁다(웃음). 남의 영화 보고 감놔라 배놔라하는 게 너무 재밌다. 이 영화를 어떻게 재밌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과 내 고민으로 인해 영화가 조금 더 좋아지는 게 좋다. 배우자이기도 한 이요섭 감독은 나보고 노예근성이 있다고 하더라. 어떻게 보면 그 말도 맞다. 나는 서포트하는 게 좋다.


정지혜 <소공녀>의 마지막에 ‘강시 프로젝트’가 나온다. 그 작품도 서포트를 할 예정인가?


전고운 앞의 경우와 달리 <강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시작하면 나는 바로 같이하고 싶다.


정지혜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전고운 이제 <소공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새 작품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전에 영화감독이 사람이 할 만한 일인가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해보니 정말 미친 직업이다. 아티스트도 돼야 하고, 정치도 해야 하고, 사회성도 좋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걸 다 할 수 없어서 벅차더라. 그래도 쓰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일시 4월 28일(토) 오후 6시 30분 <소공녀>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래머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광화문시네마의 가족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을 얻는 일이다”

- <범죄의 여왕> 상영 후 이요섭, 박지영, 백수장 시네토크






김보년(프로그래머) 오늘은 특별히 감독과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이요섭(감독) 오랜만에 이렇게 관객과 만나니 정말 떨린다.


박지영(배우) <범죄의 여왕>은 2015년에 촬영했고 2016년에 개봉했다. 그리고 오늘 2년 만에 다시 보았는데 너무 새롭고 좋았다. 2년마다 한 번씩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그때의 기분과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백수장(배우) 내가 이 영화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요즘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다시 큰 힘을 받았다.


김보년 이 영화의 특징은 여러 장르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스릴러도 있고 코미디도 있다. 그런데 박지영 배우는 여러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그 색깔을 혼자서 다 소화해야 했다.


박지영 대본을 처음 받고 양미경은 완전히 나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쓴 감독님이 누군지 궁금할 정도였다. 내 지인과 가족들도 영화를 보더니 ‘그냥 너’라고 하더라. 행운의 작품이었다. 배우가 자신과 같은 역할을 맡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항상 역할에 맞게 나를 녹여내야 했지만 한 번도 ‘나 같은 사람’을 연기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양미경은 나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색깔 없는 옷을 입은 것처럼 덕구와 있을 때는 덕구와 함께, 개태와 있을 때는 개태와 함께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다. 배우로서 굉장한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배역은 자주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김보년 한 장면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다. 마지막에 양미경이 범인의 칼을 손으로 잡는다. 그때 영화는 박지영 배우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다음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는데 이때 분노와 웃음, 슬픈 표정이 다 조금씩 섞여 있다.


박지영 그 장면의 표정이 미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여성이자 누나, 엄마, 언니 같은 모습이 다 들어 있다. 거울을 보고 연기하는 게 아니니 내 얼굴은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양미경이란 여자가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양미경에게 매력을 느낀 건 그녀가 한 가지 매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양미경이 오지랍이 넓다고 하던데, 그건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장면에서 다양한 얼굴이 나온 건 나도 만족스럽다.


김보년 같은 질문을 감독님에게도 하고 싶다. 그 장면의 연출은 영화 전체적으로도 조금 이질적이다.


이요섭 그 장면은 세 테이크 정도만 찍고 바로 오케이를 했다. 그렇게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았는데도 이런 결과물이 나온 건 이미 박지영 배우가 양미경의 캐릭터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속 촬영을 했기 때문에 꼼꼼하게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다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된 것 같다고 생각했고, 편집실에 가서 확인해 보니 정말 얼굴로 ‘열일’을 하고 있었다(웃음). 믿고 갈 수밖에 없는 배우라고 새삼 생각했다. 콘티에는 클로즈업이라고만 정해놨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보여준 건 박지영 배우의 힘 때문이었다.


김보년 백수장 배우에게 제일 궁금한 건 촬영 일정이다(웃음). 조금씩 나오는데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 없이 나온다.


백수장 세트 촬영 없이 한 장소에 그냥 앉아서 며칠 동안 찍었는데 영화에 그렇게 골고루 나왔다.


이요섭 5회차 정도 찍었는데 모든 배우들이 백수장 배우를 부러워했다.


백수장 나는 오히려 아쉬웠다.





김보년 조금씩 나오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역할이었다. 특히 덕구의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백수장 처음에는 덕구를 이런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고 ‘평범한’ 모습으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나중에 감독님이 원하는 캐릭터가 있다면서 어떤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이요섭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중 ‘모태솔로’ 캐릭터가 있다. 말투가 좀 특이한 캐릭터였는데 덕구가 이런 말투를 써도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좀 다가서기 힘든 캐릭터인데 백수장 배우가 연기하면서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녹아들었다.


백수장 옛날 군대 후임을 참고했고 감독님의 모습도 많이 참고했다(웃음). 나도 이런 톤의 연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감독님이 그런 모습을 잘 끄집어내 주셨다. 이 영화 이후 덕구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박지영 나랑 같이 해야지!(웃음).


김보년 이 영화에서는 웃긴 캐릭터를 맡았지만 백수장 배우의 전체 필모그래피에는 진지한 배역이 더 많다. 그런데 백수장 배우는 코믹한 캐릭터와 진지한 캐릭터 사이의 연기 방식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백수장 코믹한 캐릭터와 진지한 캐릭터를 따로 나눠 연기한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코믹한 연기를 어려워한다. 그런 역할을 제의받으면 움츠러드는  쪽이다. 유머 센스는 타고나야 하는 면이 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재밌게 하는 분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덕구는 대본과 상황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냥 상황에 맡기려고 했다. 장르에 따라서 톤을 바꾸는 연기는 아직 잘 모르겠다.






김보년 감독님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이번 특별전의 제목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다. <범죄의 여왕>은 어떤 협업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졌나.


이요섭 일단 시나리오가 나오면 다 모여서 회의를 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연출자가 원하는 걸 더 뚜렷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전고운 감독이 각색, 김태곤 감독이 기획을 맡았다. 그리고 권오광 감독과 우문기 감독은 사기 진작을 맡았다(웃음). 현장에 귤을 사오거나 귀여운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려주었다. 개봉 이후에도 내가 신경쓰지 못한 점을 다들 함께 도와주었다.


김보년 앞으로도 이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건지 궁금하다.


이요섭 감독들이 다들 장편을 하나씩 찍으면서 한 바퀴 돌았으니 다음 작품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고, 가정이 있고, 영화 이외의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광화문시네마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그냥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관객 1 미경의 원피스가 너무 예뻤다.


박지영 의상도 캐릭터와 잘 맞았다. 내가 직접 준비한 의상과 의상실장이 준비한 의상이 섞여 있다. 짧고 굵게 한 작품인데 어쩜 이렇게 다들 같은 마음일까 생각했다.

‘양미경’이란 이름도 그렇다. 처음에는 미경이란 이름만 있었는데 미경에 어떤 성을 붙여야 더 강인해 보이고 여성스럽고 촌스러워 보일까 감독님과 이야기했다. 그렇게 서로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모으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관객 1 양미경이 추리를 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장면이 있는데 수위 조절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범죄의 여왕 2>가 빨리 나오면 좋겠다(웃음).


이요섭 딱히 수위 조절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련의 폭력적인 장면들은 내가 어머니와 가족들 옆에서 직접 경험했던 일이다. 조폭은 아니었지만 무서운 사람들이 일하는 관리사무소에 용감하게 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또는 명절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모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누가 바람을 피워서 그 사람을 잡으러 간 이야기, 사채빚을 졌는데 그걸 탕감받으며 한 행동들. 정말 엄청난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는 그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정말 멋지고 대단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이 멋진 분들이 평범하게 지내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 때 그런 기억과 경험을 녹여서 내가 생각하는 멋진 여성상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수위 조절은 고민하지 않고 미경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했다.


김보년 박지영 배우는 <소공녀>에도 출연했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박지영 광화문시네마의 가족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을 얻는 일인 것 같다. 김태곤 감독의 <굿바이 싱글>에도 목소리 출연을 했다. 단체 회식을 갔더니 모인 사람 중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광화문시네마 친구들은 서로 엑스트라도 해주고,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같이 작업을 하더라. 그런게 바로 ‘쿨’인 것 같다.

부동산 아줌마 역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새로운 기회를 얻어서 좋았다. 나도 일을 많이 해봤지만 항상 어떤 역할이 잘 되면 다음에도 비슷한 역할이 들어온다. 그런 걸 피하다 보니 일을 좀 더디게 하는 편인데, 광화문시네마는 이렇게 숙제처럼 새로운 역할을 주어서 좋았다. 크든 작든 유니크하고 새로운 기회를 주는 광화문시네마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관객 2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동료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


이요섭 진지한 이야기를 오래 못 하고 그냥 장난치고 즐겁게 노는 분위기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단톡방에 100개가 넘는 메세지가 올라와 있다. 슬프고 힘든 상황이라도 그냥 술 마시고 웃고 게임하면서 푼다. 그런 분위기가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등장과 퇴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퇴장할 때는 등장할 때와 다른 얼굴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배우를 만나는 일은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새삼 느꼈는데 좋은 배우들과 작업을 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관객 3 <소공녀>도 그렇고 광화문시네마의 작품들은 서울의 솔직한 모습을 그리는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울이 싫을 때도 있는데, 감독님은 서울을 어떻게 그리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이요섭 나도 서울에서 꽤 오래 살았다. 소위 ‘강남 8학군’ 학생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영화를 하고 있다(웃음). 그때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 어떤 공통적인 인상이 있다. 지금은 이곳에 살지만 나중에 여기 못 살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들이 있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 역시 서울에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노량진이면 노량진, 영등포면 영등포, 이런 식으로 각 공간의 특징을 지도처럼 잡아놓고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작은 공간의 이야기에 집중할 것 같다.




김보년 그러고보면 미경은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덕구도 알고 보니 부모님이 부자라는 설정이 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작은 설정이 캐릭터 해석과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듣고 싶다.


박지영 원래 미경은 다른 도시 출신이었는데 내가 전주 출신이라 전주로 바꿨다. 참고로 미경의 미용실에 있는 사진은 내가 실제로 88년 미스 춘향 대회에 나갔던 사진을 쓴 것이다(웃음). 미녀 대회 출전자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세계 평화’ 같은 걸 얘기하지 않나. 미경도 그런 캐릭터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크고 거창한 일을 하고 싶었는데 팔자가 기구하여 이렇게 소박하게 살고 있는 캐릭터. 이런 구체적인 설정을 추가하면서 미경의 캐릭터에 더 설득력이 붙은 것 같다.


백수장 나는 덕구가 어떤 출신인지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요섭 과수원집 아들, 부농의 자식으로 설정했었다(웃음). 정말 큰 배밭 같은 걸 갖고 있는 집안.


백수장 그랬었구나(웃음). ‘부자의 자식’이라고 하면 막연히 비호감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주로 구김이 없고 밝은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런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김보년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다. 고시원 관리인들과 싸우다가 미경이 갑자기 고량주 병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있다.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이요섭 원래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리허설을 해보니 좀 밋밋하더라. 그때 박지영 배우가 ‘우리에게 한 시간을 달라, 맞춰보고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배우들이 새로 만들어낸 장면이다. 그 고량주 치는 게 장면의 포인트를 확실히 잡아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얻어 걸렸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에게 잘 받아 먹은 장면이다.


박미경 순간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말로도 자꾸 밀리니 미경이라면 그렇게 콩닥콩닥 말대꾸하다가 넘어뜨릴 것 같았다.


김보년 세 분의 근황과 인사말을 듣고 마무리하겠다.


이요섭 지금 다음 작품의 글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오늘 다시 보며 반성도 좀 했고,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열심히 잘해보겠다.


박미경 지금 5월에 방송할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다. <범죄의 여왕> DVD가 있지만 자기 영화를 자기가 혼자 집에서 보는 게 좀 그렇다(웃음). 오늘은 관객들이랑 같이 봐서 너무 좋았다.


백수장 나도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지금 촬영 중인 영화의 감독님이 <범죄의 여왕> 속 덕구를 괜찮게 보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조금 비슷한 캐릭터인데 어떻게 또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광화문시네마와도 또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시 4월 27일(금) 오후 8시 <범죄의 여왕> 상영 후

정리 하수정 홍보팀장

사진 최현진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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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필름 없는 필름

-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시네마 퓨처>를 보면서 생각난 것들을 자연스럽게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35mm 필름으로 영화를 봤고 사진을 찍을 때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뒤 사진관에서 현상-인화를 했다. 사진과 영화를 물질로 경험한 세대다. 그런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디지털 세대라서 경험 자체가 다를 것이다. 먼저 필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 질산염 필름에서 폴리에스터 필름까지

상영용 필름을 7~8 프레임 정도 잘라서 가져온 걸 나눠주려 한다. 지금 나눠드린 걸 보면 모든 장면이 거의 같은 장면일 것이다. 24프레임이 1초에 해당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꽤 긴 필름이 필요하다. 컬러 필름의 경우 R-B-G로 나뉜 세 개의 레이어가 있고, 이 부분을 물리적으로 지탱하는 베이스 부분이 있다. 1950년 이전에는 이 베이스가 질산염으로 된 필름(Nitrate Film)을 많이 썼다. 하지만 이 필름은 불이 붙기 쉽다. 당시 극장에 불이 났다는 뉴스가 많은 건 다 이 필름 때문이었다. 이후 아세테이트 필름(Acetate Film)이 등장했다. 안전 문제를 개선했기 때문에 다른 말로 ‘안전 필름 (Safety Film)’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이 필름은 ‘초산화 신드롬’ 문제가 있다. 필름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데 이 필름은 한번 초산화 반응이 시작되면 시큼한 냄새와 함께 필름이 약해졌다. 영사기 안에서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보존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등장해 지금까지 쓰이는 게 폴리에스터 필름(Polyester Film)으로 좀 더 튼튼하고 안정적이다.

참고로 한국은 질산염 필름을 딱 한 벌(<청춘의 십자로>(1934)) 갖고 있다. 현재 따로 보관 중이며, 운반도 조심해야 하고 별도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상영할 수 있다.


- 네거티브, 포지티브

영화 촬영이 끝나고 제일 처음 만들어지는 프린트는 색상이 반전된 네거티브 필름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을 포지티브 필름으로 현상한다. 우리가 보통 ‘프린트’라고 부르는 건 포지티브 필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거티브는 사운드 네거티브와 이미지 네거티브가 나뉘어져 있는데 이걸 합쳐서 상영용 프린트로 만든다. 김기영 감독의 <죽엄의 상자> 같은 경우는 이미지 네거티브만 수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성영화가 아니지만 무성영화로 상영하게 된 안타까운 경우다.

오늘 <시네마 퓨처>를 보면서 ‘제네레이션(generation)’이란 표현을 들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스타워즈> 같은 경우는 세계 곳곳에서 상영을 하는 작품이라 수백 벌의 프린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걸 오리지널 네거티브에서 만들면 결국 손상이 된다. 프린트라는 건 한 번 기계에 걸 때마다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중간 단계를 거친다.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를 만들고, 이 포지티브에서 ‘듀프 네거티브 필름(Dupe Negative Film)’을 만든 다음 일반 상영용 프린트를 만든다. 이런 네 단계를 거친 프린트를 보고 ‘네 번째 제네레이션’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 한국은 제작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오리지널 네거티브에서 직접 극장용 프린트를 만들었다. 그래서 80년대 작품도 오리지널 네거티브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심지어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없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이다. 이건 해외 영화제에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바로 보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프린트를 따로 만들 비용이 없어서 해외에 보냈다가 다시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생겨 분실되고 만 것이다. 이럴 경우는 최대한 상태가 좋은 상영용 프린트를 수집해서 복원을 한다. 대표적으로 <오발탄> 같은 경우가 오리지널 네거티브 없이 해외 영화제용 상영 프린트를 복원한 사례다. 영어 자막이 이미지의 절반을 가린 상태였지만 그걸 지우는 기술을 개발해서 지금은 깨끗하게 만날 수 있다.


-obsolete

‘obsolete(폐기, 구식)’ 란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지금 보여드리는 필름들은 과거에 실제 상영됐던 필름으로 지금 사용하는 필름과는 퍼포레이션(perforation, 필름에 뚫려 있는 일정한 크기와 간격의 구멍) 형태가 다르다. 옛날에는 이렇게 둥근 퍼포레이션도 있었고, 퍼포레이션의 갯수와 위치도 달랐다. 이렇게 다양한 포맷이 있었지만 지금 이 포맷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지금 ‘표준’ 형식이 있다는 건 그 외의 형식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필름을 사용했던 카메라와 영사기가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금은 필름 매체 자체가 사라지고 있고 국내에는 필름 상영이 가능한 극장도 얼마 없다. 한때 표준 매체였던 35mm 필름이 obsolete가 된 것인데, 과연 필름 매체와 필름 상영이 사라질 것인지 질문을 할 수 있다. 나도 정확하게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 기억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은 BFI 보관고의 일부다. 필름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여있다. 이 필름 안에는 우리들의 기억이 들어 있다. 1930년대 영국의 거리가 있고, 1940년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1950년대에 유행했던 옷이 들어 있다. 즉 우리의 일상이 저 필름들 안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아카이브는 기억의 저장고로서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필름은 온도와 습도만 잘 맞으면 100년 넘게 보존할 수 있는 안전한 매체다. 1895년에 처음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우리에겐 100년이 넘는 기억이 있다. 지금은 영화외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도 필름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미몽>(1936)이 발굴됐을 때 그 안에는 당시 서울의 거리, 모던걸들의 모습,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일상의 모습, 유명한 무용가인 조택원의 무용 영상도 담겨 있다. 역사적 자료로서도 큰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 복원의 기준

모든 영화를 복원하는 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보통 ‘빅 타이틀’을 우선적으로 복원한다. 예를 들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는 거의 매년 복원이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사운드가 바뀌거나, 몇 장면이 더 들어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한 버전의 복원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덜 유명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복원이 잘 시도되지 않는다.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필름 중에는 ‘고아 필름(Orphan Film)’이라고 해서 정말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연출한지도 모르는 짜투리 필름들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복원하고 다시 상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복원의 기준도 문제다.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원한다고 했을 때 원본은 과연 무엇일까? <시네마 퓨처>를 보면 원본에 존재했던 먼지까지 디지털 기술로 지운 <아라비아 로렌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런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디까지가 원본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너무 깨끗하게, 너무 높은 선명도로 복원하면 당시 상영된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 필름 체험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사람들에게 디지털과 필름의 차이는 크게 다가온다. 영화가 무거운 박스로 오는 것과 작은 USB에 담겨 오는 것은 당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필름과 디지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옛날에는 ‘극장 구경 간다’라는 표현을 흔히 썼다. 가족들과 극장에 가서 함께 영화를 보고 짜장면을 먹고 돌아오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영화 감상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 <매그놀리아>를 35mm로 본 분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김보년(프로그래머) 말씀하신 <아라비아 로렌스> 부분이 흥미로웠다. 나는 편집을 바꾼 감독판이 나왔다든가, 색감을 더 개선시킨 블루레이가 나왔다고 하면 챙겨보려 한다. ‘원본’의 존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시대에 영화의 원본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 같다. 복원의 맥락에서도 중요한 질문일 것 같다.

오성지 35mm 필름이 사라지고 나면 나중에는 우리가 세잔의 그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 것처럼 35mm 상영관을 찾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필름은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 예술이자 상업 매체이다. 여기에서 원본성을 찾다 보면 결국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이게 쉽지 않은 문제다.

이를테면 60~7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 감독 중 자신의 영화를 나중에도 계속 편집한 분이 있었다.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편집한 것이다. 그렇게 새로 편집을 해오면 우리는 개봉 당시 버전의 ‘오리지널’과 몇십 년이 지나 만들어진 새로운 편집본을 갖게 된다. 또는 디지털 복원을 하며 색감을 조정할 때 감독과 촬영감독의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게 원본일까? 정말 대답하기 힘든 문제다. 또는 무성 흑백영화의 경우에도 나라마다 컬러 틴팅(tinting)을 전부 다르게 했다. 멀티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중 무엇이 오리지널인지 답을 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복원 자체를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관객 오래된 필름을 복원할 때 어떤 영화를 먼저 복원하는지 궁금하다.


오성지 여러 기준이 있는데 일단 그 작품이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많이 본다. 필름의 상태도 중요하다. 상태가 안 좋은 필름일수록 복원의 우선 순위가 올라간다. 상영했을 때 관객이 얼마나 올지도 따져봐야 한다. 복원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윤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필름이 유일본인지 아닌지다. 프린트가 딱 한 벌 남아 있는 영화들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작업을 하려 한다.


김보년 주로 필름 복원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영사기 노후화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오성지 옛날에는 한국에 현상소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 문을 닫았다. 영사기 중에서도 16mm 영사기는 이미 거의 사라져버렸다. 고장이 나면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고, 8mm 영화는 국내에서 복원할 수 있는 곳이 아예 없다. 35mm 영사기를 쓰는 곳이 갈수록 줄어들다 보니 부품을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영사 인력도 많지 않다. 영사기사 교육은 앞으로 많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일시 4월 14일(토) 오후 6시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정리 하수정 홍보팀장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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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멸의 제주]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 <눈꺼풀> 상영 후 오멸 감독 시네토크




이용철(영화평론가) 2016년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눈꺼풀>을 상영했었다. 그리고 2년 만에 감독님과 다시 <눈꺼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2016년 시네토크 당시 관객들 중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다. 그때는 세월호를 둘러싼 상황이나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다.

오멸(감독) 엊그제 개봉을 앞두고 시사를 하면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내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네토크를 할 때는 나도 마음이 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용철 <눈꺼풀>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바로 그해 제작한 영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식 개봉은 하지 않았고 이제서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눈꺼풀>을 찍는 그 순간에도 개봉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지 못했던 걸로 알고 있다.

오멸 내 경우에는 일단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당시 우리 극단 멤버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예술한답시고 영화도 하고 연극도 하는데 이 일을 다뤄야 하지 않겠느냐, 예술가로서 할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리고 바로 촬영부터 시작했다. 워낙 극소수의 인원들과 시작한 거라 그때는 개봉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개봉을 하고 싶어도 ‘블랙리스트’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배급사나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파장이 미칠 것 같았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개봉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세월호를 다룬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용철 블랙리스트라는 건 그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도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증거도 명확하지 않다. 심사에서 떨어지고 지원을 못 받아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심증만 가질 수 있다. ‘일반인’들은 이 문제를 정의의 문제라 생각할 수 있지만 창작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특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오멸 감독님은 그 문제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오멸  제주도는 4.3 이후 연좌제가 있었다. 3대에 걸쳐 국가 권력의 감시를 받고 후손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여기에 대한 제주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있다. 나도 <지슬> 이후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고, 실제로 제작하던 작품의 지원이 갑자기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극단을 운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극단이 거의 해체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 보면 정치인들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웃음). 이걸 회복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부서진 걸 다시 쌓고 싶지만 나도, 멤버들도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용철 오늘은 <눈꺼풀 메이킹>도 함께 상영했다.

오멸 제주 지역방송국에서 <눈꺼풀> 촬영 현장을 찍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틀 동안 찍겠다고 했지만 열흘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PD가 섬까지 왔고 2부작으로 만들었다. 밤 8시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청률이 14%가 나와서 정규 방송을 제치고 1등을 했다(웃음). 오늘 본 영상은 그 방송 버전에서 내레이션을 빼고 분량을 20분으로 줄인 것이다.

이용철 나도 잠시 촬영 현장에 있었지만 매우 즐거웠다. 그런데 그 시기가 <하늘의 황금마차> 이후 영화 제작에 대한 고민이 컸던 시기로 알고 있다.

오멸 영화 내용은 우울하고 슬픈 내용이지만 촬영을 하는 동안 모두 몸이 건강해졌다(웃음). 무인도에 혼자 있다 보니 계속 삶과 생명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하러 왔다가 우리가 치유되는 경험, 죽음을 이야기하러 갔다가 생명을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이용철 <뽕똘> 같은 코미디에도 죽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특히 요즘 오멸 감독의 작업에는 죽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오멸 죽음을 밀접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삶과 죽음이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지만 작업을 할 때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려고 한다. 한쪽 어깨에 삶, 한쪽 어깨에 죽음, 이런 게 아닐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숙제를 떠안게 되는데,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용철 지금 제주는 개발이 많이 됐고, 외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그래서 제주가 갖고 있던 어떤 신화적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오멸 감독은 여전히 신의 세계와 신화적 요소를 영화 속에서 많이 다루려 한다.


오멸 섬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가 샤머니즘 문화가 강하다는 것이다. 제주에는 ‘신구간(新舊間)’이란 게 있다. 이사를 할 수 있는, 귀신에게 허락받은 시간으로서 다들 그때 이사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해녀가 물에 들어가지 않는 기간도 있다.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이처럼 제주에서는 사람과 신이 밀접한 관계를 맺은 채 시간이 흐른다. 삶의 질문과 습관이 신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릴 때 무덤에서 잔 적이 있다. 제주에서는 무덤이 집과 가까운 밭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자주 가는 곳에 부모의 무덤을 만들고, 매일 부모님의 묘를 돌본다. 이처럼 신을 대하는 태도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객 1 영화의 제목 ‘눈꺼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오멸 4.16 당시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아마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차마 눈을 감고 싶어도 감을 수 없는 그 눈꺼풀의 고통스러움을 떠올리며 제목을 정했다. 그리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 사건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는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관객 2 세월호를 다루는 게 예술가들의 의무라고 말씀하셨다. 최근 『전체관람가』에서 공개된 <파미르>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듣고 싶다.

오멸 일 주일 전에 세월호에 대한 장편 시나리오 초고를 끝냈다. 최근 제작 여건이 안 좋아져서 내가 직접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 간절해지고 있다. 올해 촬영을 시작하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이용철 나는 오멸 감독이 세월호에 너무 에너지를 쏟는 것 같아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반기지 않는 소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종종 만나 근황을 물으면 항상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신작 <인어전설>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써 공개가 됐다.

오멸 <인어전설>은 제작 중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좀 고달프게 만들었다. 장편 열 편 만드는 게 개인적 목표인데 그걸 이루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작업으로서의 영화,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매체로서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며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이용철 오멸 감독이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형편’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 듣는다. 블랙리스트는 어떤 사람들이 영화를 못 만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를 계속 찍게 하는 힘을 줄 수 있는 건 관객이다. 곧 <눈꺼풀>이 개봉을 한다. 여러분들이 많은 힘을 주시길 바란다.

오멸 삶을 즐겁게 하는 영화도 많지만 세월호는 실제 사건이다. 그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기가 계속 찾아오는 것 같다.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상을 그렇게 떠난 사건은 3천 명,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계속 파장을 미칠 것이다. 당장 나에게는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세월호의 파장은 곧 우리에게 올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월호에 대해 질문을 던져서 올바른 답을 찾고 이 사회의 바른 지표로 삼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도 말하더라. 하지만 공동체의 올바른 지표를 만들기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시 3월 31일(토) 오후 4시 <눈꺼풀>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래머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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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세상에 저항하기, 또는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 <소공녀>


 

담배 한 모금과 한 잔의 위스키를 위해서라면 집(정확히는 방)은 포기하겠다. 대개의 경우라면 이 문장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소공녀>의 미소(이솜)의 셈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담배와 위스키를 사랑한다. 자신의 취향이 뭔지를 확실히 아는 미소는 가난한 현실을 이유로 들어가며 그 취향을 포기하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다. 오르는 방세를 감당하느니 오른 담뱃값을 감당하는 쪽을 택한다. 최소한의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선 그녀는 이 상황을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변명이나 합리화가 아니다. 미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또 그 생각대로 살아간다.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로 여행자가 된 미소는 한때 그녀와 밴드를 함께했던 옛 동료들의 집을 하나씩 방문한다. 멤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정과 집에 발목 잡혀 살고 있기에 여행자 미소의 방문이 마냥 편치 않다. 세상 앞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변해버린 자신들과는 달리 세파 속에서도 변치 않고 ‘고상한’ 취향이나 지키고 사는 미소가 달가울 수 없다. 혹자는 미소가 세상을 너무 낭만적으로 사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소라면 ‘낭만이 어때서’라고 답할 것이다.


거칠지만 미소는 2018년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성 낭만주의자의 변형된 한 유형이라고 말해보고 싶다. 최근 몇 년간, 특히나 한국 독립영화 속 풍경에는 20, 30대 심지어 10대 여성들이 처한 가난, 집의 부재 상태, 거리를 떠돎,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위협과 폭력 등의 문제가 도드라졌다. 이 경우 가난과 폭력이 영화의 전면에 서며 그로 인해 주인공의 삶은 더없이 누추해지거나, 타인과 타협하거나, 아예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를 꾸리게 된다. 미소 역시도 가난하고 집(가정)이 없으며 여기저기를 떠돌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적인 시선과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앞선 풍경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미소는 가난과 폭력을 대신해 ‘취향의 사수’를 전면에 세운다. 이때의 취향은 기호를 넘어서는 자기 고집이자 사고방식이며 삶의 태도와 같은 말일 것이다. 자기 자신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데서 이 취향에는 일종의 반항의 냄새가 난다. 이 반항은 낭만주의자의 그것과 유사해 보인다. 낭만주의의 뿌리를 고찰한 이사야 벌린과 그가 관심을 둔 사학자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낭만주의는 ‘어떤 종류의 보편성에도 강력히 저항하는 것’이자 ‘구속받지 않는 강력한 의지와 개인 신념과 이상의 강조’라고 거칠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미소를 낭만주의의 변형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미소가 낭만을 고수하는 방식, 즉 전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되레 자신을 희생하는 식으로 보편성에 제동을 거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밴드 멤버들의 집에 갔을 때 미소는 청소 도우미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해 멤버의 가사를 돌봐준다. 이는 애정하는 상대에게 미소가 마음을 쓰는 방식일 테지만 그녀의 이런 너그러움을 보는 게 마냥 편치만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자신의 의사는 무시한 채 자신을 결혼 상대로 바라본 멤버의 집에서 나올 때, 애인 한솔(안재홍)이 자신에게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말을 할 때 미소는 강력한 저항 대신 일정 부분 자기 감내를 택한다. 그것은 품위를 잃지 않는 미소만의 방식이었을까, 그것이 그녀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고민이 된다. 낭만을 고수하며 동시에 선하기까지 한 인간, 낭만을 고수하기 위해 선함을 체득한 인간. 뭐가 됐든 미소의 저항과 선함 사이의 관계는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할 부분 같다. 좋았던 과거를 잊지 않고 옛 동료들을 먼저 찾아간 건 미소였지만 그 후 멤버들이 다시 모인 자리에 유일하게 없는 이는 미소뿐이다. 그리고 미소는 전에 살던 방보다 더 협소하고 유동적인 곳에 임시로 기거한다. 애인도, 친구도, 심지어 방세를 받으러 오던 주인조차도 없는 완벽한 혼자다. 미소의 여행은 얼마간 계속될 수 있겠지만 그녀의 낭만 고수법은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미소의 세계가 조금 더 자신만의 세계 안쪽으로 좁혀졌다는 신호는 아닐까. 이 징후는 괜찮은 것일까.


정지혜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