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잉여’조차 되지 못하는 청춘들의 가난한 춤 - 이준익 감독의 선택작 <토요일밤의 열기>

2014. 1. 24. 13:41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최고의 섹시 청춘스타였던 시절의 존 트라볼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냥 신나는 댄스영화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영화 속 토니의 모습은 지금 대한민국의 청춘들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 이준익 감독의 <토요일 밤의 열기> 추천사




[리뷰] <토요일 밤의 열기>



‘잉여’조차 되지 못하는 청춘들의 가난한 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는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 미국 대중문화의 격변을 매우 세밀하고도 특징적으로 묘사한다. 정점을 찍었던 극장 포르노 산업은 이제 곧 비디오에 시장을 내줄 운명이었고,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가진 것 없고 가방 끈 짧은 청년들의 희망이었으나 예전 만하진 못했다. 그리고, 디스코. 몸에 딱 달라붙는 셔츠와 판타롱 바지를 입은 남자들이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디스코를 추던 장면들은 <부기 나이트>의 미장센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장면들이다. 이 디스코 열풍의 시작이 바로 존 바담이 연출한 존 트라볼타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가질 법한 편견에서 제법 동떨어져 있다. 당시 클럽 최고의 유행 음악 및 춤이었다곤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음악들의 비트와 속도, 혹은 비보잉 같은 춤의 동작에 비하면 소박하고 ‘서정적’이며 심지어 우아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브룩클린 베이릿지 빈민가 거리의 노동자 계급 출신의 아이들이 얼마나 ‘아메리칸 드림’과는 동떨어져 살고 있는지 꽤 섬세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에 나오는 이들과 한 마을에 살지만 그들처럼 갱이 될 배포도 안 되는 아이들이 걷게 될 지지리 궁상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달까. 이들은 베이릿지 바깥의 세상은 아예 꿈도 꾸질 못한 채, 평생 동네 점원으로 살며 사춘기 때 함께 사고친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다 실업자가 되어 아내를, 혹은 자식을 들볶고 살게 될 ‘빤한’ 운명이다. 토니도 이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평생 기대 한 번 받지 못한 채 ‘놈팽이’로 비난이나 들어온 그에겐 끝내주는 춤 실력조차도 진짜 자랑거리나 자부심은  되지 못한다. 그는 “춤은 젊은 한때 출 수밖에 없고 나는 곧 나이를 먹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즉, 자신의 전성기란 동네 디스코텍에서 바보 같은 친구들과 또래 여자아이들 앞에서 잠시 우쭐할 정도일 뿐 아니라 그 시한도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이런 그가 디스코텍에서 만난 스테파니는 토니와 그 친구들 앞에서 끝없이 거들먹거리며 자신이 그들과 동급이 아님을 애써 과시한다. 그러나 그녀의 자랑거리 역시 “오늘 연예인 누구를 봤다”는 것뿐. 다만 그녀가 토니와 달랐던 것은, 이런 삶에서 어떻게든 도망쳐 ‘맨해튼 중심부’에서 사는 것을 꿈꾼다는 것이다. 그러나 맨해튼에서의 그녀의 삶 역시 도시의 밑바닥일 수밖에 없다.




춤 영화로서 이 영화의 클래이막스는 아무래도 클럽 ‘오딧세이’에서 열리는 댄스경연대회다. 그러나 토니와 스테파니가 비장의 춤을 선보이며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순간보다, 그 직후 토니가 자신의 1등 트로피를 2등 수상자들에게 넘기는 장면이 감정적으로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그는 ‘공정한 경쟁’을 원했고 ‘공정한 패배’를 원했지만,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다. 더욱이 친구들 간 벌어진 비극들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일관되게 바보 같고 한심할 수밖에 없는지 깨닫는다. 그렇기에 그 삶에서 탈주하는 것을 희망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의 새로운 삶이 과연 얼마나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영화는 그가 스테파니와 (연인이 아닌) 친구의 관계를 맺는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아무런 희망이나 낙관을 남겨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의 엔딩 장면은, 비록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의 엔딩만큼 강렬하진 않아도 그 비슷한 정서를 품고 있다.

이 영화에는 정확히 2년 후 나온 우디 앨런의 영화 <맨해튼>(1979)의 한 장면과 앵글과 미장센마저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맨해튼>의 정서와 달리, <토요일 밤의 열기>의 장면은 귀엽긴 해도 다소 궁상맞고 초라하다. 이는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속한 계급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디스코클럽의 반짝이는 조명이 꺼진 뒤 드러나는 가난한 청춘들의 “잉여조차 되지 못한” 맨 모습은 이토록 짠하고 아프다. 이 영화는 그 초라함을 담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드러낸다.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토요일 밤의 열기> 상영 일정

2/4(화) 17:00

2/19(수)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