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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치』(박세가, 다음 웹툰, 송송책방)& 서울아트시네마 ‘2020 포르투갈 영화제’ Poster& 종로3가에서 밥 먹기 8. Image Book 『어름치』(박세가, 다음 웹툰 / 송송책방) ‘노가다’ 현장을 그린 『어름치』를 좋아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힘빠진 그림체도 정감이 가고 느릿한 전개 리듬도 좋고, 각양각색의 인물들도 다들 매력적이다.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라 그런지 공사장 디테일도 신선하고, 은근히 빼곡하게 들어찬 썰렁한 유머도 좋다. 결말 뒤에 찾아오는 여운도 생각보다 크다. 소재 특성상 언뜻 특별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맡은 임무를 완수하느라 땀 흘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시원섭섭한 개운함도 잘 녹아 있다. 이런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어름치』는 최근 본 만화 중 가장 좋은 인상을 남겼다. 또 하나 특히 좋았던 건 ‘건강한 어른’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 창작물에서 근사한 기성 세.. 더보기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 안제이 바이다 <순진한 마법사>Poster& 종로3가에서 밥 먹기 7. Image Book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 (현대문학) 지난 연말에 밥 엡스타인(Bob Eckstein)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서점 일러스트 엽서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가 그림에 이끌려 ‘World’s Greatest Bookstores’라는 책을 원서로 샀는데, 나중에 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에 붙이는 각주’라는 제목으로 ‘현대문학’에서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알게 됐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늘 공간과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솔직히 도서관이나 서점이 늘 부럽다. 몇 년 전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들렀을 때 이를 실감했다. 다케오온센역에서 내려 산기슭까지 이십 여분 여유있게 걷다보면 나오는 작은 온천도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도서관이 있다. 20여만 권의 .. 더보기
다무라 유미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1~4권』& 데이빗 린치 <트윈 픽스>Poster& 종로3가에서 밥 먹기 6. Image Book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1~4권 / 다무라 유미 / 연재 중 소위 ‘순정 만화’의 예쁜 그림체를 갖고 있지만 꽤 끔찍한 사건들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추리 만화다. 왠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약간 눈치도 없어 보이는 천재형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사건 현장에서 멀뚱한 표정으로 사정 없이 진실을 파헤친다. 경찰을 비롯한 조연들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주인공을 견제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도움을 받고 결국 친밀감까지 느낀다. 그리고 주인공은 변함 없이 태연한 표정으로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간다(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즉시 또 다른 사건과 마주친다). 사실 이런 설정과 전개는 많은 소설과 만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만화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요소는 적절한 거리감이다. 백.. 더보기
『화양적연화·택동25』& 스와 노부히로 <듀오> <퍼펙트 커플>Poster& 종로3가에서 밥 먹기 5. Image Book 『화양적연화·택동25』 花樣的年華·澤東廿五 비록 수집가는 아니지만 책이 불러오는 기억들에 의존하는 편이다. 종종 외국 여행 중에 당장의 쓸모와 상관없이 책을 구입하는 이유다. 얼마전 파리 생 미셀의 백 년이 넘는 서점 ‘지베르 죈느(Gibert Jeune)’가 코로나 여파로 내년 3월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 미셀의 악시옹 크리스틴이나 에스파스 생 미셀 영화관을 갔다가 자주 들렸던 이 서점에서 샀던 책들이 책장 구석에 있는데, 꺼내보기 위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기억이 밀려 든다. 그 책들은 이제는 사라질 어떤 장소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될 것이다. 연말에 왕가위 영화를 상영하면서 2016년 가을에 홍콩에서 구입한 책을 오래간만에 꺼내본다. 왕가위의.. 더보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교인문사회연구실(seogyo.net)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지훈이라고 합니다. 줄여서 서교연이라고 부르는데요, 서교동에 위치한 작은 연구실입니다. 인문사회학 내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대학 바깥에서 강의, 포럼, 논문 발표 등의 연구 활동을 하는 공간입니다. 2.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 기억나는 영화적 체험은? 처음으로 임팩트가 강하게 남았던 영화는 이명세 감독의 입니다. 메시지나 주제가 아니라 처음으로 영화의 장면과 구성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해준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았는데, 영화를 볼 때 마다 장면들을 혼자서 이리저리 끼워 맞추는 상상을 해본, 말 그대로 영화적 체험을 곱씹게 해준 영화입니다. 3. 좋아하는 영화 다섯 편을.. 더보기
릴레이 칼럼 8 | 극장이야기 - 뉴욕의 로즈메리 극장 그러니까 지금의 뉴욕은 그때의 뉴욕이 아니다. 25년 전의 얘기다. 카메라를 메고 사냥꾼처럼 맨해튼의 거리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던 때, 유독 나를 사로잡았던 장소가 있었다. 카날 스트릿을 중심으로 로어 맨해튼에 펼쳐진 중국 본토 이민자들의 거주지, 차이나타운. 그곳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유명한 뮤지엄들이 자리 잡은 어퍼 맨해튼과는 냄새부터 달랐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오면 매운 양념으로 철판에 볶은 숙주와 국수 냄새, 협심당파 똘마니 같은 사내들이 뿜어내는 담배 냄새, 팔딱팔딱 생선가게 바닥에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바다 냄새, 만두가게 찜통에서 연신 뿜어내는 증기 냄새, 한때는 1,000명도 넘게 살았다는 작고 오래된 건물의 벽돌 냄새, 젖은 신문지 쪼가리와 검은 흙탕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던 길바닥 냄.. 더보기
아카세가와 겐피이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 미야자키 하야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Poster& 종로3가에서 밥 먹기 4. Image Book : 아카세가와 겐피이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안그라픽스)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 아카세가와 겐피이, 안그라픽스, 2020 후방을 돌아보아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때 전방을 주목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예술에도 전위라는 것이 있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주변은 모두 낡은 것이니 그것을 파괴하면 즉시 새로운 것이 나타날 것이다. 전위예술가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침묵의 다도, 무언의 힘』에서 이런 설명을 다른 식으로 고쳐쓴다. 원래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이 일상 생활에 존재했는데, 근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예술을 추출했고, 예술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등장한다. 그때에 예술이라는 개념을 다시 일상으로 되돌리려 전위예.. 더보기
종로 라커스(Rockers) 종로 라커스(Rockers)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390-1 1.간략한 공간 및 본인소개를 해주세요 라커스(Rockers)는 1999년 6월에 오픈한 종로의 Rock Bar입니다. 로큰롤과 블루스, 소울 등의 음악을 틀고 있습니다. 개업 때부터 60년대와 70년대의 음악 정서가 이 가게의 분위기였고 지금도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님들도 그런 분위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 기억나는 영화적 체험은? 아주 어릴 때 어린이날에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가서 무슨 공룡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성룡의 입니다. 초등학생 관람불가였지만 워낙 관객이 많았기 때문에 형과 형의 친.. 더보기
11월의 레터 오늘부터 서울아트시네마는 전국예술영화관협회와 공동기획으로 “Save Our Cinema -우리 영화의 얼굴”을 시작합니다. 예술영화, 독립영화 상영의 활성화를 위한 행사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네 명의 평론가가 선택한 네 편의 한국 독립영화 상영과 강연이 진행되고, 시네마테크 아카이브 작품인 에릭 로메르의 영화 네 편이 상영됩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판권 기한이 올해까지이기에 아마도 당분간 마지막 상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해 탄생 백주년을 기념한 상영도 진행했지만, 여전히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소수의 영화 애호가 서클을 넘어서 충분히 전달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메르란 이름 뒤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또 다른 로메르는 영화 작업 외에도 이론적 성찰, 열린 교육학으로서 영화를 통한 교육 활동.. 더보기
조르주 페렉 『공간의 종류들』&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poster& 종로3가에서 밥 먹기 3. Image Book : 조르주 페렉 『공간의 종류들』(문학동네) 조르주 페렉 저/김호영 역 | 문학동네 (2019)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집에 있거나 주변을 산책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무료한 시간들은 늘고 평소라면 눈에 잘 들어지 않는 사물들에 눈길이 머물곤 한다. 무질서하게 놓인 책상위의 물건들, 책장 사이에 끼워둔 작은 엽서들, 혹은 집 앞의 이를모를 꽃들과 언덕으로 오르는 골목길들, 집 뒤의 서달산으로 향하는 산책로와 그곳 주변을 별일 없이 돌아다니는 일들. 이런 시간의 활용은 반복적이며 평범해서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멈출 수 없을 정도의 본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덧없음과 근원성. 사람은 필수적인 것들만을 하지는 않고, 그런 식으로 삶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