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5. 10:32ㆍ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칼 드레이어의 <오데트>
이와 같은 사랑에의 인식을 억압하는 것은 결국 종교이다. 영화의 배경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덴마크의 기독교는 두 종파로 분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선 영화에서 재단사 피터가 신봉하는 음울하고 광적인 기독교가 있다. 그들은 실제로 잔인한 폭력과 가혹함을 시험했다. 거기에 반기를 든 것이 영화에서 보겐 가족이 믿는 보다 밝고 즐거운 형태의 기독교이다. “당신들은 죽음에 매료된 신앙이지만, 나의 신앙은 삶의 행복함으로 충만하다”라고 말하는 보겐의 말은 이를 잘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주된 것은 두 종교 간의 편협함, 억압받는 사랑,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의 문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믿음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은 광인인지 성인인지 알 수 없는 아주 미묘한 정체성을 가진, 요하네스라는 인물이 하는 말들을 믿어야 할 지를 시험 당하게 된다. 이 믿음의 여부는 영화를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영화의 시공간감각은 미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자연과 실내공간은 절연되어 있는 듯, 어떠한 연결성을 찾아내기 힘들다. 집의 내부와 외부를 인물이 직접적으로 오가는 모습은 볼 수 없으며, 내부와 외부의 시간대 처리도 매우 모호하다.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외부를 바라볼 때의 시점쇼트의 경우, 시선의 매칭이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그들이 정말 그 풍경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중요한 순간에 요하네스만이 창틀을 넘어 집밖으로 나가면서 그 절연된 경계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영화의 매우 결정적인 마지막 시퀀스에서 창틀을 통해 들어오는 백색 빛의 찬란함은 그 경계를 무(無)로 만든다. 앙드레 바쟁은 드레이어의 영화를 ‘백색의 형이상학’이라고 부른바 있다. 이러한 경계의 무화는 물질적인 세계 내에 침투한 영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믿음과 사랑에 대한 영화의 주제의식과 밀접히 관련된다.
카렌 카스톤은 “<오데트>에서의 기적은 어떤 면에서 물질과 정신이 하나이며, 그런 확신으로 살아가는 삶은 다를 것이라는 것,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그런 삶을 가능케 하는 인간적 경험이라는 신념에 대한 은유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영화 속의 모든 중요한 일들이 인간의 믿음과 사랑의 영역 안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드레이어가 진정 중요시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는 보는 자의 내면의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 낼지도 모른다. 즉 세상에 대한 믿음을 다시 회복하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기적이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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