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펠리니에 관한 '애프터 토크'

지난 6월 25일 저녁 8시, 펠리니의 <8과 2분의 1>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서울아트시네마가 인산인해를 이루던 날 저녁,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극장 근처 카페에서는 관객들끼리 모여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애프터 토크 자리가 있었다. '펠리니, 광대예찬'이라는 이름을 달고 진행된 이 행사는, 2010년 들어서부터 서울아트시네마의 소식지 및 웹블로그에 글을 기고하던 관객에디터들이 주체가 되어 준비하고 많은 다른 관객들을 초대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총 15명 정도의 관객들이 모였다. 비록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미리 발제를 준비해온 관객들이 있었다. 발제자들의 발제 후, 이와 관련된 내용 및 그 외 몇 가지 다른 관심사들에 대해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유쾌하면서도 진지했던 애프터 토크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펠리니 광대예찬를 위해 모인 관객들의 간략한 자기소개가 있은 후, 본격적인 애프터 토크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관객에디터 김수현 씨가 맡았다. 사회자는 애프터 토크 자리를 마련한 취지에 대해 짧게 언급한 후, 자신이 준비해 온 '화려한 스펙터클과 소란 뒤의 애잔함'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낭독했다. 발제는 자신에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펠리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서 이 자리를 준비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됐다. 주된 내용은 펠리니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축제 장면들의 스펙터클함이 펠리니의 어린 시절의 경험인 버라이어티 쇼와 서커스에의 매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펠리니 영화에 꼭 등장하는 아이들, 펠리니가 여성을 보는 시선, 그리고 펠리니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의 에피소드적인 특징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란스럽고 스펙터클한 펠리니의 영화 뒤에 남는 비극적인 면모와 초라한 현실에 대한 묘사가 대중문화로서의 영화가 가진 속성과 연결되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으로 양석중 씨는 '펠리니, 방랑하는 카메라'라는 제목의 발제를 진행했다. 펠리니에 대한 몇 가지의 주관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풀어낸 발제였다. 그는 우선 '젤소미나'의 얼굴을 개인적인 의미에서 고전영화의 절대 쇼트이며 고전영화의 이름이기도 하다며 줄리에타 마시나를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과 겹쳐놓았다. 다음 키워드는 서커스. 그는 서커스야말로 기술, 정확성, 그리고 즉흥성의 혼합물이며 화려한 공연 뒤에는 반복된 훈련과 억압, 채찍질, 신체의 구속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펠리니는 서커스 화려함 뿐만 아니라 그 기저의 어두움도 거의 대등하게 다룬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였는데, 사실적 표현을 중요시하는 네오리얼리즘 영화들과 펠리니 영화의 환상성을 대조하면서, 이러한 펠리니의 환상성이야말로 영화의 근간이며, 카메라는 온전한 진실을 보여줄 수 없고 지연된 사실의 일부, 프레임의 조각을 드러낼 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키워드는 발제의 제목이기도 한 '방랑하는 카메라, 펠리니'였다. "네오리얼리즘의 맹아는 전쟁 전, 파시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어서 대전 이후 패전 상태의 이탈리아에서 만개했다. (......) 펠리니의 영화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동시대의 네오리얼리즘 작가들이 전후의 이탈리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제시했다면, 펠리니의 영화들은 전후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집이 있더라도 마치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 같다." 발제는 펠리니의 인물들에게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오며, 이것이 인생 자체가 회한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펠리니 특유의 네오리얼리즘의 한 면모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마지막 발제자인 장지혜 씨는 '떠나는 인물들과 그들이 꾸는 꿈'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발제는 로마를 동경하는 시골 소년 펠리니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을 겹쳐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펠리니 영화에서 꿈과 현실은 서로 다른 층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백인추장>의 여주인공 완다의 "현실은 우리의 꿈 안에 있지만, 때로 그 꿈은 깊은 구렁이기도 하죠"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달콤쌉싸름한 현실 안의 꿈, 혹은 꿈 안의 현실은 이후 <달콤한 인생>에서 보여주는 로마의 모습과도 닮아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비텔로니>의 마지막에 마을을 떠나는 인물인 모랄도가 남기는 특별한 여운에 대한 언급으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이렇게 세 명의 발제가 끝난 후, 나머지 시간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 혹은 자신만의 관심사를 가지고 펠리니에 대한 자유로운 난상토론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펠리니를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토론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광대예찬'에 가까웠던 시간이었다. 첫 번째 나온 토픽은 펠리니 영화의 매력과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로 펠리니 영화의 시각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오갔다. "쇼트들의 집합이 만들어내는 시네마틱한 볼거리의 단순한 힘이 펠리니 영화의 힘인 것 같다"라는 의견이 있었고, "<로마>에서 사창가의 장면과 성직자 패션쇼 장면이 연달아 나오면서 대비가 주는 충격이 컸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어서 펠리니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어디에서 위안을 얻을까'라는 점에서 성직자과 창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편 어차피 눈을 통해 매혹되는 것이 영화의 속성이라면, 펠리니 영화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에게 일종의 시각적 최면을 건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일상적으로 꿈꾸는 환상적인 부분들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나올 때, 그 쾌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미지 하나하나는 화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내러티브가 워낙 파편적이어서 영화를 보다보면 자주 졸게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펠리니 영화는 특정 부분의 인상이 덩어리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펠리니 영화의 엔딩이 주는 매력과 힘에 대해 언급하는 관객이 많았으며, 또한 펠리니 영화의 엔딩이 죽음의 느낌이 많이 들어서 슬프게 다가온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영화사 흐름 속에서 본 펠리니의 환상성과 리얼리티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초기영화에서의 볼거리적인 특성부터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이야기에의 종속으로 영화가 발전해온 과정, 이에 대비해 극적인 드라마를 구성하면서도 현실성을 담아내려 노력했던 네오리얼리즘, 그리고 이와는 또 다르게 초기영화적인 볼거리들을 에피소드로 나열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전시하여 관객에게 쾌감을 주는 펠리니의 특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펠리니와 알프레드 히치콕과의 비슷한 점에 대해 지적한 관객도 있었다. 이미지에 매혹된다는 설정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의 영화는 이미지에 대한 매혹성을 주관적인 시점숏과 주관적인 카메라 워킹, 특히 트래킹 숏을 통해 표현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 매혹된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데, 펠리니는 뭔가 도덕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면 히치콕은 늘 죄의식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달라진다. 이와 함께 이미지의 매혹을 여성성의 미스터리와 연결시키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길>에서의 젤소미나 캐릭터에 대한 경이로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의 시나리오와 감독과 배우의 어떠한 관계를 통해 그러한 놀라운 연기가 나왔을까'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배우가 그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만 가능한 연기였다는 것이다. 젤소미나가 잠파노를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폭력 때문에 종속되어 떠나지 못하는 관계였던지에 대한 궁금증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다른 관객은 <길>의 캐릭터들은 이태리 민담에서부터 온 "미녀와 야수"와도 같은 정형화된 캐릭터들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얼굴만 떠올려도 울컥해진다는 관객 등 그녀의 연기에 대한 예찬이 끊이질 않았다. 다른 관객은 펠리니가 사람의 마음을 잘 보고 있으며 그러한 내면적인 것들을 잘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지적했는데, 후기작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아닌 시각적인 표현성 자체가 더 강해진다는 의견이었다.


한편 개개의 영화들은 좋아하는 작품은 많은데, 그래도 이상하게 펠리니 라는 감독에 대한 어렴풋한 반감이 든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가령 <오케스트라 리허설>의 사회주의 혁명 같은 폭동 후 마에스트로의 전체주의적인 지도 아래서 다시 화합을 한다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러고 보면 펠리니의 영화 중에서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작품이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다른 관객은 이태리 사회는 모든 죄를 무솔리니에게 지우고 파시즘의 시대가 종식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 아직 파시즘이 완전히 척결된 것이 아니며 펠리니 자체도 이러한 양가적인 측면을 아직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편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 드러나는 파시즘이 오히려 너무 뻔한 우화가 아닐지 고민해보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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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강좌4] 한창호 평론가가 본 펠리니와 오페라의 관계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 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3시 30분, 그 네 번째 시간에는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죽음 : 페데리코 펠리니와 오페라'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펼쳤다. 펠리니의 영화세계에 대해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에 등장하는 오페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들려준 한창호 평론가의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제가 오늘 준비한 내용은 펠리니 영화와 관련해서 오페라의 역할에 대한 내용입니다. 방금 보신 영화의 감동이 아직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오페라가 등장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펠리니는 이탈리아인 치고는 오페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 장르라면, 오페라를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는 1983년에 펠리니 말년에 할아버지가 되어 만든 작품인데도 평소에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페라를 많이 사용한 작품입니다. 그 계기가 된 모티프는 마리아 칼라스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1977년에 생을 마감했는데 말년에 대략 10년 정도를 파리에서 하녀랑 둘이 살며 은둔하다시피 하다가 생을 다했다고 합니다.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그것은 ‘화장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카톨릭에 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장을 한 후에는 고국 그리스의 에게해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979년에 그리스 문화부에서 주관하여 에게해 바다에서 그 행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펠리니로서는 재를 뿌리는 행사를 보고, 마리아 칼라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그녀의 죽음이 상정하는 오페라라는 예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80년대 들어 펠리니는 영화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이었고 많이 염려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영화의 운명이 빨리 종결될 수 있다는 염려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영화들에는 TV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염려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진저와 프레드>는 물론이고 <달의 목소리>에도 말입니다. 영화도 오페라와 같은 운명이 멀지 않았다는 애도의 태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관련된 테마가 나온 것입니다.

영화는 나폴리에 큰 배가 정박돼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 지체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는 전설적인 소프라노라고 등장하는 허구적 인물 에드메아 테투아의 장례를 위한 것입니다. 영매가 나오는 장면에서 에드메아의 제스처를 흉내 내는 인사법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의 인사법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는 마리아 칼라스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서 재를 뿌린다는 것은 유럽, 특히 낭만주의 예술에서는 너무도 강력한 죽음에 대한 은유입니다. 저승의 섬으로 간다는 것의 은유는 아놀드 베크린의 그림을 더불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얀 배가 저 앞에 있는 섬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 죽은 자의 영혼이 어디로 갈 것인가? 죽음에 관련된 은유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도, 에드메아 테투아 같은 운명에 곧 놓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동일한 모티프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배는 에드메아 테투아의 장례식을 위한 배면서, 동시에 그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는 비스콘티적인 주제를 많이 베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비스콘티와 펠리니는 평생의 라이벌이었으며, 따라서 비교하는 게 두 사람의 영화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스콘티는 늘 죽는 이야기를 했고, 펠리니는 늘 코미디를 만들었습니다. 비스콘티는 공산주의자, 펠리니는 중도파이며 자유주의자입니다. 비스콘티에게는 이탈리아 사회 전반의 전망이, 펠리니에게는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만 보면, 역설적으로 비스콘티는 멜로드라마를 만들었으므로 개인의 비극적 고통이 더 강조되어 있고, 펠리니가 만든 코미디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더 잘 드러납니다. 영화적으로만 보면 펠리니가 더 정치적 입장을 잘 보여주는 역설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음악과 시나리오의 측면에서도 비스콘티는 귀족적, 펠리니는 서민적입니다. 비스콘티는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성질의 음악과 시나리오였고, 펠리니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일반적 교육을 받은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감성적이고 대중적인 니노 로타의 음악도 펠리니의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냅니다. 비스콘티는 클래식이었고 굉장히 비극적인 음악을 썼습니다. 비스콘티가 베토벤이라면, 펠리니는 모차르트 같습니다. 제 생각에, 그러한 라이벌 의식이 오페라에서 펠리니가 멀어지도록 하는 요소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탈리아에서 누가 보더라도 오페라는 비스콘티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티리콘>, <여인의 도시>, <카사노바> 등을 보면 에피소드가 파편화돼 있습니다. 사실상 <사티리콘> 이후의 영화는 처음에 보기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 번 다가온 후에는 오히려 <달콤한 인생>이전의 영화가 순진하게 느껴집니다. 펠리니 영화에서는 대사에 대해서도 특정한 논리성이 없습니다. 두서없이 나옵니다. 오페라에서도 4중창, 5중창을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화의 대사도 그런 식입니다. 펠리니는 <그리고 배를 항해한다>를 비교적 쉽게 만들었습니다. 장례식 하러 간다는 메인 테마가 있고, 내러티브가 완전히 파편화되어있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냉대하던 장르였던 오페라를 썼습니다. 너무나 많은 오페라가 등장해서 다 정리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세 가지 정도를 강조했습니다. 전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작품입니다. <운명의 힘 (La Forza Del Destino)>의 서곡, <리골레토 (Rigoletto)>, <아이다 (Aida)>입니다. 이 세 개의 오페라가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의 도입부, 중간, 종결부에서 각자 강조되어 있습니다. 펠리니는 비스콘티처럼 오페라의 비장함과 아름다움을 쭉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게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세 개는 강조되어 있습니다. 나폴리 항구에서 재가 도착해서 배에 올라갈 때, 어떤 남자가 손가락으로 딱 가리킬 때, 나오는 음악이 <운명의 힘>의 서곡입니다. 기악곡이 연주되고 가사도 나옵니다. <운명의 힘>이라는 멜로드라마는, 주세페 베르디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입니다. 삼각관계,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여동생을 사랑하는 것, 원수인 오빠가 그 사랑을 방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결말은 베토벤적인 음악입니다. 마치 <운명>처럼 불안하고 비극적인 운명이 다가옴을 암시합니다. 본래 오페라의 서곡이라는 것은 다 그런 식으로 기능합니다. 오페라의 진행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배가 출발할 때, 불길하게 마치 운명이 나를 두드리듯이 그 기악곡이 들립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숭고한 목적을 갖고 탑승한 사람들, 즉 필멸의 존재들이 죽음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상징으로 그 음악을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참고로 <운명의 힘>의 서곡은 원래 기악곡인데, 이 영화에서는 죽은 사람을 구해주자는 내용의 가사가 조금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펠리니의 친구였고 이탈리아 문화계에서 대표적 시인이었던 안드레아 잔조토라는 사람이 가사를 썼습니다. 펠리니는 베르디를 그대로 가져와 쓰지 않고 변경을 가한 것입니다. 아름답게 잘 찍힌 도입부 시퀀스는 영화의 역사에 대한 펠리니 식의 오마주가 있었던 장면입니다. 흑백, 세피아, 컬러로의 색깔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뤼미에르 형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며, 나폴리 항구의 큰 배는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나온 본론 부분의 선상 오페라도 강조된 부분이다. 선장이 가수들을 데리고 기관실 구경을 시켜줍니다. 노동자들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중 하나가 노래를 요구하고, 자연스럽게 가수들 사이에 목소리의 경연이 벌어집니다. 전형적인 테너인 살찐 남자로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의 음역을 자랑합니다. 마지막에는 여자 가수가 <리골레토>에 나오는 부분인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를 부르며, 다른 가수들도 계속 그 부분을 부릅니다. 그 노래는 내러티브나 컨택스트 상에서 큰 의미를 부여한 거 같진 않습니다. 선원들이 오페라를 만나기란, 그리고 일반 관객도 오페라를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장면은 오페라의 무대처럼 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무대를 변형시켜서 오페라 극장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치 비스콘티를 비꼬는 것처럼 분명히 상하관계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펠리니는 코미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영화 내부적으로 보면 비스콘티보다 더 정치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종결부에서 쓰인 음악은 <아이다>입니다. 아이다가 부른 아리아인 <다시는 고국을 보지 못하리라> 부분입니다. 선상에서 장례식이 진행될 때, 재가 바람에 불려 날아가고, 이 때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악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에드메아 테투아가 부르는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그 녹음은 그렇게 유명한 가수의 노래는 아닙니다. 이 아리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진혼하는 레퀴엠처럼 쓰기에는 매우 적절했던 음악이었으며, 의미도 좋았다고 봅니다. 실제 오페라의 내용은 이집트에게 패해 속국이 된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가 이집트 황실의 시녀가 되었다가 이집트의 개선장군 라다메스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는 멜로드라마입니다. 3막에서는 밤에 나일강변에 아이다가 도착하여 나일강변에 투신해서 죽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죽으려고 하니 갑자기 자기연민이 몰려옵니다. 아이다는 아름다운 조국을 추억합니다. 푸른 하늘, 녹색의 숲, 맑은 아침, 그 조국을 나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겠구나, 라는 한탄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다시는 고국을 보지 못하리라> 부분입니다. 에드메아 테투아도 마리아 칼라스도 죽어서야 고국으로 돌아가는 운명이기에, 이들의 죽음을 위무하기에 굉장히 적절한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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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강좌3]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본 펠리니의 모더니티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4시 그 세번째 시간에는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한 의문'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펼쳤다. <로마>를 중심으로 펠리니 세계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알려준 유운성 평론가의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로마>부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나는 기차역 장면부터 출발하려 합니다. 기차가 일상의 탈것처럼 보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차역, 기차역 내부 같은 것은 아주 특권적인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예컨대 오즈의 기차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등장인물들에게 색다르고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오즈가 그것을 포착하는 시선이 인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펠리니의 <로마>에선 19살의 펠리니가 로마에 도착하던 경험이 그대로 담긴 것 같습니다. <로마>에는 관광객의 시선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 간판인데, <로마>에서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 테르미니 역 간판 밑 포스터는 마리오 카메리니감독의 <백화점>이라는 영화의 포스터입니다. 이 영화가 이탈리아에서 개봉된 때가 펠리니가 로마에 도착했던 1939년 6월입니다. 이 포스터가 붙어있는 건 시기적으로도 맞아 떨어집니다. 대도시에 갓 도착한 시골사람이 느낀 경이가 보이는 것입니다. 단독으로 연출한 첫 장편 데뷔작, <백인추장>이라는 영화는 <로마>의 첫 장면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것 말고도 베르도 라투아다와 공동연출한 <다양한 불빛>이라는 걸 보면 역시 기차역은 평범한 공간이 아닙니다. 남녀주인공의 첫 만남,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버림받은 이후에 한 눈을 파는 장소도 기차입니다. 이는 후기 영화들에도 나타납니다. 기차역을 떠날 때의 광경은 펠리니의 세 번째 장편 <비텔로니>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됩니다. 모랄도가 마을을 떠나는 장면에서 그것이 보여지는데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로마에 갓 도착한 청년이 자신이 살던 고향 마을을 떠날 때의 모습정도입니다. 기차를 타고 떠난 청년의 이후 모습이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한 청년의 모습입니다.

<비텔로니>같은 영화를 놓고 보면 실제로 펠리니가 리미니에서 살았음이 분명한데 그는 이 영화를 리미니에서 찍진 않았습니다. 세트도 아니고 외딴 마을에서 찍은 것도 아닙니다. 인근 다른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곳곳풍경들을 조합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마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나중에 <아마코드>에서는 고향마을 전체를 거대한 스튜디오 안에서 창조해 찍게 됩니다. 고향인 리미니의 기억들이 영화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펠리니는 직접 고향의 모습을 담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펠리니는 내밀한 추억조차도 영화제작현장 세트라는 경이의 공간에 가져다놔야 직성이 풀리는 감독이었습니다. 영화의 제목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비텔로니'는 '비텔로네'가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사투리로 대략 정규학업과정 마치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백수 한량을 일컫습니다. 영화에 펠리니의 고향에 대한 경험이 반영되었지만 비텔로네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는 이 시기를 고향에서 보낸 적이 없습니다. 펠리니가 고향에서 경험한 시절은 마지막 장면인 모랄도를 배웅하는 귀도라는 꼬마, 그 꼬마정도의 시절만을 고향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텔로니>는 펠리니 자신도 애착을 느끼는 영화 중 하나였고 그는 이 영화에 대한 속편의 기획도 했었습니다. 제목은 <도시의 모랄도>였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시의 모랄도>는 고향을 떠나서 도시에 도착한 모랄도가 겪는 로마의 기이한 이야기들, 방탕, 희망 등이 중심플롯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보면 웰즈의 직관이 그럴싸하게 느껴집니다. <도시의 모랄도>는 <달콤한 인생>의 원안이 되었던 기획입니다. 최종 완성본에는 마르첼로가 주인공이지만 기획시의 주인공이 모랄도였다고 합니다.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배우의 실제이름을 극 중 인물에 반영하는 펠리니의 버릇에 따라 마르첼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비텔로니>의 속편, 마지막으로 '기차'라는 공간을 특권적으로 낭만화하는 펠리니의 성향을 볼 수 있는 장면은 <8과 1/2>에서 정부가 도착하는 순간. 평범한 장면이긴 하지만 기차가 도착하는 공간 자체를 판타지에 가깝게 그려내는 펠리니의 성향이 잘 보여지는 장면입니다.

펠리니가 근대적인 기계들을 특권적으로 묘사하는 행위는 기차 외에도 선박이나 자동차, 오토바이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중에서 자동차가 이례적인데, 기차가 상당히 낭만적인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에 비해 펠리니가 안 좋은 경험이 있었는지 의심되는 기계, '자동차'는 거의 괴물에 가까운 기계장치로 나옵니다. <8과 1/2>도 그렇고 <로마>도 그렇고 지옥도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웃음). <달콤한 인생>에서도 자동차에 타는 연인은 꼭 싸웁니다. 탈 것뿐 아니라 펠리니가 기계를 대할 때 여기서 말하는 '기계'에는 영화장치 자체도 포함됩니다. 펠리니의 관심 태도는 고다르나 웰스가 관심을 가지는 태도라기보다 영화촬영에 요구되는 번잡한 기계장치들, 경이로움이나 황홀감을 반영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펠리니는 영화라는 기계장치를 경멸, 비판적 의식으로 접근한 감독은 아닙니다. 영화라는 걸 만들어 내기위해 요구되는 사람과 기술의 경이로운 시선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 영화관이 아수라장되는 경험, 이런 것들도 펠리니 영화에서 자주 보여집니다.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해 말하기 전에, 펠리니의 모던이 경험에 대한 영화적 기록에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이상화된 경이의 체험에서 무시무시한 부분, 의혹의 시선이 드러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근대경험의 양면성입니다. 그의 영화에는 이런 것들이 매우 잘 드러나 있습니다. 펠리니가 후기작들에서 기계장치 세트들을 보여줄 때 기차나 선박, 비행기, 우주선을 포착할 때와 거의 유사한 감정입니다. 후기에서 비관적시선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모던의 경험 자체에서 느끼는 비관이 되기도 합니다. 펠리니 영화에서는 영화라는 기계장치 세트들을 보는 시선도 기차나 선박 등을 보는 시선과 같은, 모던시네마의 반영적 태도와 만난다고 봐야지 이걸 의식적으로 모더니티 기획을 가지고 접근하다보면 비평적 오해가 생깁니다. 후기작을 포스트모던하다고 말하는 건 말장난입니다. 펠리니는 단 한 번도, 포스트모던은 고사하고 모던에도 깊숙이 발을 담근 적이 없습니다. <로마>같은 현대적 형식의 에세이영화를 만들자마자 <아마코드>나 <카사노바>같은 영화들로 돌아가면서도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았던 이유가 설명이 안 됩니다. 이들은 다른 흥미요소들, <카사노바>는 펠리니 모더니티와는 다른 면, 완전히 이면이자 어두운 면이라 할 수 있는 면이 극단화된 영화입니다.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넘어가기 전에 기계장치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장면들 몇 개가 있습니다. 펠리니의 <노트북>은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에세이풍의 영화이고 마이너한 영화입니다. 사실 <노트북>은 1970년대 펠리니 영화들, <광대들>이나 <로마> 등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에세이영화입니다. 여기에는 펠리니가 끝내 만들지 못했던 <마스토르의 여인>이라는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영화의 세트장면이 등장합니다. <노트북>은 국내 출시된 <8과 1/2>의 DVD에 서플먼트로 있는 영화입니다. 70년대 펠리니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라면 주목해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히피들이 등장하는 건 역사적 증거처럼 보입니다. 히피들 역시 펠리니는 <로마>에서 다른 측면으로 묘사했습니다.


펠리니 영화를 다시 본다면 주의 깊게 보아야하는 건 그 사이, 특히 <로마>같은 영화들입니다. 펠리니의 성향, 모던의 경험,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영감의 원천이 여기에 담겨있다 생각합니다. <로마>는 자유로운 방식에 트리트먼트도 없이 리서치 다니면서 인터뷰와 기록 등을 토대로 찔끔 찔금 2년에 걸쳐 이례적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제목 그대로 <펠리니의 로마>, 펠리니의 눈에 비친 <로마>, 웰즈 식으로 말하면 촌놈의 눈에 비친 <로마>입니다. 기계장치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 영화로 쓴 칼럼형식, 스펙터클에 대한 취향, 영화를 보면 그런 게 담겨있습니다. 패션쇼라든가 버라이어티극장에서 연행, 관람 양식 등 숨기지 않고 한 번에 끌여 들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엮는 유일한 방식은 이 영화의 작가가 '펠리니'라는 것을 알고 나름대로 엮어 보는 것이지 귀도라는 인물을 빌려 과거와 현재, 현실과 몽상을 비평적으로 오갈 필요는 없습니다. 현대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펠리니 비평서에서 가장 얇게 다뤄지는 영화입니다. 언급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다시 펠리니를 이야기한다면 여기서부터 출발해 확장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펠리니 영화의 진수가 담겨진 건 1970년대 때의 작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펠리니의 스펙터클에 대한 취향, 기묘한 것에 열광하는 자세, 기계장치 자체 자동차 혹은 도시적인 것에 대한 매혹이 한꺼번에 엮어져 우러나는 영화가 그 시기의 작품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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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강좌2]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말하는 펠리니의 초기영화들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8일 저녁 8시 그 두번째 시간에는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네오리얼리즘과 페데리코 펠리니'란 제목으로 펠리니 초기영화에 대한 열띤 강연을 펼쳤다. 무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홍성남(영화평론가):
오늘 강의에서는 우선, <달콤한 인생>까지의 펠리니 영화의 중요한 논점들, 네오리얼리즘과의 관계,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을 보는 관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달콤한 인생>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전반적인 영화사나 펠리니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어떻게 봐야 할 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달콤한 인생>과 <8과 2분의 1>이후의 영화들을 먼저 보게 되면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과 관계가 없고, 꿈과 환상을 영화로 멋지게 구현한 감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펠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인 감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와 <파이자>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고 시나리오도 썼습니다. 로셀리니 감독은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로케이션 촬영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제약들과 영향들을 적극 수용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개방적으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펠리니는 여기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도 얘기합니다. 한편으로 펠리니는 5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이탈리아 영화사들에서 작업하면서 이 시스템의 이점을 최대한 누린 감독이기도 합니다. 펠리니는 예술적 야심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예술적 통제력을 발휘하고자 했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현실과 굉장히 가깝게 세트를 만들어 놓고, 공간과 연기하는 배우들을 통제했습니다. 펠리니의 영화작업은 중반 이후로 가면, 한편으로는 규정된 시나리오나 이야기, 그리고 시공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면서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것이 펠리니의 영화제작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길>은 개봉 당시 귀도 아리스타르코라는 당대 이탈리아의 유명한 맑시스트 비평가로부터 비판받은바 있습니다. 이 비평가는 네오리얼리즘의 위기와 관련해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놨습니다. 같은 해에 개봉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는 리얼리즘이 역사 속으로 보다 진실하게 들어간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센소>는 에밀 졸라식의 자연주의로부터 발자크식의 리얼리즘으로 발전하면서 네오리얼리즘을 보다 풍요롭게 꽃피우고 있다고 보았던 반면, 네오리얼리즘이 위기를 맞아 하강이나 추락을 하게 될 경우, 그 시나리오의 악한은 펠리니가 될 것이며, 이 때 예로 든 영화가 <길>이었습니다. <길>의 외양은 네오리얼리즘적인 영화 같지만, 판타지나 기억, 종교적인 믿음 쪽으로 퇴행하는 영화라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펠리니는 이 비평가와 자신의 네오리얼리즘의 시각은 다르다면서 반박했습니다.

<길>을 네오리얼리즘적인 영화인 비토리아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비교해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두 영화 다 표면적으로는 로드무비에 가깝습니다. <자전거 도둑>은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는 과정에서 단순히 거리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의 많은 제도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 당시 사회에 대한 분석이 있는 것입니다. <길>은 사회적인 분석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전거 도둑>은 당대 로마라고 하는 분명한 시공간 개념이 있는 반면, <길>은 이 점이 불분명합니다.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길>에서 보이는 인물은 계급, 사회, 역사 속의 전형적인 인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전거 도둑>은 현실에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반면 <길>의 인물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포크드라마인 <꼬메디아 델라르떼>에서 끌어왔습니다. 인물의 캐릭터는 미리 설정되어 있고, 영화 속에서 진화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잠파노는 야수, 젤소미나는 사랑, IL MATO(the Fool)는 상상력, 교육, 계시로 볼 수 있습니다. 펠리니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의 사회적 현실을 담는 것보다 인물의 영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리얼리즘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면 펠리니는 사물을 투과해서 그 안을 보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카비리아의 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동일한 상황이 반복됩니다. 펠리니의 많은 영화들, 특히 초창기 영화들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일종의 대구를 이루는 순환구조입니다. <길>이나 <달콤한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비리아의 밤>은 처음-중간-끝이라는 관습적인 드라마 구조가 없습니다. 대신에 느슨한 에피소드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카비리아라고 하는 인물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로 연결되었는데, 그 안에서도 리듬이 보입니다. 첫 장면에서 카비리아가 희망을 갖고 있었다가 그것이 무참히 깨지는 과정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강도가 세지면서 반복됩니다. 카비리아가 환상을 가졌다가 그 환상이 깨짐으로써 환멸을 느끼게 되는 구조들이 매 에피소드에서 이어집니다. <카비리아의 밤>에서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공간과 환타지적인 공간이 병치되는데 비해서 <달콤한 인생>에서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공간은 뒤로 물러나고 상류층의 공간이 전면에 오게 됩니다. <카비리아의 밤>은 펠리니의 영화적인 이동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비리아는 자신에게 결혼의 희망을 품게 했던 사람에게서 무참하게 배반을 당하게 됩니다. 땅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의 리얼리즘 영화라면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났을 텐데, 아주 짧은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카비리아는 어두운 공간에 누워 있다가 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게 됩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카비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야겠다”라고 하는 듯한 태도로 미소를 짓고, 카비리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처음에 영화 속에서 나오던 음악은 영화음악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은 영화 감독이 신처럼 되어 카비리아에게 은총을 내리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보든 영화 감독이 영화 속 인물에게 내리는 은총이라고 보든, 이 장면은 자연스럽지 않고 인공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장면을 마치면서 펠리니의 영화세계는 네오리얼리즘과 단절을 하고, <달콤한 인생>의 세계로 오게 됩니다. <달콤한 인생>은 같은 해 개봉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함께 이탈리아 영화의 예술적인 위신을 고양시킨 영화이자, 현대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콤한 인생>은 대중문화적으로, 또 라이프스타일의 측면에 있어서도 굉장한 반향을 일으킨 영화입니다. 우리는 방탕하고 과도하고 스펙타클하고 사치스러운 영화스타일을 두고 ‘펠리니적인’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시초가 된 영화도 역시 <달콤한 인생>입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들, 불경하게 여겨지는 이미지들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예수상이 현대 문명의 이기인 헬리콥터에 의해서 끌려가는 장면, 영화 곳곳에서 상류층 사람들을 다루는 태도때문에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이나 기독교, 카톨릭 관련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거의 포르노그래피다”라고 비판받았습니다. <달콤한 인생>도 에피소드들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졌고, 각각의 에피소드는 자족적인 세계를 보여줍니다. 에피소드들마다 상승과 하강, 쾌락과 피로, 환락의 밤과 새벽 등 리듬이 있습니다.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을 바라보는 펠리니의 시선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가 영화 속 실비아(아니타 에크버그)를 바라보는 펠리니의 시선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진 환상을 충족시켜준 인물이 아니타 에크버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니타 에크버그는 연기를 하는 배우라기보다는 자기 육체를 이용하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펠리니가 아니타를 바라보는 시선은 백치같은 여자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이 아닙니다. 펠리니는 유명한 트레비 분수의 장면을 찍으면서 구경 온 관중들에게 “이 여자같은 아름다운 여자를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나는 어떤 서커스에서도 보여주지 못했었던 화려한 장면을 보여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한편 아니타 에크버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펠리니적인 여성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아니타 에크버그야말로 펠리니 영화의 에센스가 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펠리니적인 여성은 그 이미지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성에게 우리의 어떤 바람이 투사됐나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편, 펠리니는 이데올로기, 도덕이나 종교적 가치, 전통적인 관습 등이 붕괴하는 시대를 비판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 마르첼로처럼, 그런 세계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파졸리니는 펠리니가 판관이 되어 옳고 그름을 보여주지 않고, 그 세계에 거리를 두지 못한 채 자신이 거기에 빠져들어간 공모자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 펠리니는 <달콤한 인생>을 재밌으면서도 약각은 심각한 코미디로 그려냈습니다. 코미디적인 감수성은 펠리니의 많은 영화 속에 드러나는 굉장히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8과 1/2>도 창작자의 고뇌가 느껴지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코믹한 측면이 많습니다. 실제로 펠리니는 이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에 “지금 나는 코미디 영화를 찍고 있다”라는 문구를 붙여놨다고 합니다. <달콤한 인생>은 펠리니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펠리니는 뤼미에르적인 측면을 벗어나서 조금 더 멜리에스적인 세계로 도약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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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강좌1]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들려주는 펠리니의 미술세계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지난 16일 저녁 8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마련한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시작되었다. 총 5회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의 첫 강연자는 이탈리아 영화와 미술에 조예가 깊은 한창호 영화평론가. <사티리콘>을 중심으로 그가 들려준 펠리니의 미술에 관한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한창호(영화평론가) : 오늘 강의는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를 좁혔습니다. 하나는 <사티리콘>이라는 작품 자체가 영화사에서 익숙한 작품이 아니라 먼저 <사티리콘>에 대해 잠깐 설명을 드리고, 그 다음에 미술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오늘 저와 같이 보신 <사티리콘>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티리콘>이라는 작품은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원작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영화에서 나타나듯이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지만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각 에피소드들을 연결할 수 있는 토대는 엔코르피오라는 인물인데, 엔코르피오가 애인인 지토네를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벌이는 모험과 투쟁이 이어집니다. <사티리콘>은 로마시대의 정통적인 문학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비극이 문학으로 대접받았는데,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티리콘, 즉 satire-풍자에 관련된 코미디이기 때문에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문학은 아니었습니다. <사티리콘>은 로마시대 하층민들의 일상과 그들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에로스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어떻게 보면 펠리니의 주제와도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사티리콘>의 줄거리를 공간 중심으로 나누면 크게 12개의 에피소드로 구분됩니다.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공간은 로마의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숨므라’라는 지역으로 엔코르피오도 그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공간은 베르나키오의 극장입니다. 로마시대의 사람들은 스펙터클에 대한 욕망이 대단했습니다. 손목이 잘리는 기이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극장에서 엔코르피오가 지토네를 찾습니다. 세 번째는 엔코르피오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나치는 공간입니다. 이 장면에서 펠리니는 로마시대의 싸구려 매춘구역을 어떤 식으로 형상화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네 번째 공간은 로마시대의 미술관입니다. 이 미술관에서 엔코르피오는 노시인 에어모프를 만나 트리마치오네라는 대부호의 향연에 함께 갑니다. 다섯 번째로 중요한 공간인 트리마치오네의 저택은 성욕과 식욕에 관련된 모든 욕망이 전부 드러나는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여섯 번째 주요한 공간은 리카를 둘러싼 공간입니다. 리카는 해적이자 이탈리아 남쪽 타란토 지역의 폭군입니다. 일곱 번째 시퀀스는 자살하는 귀족의 시퀀스입니다. 로마의 공화정을 지지하는 귀족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살합니다. 그 다음 여덟 번째 시퀀스는 불칸입니다. 엔코르피오와 아실토는 성적인 만족을 모르는 여성을 위해서 봉사를 하고 난 후, 불칸에서 남녀동체인 아기신을 만납니다. 그 다음 가는 곳이 아홉 번째 시퀀스이자 아홉 번째 공간입니다. 웃음의 신이 있는 마을, 미로가 나오는 공간, 그리고 미노타우로스가 나오는 곳입니다. 엔코르피오는 이 공간에서 미노타우로스와 결투를 하고 결국 패합니다. 열 번째 시퀀스에서 엔코르피오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쾌락의 정원으로 옮겨지지만 그의 병은 낫지 않습니다. 열한 번째 시퀀스에서 마녀 오로티아에게 간 엔코르피오는 그녀와 관계를 맺으며 치유됩니다. 마지막은 에어모프의 배를 타는 엔코르피오의 시퀀스입니다. 엔코르피오는 에어모프가 이미 죽은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에어모프의 몸으로 식인의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에어모프의 몸을 먹지 않고 그의 배를 타는 것으로, 배를 타고 배 안에서 내레이션 하는 것으로, 그리고 말을 하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지금 본 12개의 에피소드가 원작 <사티리콘>의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에서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으로 결말이 구성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 것인가가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고 또 펠리니의 고민이었습니다. 이 주제를 통해서 펠리니가 왜 <사티리콘>을 선택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영화계에는 단테의 <신곡>을 영화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항상 있었습니다. 펠리니가 환타지를 형상화시키는 데 굉장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펠리니에게 자주 접근을 했습니다. 그러나 펠리니는 단테의 지옥편을 영화로 만들어도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합니다. 후에 다시 의뢰를 받은 작품이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입니다. <사티리콘>은 비극이 아닌 풍자극이라 펠리니와 더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펠리니가 <사티리콘>을 선택하는 데 작용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티리콘>에서 특히 극장 시퀀스와 저녁향연 장면은 펠리니가 지옥편을 영화화했을 때 창조했을 이미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늘 거절하기는 했지만 단테의 <신곡>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펠리니에게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부담을 느껴서 일단 거절했지만 <사티리콘>을 통해서 <신곡>을 연출할 때의 작업방향에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특히 그 두 개의 시퀀스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원래 펠리니는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전쟁 때 이십대 초반이었던 펠리니는 미군들의 캐리커쳐 같은 것을 그려서 돈을 법니다. 펠리니가 영화제작에서 디자인 요즘 말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된 것은 1957년에 <카비리아의 밤>을 만들 때입니다. 이 작업에서, 펠리니는 디자이너 피에로 게라르디를 만납니다. 펠리니가 피에로 게라르디를 만나서 미술에 눈을 뜨게 됐고 피에르 게라르디가 펠리니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피에르 게라르디와 만나면서 펠리니의 영화는 절정기에 도달합니다. <달콤한 인생>, <8과 2분의 1>, <영혼의 줄리에타>. 펠리니는 영화의 전체적인 컨셉을 게라르디와 상의했습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의상까지 책임지면서 옷과 장소를 통일시킨 경우는 피에르 게라르디가 대표적입니다.

만약 이번 회고전에서 단 하나의 작품을 봐야한다면 <8과 2분의 1>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8과 2분의 1>에서도 볼만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굉장히 많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펠리니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어린 펠리니가 목욕하기 싫어서 도망을 다니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침대에서 뛰어 놀던, 이성이 들어오기 전 굉장히 행복했던 혹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유아기를 다루는 그 시퀀스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의 장면에서는 공원에서 아들의 애인을 보고 곤란한 나머지 판타지로 들어가는 시퀀스입니다. 판타지는 아랍계의 할렘인데, 모든 여자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남자인 자신를 위해 봉사하는 그 공간의 디자인은 여성들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부엌과 목욕탕 등이 중심공간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부엌이라는 공간, 여성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부엌과 식당은 미술에서는 17세기 바로크 시절의 네덜란드 장르화의 고정된 공간입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떠올리면 기억이 날 겁니다. 그 공간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여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이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장르화의 표준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스탠다드한 표면이 <8과 2분의 1>의 디자인에 인상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피에르 게라르디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영혼의 줄리에타>에서의 여성 패션을 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감독들 중에서 패션에 관해서는 영화사를 통틀어서 루키아노 비스콘티가 최고입니다. <영혼의 줄리에타>에서 펠리니의 세련된 패션 감각이 드러나지만 비스콘티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다른 점은 비스콘티는 대단히 프루스트적이라는 것입니다. 재현할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실보다 더 이상화해서 재현하기 때문에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다시 말해 죽은 대상에 대한 애도를 하는 것이 비스콘티 영화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의상만 봐도 눈물이 나는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펠리니 영화에도 대단히 세련된 의상이 등장하지만 그 의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사티리콘, 그러니까 풍자입니다. 옷을 가지고도 웃깁니다. 이 점이 역시 탁월한 광대였던 펠리니의 큰 특징입니다. 오늘 같이 봤던 1969년작 <사티리콘>을 만들 때 펠리니는 다니노 도나티라는 마에스트로를 만납니다. 지옥과 같지만 숭고미가 있는 공간으로 자신 영화의 미술 프로덕션 컨셉을 잡아갈 때, 펠리니는 바로 <사타리콘>을 출발점으로 뒀습니다.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왜 펠리니는 정신없을 정도로 미술사를 끌어와서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이전의 작품에서도 조금씩 그런 경향을 보였지만 특히 <8과 1/2>부터 펠리니는 전통적인 영화 만들기와 완전히 결별합니다. 그래서 <8과 1/2>부터는 스토리, 내러티브를 풀어놓습니다. 인과관계에 따른 논리적인 소위 할리우드식 웰메이드가 영화의 한계를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펠리니는 영화의 한계를 한정짓는 것을 거부하고, 영화라는 매체는 스토리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한계를 멀리 확장시켜준다고 생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8과 1/2>을 만들면서 펠리니는 스토리를 풀어놨습니다. <사티리콘>은 1960년대의 반영성을 드러내는 작품인데 미술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음악은 많은 경우에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내러티브를 보완하는 장치로 쓰였습니다. 다시 말해 음악 자체가 내러티브와 동일했는데, <사티리콘>에서 펠리니는 미술을 내러티브를 보완하기 위한 수직적인 상하관계의 보완장치로서가 아니라 미술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은유적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적인 영화 만들기 즉 히치콕이나 존 포드와 같이 수학적으로 앞뒤가 딱 맞는 그런 영화들에 굉장히 갑갑증을 느꼈고, 그렇게 만들어서 영화의 표현이나 한계를 축소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미술을 은유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종합시키는 것은 관객의 몫입니다. 그래서 60년대 이후의 모더니즘 영화들에 펠리니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집니다. 펠리니는 광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영화 형식 자체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었고, 중요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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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