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다크 시티: 필름 누아르 특별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8.18 필름 누아르의 불온성을 지우다 - <길다>(찰스 비더)
  2. 2017.08.16 밤과 도시의 이중적 성격 - <고독한 영혼>(니콜라스 레이)

[필름 누아르 특별전]

필름 누아르의 불온성을 지우다

- <길다>(찰스 비더)

 

<길다>는 두 개의 인상적인 만남으로 시작한다. 먼저 도박사 조니와 카지노 주인 밸린, 이 두 남자 사이의 만남이다. 조니는 뉴욕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굴러들어간 과거가 모호한 도박사다. 길거리에서 주사위 사기로 막 한몫을 잡았는데, 현지의 불량배에게 모두 뺏길 판이다. 그때 밸린이 나타나서 조니를 구한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강인한 인상의 밸린은 끝에 칼이 숨겨진 지팡이로 악당을 물리쳤다. 밤 항구에서 만난 두 미국인 남자는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고,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운다. 이들의 만남은 강한 스포트라이트 조명과 투 숏 덕분에 마치 연인들의 설레는 만남처럼 묘사돼 있다.

두 번째 만남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길다의 등장 장면이다. 길다는 밸린이 여행지에서 만나 바로 다음날 결혼한 미국인 여성이다. 밸린의 소개로 조니와 길다가 서로를 처음 봤을 때 두 사람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클로즈업의 빈번한 교환은 이들의 강렬한 욕망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 <길다>는 이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필름 누아르다. 필름 누아르의 공식에 따르면 젊은 여성 길다는 팜므 파탈, 조니는 추락하는 순진한 남자, 그리고 돈과 권력을 가진 밸린은 희생되는 악당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길다>는 필름 누아르의 관습을 비튼다. 먼저 길다의 캐릭터가 남성들의 미움을 받는 악녀 팜므 파탈에 머물지 않는다. 길다는 다른 팜므 파탈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작전을 짜는 ‘영리한’ 인물이 아니라 오직 조니의 사랑에만 헌신하는 ‘착한’ 여성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말하자면 길다가 처음 등장할 때, 누아르 특유의 범죄적 열정보다는 조니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더욱 강조된 데서 길다의 멜로드라마적 캐릭터는 이미 드러나 있었던 셈이다. 길다는 누아르 특유의 불온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리고 두 남자의 관계도 전형성과 다르다. 이 점은 개봉 때부터 일부에 의해 꾸준히 지적돼 왔는데, 두 남자는 우정을 넘어 동성애적 관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첫 만남에서 두 남자가 보인 상대에 대한 특별한 호감, 그리고 조니가 남성성을 상징하는 밸린의 지팡이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순간들이 주요한 이유로 제시됐다. 돈과 권력을 가진 밸린은 조니가 제거해야 하는 사랑의 라이벌이 아니다. 더 나아가 조니는 밸린과 길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랑의 포로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밸린이 사라진 뒤 길다를 학대에 가깝게 대하는 조니의 태도는 밸린에 대한 배반의 죄책감을 길다에게 덧씌우는 것 같다. 이쯤 되면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이 길다인지 조니인지 혼란이 생길 정도다.

<길다>는 필름 누아르 계보에서 늘 빠지지 않는 대표작으로 소개된다. 아마도 리타 헤이워드의 압도적인 매력, 그리고 명암의 강렬한 대조를 마법처럼 잡아낸 촬영(루돌프 마테)의 솜씨 덕이 클 것이다. 그러나 사실 <길다>는 누아르의 불온성은 교묘하게 피해가고 결국 윤리를 강조하는 멜로드라마처럼 종결된다. 아마 스타였던 리타 헤이워드를 악녀 팜므 파탈로 만들거나 비극적 결말의 장본인으로 내세우는 데 큰 부담을 느낀 것 같다. <길다>는 불온성보다는 대중성을 선택했는데, 그럼에도 필름 누아르의 전설로 남은 특이한 위치에 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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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필름 누아르 특별전]


밤과 도시의 이중적 성격

- <고독한 영혼>(니콜라스 레이)


<고독한 영혼>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살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던 딕슨이 형사 부부를 배우로 삼아 자신이 재구성한 살인현장을 연출하는 장면이다. 딕슨은 살인마 역할을 맡은 형사에게 아내의 목을 더 강하게 조일 것을 요구하면서 광기 어린 눈빛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포착한 그의 얼굴에는 연원을 알 수 없는 빛이 드리워져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그러나 지금 딕슨의 얼굴을 강렬하게 뒤덮는 이 빛은 외부의 광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의 내부로부터 분출된 가학적 쾌감의 시각화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딕슨의 광기를 추동하는 빛은 자연광이 아니라 도시의 인공조명이다. ‘황혼의 시인’이라 불린 니콜라스 레이가 선택한 주인공답게 딕슨은 백주의 시간대와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태양빛이 내리쬐는 동안 그는 졸음을 호소하거나,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은 몇 년 만이라며 무기력하게 중얼거린다. 그의 폭력성과 가학성은 밤의 기운 속에 침잠해 있다. 한밤의 도시가 내뿜는 야경의 빛이 그의 파괴적인 면모를 격렬하게 충전시키는 것이다(한편으론 딕슨이 지닌 밤의 정서는 대단히 매혹적이기도 한 것이어서, 그와 로렐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사건도 밤에 발발한다). 도시 한복판의 도로 위에서 발생한 사소한 시비를 담아낸 도입부의 광경은 과잉된 분노와 민감한 반응들로 가득한 도시의 구동원리를 지목한다. 도시는 개인의 고립을 과도한 폭력성으로 표출한다. 바로 이 세계를 딕슨이 떠돌고 있다. 원제에 명시된 ‘고독한 곳(lonely place)’은 딕슨의 폐쇄적인 내면을 가리키는 은유인 동시에 그의 서식지인 할리우드라는, 이 차가운 소외의 세계에 할당된 표지인 셈이다.

<고독한 영혼>이 그려낸 밤의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하고, 서정적이면서도 음험하다. 이곳엔 모순된 비이성적 충동이 도처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밤에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시나리오 작가는 폭행과 스캔들을 일삼으며, 상대를 향한 무시와 다툼은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고, 차들은 위협적으로 달려들며, 인물들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에 휩싸이는 곳. 연인의 사랑과 동료들의 격려를 주변에 두고 있음에도 광기와 분노에 휩싸이며 파국을 맞이하는 딕슨의 운명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엔딩에 이르러 딕슨은 집을 나서 거리를 향해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은 오직 신경질이 난무하는 도시의 무방비한 거리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장소라는 것을 깨달은 체념 섞인 선택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야경과 딕슨의 얼굴에 드리워진 빛이 그토록 강렬하게 각인된 까닭도 여기서 비롯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도시라는 고독의 세계와 딕슨의 얼굴이 공명하고 있음을 예견하는, 또한 딕슨의 자기파괴를 탐미적으로 수긍하는 도취의 빛이다. 딕슨은 할리우드의 밤거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마지막 장면의 딕슨은 첫 장면의 도로 위로 되돌아올 것이다). 니콜라스 레이 특유의 냉엄한 관측과 묘사가 이 사내와 그가 몸담은 도시 전경에 독특한 비애감을 부여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고독한 영혼>의 미감에는 밤의 관능적인 분위기와 한 남자가 마주한 파국의 기운이 연결되어 있다. 불길하지만 유혹적인 아름다움이다.

 

김병규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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