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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17 [리뷰] 세상에서 가장 실없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 (1)

세상에서 가장 실없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1959)는 빼어난 걸작들로 이어지던 그의 후기 필모그래피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실없고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예외적인 작품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사로잡는 희귀한 인상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무성 영화기 대표작인 <태어나긴 했지만>(1932)을 리메이크하면서 오즈는 (후기작에 잘 드러난) 특유의 세밀한 일상의 감각과 (초기작의) 기발한 코미디 감각을 결합하여 독특한 활기와 사랑스러운 공기를 영화에 불어넣었다. 거기에 색채도 한몫한다. 오즈는 자신의 두 번째 컬러영화의 주조를 붉은색으로 설정한 후, 거의 모든 쇼트에 짙은 빨강색 소품들을 배치하여 질서 있는 회화적 구도에 긴장과 생기를 부여하였다. <안녕하세요>는 내 생각에 1950년대에 나온 가장 아름다운 색채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서사는 이상하리만치 텅 비어 있다. <태어나긴 했지만>에서 직장 상사에게 굽실대는 아버지에게 실망하여 단식 투쟁을 벌이던 형제는 이번에는 TV를 사달라고 침묵 시위에 들어간다. 말썽꾸러기 형제는 결국 TV를 얻게 되는데, 이게 말할 수 있는 스토리의 전부다.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이 싱거운 결말은 오즈 영화로서는 매우 드문 소망충족의 순간이지만 별다른 교훈이나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세월의 흔적이 그려낸 삶의 회한이나 가족 간의 이별과 죽음에서 오는 옅은 슬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체념이나 실망감이 여기엔 없다. 이 예외적인 세계가 우리에게 안기는 감동은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소하고 어리석고 실없는 순간들이 오즈 세계의 본질을 이룬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는 것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순환하는 세계 속에 반복되는 무용한 말들과 무의미한 실소, 그리고 작은 기쁨들에 있다고 오즈는 말하는 듯하다.


사실 오즈의 세계는 중대하고 지적이고 의미심장한 것들과는 언제나 무관했다. 선형적인 드라마와 선명한 메시지에 대한 기대가 없어도 <안녕하세요>의 서사 전개는 다소 당황스럽다. 오즈는 하교 길에 방귀 놀이에 몰입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영화를 연 다음, 이웃집 아주머니들의 수다스러운 곗돈 소동을 무려 30분 간 이어간다(그 소동은 러닝타임 45분경에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과 오해,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아주 약간의 악의, 그리고 싱거운 해결. 어쩌면 이 모든 문제는 어느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나의 주택 단지로 바꾼 결과인 것만 같다.



공간은 이 이야기의 행방과 캐릭터를 결정짓는 요소다. <안녕하세요>는 거대한 두 개의 송전탑과 높은 제방 사이에 자리 잡은 신흥 주택 단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여기엔 정원으로 열린 커다란 창문이 딸린 오즈의 전통적인 독립 가옥 대신 똑같은 외양의 똑같은 내부 구조를 가진 계획 주택들이 등장한다. 술 취한 옆집 아저씨가 남의 집에 들어가 “빈 집을 봐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상황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마을을 둘러싼 울타리는 있지만 개별 주택을 구분짓는 울타리는 없다. 이웃 간의 거리는 제 집의 이 방과 저 방 사이의 거리만큼 가깝고 그저 제 집의 문만 열면 이웃과 대화가 가능한 거리다. 그리고 그 문은 대부분 열려 있고, 닫혀 있더라도 누구든 일단 열고 들어가는 문이다. 게다가 그 동네는 프레임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높은 제방 탓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한 사회의 축도처럼 보인다. 빈곤에 찌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유한 것도 아닌, 개별적이지만 동시에 공동 주택과 같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1950년대 말 일본의 평균적인 삶. 오즈는 그 집들을 마치 마음이 제각각인 한 가족처럼 찍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방귀 놀이와 스모 TV 시청으로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어른들은 그저 이웃이 없는 곳을 꿈꾼다.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는 이 동네에서 가장 돌출된 인물들이다. 그들은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군요’ 같은 겉치레에 불과한 어른들의 언어 세계를 거부하고, 방귀 놀이와 묵언 투쟁이라는 비언어적인 반항과 유희의 세계에 뛰어든다. 그러나 그들의 비언어적 소통 방식은 부모에게 통하지 않을 뿐더러 동네의 분란을 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건이라 할 만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 즈음이다. 의도치 않은 소풍이 가출이 되어버린 어느 날의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온 날, 미노루 형제는 급한 대로 밥통과 차 주전자를 통째로 끼고 집에서 달아난다. 오즈는 제방 저편의 풀밭에서 반찬도 없이 맨손으로 먹는 미노루 형제의 점심 식사 풍경을 확 트인 넓은 각도의 느슨한 구도로 찍었다. 영화 초반의 반찬 투정하던 아이들은 거기에 없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노상방뇨를 한 다음, 거리의 아이들처럼 밥을 먹는 이 형제는 어른들의 삶의 의례에서 벗어나고, 오즈의 엄격한 미학적 구도에서도 벗어나 있다. 화창한 날씨, 크게 포착된 하늘, 배경으로 언뜻 보이는 강, 저 멀리 차들이 지나가는 다리. 지켜보노라면 입 꼬리가 스르륵 올라가는 그들의 즐거운 소풍은 경찰관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끝이 난다. 다음 장면, 경찰서에는 미노루와 이사무 대신 밥통과 차 주전자가 와 있다. 그 담백하고 무심한 정물은 아무런 수식 없이 아름답다. 내게 그 인서트는 짧은 해방감을 전하는 풀밭에서의 점심 식사 씬을 완결 짓는 오즈 식의 마침표처럼 보였다.


오즈 영화의 지극한 아름다움은 그 무위의 순간들이 텅 빈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와 그저 오즈 식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 생겨난다. 거기서 인물과 집과 풍경과 사물은 우위를 다투지 않고 나란히 공존한다. <안녕하세요>에서 오즈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찌할 수 없는 이야기들(아이의 양육, 자식의 결혼, 부모의 죽음 등)에 아이들의 막무가내 식 세계를 접합시켰다. 체념하고 실망하는 어른들과 달리 이 형제에게 포기와 실패란 없다. 이 영화의 특별한 활기는 아마도 이 어리고 발칙한 승자들의 태도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말로는 호통을 치지만 얼굴에 미소를 숨기지 못한 아버지는 결코 이 아이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한 표정으로 급하게 퇴장하는 류 치슈의 얼굴에서 생의 찰나적인 행복감을 얼핏 보았던 것도 같다.


경력의 마지막 시기에 오즈는 더없이 느긋하고 관용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초기작을 재고하였다. 영화에서 주제나 사건 따위를 지우면 뭐가 남을지를 시험하려던 걸까. 아이들의 방귀 놀이와 더럽혀진 바지로 시작하여 또 다시 방귀 놀이와 빨랫줄에 널린 세장의 팬티로 끝나는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실없는 이야기다. 오즈는 그걸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감독이다.


강소원 l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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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