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 - 마성에 맞서 삶을 지킬 수 있는가

2010. 2. 7. 19:0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걸작이 당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은 예사이다.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에 가해진 박해는 이런 생각을 확증으로 굳혀준다. 피카레스크 소설과 잔혹동화, 심리 스릴러가 두서없이 섞인 이 영화는 발표 당시 평론가들의 이해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었다. 박스오피스에서의 실패와 가차없는 혹평으로 인해 로튼은 이후 다시 연출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훔친 돈을 노획하기 위해 고아가 된 남매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연쇄살인마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데이비스 그럽의 1953년 소설을 각색하면서 찰스 로튼은 작가 제임스 에이지가 작업한 대본을 계속해서 고쳤다. 초기 미국의 시골 풍물이 물씬 풍기는 영화를 원했던 로튼은 그 방면의 대가였던 그리피스의 무성영화들을 참조했다. 그리피스의 위대한 아이콘이었던 릴리안 기쉬가 강인하고 명철한 아이들의 수호자 쿠퍼 부인 역에 캐스팅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


 

<사냥꾼의 밤>은 그 성격을 짧게 요약하기 어려운 영화이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꾀어내는 악마의 파국적 악행을 그려냄에 있어 찰스 로튼은 불가해한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 애쓴다. 내러티브는 접수하기에 너무 허점이 많지만, 리얼리즘을 파괴하는 표현주의 양식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 깊숙이 배어든 마성에 맞서 삶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표현주의 누아르로서 <사냥꾼의 밤>은 영화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그로데스크를 구현하고 있다. 듬성듬성 건너뛰는 틈이 많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카메라맨 스탠리 코르테즈(<위대한 앰버슨가> <충격의 복도>)의 탁월한 시각적 표현력이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이미지의 질감과 기하학적 미장센이 어울린 경이적인 장면들이 불시에 충격을 준다. 불귀의 객이 되어 강바닥에 가라앉은 아이들의 친모 윌라의 머리카락이 수초와 나란히 흩날리는 장면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답다. 쿠퍼 부인이 포웰의 스산한 자장가에 응대하는 장면도 잊을 수 없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는 인간의 화행이 심오함을 자아내는 그 장면에선, 오싹한 목소리로 부르는 포웰의 찬송가가 흐른다. 젠틀함을 가장한 그의 목소리는 소름이 돋고, 포웰로 분한 로버트 미첨의 연기는 진정한 악마를 품은 인물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으스스한 묘사 중 하나를 보여준다.


더할 나위 없이 영화적이지만 담대하게 연극적인 양식화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사냥꾼의 밤>은 표현주의와 필름 누아르, 아방가르드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스타일의 만화경이다. 이 한 편의 영화에서 확인되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이 확실한 로튼의 시네마틱한 재능이 또 다른 영화를 연출할 기회를 얻지 못해 사장되었다는 사실은 영화사의 커다란 손실이다. (장병원 전 필름2.0 편집장)

 ▶▶상영일정
1월 19일 (화) 13:30
1월 26일 (화) 20:00 상영후 시네토크_김성욱
1월 31일 (일) 19:00
2월 3일 (수) 16:00
2월 9일 (화)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