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장 영화다운 영화는 어떤 것일까 - 오승욱 감독의 선택작 <아일랜드의 연풍>

2014. 1. 24. 13:37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지금 같은 세상에서 관용이란 의미,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각자의 존엄을 지키며 사랑하는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영화다.”


- 오승욱 감독의 <아일랜드의 연풍> 추천사


[리뷰] <아일랜드의 연풍>




<아일랜드의 연풍>을 2014년에 다시 본다는 것 - 가장 영화다운 영화는 어떤 것일까


내가 처음 <아일랜드의 연풍>을 본 것은 TV에서였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주말의 안방극장이었던 명화극장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은 검은 뿔테 안경이 인상적이었던 정영일 영화평론가였다. 그 당시 나는 정영일 씨가 명화극장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소개할 때 “놓치면 안 되는 꼭 보아야 할 영화” 또는 “놓치면 후회할 영화”라고 한 영화들은 꼭 보았다. 그가 놓치면 안 되는 영화라고 소개한 영화 <브레이킹 어웨이>(1979, 피터 예이츠)를 보고 홍콩 무술영화가 아닌 청소년들이 나오는 멜로 영화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경험을 한 후 나는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했었다.

어느 날. 명화극장의 예고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정영일 씨는 이번 주말에 방영되는 <아일랜드의 연풍>은 놓쳐서는 안 될 꼭 보아야 하는 영화라 평소와는 달리 더욱 힘주어 말했고, <그린베레>(1968, 존 웨인>를 본 이후 절대 상종 못 할 배우의 1위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던 존 웨인과 <황야의 결투>(1946, 존 포드)를 보고 와이어트 업보다는 악당들인 클링턴 일가를 응원하게 만들어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 1위였던 존 포드 감독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정영일 씨가 이 정도로 강도 높게 추천하는 예를 본 일이 없는지라 그를 믿고 주말의 늦은 밤 TV 앞에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영화평론가 정영일 씨가 등장하여 영화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하였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했던 말들 중 잊혀지지 않는 것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일랜드의 초록색 풍광의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잠이 들고 말았다. 여전히 잘난 척하는 덩치 큰 멍청이 존 웨인이 등장하여 모린 오하라와 연애를 하는 이야기가 계속되었고,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 어떤 것도 영화에서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영일 선생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초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아일랜드의 연풍>을 보기 전, TV에서 우연히 본 <서부 개척사>(1962, 조지 마샬, 존 포드, 헨리 헤서웨이)라는 영화를 보고 두 개의 장면에서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시시한 장면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한 장면에 이르러 나는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먼지바람이 부는 황량한 남부의 드넓은 대지 위에 집 한 채가 서 있다. 현관문이 열리고 15세가량의 소년이 남군 군복에 군장과 총을 메고 나온다. 그 뒤를 따라서 수심이 가득한 소년의 어머니가 따라 나오고 두 사람은 황량한 지평선 위에 점처럼 오도카니 서 있다. 두 사람은 집 마당 한쪽을 바라보는데 그곳에는 남북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추측되는 아버지와 형들의 무덤이 있다.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전쟁에 나가 죽고 이제 이 집안에 마지막 남은 남자인 소년이 전쟁에 나가는 것이다. 어머니는 말없이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내리고 소년은 길을 떠난다. 끝이 안 보이는 신작로를 따라 걷는 소년 뒤를 그가 키우던 강아지가 콩콩 짖으며 뒤쫓아 달려간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 어둠 속에 한 사내가 앉아 있다. 험상궂은 사내는 북군 장교인 존 웨인이다. 그는 지금 그들이 벌이고 있는 전쟁에 대해 위험하리만치 불만을 토로한다. 그때 그의 부하들이 남군 포로를 잡아 그 앞으로 끌고 온다. 전 장면에서 집을 떠난 소년이라 추측되는 남군 소년병이다. 존 웨인은 남군 소년병을 보고 정말 모두가 미쳤다며 어린 소년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면서 집에 가서 어머니 젖이나 더 먹고 오라며 소년을 풀어주라고 한다. 소년이 사라지고 존 웨인은 막사 옆의 물웅덩이로 가서 세수를 하려고 몸을 숙인다. 순간 가까운 곳에 폭탄이 떨어지고 섬광이 존 웨인 주변을 밝게 드러낸다. 존 웨인이 세수를 하려는 웅덩이는 시뻘건 피로 물들었고, 그 주변에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세 명의 감독이 참가한 이 영화에서 나는 다른 감독들이 달리는 열차 위를 뛰어다니며 총을 쏘고 온갖 멋들어진 액션을 펼쳐도 다 시시했고 전체 140분의 영화에서 오직 존 포드가 감독한 10분 남짓의 장면만이 나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그때 이후, 나는 존 포드 감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덤으로 존 웨인에 대한 증오의 감정도 반 정도는 내려놓게 되었다.


그 비슷한 시기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동숭동 근처의 어느 극장에서 존 포드 걸작선을 상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의 포도>(1940, 존 포드)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아 나섰는데 추위에 덜덜 떨며 한 시간을 찾아 다녔지만 극장을 못 찾고 영화도 못 보고야 말았다. 추위에 덜덜 떨며 근처에 친구가 일하는 화실로 찾아가 난롯가에 앉았는데, 나보다 먼저 존 포드 걸작선 중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존 포드)를 본 친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극렬 운동권까지는 아니었지만 회색주의자인 나에 비하면 꽤나 강성인 그런 친구가 어떻게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을까? 내 생각에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와 감상주의로 가득한 영화였고, 숲 속에서 절름발이 소년이 걸음을 내딛을 때 감동하기는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었다. 친구의 입장에서는 미 제국주의의 감상적인 영화일 텐데 그는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까?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젊은 대학생들의 연이은 분신과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던 1990년대 초. 나는 어느 잡지에서 배창호 감독의 에세이 한 편을 보았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배창호 감독은 평상심이란 말을 하며 존 포드의 영화에는 평상심이 있고 자신은 그것 때문에 존 포드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배창호 감독은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신교도와 구교도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어느 날 존 웨인이 정착한 마을에 신교도의 감찰단이 조사를 나온다는 소문이 돈다. 이 마을에 신교도들의 신자들이 너무 적어 교구를 폐쇄하려는 결정을 짓기 위해서 시찰단이 온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 반목하고 무시하던 구교도와 신교도들이었다. 시찰단이 마을에 들어오는 날. 주민의 대다수인 구교도들이 거리를 메운다. 감찰단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길가에 늘어서 있던 구교도들이 신교도의 시찰단에게 손을 흔들며 환영을 한다. 심지어 구교도의 신부까지 카라를 접어서 신교도의 목사 옷으로 탈바꿈하고는 신교도 시찰단을 향해 열렬하게 환호를 보낸다. 결국 구교도의 도움으로 신교도의 교구는 폐쇄되지 않고 살아남았고, 배창호 감독은 도움이 필요한 약한 이웃에게 평소 반목을 했던 악감정을 밀어내고 관용의 손길을 내미는,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인간의 도리에 따라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들을 그려내는 것이 존 포드 감독의 영화라고 말한다. 내 친구는 어린 청춘들을 분신으로 몰아가는 그 광기의 시대에 존 포드의 영화에서 평상심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 후 나는 <아일랜드의 연풍>을 복사한 비디오테이프를 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으로 다 보았다. 배창호 감독이 이야기한 구교도와 신교도의 에피소드도 좋았지만, 10여 분에 걸친 존 웨인과 빅터 맥라클랜의 결투 장면이 너무나 좋았다. 서로 원수처럼 지내던 두 남자가 싸우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맥라클랜은 존 웨인이 마을에 들어서서 처음 마주치는 그 순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는 모르지만, 뻔뻔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양키놈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마을 토박이인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안 든 것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동생 모린 오하라가 그놈에게 빠져 자신도 모르게 연애를 하다 결혼까지 하겠다고 나섰으니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이 바로 존 웨인인 것이다. 존 웨인 입장에서는 “뭐야? 텃세를 부리냐? 아일랜드 촌놈이 힘 하나 믿고 눈을 부라리는데 어떤 바보가 고개를 숙이고 헤헤 웃겠느냐? 게다가 결혼이란 것이 남녀 당사자들이 서로 사랑하면 되는 것이지 깡패 같은 오빠의 동의가 왜 필요하냐?”라는 것이다. 결국 원수 같은 두 사람은 오전에 해 뜰 때부터 서로 주먹질을 해대며 싸우기 시작하여 마을길을 휩쓴다. 싸우다 지치면 부러진 이빨을 뱉어내며 마을 술집에 들어가 술 한 잔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서로 술값을 계산하겠다 아웅다웅하다가 또 싸우기 시작한다. 해질녘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겨우 싸움은 끝나고 싸움 정도 정인지라 두 사람은 서로의 망가진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이 장면에 매혹되었고, 이 장면에 매혹된 사람이 나 혼자뿐이 아니었다는 것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60년대에 이 영화를 보았던 임권택 감독은 <애꾸눈 박>(1970, 임권택)에서 남정임에게 반한 상하이 박(박노식)이 그녀의 오빠인 하르빈 김과 만주의 어느 곳으로 설정된 한강 광나루에서 하루 종일 서로 싸움을 하는 긴 결투씬을 찍었다. 상하이 박과 하르빈 김은 한강 백사장에 무덤을 파놓고 오늘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며 결투를 시작한다. 서로의 싸움 실력은 막상막하, 아무리 싸워도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물속에서 싸우다 지친 두 사내는 강가에 앉아 숨을 고르다 술병을 꺼내 주거니 받거니 목을 축인다. 자 이제 술을 다 마셨으니 슬슬 다시 붙어볼까? 하며 두 사내는 강 건너에 석양이 물들 때까지 싸우고 싸움 시작 전에 파놓은 무덤에 서로가 가진 오해와 악감정을 묻어 버리고 친구가 된다.


2000년대가 되어 나는 <아일랜드의 연풍>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필름으로 볼 기회를 얻었다. 20대 초반에 보았던 그 영화가 아니었고, 30대에 본 그 영화가 아니었다. 다시 본 영화에서 모린 오하라와 존 웨인의 관계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존 웨인과 결혼을 한 모린 오하라는 존 웨인을 신혼 방에 못 들어오게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썼던 물건들. 침대에서부터 숟가락 하나까지 모두 신혼 방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오빠와 원수지간이 된 존 웨인은 “그까짓 것 필요 없다. 내가 더 좋은 것으로 새로 다 사주겠다. 넌 몸만 와라” 한다. 모린 오하라는 존 웨인의 말에 화가 났다. “나의 물건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이다.” 결혼을 꿈꾸며 준비했던 물건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사용했던 물건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오빠라는 인간과 남편이라는 인간은 서로 다투며 자신의 물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모린 오하라의 자존심은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물건을 오빠 집에서 모두 가져올 때까지 신혼 방에 절대로 들어올 수가 없다고 선언한다. 모린 오하라에게 뭘 잘못했는지 이해를 못 하는 존 웨인과 그녀의 오빠는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그녀를 위해 남자의 단순한 머리로 생각한 마지막 방법인 결투를 선택하고 서로 피떡이 되게 싸운다. 맥라글랜이 존 웨인과 화해를 한 후. 계속 뻗대는 모린 오하라의 발을 잡고 거칠게 존 웨인에게 넘기는 장면도 흥미롭다. 맥라글랜은 “이제 너의 의도는 알겠고, 우리가 잘못했다. 우리들의 너에 대한 사과 방식은 이런 것이니 이제 그만 고집 피워라” 뭐 이런 것이다. 고집을 피우던 모린 오하라도 “뭐 양에는 안 차지만 이 정도면 저 두 바보가 이해를 한 것 같군” 하고는 존 웨인을 받아들인다. 40대에 들어서 이 영화는 자존감에 관한 영화라는 것. 그리고 그 자존감에 대해 서로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는 기나긴 여정을 다룬 영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존 포드의 <아파치 요새>를 보면서 그는 클로즈업을 극도로 아끼는 감독이고 인물들의 딜레마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그로 인해 그의 자존감이 빛날 때 클로즈업을 사용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그렇게 싫어했던 존 포드의 영화를 다시 생각하고 이제는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영화 일을 하면서 얻은 값진 수확이었다.



이 영화를 DVD로 다시 보면서, 남자와 여자의 키스신만큼이나 격렬한 액션신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모린 오하라와 존 웨인의 데이트신. 초록의 대지가 한껏 물이 오른 화창한 어느 날. 연인은 데이트를 한다. 자연의 축복 속에서 출발한 데이트는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과 비바람에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막 사랑에 빠져든 연인들의 감정은 비바람 따위에 무너지지 않는다. 아니 더욱 부채질을 하는 격이다. 비를 피해 헛간으로 몸을 피한 모린 오하라와 존 웨인의 격렬하고도 에로틱한 장면. 존 웨인의 키스에 자신의 격정을 억누르려 도망치는 오하라가 오두막의 문을 열자, 비바람이 집 안으로 들이닥친다. 존 웨인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문밖으로 나가려는 오하라의 욕정을 억누르려는 몸짓은 비바람과 존 웨인의 손에 의해 무너진다. 이 격렬한 액션신. 비바람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연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존 포드의 솜씨라니.

영화가 가장 영화답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영화가 다른 예술과는 다른 지점, 영화이기 위해 가져야 하는 가장 원형질의 무엇이 나는 존 포드의 영화에 있다고 믿고 있다.

2014년. 1990년대 초의 그 끔찍한 시절로 설마 돌아가기야 하겠어?라 말하지만 불안은 계속되고 점차 커져간다. 2014년 초에 <아일랜드의 연풍>을 왜 보는 것인가? 하필이면 왜 구닥다리 같은 <아일랜드의 연풍>이고, 존 포드인가? 2000년대 중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존 포드의 영화가 상영될 때의 일이다. <아일랜드의 연풍>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앞으로 나오는데 관객인 남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뭐야? 존 포드 영화가 왜 그렇게 대단하다는 거야? 과대평가 아냐?” 하는 말을 들었다. 꼰대가 되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라 말할 수는 없다. 눈에 거슬리는 낙관과 센티멘털, 양키들의 거들먹거림이라는 막을 걷어내고 주의를 기울이면 요즘 영화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영화적 아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 끝에 나온 이야기들이 존 포드 영화에 있다. 평상심과 관용이 아무런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2014년 연초에 존 포드의 투박한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뭔가를 생각하게 하리라 믿는다.  


오승욱 / 영화감독



<아일랜드의 연풍> 2/18(화) 19:30 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