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우리가 난잡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난잡하다"

- <솔루션>, <코메디: 다 웃자고 하는 얘기>의 김곡, 김선 감독

 

곡사가 작년에 발표한 두 개의 단편 <솔루션> <코메디: 다 웃자고 하는 얘기>는 그렇게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어린아이는 문자 그대로 똥을 밥처럼 먹으며 해맑은 웃음을 짓고, 인기 없는 개그맨은 죽은 아내의 시체 옆에서 강박적인 개그를 시도한다. 곡사는 왜 이런 난감한 전략을 택한 것일까. 지난 2 23일에 진행했던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여기에 옮기니 그 답을 찾아보자.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곡사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웃긴 영화이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하고 비극적인 면도 있다. 일단 두 편의 영화가 모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고 <솔루션>의 유령과 <코메디>의 시체처럼 두 편 모두 죽음이 등장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선(영화감독): 나이가 들어서 가족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준비할 때의 상황부터 설명을 드리자면, 상업영화를 한 다음에 이제 정말 우리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작업이란 게 그때까지 축적해 온 내면의 경험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쓴 것이 <코메디>였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그리고 여러 가족들이 모여서 구성한 사회에 만연한 유령들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었다. 그건 정말 죽은 사람의 혼일 수도 있고,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압박감일 수도 있다. 사회적인 억압이나 압력들, 그런 유령들과 싸워나가는 이야기를 가족에서부터 시작해볼까 했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존재인 유령들과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코미디언이 생각났다. 어두운 존재들을 잊게 만들고, 동시에 환기시키는 사람들인 것 같다. 진짜 웃긴 사람들은 슬픔도 같이 전달하지 않나. 그들이 무대에서는 유령들과 잘 싸우는 것 같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 유령들한테 완전히 지배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패배를 인정하는 비참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솔루션> 역시 같은 시기에 쓰였으니 비슷한 맥락의 시나리오다. 공교롭게도 <코메디>를 찍다가 전주국제영화제의 맹수진 프로그래머에게 <!!!> 프로젝트로 <솔루션>을 제안받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서 가족과 유령이 등장하는 비슷한 느낌의 시나리오가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솔루션>은 좀 더 적은 예산으로 찍어야 했기 때문에 페이크 다큐 포맷을 차용했다. 그리고 이제껏 영화를 찍으며 연구 끝에 도달한 이미지들 - 무당, 유령, 박정희, , 항문 같은 것들이 총 집약된 영화였다.


김성욱: 두 작품 모두 구순기와 항문기를 다루고 있다. <코메디>에서도 계속 담배를 입에 물고 있지 않나,

김곡, 김선: 녹색, 그린(좌중 폭소).주를 마시고 뭔가를 먹는 행위도 반복되고. 담배에 불이 잘 안 붙다가 마지막에만 확 켜지는 설정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솔루션>의 변 색깔은 무슨 색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푸른색이랄까(웃음).

김곡(영화감독): 굉장한 논쟁에 휩싸였던 부분이다. 보도자료에는 두세 시간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2, 3일을 싸웠다. 스탭들 역시 김곡파와 김선파로 나뉘어서 ‘리얼리즘’으로 가야할지 편하게 웃게 해야할지 나뉘었다. 김곡파는 갈색 계열만 아니면 된다는 쪽이었고, 김선은 원칙주의자였다.


김성욱: “사람 음식을 달라!”는 변짱이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강조된 대사는 아니지만 묘하게 와 닿더라.

김곡: 식변증도 사실 식인습성의 일종일 수도 있지 않나. 신체나 다름없는 거니까. 그리고 만들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관객 입장에서 보니 옛날에 만들어지고 역사 속에 버려두었던 쓰레기들, 그 똥들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싸는 것의 순환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거꾸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똥까지는 알겠는데 왜 하필이면 먹는 행위를 다루었는지 자문하게 되더라. 먹는다는 건 정치에서 굉장히 본질적인 행위인 것 같다. 권력이라는 건 누군가를 먹는 것이고, 많이 먹을수록 센 거 아니겠나. 오늘 보니 이런 원형적인 상징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김선: 어떻게 보면 다이어트처럼 안 먹는 게 권력이 되기도 하지만 먹는 것이 권력의 원형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먹는 것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역전되고 모순된 상태를 표상하고 싶었다. 설정이 괴팍한 만큼 형식도 재미있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들을 희화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코메디>에서는 그런 역전된 소화 상태를 극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일상적으로 보이는 삶의 기저에 어두운 유령들이 깔려 있다는 것. 죽은 아내의 유령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웃겨야 하고, 이 세상을 웃겨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마누라까지 웃겨야 한다는 플롯을 떠올려보았다.


관객1: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이나 풍자가 담긴 영화들이 노리는 감정이 경쾌하고 통쾌한 것이라면 개인적으로 이 영화들은 난잡하게 느껴졌다. 공허하고 구차한 느낌이었다.

김곡: 일부러 난잡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숨기지도 않는다. 만약 난잡하게 보였다면 우리가 난잡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묘사하는 대상이 난잡해서 그런 것이다. 일단 세상이 똥밭이다.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잡해진다. 굉장히 기예가 좋은 시나리오 작가나 연출이 와도 난잡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리얼리티 쇼라는 형식 자체가 난잡하다. 리얼리티 쇼에서는 하나의 디테일들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무대 안과 밖이 난잡하게 섞이기도 하고, 그들의 연기 안에서 공적인 지위와 사적인 욕망이 난잡하게 섞이기도 한다. 어떻게 말하면 난잡성에 열광하는 시대라는 거다. 오히려 이 영화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왜 리얼하지 않느냐, 가 아니라 왜 그대로 베꼈냐는 비난을 들어야 할 것이다.


관객2: <솔루션>의 솔루션은 결국 항문으로 음식물을 흡입해서 입으로 내뱉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어떻게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김선: 우리도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자기모순을 묘사하는 난잡한 영화가 될 텐데, 제목이 ‘솔루션’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곡사가 말하는 솔루션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분명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솔루션 없이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코메디>의 경우에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에게 담배 한 대 정도가 솔루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담배가 나의 생명을 줄일지언정 지금의 안도감으로 이 비극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솔루션이 아닐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솔루션>의 경우에서는 똥인지 된장인지를 아는 게 먼저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비록 주지는 못했지만 노력은 했다(웃음). 사회자까지 똥을 뒤집어쓰는 것, 누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느낌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변명처럼 애니메이션을 덧붙였는데 결과적으로 더 난잡해졌다.

김곡: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지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정치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솔루션>은 타이틀만 ‘솔루션’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선 : 처음에는 그럴듯한 저서를 남기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면, 영화를 찍으면 찍을수록 책을 쓰는 게 아니고 춤을 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솔루션>은 막춤, <코메디>는 살풀이 같은 것이다. 영화의 커트나 호흡감 같은 것들이 신체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면서 감독 일을 해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어떤 이야기를 떠올릴 때 춤을 생각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감독은 글쟁이가 아니라 모션을 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김성욱: 어쨌든 두 분이 만든 영화들 중 가장 즐거웠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 봐서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새로운 5년’이 시작되는데 어떻게 계속 비타협적으로 영화를 만들어갈 예정인가.

김선: 최근 많은 연락을 받았다. 지금 제한상영가를 받아서 행정소송 중인 <자가당착>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별 거 아니고 포돌이가 나와서 쥐 잡는 내용인데 두 번이나 제한상영가를 받았다. 앞으로의 5년 동안 곡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일단 제한상영가 투쟁이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독립영화/상업영화의 구분 없이 막 찍으려고 하는 편이다. 찍고 싶은 것을 무조건 찍어야 성미가 풀리는 사람들이라 찍고 싶은 대로 찍을 것이다. 그리고 요전에도 찍으려다가 엎어진 영화가 있는데, 그중에는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도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찍고 싶으면 찍겠다.

김성욱: <솔루션>의 일본 제목은 <역분사가족>이라고 해도 되겠다(좌중 폭소). 오늘은 곡사의 영화를 보고 내일은 <칠레전투>를 상영하고, 모레는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다. 특정한 시대와 관계를 가진 영화들을 연달아봐서 더 의미가 깊었던 것 같다.

 

정리: 박예하(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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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범죄소년>의 강이관 감독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기를”

 

 

 

 

 

 

2013년 첫 번째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범죄소년>(2012)을 상영하고 강이관 감독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범죄소년>은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영화제의 연이은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두 모자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가며 풍부한 감정들을 담고 있는 영화처럼, 이날의 대화 역시 차분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청소년 이야기가 전체를 끌어가리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엄마의 느낌이 더 많이 와 닿았다. 어떻게 소년원에 가게 된 청소년을 다루면서 미혼모의 이야기를 함께 연결시키게 되었나.

강이관(영화감독): <범죄소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영화이다. 처음에는 인권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이 많았는데, 인권위 쪽에서는 평소 만들던 대로 만들면 된다고 얘기했다. 인권위에서 주제를 주지는 않았다. 그동안 제일 다뤄지지 않은 것이 재소자 문제와 노인 문제라는 얘기를 들었고, 평소에 청소년에 관심이 있어서, 청소년과 재소자 이 둘을 묶게 되었다. 일단 청소년 범죄의 전 과정을 보고 싶었다. 학교, 유치장, 법원,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소년교도소, 청소년쉼터를 찾아가 그 곳에서 아이들, 선생님들과 만나 얘기하는 과정에서 여자 친구들의 경우 미혼모 문제가 많이 와 닿았었다. 그리고 소년원을 가보면 학교와 다름이 없다. 체육복 입고 수업도 받는데, 가만히 있기 때문에 착해 보이기도 하고, 몸은 굉장히 큰데 얘기해보면 초등학생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범죄소년은 법률용어인데,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소년으로서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 형사책임을 지는 자'를 뜻한다. 예전에 범죄소년이었고, 미혼모였던 그녀가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떠올리면서 미혼모 문제를 결부시키게 됐다. 엄마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되었는데 아이를 만나게 되고, 아이는 보기에는 아직 어린데 죄를 저지르고 엄마를 만났을 때, 그러한 변곡점이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성욱: '도쿄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영화의 일본어 제목이 ‘미숙한 범죄자’다. 영화와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엄마까지 포괄해서 이 영화는 사회 안에서 미숙한 인물을 다룬다. 남자 아이가 두 번 반복해서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에 얘기할 때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왜 용서가 안 될까라는, 사람들의 관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이의 그 대사는 어떤 뉘앙스로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강이관: 시나리오 상에서 의미 부여를 하고 반복 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에는 굉장히 진심을 다해서, 정말 용서해달라는 느낌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엄마를 만나는데, 엄마의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닳고 닳은 인물이고, 그런 것을 아이가 엄마를 통해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두 번째로 그 말을 할 때는 엄마처럼 한번 던져보고 아님 말고, 하는 식이다. 저로서는 슬픈 느낌의 대사였다.

 

 

 

 

김성욱: 엄마의 캐릭터가 독특하다. 미숙해보이면서도 다정함이나 발랄함이 느껴지는데, 캐릭터 설정에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셨는지 궁금하다.

강이관: 갑자기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 번도 제대로 된 준비나 생각을 안 해봤던, 굉장히 젊고, 예상보다 굉장히 큰 아이가 있는 미숙한 엄마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지지만 굉장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어서 그 낙차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박찬욱 감독님의 <파란만장>을 봤는데, 이정현 배우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해 나온 영화들 중 가장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같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정현 배우에게 연락을 했는데 마침 그 쪽에서도 좋아해서 만나게 되었다. 엄마의 캐릭터는 감정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감정적으로 확 몰입될 때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가도, 어떤 때는 엄마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난리를 피우는 모습은 논리적인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길에서 갑자기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무서워서 피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저렇게 밖에는 자기를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생각된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정현 배우는 그런 캐릭터의 상태를 자기 식대로 잘 소화해서 연기 했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두 사람이 함께 한강을 걸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와 닿았다. 방 안에서 아이가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순간 엄마와 격하게 싸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강이관: 방에서의 장면은 찍기도 어려웠고 고민도 많이 했다. 엄마가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때린다는 설정, 그리고 한 방안에서 맞는 것에서 아이가 방을 나가는 것까지 한 번에 찍는 것 때문에 테이크도 많이 갔다. 과연 아이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엄마가 차분하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면 애들처럼 그냥 폭발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는데, 폭발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계속 쌓여 왔던 것이 갑자기 엄마한테 맞으니까 폭발해서 오해가 쌓이게 되는 장면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아이는 두 번이나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소년원은 교도소는 아니고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소년원에 나온 뒤 재범을 하는 확률이 성인범죄 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교화의 기능보다는 반복적으로 범죄행위를 유발하는 부분도 있다. 이 영화에서 재판장면의 경우 그런 점들을 느끼게 한다.

강이관: 재판장 장면은 실제와 많이 비슷하다. 일반인들은 방청이 불가능하지만 판사의 재량에 따라서 견학을 갈 수 있어서 몇 군데를 실제로 가봤다. 판사의 입장에서 그 분들도 두 가지 감정이 있다.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지고, 부모 같은 심정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에서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가 이혼율이 많아지면서 이혼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얘기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얘기처럼, 이혼을 하면 부모가 서로 양육권을 주장 하며 싸우다가 재혼을 하면 아이를 상대방에게 보내고, 또 재혼하면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보내게 된다. 사실 넓게 보면 복지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 설정에서는 아이와 할아버지는 차상위계층 일텐데, 복지사가 있긴 하지만 그런 가정을 끝까지 돌본다든가 아이가 소년원에 보내지고 난 뒤의 과정까지 책임을 진다든가 하진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따라 하기 때문에 성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같다. 그동안 재소자문제가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죄를 졌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잘못했다고 계속 얘기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쯤 생각을 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김성욱: 아이는 다시 소년원에 들어가고, 여자아이는 짐을 꾸려서 또다시 떠돌게 된다. 엄마는 어떤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모습과 빈 방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결말은 원래 그렇게 끝내려고 했나?

강이관: 시나리오에서는 결말이 이렇지 않았다. 소년원 퇴소식에서 아무도 없었던 전과 달리 엄마와 여자아이가 찾아온다. 그리고 함께 차를 타고 떠난다는 설정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을 다 찍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들에게는 아무래도 재촬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한 뒤 편집실에 와서 보니, 그런 식의 마지막 장면이 단지 극을 끝내기 위한 장면이어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신 엄마가 아들을 만나려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처음 엄마와 아이가 만나서 헤어지는 게 1막 정도이고, 다시 만나서 어떻게 잘 해보다가 또 다시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소년원이나 미혼모 문제라고 하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냥 아들과 엄마가 만나 이런저런 일을 겪고, 만나서 헤어지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를 떠올렸었고, 그래서 보시는 분들도 가볍게 봐주셨으면 했다.

 

 

 

 

정리: 장지혜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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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이야기를 위해 죽음을 이야기해야 했다"

 

올 해의 마지막 ‘작가를 만나다’에선 민병훈 감독의 <터치>(2012)가 상영되었다. 상영 전에는 영화의 주연을 맡은 유준상 배우의 깜짝 방문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상영 후 이어진 대화 시간엔 영화엔 인간의 아름다움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감독의 믿음과 좋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응원과 지지가 함께 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어디에서 출발하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민병훈(영화감독):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로, 어머니와 삼촌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구성해서 만들었다. 두 분의 이야기를 토대로 생명과 죽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에는 오락을 떠나 생명을 살리는 것, 인간을 숭고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명의 이야기를 하려면 죽음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이 영화는 존엄사의 문제도 슬쩍 건드리고 있고, 욕심을 내어 많은 주제를 던지면서 용기 있게 몰아쳤던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암울한 부분을 직면함으로써 그 안에서 질문이 던져지고, 오히려 희망과 생명의 존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생명의 이야기를 죽음 안에서 살펴보게 되는 건 가장 크게는 종교적인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이 영화에 나타나는 몇 가지 상징들이 갖는 종교적인 뉘앙스가 있다. 이를테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슴의 이미지, 성당에서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죽음과 죽음 이후에 관한 이야기와 질문 같은 것들이 있다. 이 영화 자체가 종교를 다루는 이야기라기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시리즈처럼 현대의 일상적인 영역 안에서의 그런 질문들을 뽑아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이미지들은 어떻게 떠올리셨는지 궁금하다.

민병훈: 사실 처음엔 사슴이 아니라 양을 생각했었다. 근데 양이 나오면 사람들이 웃을 것 같더라.(관객 웃음) 우리가 ‘사슴 같은 눈동자’라고 표현할 때 그 눈동자가 신의 시선이라고 봤다. 신이 우리 인간을 바라볼 때 측은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에서 사슴의 눈망울을 잡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 눈망울이, 스스로 신을 내던짐으로써 인간이 재탄생하는,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꼭 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픈 사람을 도와줘야 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터치’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노동자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라면 어떻게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의 김지영 씨가 용기를 내어서 한 여인을 터치해주고, 그 여인의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켜준다는 것, 그래서 죽음과 생명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터치’라는 말로 풀어내고 싶었다.

 

김성욱: 영화 안에 여러 양상의 접촉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의 접촉의 느낌이 있는가 하면, 카메라가 인물을 찍는 방식, A 와 B의 에피소드가 같이 연결되어지는 방식과 같이 시간과 공간이 밀착되어 영화 전체도 관계 맺음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병훈: 이 영화가 밀도 있는 영화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면 적막감이 끝까지 흐르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이 몰입하는 영화이기를 원했다. 김지영 씨가 첫 날 왔을 때 환자를 업고 들어오는 장면부터 촬영했는데, 여배우에게 처음부터 가장 난이도 있는 장면을 시키니 힘들어했다. 그 때 지영 씨에게 했던 얘기는 만약 이 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이 영화의 진실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우들, 스텝들을 휘몰아서 한 번에 가야했고, 격정적인 느낌으로 하고 싶었다. 다행이도 이 작품은 준비한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찍어야 하고 어떤 속도감과 느낌이어야할 지,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하는지에 대한 계획이 분명히 있었다.

 

김성욱: 침례를 하듯이 환자를 데리고 물에 들어가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런 공간과 행위가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순간으로 생각되었을 것 같다.

민병훈: 그 장면에 대해 가톨릭 교구 측에서 많이 문제 삼기도 했다. 아픈 여인은 폐결핵 환자로 설정되어 있는데 만약 환자를 방치하게 되면 영화에서처럼 각혈을 하고 나중에는 몸이 아래부터 썩어 들어가게 된다. 실제로는 이런 환자를 절대 물에 담글 수 없으며, 우리나라의 종교 시설에서는 안락사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 장면은 어떤 상징적 표현이다. 침례의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 이 여인이 고맙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권리, 누군가가 도움을 줘서 새 생명을 얻는 그런 느낌들의 상징적 표현으로 담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꼭 담고 싶었던 장면이었고,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눈시울을 적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만큼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의 마지막에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혹시 엔딩으로 염두에 둔 다른 장면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민병훈: 엔딩 장면은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남편이 무릎을 꿇고 아내를 바라볼 때 영화 안에서 가장 진실한 얼굴로 바라보는 표정이기를 원했다. 아내도 마치 하느님의 시선과 같은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지영 씨에게 울면서 미소 짓는 그런 표정을 원했는데, 카메라가 돌고 오래 걸리지 않아 원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 엔딩만큼은 시나리오대로 꼭 찍고 싶었다. 촬영 전에는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배우들과 주변 여건이 잘 모아져서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관객1: 김지영 씨 연기가 인상 깊었다. 특히 김지영 씨의 극 중 의상의 의미와 피해자 학생의 아버지를 만날 때의 장면에서 인물에 맞춰졌다가 배경에 맞춰졌다가 하는 포커스 변화는 어떤 의미인가.

민병훈: 그런 장면들이 우리 영화의 터치라고 생각했다. 그 것이 극 중 김지영 씨의 심정이기를 원했다. 시선 너머에 있는 부분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의상에 대해선, 지영 씨의 캐릭터가 간병인이고 가난한 엄마이지만 이 여인의 욕망이 있을 거라 봤다. 스스로 드러내고자 하는 갈망을 붉은 옷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관객2: 유준상, 김지영 두 배우의 캐스팅은 어떻게 하시게 됐는지 궁금하다.

민병훈: 먼저 준상 씨와는 오랜 친구다. 친구와 작품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다행인 건 서로 신뢰를 가지고 작품을 했고, 이 작품으로 우정이 더 돈독해졌다. 지영 씨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동생이었다. 여태까지 만난 배우 중에 가장 진실하고 보석 같은 배우다. 이 아름다움이 영화 속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신을 다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해주었고, 좋은 배우와 작업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관객3: 영화에서 촉각적인 것 못지않게 땀이나 술 같은 후각적이거나 미각적인 부분도 요소들도 나온다. 촉각적인 부분은 주로 사건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런 이미지 자체가 세기 때문에 영화가 의도하는 부분과 조금 엇갈리는 점이 있는 것 같다.

민병훈: 시나리오를 쓸 때, 첫 장면으로 나오는 성당 장면을 맨 처음 썼다. 성당에서의 대화 장면처럼 앞뒤가 없이 긴장감 있게 시작되기를 원했다. 사람의 감정을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데, 그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만드는 건 미장센과 카메라 워킹이다. 땀, 냄새 이런 것들이 더 폭발적으로 나왔어야 했는데 쫓겨서 촬영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그런 부분들이 좀 더 생생하고 풍부하게 나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관객4: 피해자 학생의 부모가 아무 조건 없이 합의하면서 용서해주는 의미가 궁금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픈 여자의 아들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사라지는데 그 아이는 왜 사라졌고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하다.

민병훈: 삭제된 장면에서 그 아이는 먼저 기차에서 내려 선로를 따라 걸어간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서자 아이 앞으로 하얀 눈송이가 하나가 떨어지고 아이의 눈물이 흐른다. 멜랑콜리해서 이 장면은 영화에서 뺐다. 아무 말 않던 아이는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강아지 인형을 돌려주는데 말이 아니라 그런 행동에서 연상될 수 있기를 원했다. 이 아이가 이렇게 퇴장하는 것이 쓸쓸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가 보듬어야할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용서는 쿨 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용서란 그렇게 툭 던져져야지 그 용서를 받은 이 사람도 아무 조건 없이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5: 영화가 개봉하고 바로 교차상영 되어서 보기가 힘들었다. 감독님이 직접 상영을 내리셨을 땐 ‘왜 감독이 관객의 볼 권리를 뺐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사회가 전혀 인식하지 못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영화 정말 잘 봤고 감독님의 결정도 잘하신 일이라 생각된다.

민병훈: <터치>로 얻은 것이 많다. 타협하지 않는 영화, 저 스스로 관객이 되어 눈물 흘리고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길 원한다. 스스로 떳떳하게, 굴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무엇보다 저와 같은 위치의 감독님들과 영화를 지망하시는 분들께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든다면 그 영화를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을 테니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한국영화가 더 건강해졌으면 한다. 더 힘을 내서 좋은 작품 만들도록 하겠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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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11월의 ‘작가를 만나다’ 상영작은 김수현 감독의 <창피해>(2010)와 최근 ‘영화음악∞음악영화’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한 중편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이하 <연소>)(2012)이었다. 거의 3시간 동안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본 관객들은 김수현 감독과 김상현 배우가 참석한 시네토크에도 자리를 지키며 늦은 시간까지 영화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지연(영화평론가) : 이 두 편의 영화들이 어떤 아이디어나 영감으로부터 출발했는지 궁금하다.

김수현(영화감독) : <창피해>는 건강한 여성의 삶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이것저것 궁리를 하다가 뭔가 좀 특별한 사랑, 여성들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보면 어떨까했는데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연소>는 그동안 한국영화 산업에서 익숙했던 스타일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한 명의 캐릭터를 다양한 느낌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상현씨를 꼬셨다(웃음). <연소>는 결과물에 대한 판단을 떠나 스스로 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

 

정지연 : 김상현씨는 두 영화에서의 느낌이 다르고 특히 <연소>를 볼 때 굉장히 흥미로웠다. 한국영화 중에 한 명의 배우에 대해 이토록 매혹을 표현하고 그 배우의 다양한 면을 읽어낸 영화가 있었나 싶다.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개성들을 영화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부분도 있고 특별히 참조한 부분들도 있을텐데.

김상현(영화배우) : 주어진 상황만 갖고 연기한 부분도 있고 구체적인 대본을 갖고 연기한 부분도 있다. 영화에 쓰지는 않았지만 내 시점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카메라를 내가 들고 촬영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때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했고, 이때 말한 것들을 감독님이 나중에 대본으로 정리해주었다. 연기할 때는 ‘이게 뭐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알겠더라.

 

 

정지연 : <귀여워>에서 김수현 감독만의 이상한 활력, 기운, 에너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창피해>를 볼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창피해>의 여성 인물들이나 주요 공간인 바다의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침잠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소>에서는 <귀여워>의 활기나 에너지가 다시 느껴진다. 그리고 감독님의 영화는 서사가 선형적이거나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플래시백도 많고 캐릭터들도 분산되는 편인데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지, 어떤 아이디어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구체화시키는지 궁금하다.

김수현 : 출발할 때의 기분에 따라 작업할 때의 방식과 과정에 조금씩 차이가 생긴다. <귀여워> 때는 열정이나 패기, 자신감이 강했다. 뭐가 됐든 내 방향으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작사의 요구로 어떤 것을 빼거나 넣는 것이 아깝거나 과잉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두 번째 영화 <창피해>의 시나리오를 쓸 때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들을 나도 모르게 의식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뭔가 덜 차있는 것 같고, 피해가는 느낌의 ‘척하는’ 느낌의 영화가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만들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어떤 컨셉으로 누구와 영화를 찍을지 먼저 결정하고 <연소> 작업을 시작했다. 촬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보충하고 완성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유익했고, 나를 새로운 출발점에 다시 서게 만들어주었다. 실제 배우와 그 배우의 삶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꼼꼼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했다. 아까 김상현씨도 이야기를 했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인터뷰가 굉장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를 기본으로 장난도 치고 여기저기에 끼워 넣기도 하면서 촬영의 2/3이 지났을 때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즉 게릴라식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제작한 건데,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정지연 : 두 영화에서의 연기 연출이 다른 것 같던데 연기의 컨셉을 어떻게 잡았는지 궁금하다. 특히 <연소>에서의 김상현씨는 영화 속 캐릭터인 동시에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궁금하다.

김상현 : 감독님의 연기 연출 방식이 크게 변한 건 아니지만 두 편을 같이 하며 감독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창피해> 때는 상황에 대한 분석이 많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 <연소>도 어렵긴 했는데 그건 정말 어려워서 어려운 것이었다(웃음). 내가 뭘 벗어야 할지,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를 고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너무 흥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머리 쥐어짜지도 않으면서 제대로 고민을 했다.

 

정지연 : <창피해>의 이질적인 프레이밍이 특히 눈에 띈다. <창피해>나 <연소>의 촬영과 인물들의 프레이밍 컨셉이 궁금하다.

김수현 : <창피해> 때는 나 스스로 정리를 분명하게 할 수 없다보니 극단적인 앵글들을 썼다. 그래서 전체 기조나 밸런스에 맞지 않는 컷들이 있다. 그런 숏들은 대부분 고민이 부족해서, 또는 뭔가 답답해서 그렇게 찍은 것이다. <연소>는 작은 규모의 촬영이었다. 심지어 나와 김상현씨 둘이서 촬영한 장면도 있을 정도이다. 어떤 미학적인 스타일이나 컨셉을 미리 정하고 촬영에 접근하기 보다는 조건과 상황에 맞게, 그리고 그 순간 느껴지는 연기의 톤을 껴안으며 전체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관객1 : <창피해>와 <연소>에서 특별히 여성을 주제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수현 : 내가 여성을 많이 좋아한다(웃음). 남성보다는 여성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존재들인 것 같다. 여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막연한 기대와 추측 속에서 계속 탐구하고 다가서고 싶고, 그 안에서 뭔가를 찾고 싶은 바람들이 작품에 드러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직 거창하게 얘기할 자신은 없다. 여성이 계속 등장하는 건, 정말 사소하지만 내가 여성을 좋아하기 때문이다(웃음).

 

정지연: 감독님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은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복잡한 내면을 갖고 있고 다층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창피해>의 경우는 과거의 상처들을 안고 있기도 하다.

김수현: 내가 경험했던 여성들의 장점과 좋아하는 점들을 한 캐릭터 안에 모으다보니 그런 캐릭터가 나왔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뽑아내고 싶었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힘들었다. 오늘 영화들을 다시 보며 <창피해>나 <연소>가 관계나 소통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연: 김상현씨는 배우이자 관객으로서 김수현 감독의 여성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다.

김상현: 시나리오로 볼 때보다 스크린으로 볼 때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캐릭터들이다. 글로 봤을 때 캐릭터가 보인다는 것은 기존 캐릭터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다는 것인데 감독님의 시나리오에는 그런 것들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정해져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통해 보려고 하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갇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연기 뿐 아니라 다른 무엇을 하든 어떤 언어에 고착화된 시선을 가지면 열린 마음으로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점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에 얻은 가장 큰 성취다.

 

관객2: <연소>에서 스튜디오 장면의 연기가 그 전의 상황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김상현: 스튜디오 장면의 경우 감독님이 몇 가지 다른 상황에 대한 대본들을 줬고 앵글도 각각 다르게 촬영했다. 그 다음 굉장히 응축된 편집을 했다. 영화에 나온 건 구체적인 상황인 동시에 수많은 상황을 압축시킨 것이기도 하다. 나도 성우로 일하면서 그런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었는데 다큐멘터리도 아닌 영화에서 어떤 진실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신기했다.

김수현: 다른 장면들과 달리 스튜디오 장면은 밀도나 긴장감이 있었고, 연기하는 태도나 분위기를 잡을 때도 달랐다. 그런 것들을 배우에게 처음부터 요구한건 아니었는데 일상화된 영화연기의 방식으로 굉장히 집중하며 연기를 했다. 본인 스스로도 이 장면은 다른 장면과 연기 패턴이 달라야한다고 판단했던 것이 아닐까.

 

정지연: 양쪽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 장면은 어떤 아이디어로 연출했고, 배우로서 그런 연기는 어떻게 이끌어내는 건지 궁금하다.

김수현: 순간적인 아이디어였다. 간단하지만 캐릭터에게는 치명적인 자해를 하는 설정을 떠올렸다. 정해진 것이 없었는데 리허설도 없이 배우가 눈빛과 호흡 하나로 뚝딱 만들어냈다. 찍으면서도 깜짝 놀랐다.

김상현: 평소 작업을 할 때도 스스로 의지할 수 있는 자기 이미지를 많이 만드는데 거울 장면을 찍을 때도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집중했다. 그것들로부터 오는 출혈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나에게는 거울 장면의 움직임이 가장 어렵고 긴장한 연기였다.

 

관객3: 두 영화의 시작과 끝이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특유의 에너지나 활력의 균형을 어떻게 잡는지 궁금하다.

김수현: 영화를 시작하고 닫는 방식은 전체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어떻게 시작하고 끝낼지를 고민하며 결정한다. 인물을 제일 정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들이 갖고 있는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것은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아니다. 내가 놀이터를 마련해주면 배우들이 이미 갖고 있던 자신들의 끼를 알아서 끌어낸다.

 

정리 : 장지혜(관객에디터) | 사진 :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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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죽음의 여행, 다른 하나는 삶의 여행이다”

 

지난 6월 3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6월의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올해 1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수상한 <아버지 없는 삶>이 상영되었다. 상영 후에는 김응수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아버지 없는 삶>은 두 일본 여성의 여정을 복잡한 내레이션을 통해 그려내는 영화로 김응수 감독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에세이 필름이다. 영화 속 내레이션만큼이나 많은 말들이 오갔던 그날의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개인적으로는 오늘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한테는 영화가 낯설거나 당혹스럽게 느껴졌을 거다. 보시면서 느낀 것들을 같이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먼저 어떻게 시작이 됐을까 궁금한 점이 생긴다. 영화에서는 소설 <요코 이야기>와 마사코라는 여인이 연결되어 있다. 각각 어떻게 접하셨는지 궁금하다.

김응수(영화감독):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강한 자가 만드는 시선의 논리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으로 얘기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다. 이건 지구에 사는 이상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바깥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문제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 반일감정이나 민족주의도 아니면서 우리 자신의 문제를 정리해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한일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중심과 주변에 대한 문제, 우리가 왜 이런 구조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들을 물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역사를 짊어지고 가겠다는 사명감은 없었다. <요코 이야기>라는 소재를 보편화시켜서 여행을 하고 싶었다. 내 영화에는 주변과 중심의 문제, 시선 정립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요코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한 공간에 시간차를 두고 살고 있는 일본인을 찾아가 하나는 죽음의 여행으로, 하나는 삶의 여행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김성욱: 영화는 <요코 이야기>의 요코라는 여자와 현재의 마사코 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내레이션에 나오는 얘기는 마사코 씨가 직접 얘기했던 개인사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하다.

김응수: 서너 번 마사코 씨를 만나서 얘기를 부탁했다. 굉장히 편하게 했다. 그 분이 얘기하시는 것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 쓴 거고 전부 다 사실이다. 다만 접근할 때는 조심스러웠다. 마사코 씨의 나가사키 여행 경로를 따라갈 때도 그랬다. 역사적인 장소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이 나가사키에 가는 일본인을 찍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찍어서 뭘 하려고 하는 거지?’ 하면서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선뜻 나서서 나가사키 평화 공원에 가자고 얘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사코 씨가 배려를 해 주시는 건지, 원래 시선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사시는 건지, 그냥 가시더라. 그래서 따라 찍었다.

 

김성욱: 영화 전체를 보면 요코와 마사코가 등장하고, 내레이션으로 언급되는 인물로는 <만춘>(1949)의 노리코와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의 프랑스 여인(엠마누엘 리바)이 있다. 일본에 가서 찍은 장면에선 여고생들이 나온다. 시간적으로 다른 연령대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거창하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국가와 여성이라는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다. 일본에 가서 촬영을 할 때 처음부터 눈에 들어온 것인가.

김응수: 그건 염두에 뒀다. 아오모리로 향하는 여행 속에선 요코라는 인물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그 이미지에 맞는 비슷한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찾았다. 요코라는 사람이 고토에 살았다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 같다. 일본은 근 200년 동안의 전통이 이어져 있다. 낡은 것을 버리지 않고 고쳐 쓰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축적된 느낌이 강하다. 히로시마에서 사진 찍는 여학생들, 자기네 역사임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응시하는 마스크 쓴 20대 아가씨 등 모든 것들이 굉장히 비슷하게 보였다. 그 영화들을 생각한 것도 무엇과 무엇을 대비하려는 게 아니라, 내레이션을 쓰면서 갑자기 생각난 인물들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오는 내레이션이고, 역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는 비슷비슷한 이미지를 여행 경로 속에서 취사선택했다.

 

김성욱: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 b와 q라는 이니셜을 가진 두 인물의 영상 편지 같은 것이 나온다. 주체가 확실히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분산된 느낌이 강하다.

김응수: 내레이션은 모두 제 목소리다. 두 사람의 내레이션을 하나의 목소리로 녹음한 건, ‘b는 이런 성향이고 q는 이런 성향을 갖는다.’ 이렇게 설명하기보다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가 좌충우돌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싶었다. 각자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는, 한편으론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것과, 다른 한 쪽으로는 거기서 떨어져 나오고 싶은 것. 그런 것 속에서 스스로가 가지는 내 안의 복잡함과 다면성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그런 것을 여러분도 분명히 가질 것이라는 확신에 선택을 했다. 복잡한 것 같지만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나는 아오모리에 가고, 또 하나의 나는 마사코 씨를 따라가고, 다른 또 하나의 나는 설명하고, 여러 가지가 있다. 처음엔 많이 혼재되지만 나중엔 완전히 갈라진다. 명확히 구분되면서 좋은 낙천성 속에서 영화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자기분열적인 작가의 내레이션을 듣는 듯하다. 전체적인 흐름과 초정을 향해 어떻게 나갈지 언제 결정되었나.

김응수: 이게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써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 감독 입장에선 일본에 가기 전에 뭔가를 써 주는 게 편했을 거다. 즉흥성을 발휘하는 게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잖나. 그래서 촬영 쪽에서는 그런 것을 요구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당시에 내가 가진 정도의 깊이를 갖고 뭔가를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가는 여정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어림잡아 찍어 나갔다. 한쪽은 마사코 씨가 있으니까 그 사람을 그냥 찍었다. 다만 어떻게 찍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그걸 고민하면서 찍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편집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에세이 필름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에세이 필름이 볼 때는 쉬워보여도 막상 하면 되게 어렵다. 이미지, 내레이션, 음악, 소리 등 여러 박자가 있는데 그것들이 다채롭게 향연을 이뤄야 한다. 웬만한 음악적 감각이 아니면 굉장히 힘들다. 그때 이미지를 평탄하게 설명하지 않고 한번 툭 잘라본 것이 굉장히 과감했다. 툭툭 자르는 절단을 내레이션 등의 다른 층으로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1: 영화를 보기 전에 소개 글만 봤을 땐 ‘아버지 없는 삶’이라는 제목이 일본의 군국주의 문제랑 관련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 사람이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게 비극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감독님의 견해가 그게 궁금하다. 또 영화가 마사코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그 분이 영화에서 보여질 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약한 느낌이 든다. 감독님의 내레이션이 그걸 대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가가기 조심스러운 태도와 관련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

김응수: 각자의 관점에서 영화가 다가오는 측면은 분명 있다. 그래도 조금 부연을 드리자면, 마사코 씨의 얼굴은 굉장히 강렬한 얼굴이다. 보통 ‘다가온다’는 건, 감정이 확실하게 전해지고, ‘운다’, ‘슬프다’ 그런 것들일 거다. 그런 강한 감정들이 다 있는데 단지 많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저한테 마사코 씨의 표정의 변화는 순간순간 다 보인다. 떠날 때의 불안함과 도착했을 때의 스산함, 자기 나라인데도 낯선 곳에 왔을 때 보이는 눈빛과 행동 등은 매우 적나라했다. 내레이션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드러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문제는, 국가가 어떤 거다, 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무정부주의자도 아니고, 어딘가 소속되어 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국가를 다 믿을 건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 FTA가 되면 자동차를 팔고 농산물을 사는 게 유리하다고 하는데, 그럼 자동차를 판 돈이 나한테 오나? 자기의 이익을 왜 국가로 가져가나. 그건 국가와 ‘나’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를 파는 사람은 자기 이익이 생기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왜 생존이 걸린 문제를 포기해야 하나. 즉 동등하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이 국가에 빠져 사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어떤 소속을 갖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고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럼 총을 들고 나가야할 거다. 그런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미약한 개인이 어떤 사고를 갖고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김성욱: 영화가 갖는 혼란함의 지점 중 하나가, 그전 작업에 다뤘던 범위에 비교해서 지리적으로 훨씬 더 넓어져서 그런 것 같다. 시간적인 문제로는 이전의 작업보다 더 과거로 들어간 부분도 있다. 또 한편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가 있다. 영화가 다루는 건 여잔데 말하는 건 남성의 목소리다. 영화 대부분의 작업도 남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차이도 있다. 영화 뒤에 나오는 내레이션의 상당부분이 차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이동성이 있고, 영화 속에서 남성은 별로 표현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표현되는 건 카메라를 들고 여행하는 감독의 내레이션이다. 그 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긴장성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샹탈 애커만의 <뉴욕에서 온 편지>가 생각났다. 뉴욕의 풍경과 편지의 내용은 일치가 안 된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가 비행기 타는 장면에서 내레이션은 ‘단호함’이라고 말한다. 시각적 정보로는 단호함의 제스쳐를 읽을 수는 없다. 그 때 두 가지의 충돌이 있게 된다. 나쁜 경우라면 내레이션이 시각적 정보 완전히 엎어버리는 상태인데, 여기선 과다한 내레이션에 긴장성의 느낌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이야기를 감독이 촬영하면서 발생하는 긴장성이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그런 점들이 흥미로웠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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