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교환: 이사키 라쿠에스타-가와세 나오미> 상영 후 이어진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유운성의 비평교감

 

‘2012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8월 2일 저녁, 이사키 라쿠에스타와 가와세 나오미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상영이 끝나고 서신교환 섹션 특별행사로 마련된 첫 번째 비평교감 자리가 이어졌다. 감독들이 영화로 서신을 주고받았듯 국내 비평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유운성이 첫 번째 주자다. 두 비평가가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으로 주고받은 영화와 비평에 대한 생각들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작품을 오늘 처음 보았다. 이런 순간에 늘 반성하는 거지만 ‘아, 이런 영화를 너무 안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 대해 즉자적으로 말하자면, 이사키 라쿠에스타 감독의 영화는 흥미롭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반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작품은 왜 저렇게 찍었는지 잘 모르겠더라. 평소 가와세의 극영화를 좋아하고 그녀가 비범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나르시시즘의 극치를 달리는 것 같다. 반면 라쿠에스타 감독의 작품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여백이 굉장히 많고. 좀 멋있게 이야기하자면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은 접혀있는 부채와 같다’는 벤야민의 말이 떠올랐다. 라쿠에스타의 작품은 자신의 기억이나 주변의 일상적인 자취들에서 시작하지만, 타자에 대한 공감의 의지가 마구 확산되며 에너지를 준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와세는 거기에 전혀 응답을 안 해주더라.

유운성(영화평론가, 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에서 기획해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페르난도 에임브케와 김소영의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 중 하나는 스페인 감독이다. 아무래도 스페인 감독들의 경우 본인들이 생각할 때 에세이적이고 서신적인 양식에 걸맞겠다고 생각한 감독들을 참여시킨 반면, 해외 감독들의 경우 그런 점도 고려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름 있는 감독들을 선정했다. 그래서 빅토르 에리세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혹은 호세 루이스 게린과 요나스 메카스의 서신교환처럼 전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한쪽은 열심히 하는데 다른 쪽이 심드렁해서 균형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혹은 서로가 각자의 표현에 집중해버려서 편지 한 통씩만 보내고 끝난 경우도 있었다. 그런 부분이 오히려 흥미롭다. 주고받는 서신의 양에 구속도 없었고, 처음에 편지를 어떻게 주고받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김영진 평론가의 말씀대로 라쿠에스타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들을 자신이 모르는 해외 감독에게 보내며 교류가 생기기를 바랐던 반면, 가와세의 경우 편지에 대한 응답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기록한 영상들을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라쿠에스타가 이를 보고 자신의 서신을 진행시키는 방식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가와세가 자신의 고향에서 찍은, 기도하는 모습이나 아이의 모습을 보내자 라쿠에스타가 그걸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식이다.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어느 한 쪽이라도 상대방의 편지를 보고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잘 안되더라. 위태위태하면서도 기어이 상대방이 보낸 것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연결시켜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예가 게린과 메카스였던 것 같다.

 

김영진: 이야기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사적인 언급을 좀 할 테니 이해해주시라. 제가 몇 년간 일부러 ‘독립영화만 써보자’하는 결심으로 글을 쓰다가 별로 큰 성과 없이 올해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동안 GV 진행도 많이 했고. 그런데 별로 느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사람들과 엮이면서 평이 둔탁해지더라. ‘이런 부분은 좋지만, 이런 부분은 아쉽다’는, 가장 맥 빠지는 평론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 선배 평론가와 여타 영화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도 이걸로 굉장히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이야기 할 때는 대상이 굉장히 협소해진다. 지지하거나 풍부하게 해석할 영화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약간만 서운한 소리를 해도 감독들은 엄청 뭐라 그런다. (웃음) 그런데, 개인적으로 유운성 평론가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는 편인데, 가끔 ‘어떤 한국 영화를 봤는데 완전 쓰레기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또 어떤 기자나 평론가가 그 영화를 칭찬하는 글을 썼다고 막 뭐라고 해놓더라. (웃음) 유운성 평론가는 특히 외국에서 영화 관련 네트워크를 만들었던 분인데, 우리나라의 비평가들은 어떤 스탠스를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유운성: 기본적으로 저널리즘 비평은 스탠스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씨네21’이나 ‘무비위크’를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호 잡지를 보고 어떤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런 미덕이 있지만 이런 단점도 있다’고 쓰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영화가 어느 정도 단점이 있지만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모든 단점에 눈 감는 게 맞고, 적절히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예 안 쓰거나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평들을 보다 보면 애매한 부분이 많다. 이 사람이 지금 대학원 페이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쓰고 있는 건지. 혹은 이 사람은 이 영화가 어떤 가치가 있다고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린 건지 아닌 건지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평이 결정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령 올해도 신작이 나왔던 홍상수 감독의 경우가 있다. 분명 홍상수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달라지고 있는데, 대략 <옥희의 영화>나 <하하하>쯤부터 그의 영화는 달라지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평들은 점점 지겨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의 영화가 어떤 내적 변화를 겪고 있는지, 혹은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를 꽤 많이 만든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영화의 미학적 프로그램이라는 측면을 파고들어간 평을 본 적이 없다. 대신 매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 영화가 왜 홍상수의 새로운 걸작인지를 입증하기 위한 레토릭들만 난무하기 때문에 홍상수 영화에 대한 평이 지겨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평론가가 다른 평론가를 비판할 때 상호간에 정당하게 실명으로 의견교환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평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작업이다. 저널에 실린 한국 평론들을 읽어보면, 남의 글을 칭찬할 때는 실명을 쓰는 반면 비판할 때는 ‘혹자는’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데 이건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솔직하게 쓰다 보면 적이 많아지긴 하지만, 인신 공격성 표현이 아닌 이상 정당한 공방 때문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다지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이므로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감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상황에서,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인간적인 관계가 끊어진 경우 별로 아쉽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반면 그런 언급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가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사람은 감독으로서도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유운성: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전주영화제 해임 사태 이후 김영진 선생님이 한겨레에 쓰신 글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선배 평론가가 먼저 연락을 주셔서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신 건 처음이었고, 일주일 정도 고민을 해서 메일을 드렸다. 그 답장을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오늘 편지 영화들을 봤는데, 한국에서 평론가들끼리 만나는 대담 자리는 종종 있지만 편지를 교환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그런 기회가 있을까, 기회가 있다면 그런 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자극이 되고. 좀 더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유운성 평론가가 ‘독립영화’라는 계간지에 이서 감독의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에 대한 글을 실었었다. 그 관점이 흥미로워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일주일쯤 지나서 그 자체로 한 편의 글이 될 만한 답변이 왔다. 깜짝 놀랐고, 저는 그걸 인용해서 같은 잡지에 글을 썼다. 이런 식의 교환이, 오프라인으로는 어렵겠지만 온라인에 일종의 거점기지를 만들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유운성 급의 평론가가 5명만 모여도 화제를 끌 것이다. 템포가 좀 늦어도 상관 없으니 거점기지가 있어서 레터 투 레터를 연재한다든지, ‘쓰레기’ 같은 가감 없는 표현들이 오가는 평들이 실린다면 (웃음) 사람들이 많이 찾아 읽을 것 같다.

 

유운성: 불과 20년 전,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이 의견을 주고 받을 때 어쩔 수 없이 시간차나 거리가 존재하던 시기가 지나고 나자 사람들이 오히려 그 시간차나 거리를 요구하게 되는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은 많아지지만 정작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줄어든다는 의식이 많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오늘 보신 서신교환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지난 10년 간 의도적으로 편지 형식을 빌린 프로젝트가 많이 나왔다. 게다가 그런 프로젝트들이 좋은 결과를 보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2002년 무렵에 발간된 <무비 뮤테이션스Movie Mutations> 라는 책이 있다. 조너선 로젠봄과 에이드리언 마틴이 공동 편집한 책인데, 같은 세대에 태어난 평론가들이 서로에게 오늘날의 시네필리아에 대해 쓴 편지와 답신들로 시작한다. 또, 비평적인 작업이 창작의 결과물을 만든 예도 있었다. 올해 전주에서 틀었던 <드라이레벤>이라는 영화가 그 중 하나다. 각각 대략 열 살씩 차이가 나는 세 명의 독일 감독이 6개월 동안 편지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셋이 함께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도 발전시켜 ‘한 마을의 사람들’이라는 아이디어로 각자 90분짜리 장편을 옴니버스로 만든 영화다. 최근 이루어진 이런 식의 공동작업 중에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긴 것 같고, 그런 수단으로 편지라는 방식이 돌아오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김영진 평론가가 말씀하신 대로 평론가들끼리도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서 비평적 공동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그러면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하자,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운성 평론가도 약속하신 거다. 아까 창을 휘두르지는 않겠다고 하셨으니까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서신을 교환하는 자리로. (웃음) 사실 그런 걸 영화제가 주축이 되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홈페이지가 1년 내내 열려있는데도 영화제 때만 쓰지 않나. 거기에 비평을 모아서 뭔가 기획을 하려는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유운성: 이상하게 오프라인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권위부여가 너무 큰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비평가도 많지 않지만, 운영을 한다고 해도 오프라인에는 정련된 글을 발표하는 반면 블로그에는 ‘오늘 시사회를 갔다 왔는데 배우가 아름답더군요’ 뭐 이런 이야기만 한다. (웃음) 개인적으로 해외 평론가들의 블로그나 SNS에 자주 들어가보는 편인데, 그 안에서 평론가들끼리 논쟁이 개진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한 평론가가 블로그에 ‘지금 이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봤는데 이렇고 저렇다’라고 써놓으면 그 밑에 덧글을 다는 사람들이 거의 현역 평론가들이다. 그러면서 활발하게 의견 교환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일단 평론가들이 블로그에 덧글 다는 것 자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달더라도 ‘잘 읽었습니다’ 같은 하나마나한 덧글이 대부분이다. (웃음) 21세기 십 년이 넘었으니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창구도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미국 쪽은 우리처럼 등단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온라인상에 비평적으로 유용한 글을 쓰다가 저널에 의해 발굴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한국은 평을 쓰려면 절차가 좀 있어야 하고, 온-오프라인의 위계와 장벽도 있다. 평론가들끼리도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고, 평론가와 관객, 혹은 아마추어 필자들 사이에서도 교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김영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도 어떤 형태로든 덧글을 달아본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모순적이기도 하다. (웃음) 어쨌든 오늘 우리끼리만 이야기 한 건 아닌 것 같고, 관객분들도 함께 생각하고 들어주신 게 느껴진다. (웃음) 늦은 시간까지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정리: 박예하(관객 에디터) 사진: 정지은(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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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조셉로지의 <하인>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와의 시네토크

 

지난 4월 13일 저녁 국내에서 처음 상영되는 조셉 로지 감독의 <하인> 상영 후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조셉 로지 감독의 필모그래피부터 영화에 대한 해설까지 흥미롭게 들려준 그의 영화에 대한 해설을 여기에 옮긴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영화 재밌지 않나?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는 정반대 결과를 갖고 있는 영화다. 아마도 1960년대와 2010년 이라는 시대적 차이 때문 일거다. 김기영 감독이 <하녀>와도 유사성이 있다. 동시대인으로서 어떻게 이런 유사한 주제의식을 갖게 됐는지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다.

조셉로지의 필모그래피는 유럽에서 꾸준히 영화를 찍은 덕에 상당히 다양한 편이고 수준도 들쑥날쑥한 편이다. 퇴작도 좀 있고 그렇지만 지금 본 <하인 The servant>이나<사랑의 상처 Accident>는 두말 할 나위 없는 그의 최고작 중 하나다.

 

조셉로지 감독은 미국 감독인데 좌익 쪽에 관심이 많아서 러시아에서 영화를 했고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에게서 사사를 받기도 했다더라. 상당히 레드컬러에 있던 사람이라는 얘긴데, 50년대 초에 B무비 몇 편을 찍은 다음 매카시 광풍이 불 때 증언하기를 거부하고 유럽으로 망명했다. 돌이켜보면 미국에 있는 것보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유럽에 갔을 때 네오리얼리즘이 한바탕 지나가고 영화 사업이 부흥할 무렵이어서 소위 모던시네마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안소니 퀸의 자서전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데, <길>이후 치네치타 스튜디오가 있는 거리의 수많은 카페에는 전 세계 영화인들이 다 모여 있었다더라. 여기서 펠리니 감독이 ‘내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200미터 가는 동안에 몇 명의 프로듀서들이 나한테 딜을 제안을 하는 지 나랑 내기 할래? 몇 명 이하면 누가 술값을 내고’라고 내기를 했는데 펠리니가 이겼단다. 그럴 정도로 유럽 영화산업이 좋을 때였는데 누벨바그가 나오고 무엇보다 그런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들이 있었을 때 조셉 로지가 건너간 거다. 사실, 굉장히 영화가 지적이고 지식인 관객들이 매우 좋아할만한데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만나면서 일년에 한 번 꼴로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지금의 대표작들도 많이 나오게 된 거다.

 

이 영화는 보여 지는 것, 들려지는 것 등 모든 레이어에서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 영화 처음 시작부분, 토니에 집에 갔을 때부터 모든 앵글이 극적이다. 전경과 후경에 인물을 놓고 거리를 강조하는 앵글을 매우 많이 사용 한다. 전경에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 우리를 보고 있으며 깊이감이 강하게 잡혀있는 구조로 구도가 잡혀있다.

초반에는 토니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공간의 지배권을 계속 갖고 있다. 수돗물 똑똑 떨어지는 그날 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와이드로 거리를 두고 공간감과 부피감이 유지가 되는데 토니하고 수잔이 항상 점유권을 갖고 있는데 계속 휴고 바렛이 끼어든다. 상황적으로도 끼어들지만, 아까처럼 노크 안하고 들어오듯. 그럴 때도 구도 상으로 문이 열려있고 거울로 토니하고 수잔이 있을 때 아직 안 들어온 상태가 보이는 등으로 그들의 구도에 바렛의 계속되는 침입의 모티브를 시각적으로 강조 한다. 수돗물 떨어지는 그 날 밤 이후에 조금씩 역전되는데 이후 수시로 바뀐다. 이미 그때는 이미 영화 중반까지 확립된 지배권의 우열관계는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조명을 굉장히 특이하게 해서 토니가 앞에 있어도 우월한 느낌이 아니라 불쌍해 보인다. 극적인 앵글 하에서 거리를 강조하는 공간의 깊이감을 통해서 지배관계 전복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또 이 영화에 거울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거울이 있으면 거울에 비친 인물을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화면 속 인물과 같은 위치를 차지함으로서 동일화되기 쉬운 앵글이다. 토니같은 경우 굉장히 강해 보이는데 귀족이고 유산을 받았고 출신도 좋고 상류층인데 굉장히 단단해 보이는 그의 정체성이 사실 굉장히 연약하다는 것을 계속 구도 상으로 암시하고 있다. 또 그 빛과 조명이 서양식은 우리와 달라 굉장히 그림자를 많이 쓴 걸 알 수 있는데 가령 심야에 들어왔을 때 그림자가 말을 한다. 당당하게 그림자가 말을 하고 심지어 토니를 압도하고 있다. 또 사운드나 연상효과도 잘 쓰고 있는데 후반부에 숨바꼭질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장면은 저항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그 다음 신이 비가 오면서 그 물줄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또 악마 같은 여자가 찾아와서 다시 연극을 하고, 그 때 조명이 어떻게 그렇게 비가 오는 와중에 인물의 그림자를 불규칙하게 흐르는 하는 지. 이런 식으로 이전에 반복되어 왔던 것들이 연상 작용을 일으키며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며 시청각적 효과들이 상승하는 굉장히 공 감각적이다.

또 부자 집에만 있는 많은 그림들과 사진들을 이용한 구도들도 있다. 초반에는 전형적인 귀족적 초상화들, 정돈돼있고 권위적이고 단아한 것들 위주로 프레이밍을 많이 하다 나중부터는 훨씬 음침하고 현대적인 그림들이 프레이밍이 많이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 소용돌이치는 것이 마지막 파티장면 씬이다. 일단 파티 장면 자체가 그림의 한 장면처럼 구도가 잡혀있고 여자들이 옷도 그렇게 입고 있다. 마치 귀부인들처럼. 하지만 근데 전부 광기에 제정신으로 안 보인다. 그게 어디 파티에 가는 사람들처럼 보이나. 카페에서 봤던 그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좀비처럼 앉아있고. 초반에 보여줬던 귀족사회의 단아함 권위 우아함 이런 것들을 보여줬던 구도로 앉아있는데 그 내면은 정 반대인 그런 프레임으로 앉아있고 정중앙에 문제의 그녀 베라가 거울 앞에 있다. 사건의 지휘자는 바렛이지만 실행자인 그녀. 여기서 수잔의 캐릭터도 매우 재밌는데 처음 수잔은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정도로 싸늘하게 생겼고 직감도 좋다. 하지만 수잔도 무너지고 만다. 그런 식으로 기존에 갖고 있었던 아이덴터티가 다 허물어져버리는 이런 것들을 이 서사적 흐름 말고 시청각적인 것을 다 동원해서 관객들을 설득을 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무너지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것이 당시 시대적 분위기였던 것 같다. 영국이란 사회는 사실 완강한 계급사회이고 지금도 그 틀이 유지되고 있는. 우리는 아직 집안 따지고 그런 건 남아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왕족이 다 망했고 수직 이동이 굉장히 심했던 사회를 살지 않았나? 20세기엔, 요즘엔 우리도 계급사회가 됐는데. 저 사회는 수직이동이 불가능한 고착된 사회인 거다. 레이몬드 윌리엄스라는 유명한 문화 평론가이자 문화이론가가 있는데 그분이 노동자의 아들인데 옥스퍼드에 들어갔다. 그런데 레이몬드 아버지 친구들이 레이몬드 아버지와 레이몬드를 비난했다더라. 너는 노동자의 자식이 왜 대학에 갈 수 있었고 또 옥스퍼드에? 우리 같으면 동네잔치 하고 했을 텐데 거긴 오히려 거꾸로 자기 계급에 프라이드를 갖고 살아가는 사회였던 거다.

 

60년대는 모든 것이 해체되는 사회였고, 60년대 후반에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그 유사혁명의 기운을 생각해보더라도 그 전까지 여러 가지 전조들이 있었겠다. 영국사회도 분명히 그런 게 있었고, 비틀즈가 나오고 흔들리는 런던 이런 얘기가 있었듯이, 그런 식의 시대적 맥락과 조우하면서 또 이 조셉 로지는 막시스트였기 때문에 그런 얘길 한 거 같다. 가만이 보면 그들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요인이 있었다. 우리의 추론으로도 엄청 경계가 심하지 않은가. 저 계급은 조금만 프레임에서도 벗어나면 안 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단단함으로 뭉쳐진 폐쇄성이 아니고 사실은 굉장히 연약함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일단 저 휴고 바렛도 굉장히 겉으로는 빈틈없는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허물어지지 않나? 자신의 정욕에 무너진 거다. 애인한테 준비가 안 됐는데도 떠나자고 한 건 자기 자신을 추수를 수 없는 것에 대해 안간힘을 쓰는 거다.

 

그리고 집을 나와서 보면 여동생도 아니었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그날 밤엔 그리고 약혼녀와의 관계도 깨지고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기존의 자기 생활과 다르게 완전히 폐인처럼 살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인물은 자발적인 생명력이 없다. 그걸 암시하는 모습이 난간에 프레이밍 되는 모습이 감옥에 갇힌 것 같이 보이고 그 안에 내적인 생명력이 전혀 없는 인간으로 주인공을 그려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되게 야비하고 비열하지만 무서운 남녀 주인공인 토니와 베라. 이들처럼 감당 안 되는 캐릭터들은 사실 지금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웃음) 굉장히 욕망에 충실하고 카멜레온 같이 변하는데 모럴이 없다. 대신 굉장한 생명력이 있는 건데 토니는 이런 생명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점점 퇴행한다. 그래서 마치 엄마 젖을 먹듯 술을 먹으면서 유치한 어린애들의 놀이를 하게 된다.

조셉 로지라는 감독은 당시의 영국의 유한계급의 내부를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것으로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영화의 외부, 텍스트를 감싸고 있던 당시 사회의 콘텍스트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그런 기운이 있지 않았나 싶다. 예민한 숙주처럼 조셉 로지라는 감독이 그걸 영화화 한 거고, 그게 그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킨 거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고전이 된 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다.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거기에서도 여전히 침입의 모티브가 중요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관계도 중요하며 그건 거의 모티브가 똑같다. 근데 사회적 맥락에서 다른데, 당시 우리나라는 사회적 중산층이라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이층집을 짓게 되고 그리고 거기로 이사를 가는 집안이, 와이프가 열심히 삯바느질 하고 있고 남편은 피아노 알바하고 있는데 고객이 여공들인 웃긴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중산층이면 얼마나 허약하겠는가. 그 허약한 내부 안에 팜므파탈이 들어가 무너뜨린 거다. 근데 얘기가 되는 게, 그 당시에 사회문제가 굉장히 많았다더라. 식모 때문에 패가망신한 가장들이 많았다던데, 당시 신문 사회면에서. 영화 볼 때 낮에 가면 아줌마들이 많았는데 이쪽은 주인아줌마 이쪽은 시장 보러 나온 핑계인 가정부들로 웃지 못 할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더라.

 

비슷한 주제의식과 모티브를 갖고 있지만 그 토대는 다르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이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앵글보다는 시각적 모티브를 굉장히 많이 사용했다. 미닫이문이 열리면 안방이 펼쳐지는 장면은 엄청난 미장센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담배 연기를 남자 얼굴에 뿜을 때 마치 영토 확장을 위한 침입처럼 담배 연기도 매우 잘 쓰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원작에 대한 리스팩트가 없다. 현재는 그게 안 통한다고 생각한 거다. 첫날 밤 이후 이정제가 출근하기 전에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동침을 했으면 대부분은 여자가 심리적 지배권을 갖고 있다. 이런 얘기하면 또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냥 생각을 추론 해보자는 거다. (웃음) 자신만만하게 음식을 해서 가는데 그런데 이정재가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거기서 오히려 피아노에 압도를 당한다. 너는 내 계급이 아니라는 것을 시위하고 있는 거다. 그 재벌2세가 그리고 돈을 주면서 게임은 끝난다. 그 김기영의 하녀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돼 버린 거다. 그 계단 모티브도 김기영 영화에서처럼 안 쓰이고 이동이 안 되는 의미로 그리고 그 것을 계속 또 강조하고 있다. 시대가 다르다는 거다. 그 쪽 계급 자체가 난공불락인 거다. 결국은 자살 퍼포먼스 한 거 밖에 없게 된다. 이게 임상수가 보는 200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라는 거다. 김기영의 하녀와 전혀 다른, 대신에 임상수 감독은 특유의 시니컬한 장면을 마지막에 남겨 놓는데 ‘결국 이런 니들 별거 없다. 그렇게 살아봐야 맑고 천진했던 애를 괴물로 키우는 거 밖에 더 해?’라는 잔인한 저주의 논평을 엔딩에 해 놓고, 그 전에는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자살하는 여자처럼 전도연도 자살을 시키고 끝을 맺는다. 그게 2000년대 후반의 한국사회라는 건데 일리 있는 해석이라고 본다.

 

그렇게 각자의 시대적 콘텍스트를 갖고 나온 영화들인데 조셉로지의 <하인>이라는 영화는 그 당시의 60년대의 시대적 문맥에서 굉장히 시사적인 파워를 갖고 있고 이 분이 이런 유형의 소재를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 제가 이분 영화 중에 또 좋아하는 게 <미스터 클레인Mr. Klein>이라는 영화인데 알랭들롱이 나오는 영화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영화다. 알랭들롱이 조셉 로지 감독을 모셔다가 영화를 제작을 하고 자기가 주연을 했다. 영화에서 알랭들롱은 아주 악질적인 미술골동품 수집가이고, 유대인 잡아들일 때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고가품들을 헐값에 사들이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런데 자신과 똑같은 이름인 유대인인 클라인이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주소를 그쪽으로 이전을 해 놓음으로써 알랭들롱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님을 확인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오히려 유대인 클라인의 아이덴티티를 점점 알아가게 된다. 유대인 클라인은 자기와 정 반대로 살았다. 친구도 너무 많고, 굉장히 지적이고, 자기의 거울 같은 걸 보는 건데 결국 나중에 두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섞인다. 그래서 주위의 도움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유대인 클라인의 안위가 궁금해서 또 수용소로 간다. 친구가 말리는데도 자꾸 유대인 클라인의 뒤통수를 쫓아 들어가지만 결국 그곳에는 온통 유대인 뿐, 그것을 보고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라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도 <하인>처럼 거울 미장센이 엄청 나온다. 어디 갈 때마다 있다. 거울을 보면서 알랭들롱이 나중에 거울에 있는 게 자기인지 의심하는. 사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굉장히 강력한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지만 그게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것인지에 대해서 그 복합적인 추론에 관해서 감독은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조셉로지 감독은 막시스트였으니까 당연히 사회변혁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현대사가 어떻게 보면 좌파들에게는 좌절의 역사이지 않은가. 소비에트 공산화가 됐는데 스탈린 이후에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때도 프랑코가 이겼고 이럴 때 60년대 말에 로지가 이런 인터뷰를 했다. 스페인 내전이 지난 한참 후에 50년대 초반인가 스페인 내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는데 어떤 정갈한 사람이 세상은 선과 악 좋은 놈 나쁜 놈 이런 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굉장히 복잡하다. 지당한 명제이기는 한데 그 당시 감독에게는 굉장한 충격을 줬단다. 앞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이 세상의 중층적인 그런 면을 탐구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작품세계에 기초를 세우는 데 중요한 원칙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아이덴티티의 교환 경쟁 전복 등이 개인적인 것이 아닌 소사이어티 내에서 가정 내에서 관계 내에서 굉장히 다양한 레이어로 펼쳐지는 것들을 즐겨 다루고, 그럴 때 이 조셉 로지 감독의 뛰어난 비쥬얼 스토리텔링이 빛을 발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관객1: 다른 영국배우들 연기는 자주 봤지만 더크 보가드라는 배우는 거의 못 봤는데 오늘 보니까 연기 매우 잘 하더라. <나이트포터>에 출연한 걸로 아는데 그 외에 다른 출연작과 경력에 대해서 알고 싶다.

김영진: 제일 유명한 출연작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거기서 시한부로 죽어가는 말로를 연기한다. 사실 저런 식의 마스크와 감성을 갖고 있는 배우는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남자지만 굉장히 섬세한 모습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악하게 보일 때와 굉장히 연약하게 보일 때가 둘 다 어울리는 그런 유형의 마스크와 연기력을 보여 준다. 조셉 로지 감독의 영화에 많이 출연 했다. 더크 보가트는 로지의 사회주의 사상에는 절대 공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너무 헌신적으로 잘 해 주니까 조셉로지가 너무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베니스에서 죽다>는 말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비스콘티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기가 많이 투사된 거다. 두 개의 자아가 있는데 그 영화에는. 토마스 만의 소설 그대로 말러가 주인공이지만 비스콘티도 영화 찍을 때, 쇠약해서 휠체어에 타고 연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보면 줌이 굉장히 많은데 예전 같으면 트랙으로 다 했을 것을 앉아서 했기 때문에 줌으로만 당겨 찍었다더라. 더크 보가트가 연기 하는 인물은 늙은 말런데 페스트가 창궐하고 있는데 베니스와 와서 휴양을 한다. 그러다 너무 아름다운 미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저 먼데서 보기만 한다.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게 영화의 내용이다. 그 생명력에 반하는 거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바닷가에서 역광을 받으면서 서있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를 보면서 눈을 감는데 해변 가에서 너무너무 잘 어울린다.

 

관객2: 거울이나 그림자 조명, 이런 기법을 얘기해 주셨다. 영화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게 사람의 신체 중에서 발이 에로틱한 분위기로 부각이 되더라. 신체 일부 중에서 왜 발이 이렇게 부각되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페티쉬라 한다. 신체 일부에 대한 패티쉬. 우리가 욕망을 느낀다고 할 때, 몸 전체로의 사랑이 아니라 어떤 인화점이 있지 않은가. 구두나 긴 손가락, 손톱만 보면 미치는... 로지 감독은 발에 대한 페티쉬가 있는 것 같다. 공중전화에서 베라에게 전화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들인데 발을 보지 않는가? 영화 처음 볼 때 관객들이 깜짝 놀라는데, 욕설을 퍼부으니까, 근데 이런 반응은 욕망을 느끼는 거에 대한 역반응일 수 있다. 바렛의 시점으로 본 그 샷이 있었기 때문에 비치라고 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에 성냥불을 그은 것이다. 베라도 마찬가진데 그런 구도를 봤을 때 화면상의 논리나 전조로는 베라의 발 때문에 틀림없이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감독들은 패티쉬가 있다. 음악도 블루스와 재즈를 쓰고 가사도 퇴폐적이면서도 매혹적이다. 뭔가 영화 전체가 느낌이 관능적이다.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다루고 있는 주요 사건도 그것 때문에 다 사단이 일어나니까.

 

정리: 김준완(관객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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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와 도시로 미후네 콤비의 마지막 작품인 <붉은 수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작품 중 분기점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붉은 수염> 이후로 그의 영화는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갔으며, 미후네 도시로와 함께 했던 시기의 파워풀하고 오락적인 측면은 이후 1970년대 그의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다. 1950~60년대가 그의 커리어에서 있어서 전성기였다고 하면, 1970년대 이후의 영화들은 일본 영화의 천황이라는 아이러니한 명칭으로 불리면서도 거대한 스케일의 실험을 거듭했던 후기 구로사와 영화의 또 다른 행보이다.


<붉은 수염>은 도시로 미후네의 매력뿐만 아니라 1960년대 구로사와 아키라가 보여주었던 모든 영화적 요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에도 시대 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1960년대 영화들에서 보여졌던 특질들, 즉 서민들의 피폐한 생활과 그 안에서 넘쳐나는 인간미,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도시로 미후네의 시니컬하면서도 여유로운 초인의 이미지, 세상사 모든 희로애락을 축소해놓은 듯한 소우주로서의 완벽하게 닫힌 하나의 공간이 모두 존재한다. 테크니컬한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다수의 인물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적절하게 배치하며 이동시키는 아키라 식의 화려한 미장센과 카메라의 운용이 돋보인다. 서양 의술을 배운 오만하고 야심찬 젊은 의사 야쓰모토가 뒷모습을 보이며 '붉은 수염'의 병원으로 들어가는 롱 테이크로 이루어진 첫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1960년대 영화들에서 많이 보이는 도입부의 수법으로, 구로사와 영화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첫 장면들 중 하나인 <요짐보>(1961)를 연상시킨다.

세 시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에 인터미션까지 존재하는 이 영화는 병원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의사 붉은 수염과 약혼녀의 배신으로 인해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젊은 의사 야쓰모토를 중심으로 한다. 더불어 그의 병원에 들어온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사연을 다루는 일종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한 붉은 수염은 이야기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수렴하고 논평하는 신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젊은 의사 야쓰모토는 일종의 관찰자로서 붉은 수염의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나간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미후네 도시로는 단순한 배우 이상의 역할을 해 왔으며, 그의 캐릭터는 문자 그대로 구로사와의 영화 속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콤비의 마지막 작품인 <붉은 수염>에서 미후네가 연기하는 붉은 수염은 거의 초인에 가까운 완성형의 인간인 동시에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붉은 수염>은 구로사와 아키라와 도시로 미후네가 함께 만든 가장 원숙한 영화인 동시에 그들이 함께 했던 전성기에 대한 마침표처럼 느껴지는 기이한 관조적 정서를 지니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by
최은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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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일 금요일 저녁 <플레이어> 상영 후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에 애정을 바치는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플레이어>(1992)는 할리우드에 대한 로버트 알트만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 사람들이 이렇게 비열하게 나온 영화가 또 있을까. <선셋대로>같은 영화처럼 ‘인사이드 할리우드’ 유형에 속한 영화들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할리우드 내부 사람들을 비열하게 그린 영화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알트만은 80년대 내내 할리우드 주류 바깥으로 추방된 채, 소규모 자본의 영화만 찍고 있었고, 거의 잊혀져가던 이름이었다. 마치 지금의 데이비드 린치 같았다. 그의 영화세계는 이미 빛을 발하고 있지만, 할리우드의 입장에서 보면 다시는 프로젝트를 맡겨서는 안 될 감독으로 찍혀있는 그런 상태였다. 할리우드의 내부 시스템이 변하기 시작했던 건 60년대 말부터이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1세대들의 시대가 가고, 60년대 말부터 할리우드가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 쯤으로 되고나서부터, 60년대 말부터 70년대 후반까지, 뉴 할리우드 시네마가 막 기승을 부릴 때, 젊은 감독들에게 완전히 권력을 내줬던 시기, 그래서 코폴라, 스콜세지, 드팔마 같은 사람들이 할리우드의 주류 감독이 되었던 아주 좋았던 시대가 80년 무렵에는 장렬히 끝난다. 이후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주도하는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열리고, 할리우드의 고급인력들은 아이비리그의 MBA를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는데, 오늘날 한국영화도 그렇게 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데이터에 의존해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영화 제작에 MBA 경영기법을 도입하면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무작위로 모니터를 한다. 데이터로 만들어서 편집할 때도 모니터하고, <플레이어>의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그렇게 해서 영화의 엔딩도 바꾼다. 할리우드에서는 지금도 개봉하기 전에 시사회를 해서 엔딩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영화가 좋아지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하튼 그런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게 80년대고 90년대는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계속 할리우드의 자본이 갈아타면서 금융자본이 완전히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러면서 할리우드가 이제는 완전히 돈을 물 쓰듯 하는데, 상당 부분은 필요 없이 물 쓰듯 하는 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그런 과정 속에서 굉장히 물화되어가는 무의식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관객들, 특히 대학생들이 굉장히 크리티컬했다. 미국영화의 해피엔딩의 시대가 가고 언허피엔딩의 시대가 와서 70년대의 대부분의 영화의 엔딩은 언해피엔딩이었다. 그런 영화들이 흥행을 했던 시대였고, 그때 알트만도 스타감독이 되었다. 알트만은 사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다른 세대와는 차이가 있다. 이미 50년대부터 텔레비전 작업을 계속 하면서 간간히 영화를 찍었던 감독인데, 굉장히 과시적이고 야심이 많았던 사람인 것 같다. 알트만은 굉장히 인습 파괴적이고 풍자적인 반전영화 <매쉬>를 만들어서 스타감독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70년대의 알트만은 <매쉬>의 흥행으로 버텼던 셈이다. 그 영화가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알트만은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를 찍었는데, 이 사람이 찍으면 그 장르는 망가진다. 이를테면 <맥케이브와 밀러부인>에선 존 포드 이후로 이어져 왔던 웨스턴의 신화적 기운이 아주 속화된 채로 해체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크게 흥행적으로도 바쳐준 영화가 <내쉬빌>이다. 아주 이상적인 열망들이 있는 예술가를 보여주면서 서서히 다른 기운에 잠식 되어가는 쇼비즈니스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대부>와 더불어서 70년대 대표적인 미국영화로 인식된다. 그 이후로는 다시 잘 안 풀리다가, <플레이어>로 다시 재기하는데, 그 이후의 과정도 그렇고, 알트만의 작업은 태작과 성공작을 계속 오가면서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던 것 같다.
로버트 알트만은 스타일이 앞으로 튀어나올 때 영화가 망가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영화가 바로 <숏컷>이다. 이 영화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걸작이지만, 그 뒤로 계속 굴곡이 있었다. 깐느영화제에 <캔사스 시티>를 출품했었는데,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미국에서는 알트만을 가리켜서 ‘유럽인이 되고 싶은 미국인’이라고 비웃고, 프랑스에서는 ‘할리우드의 레지스탕스’라고 존경해주었다. 알트만은 부침이 심한 그런 경력 속에서도 끝까지 반골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의 냉소주의는 미국 영화감독 중에 이런 사람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굉장히 차가운 온도로 끝까지 밀어붙인다.
<플레이어>는 꽤 흥행한 영화인데 알트만의 중에 가장 전통적인 플롯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면에서 특기할만한 건 사운드 오버랩이다. 화면에서 카메라가 곧잘 헤집고 다니는데, 스타일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기보다 예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짧은 시간 안에 촬영을 하기 위해 시도 했던 카메라 무브먼트가 스타일에 있어서도 굉장히 잘 들어맞았다. 사운드들, 대사들이 바톤 터치하듯 진행되면서 디졸브와 오버랩이 많이 된다. <매쉬>같은 영화에서 사운드도 딥포커스가 가능하구나 싶을 정도로 정말 창의적으로 했던 것에 비하면 <플레이어>에서는 그리 과하게는 안했다. 알트만은 사운드에 뛰어난 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줌을 통해 공간을 신축성 있게 좁혔다 넓히면서 드라마를 움직여가는 가운데, 소리를 아주 민감하게 잘 조절하고 있다.
알트만에 대해서 대체로 호의적인 평을 썼으며, 지속적인 후원자였던 사람 중에 한 명이 폴린 카엘이라는 평론가이다. 지금은 미국도 마케팅이 세지면서 사실 평론이 개입할 틈이 없어지고 평론이 거의 사멸해 가고 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비평이 힘이 있었기 때문에 폴린 카엘이 지지한다고 하면, 영화가 흥행하고 그랬었다. 그녀는 알트만에 대해 지속적으로 호의적이었다. 반면 로빈 우드 같은 평론가는 알트만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그의 저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를 보면 초반부에 알트만 영화에 대한 비평이 있는데 ‘젠체하는 속물’ 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고 있다. 미국평론가들이 속물이라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드 팔마는 히치콕을 베낀다고 해서 독창성이 없다고 평생 비판을 받았고, 미국 내에서 호의적인 평을 받은 적이 없었던 데 반해, 알트만에 대해선 미국평론가들이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안토니오니 같은 유럽 영화의 영향을 받아서 예술 영화를 추구하니까. 루빈 우드가 보기에는 장르를 가지고 폼을 잡고 있으니 안 맞는다는 거라고 하면서, 혁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이비혁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트만의 모든 영화들이 70년대의 미국영화와 사회에 만연해 있던 어떤 재앙·파국의 느낌, 한 사회가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잘 재현하는 감독이라는 평가 내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알트만의 영화 중에 <숏컷>이나 <내쉬빌>을 좋아한다. 알트만은 영화감독으로서 여하튼 계속 영화를 찍었다는 것,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실패작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패작을 찍으면서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 태작과 실패작과 가끔씩 걸작을 찍으면서,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반골정신, 냉소주의, 시니컬한 태도로 팔십 평생을 일관하면서, 형식·주제·태도를 관통하는 영화들을 계속 찍었다는 점이 대단하다. 점점 이런 사람을 보기가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요즘의 상황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자본의 매커니즘이 더욱 세져서, 아예 초저예산으로 가거나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영화 감독은 물론 재능도 중요하지만, 뚝심·베짱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알트만은 그런 면에서 보면 해볼 거 다해본 사람이고, 그런 게 진짜 영화감독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플레이어> 베짱있는 반골 감독의 아주 흥미로운 소품이다. 영화가 그리 정교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속도감으로 밀어붙인다. 플롯의 허점이 많지만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속도감으로 밀고나가면서 결국 플롯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할리우드 피플들에 대한 얘기, 영화사 책임자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가에 대한 얘기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알트만의 후기 영화의 징검다리를 역할을 하는 영화이면서,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고백이다.



관객1: 마지막 작품 <프레니 홈 컴패니언>은 알트만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따뜻한 영화이다. 원래 성향에 비해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
김영진: 말씀하신대로 의외로 따뜻한 알트만의 영화이다. 존 휴스턴의 유작 <죽은 자들>을 보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이 원작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죽음이 임박해서 남기는 작업이라는 어떤 느낌들이 있다. <프레니 홈 컴패니언>을 만들 때, 알트만은 계속 몸이 안 좋았었다. 영화를 보면 왠지 따뜻하게 안녕 하는 느낌이 있다.

관객2: 혹시 이런 내용을 충무로를 배경으로 만든다면 어떤 감독이 할 수 있을까.
김영진: 제가 보기엔 없을 거 같은데..(웃음) <플레이어> 보다 훨씬 부드러운데, 60년대에 김수용 감독의 <어느 여배우의 고백>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이야기에 정형적인 신파스토리가 덧붙여있다. 당시 한국영화의 환경에 대한 부분들이 재밌다. <플레이어>는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독립영화 정도의 제작규모이고, 메이저 자본으로는 찍기 힘든 영화다. 우리나라는 완전히 양극화이다 보니 이런 조건에 있는 감독이 일단 없다.

정리: 장지혜 관객 에디터 사진: 조유성 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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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강좌] 오즈 야스지로를 말한다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기간 중에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세 차례의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그 마지막 강좌로 지난 9월 30일 저녁 <고하야가와가의 가을> 상영 후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오즈 영화에서의 감정에 관하여’란 주제 때문인지 흥미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 강연 현장을 여기에 싣는다.


김영진(명지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고하야와가의 가을>이라는 영화는 잘 아시듯이 오즈 야스지로의 후기작 중 하나로, 이후에 <꽁치의 맛>을 찍고 돌아가셨다. 개인적으로 오즈의 후기작들도 좋아한다. 보통의 나이 든 감독의 영화 같지가 않다. 주인공인 만베이라는 캐릭터는 이전까지의 오즈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노인의 캐릭터와는 다르다. 철없는 노인의 모습인데, 나이가 들면 보통 지혜와 성숙함을 가진다는 생각에 반해, 노인이 된 오즈 본인이 늚음에 대해 그런 관점을 보인다는 것이 특이하다. 어떻게 보면 냉혹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느낌도 있다.
오즈는 당대의 거장이었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찍을 당시는 이런저런 공격도 많이 받고 있었을 무렵이기도 했다. 60년대에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고, 영화 지형도 급격히 바뀌게 된다. 스튜디오 시스템이 무너지고, 희미하게나마 자주영화의 시대가 열리고, 오시마 나기사 같은 감독들이 주류로 떠오를 때이다. 마치 미국에서 60년대의 존 포드가 그랬던 것처럼 오즈 역시 낡은 세대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즈는 그를 비판했던 어느 젊은 감독을 나중에 만나 ‘영화감독이라는 것은 다리 밑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창녀 같은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임종 무렵에는 ‘영화는 사건이 아니라 드라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를 굉장히 크게 생각하고, 영화는 중요한 것을 찍어야한다는 경향에 맞서 오즈는 늘 홈드라마만 찍었던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서는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혼담이 오가고 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가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왜일까.
오즈는 배우가 연기를 못하게 한다.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으면 나중에는 배우가 지칠 정도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찍었다고 한다. 오즈의 영화를 보면 연기가 굉장히 양식화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감정이 쌓인다. 비결이 뭘까. 일단 내러티브에서 보면 일반적인 영화에서 계속 끌고 가는 부분을 잘라내고, 내러티브 전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부분을 길게 찍는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영화에서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들을 묘사하지 않고, 반대로 일반적으로 누락되는 것들을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 느낌이 굉장히 묘한데, 그 가운데서 우리는 공간에 대한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공간이다. 이는 오즈 영화의 특징적인 면이다. 이를테면 만약 아버지와 딸의 얘기라면, 딸을 시집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늘 딸이 있던 2층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비어있는 2층의 거실이나 침실을 보여주고 나면 그제야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이 밀려들면서 끝난다. 상실감이나 부재의 느낌이라는 것은 우리가 늘 함께 있던 공간에 누군가가 없을 때 절실하게 느껴진다. <고하야와가의 가을>에서는 굉장히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부재의 느낌이 있다. 만베이의 집에선 매미 소리가 계속 들린다. 굉장히 중요한 사운드 장치처럼 되어있다. 얼마 안 있어 그 매미들도 완연한 가을이 되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오즈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삶의 순환, 운명을 받아들이는 느낌을 보여준다. 그것이 대개는 따스하게 그려지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조금 냉정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까마귀들이 엄청 강조 되고, 마치 조종을 울리듯 오즈 영화답지 않은 음악이 흐른다. 거기에 아키코와 노리코가 대화를 하면서 ‘나는 내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일말의 미련이나 감상도 없이 탁 끊어버린다. 종래의 오즈의 영화들에 깃들어 있던 정조들, 따뜻한 느낌들과 조금은 다른 느낌을 준다.
오즈의 영화에서 내러티브가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분은 인위적으로 누락시키고, 어떤 부분은 보통 영화에서보다 훨씬 늘여놓는 가운데 공간의 느낌이 강조된다는 것과 함께 수평의 대화 장면들 역시 특징적이다. 통상적인 쇼트/리버스 쇼트가 아니라 스트레이트하게 붙어있는, 그것도 구도를 똑같이 해서 붙어 있는 쇼트들을 보여준다. 그런 식으로 굉장히 양식화된 화면이 주는 느낌에 우리는 반응을 하게 되는데, 그게 오즈 스타일의 힘인 것 같다. 오즈의 영화에는 화면사이즈의 양식화와 함께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쇼트들, 흔히 말하는 빈 쇼트들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통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특정한 사물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식이다. 70년대에 폴 슈레이더는 이러한 오즈의 스타일을 ‘초월적 스타일’로 명명하면서 선의 결정체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하스미 시게히코 같은 평론가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만춘>에서의 항아리 쇼트에는 항아리만 있는 게 아니라 항아리에 떨어지는 그림자와 빛이 있고, 무드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 공간에서만의 무드가 아닌, 두 부녀가 살아왔던 삶의 무드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고하야와가의 가을>에도 그런 쇼트들이 있다. 만베이가 속한 공간은 교토의 오래된 가옥들이 있는 공간이다. 거기에 노리코가 근무하고 있는 현대식 빌딩들을 보여준다. 그런 식의 인서트 커트들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후반부에서 까마귀나 무덤, 화장터 굴뚝에서 나는 연기 같은 것을 보여주는 쇼트들에는 기존의 오즈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근본적으로 그런 쇼트들은 누구의 시점이 아닌데, 사람에 대해서 뭔가 거리를 두는 오즈만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의 화면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시선으로 어떤 층들을 가지고 있다. 거리감를 충분히 두고 있으면서, 애정을 갖고 있는, 그러면서 상투적이지 않을 수 있는 힘이 그런 쇼트들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날드 리치라는 미국 평론가가 서구에 일본 영화를 소개하는 어떤 프레임이 있다. ‘일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오즈도 그런 틀 안에서 시켰다. 그런가 하면 80년대에 노엘 버치나 데이비드 보드웰 같은 평론가는 서구적 맥락 안에서 오즈의 영화를 해석한다. 인과관계에 따라 내러티브가 전개되는 방식의 고전적인 영화와 다르다는 점에서 오즈의 영화를 굉장히 모던한 영화로 보았다. 오즈의 영화에서 내러티브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받쳐주는 형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구의 평단에서 오즈의 영화가 재해석되었던 맥락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하스미 시게히코 같은 평론가는 표층 비평이라고 해서 심층을 전제하지 않고 텍스트의 표면을 가지고 얘기한다. 영화에서의 표현만을 집요하게 관찰하며 비평하는 것이다. 심층을 전제하고서 설명하는 것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오즈의 영화에서 먹는다는 것, 계단을 오른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오즈에 대한 해석이 어떤 식으로 향하든 특이한 것은, 지금도 오즈의 영화가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의 페드로 코스타 같은 감독은 자신이 오즈의 영화에서 받은 영향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영화가 오즈의 영화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본질적인 문제인 것 같다. 오즈는 진짜와 가짜와 같은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초월해 거기서 나온 감정이 진실하냐 아니냐를 가지고 승부를 걸려고 했던 감독이었다고 생각된다. 페드로 코스타 같은 감독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핵심이라는 면에서 오즈의 영화가 굉장히 위대하다고 얘기한다. 오즈는 익숙하건 익숙하지 않건, 일종의 관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려고 했던 감독 같다. 가장 뛰어난 배우는 연기하지 않는 배우다. 훌륭한 감독이 배우에게 디렉션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연기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오즈도 결국 그런 것을 시도 했던 게 아닐까. 자신이 만든 양식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가짜 같다는 느낌을 결국 역설로 돌파했던 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관객1: 하라 세츠코는 늘 딸이나 며느리로 등장하는데, 그래도 다음에 볼 영화에는 또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진다. 오즈의 영화에는 늘 익숙한 배우들이 역할을 바꿔가며 등장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김영진: 말씀하신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웃음) 일본영화는 이미 30년대에 스튜디오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었다. 당시 오즈 사단이라고 해서 작업하는 스탭들과 배우들이가 항상 같았다. 관객들이 일정한 기대를 갖고 극장을 찾게 되니까, 스튜디오 시스템에서는 그러한 것이 굉장한 자산이 된다. 오즈의 홈드라마, 카프라의 코메디, 존 포드의 서부극 하는 식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영화 산업 안에서 티켓 파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복 된다. 그러한 반복과 차이는 장르나 스타시스템에서 굉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아주 절묘하게, 계속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들이 중요하게 된다.


관객2: 오즈 의 영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오즈의 영화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김영진: 홍상수 감독이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한명이 오즈 야스지로다.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오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한 얘기 중 하나가 비판이 사건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인간의 욕망을 하나로 제한시켜 놓고, 공간이나 시간, 아이덴티티를 확장시켜가면서 이를 변주해 가는데, 오즈의 영화에서도 그런 점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그리고 굉장히 일상적인 사물인데 오즈의 영화에서 보면 굉장히 특권화된 순간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삶에 대해 생각할 때, 늘 같은 일상 가운데 갑자기 무언가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마 그런 점에서 유사성을 느낄 수 있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관객3: 오즈의 영화 같이 늘 비슷하고 평범한 홈드라마가 당대에도 흥행 했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오즈는 흥행 감독이었다. 그가 쇼치쿠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항상 최고의 스탭들,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영화가 흥행이 잘 됐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영화는 역설이다. 고다르는 40,50년대가 사람들이 르누아르나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를 부담 없이 보러가던 좋은 시대였다고 말했다. 당시의 서민적인 오락이었으면서도, 지금 보면 굉장히 에센스가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던 시대였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조유성(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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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