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토니 마네로> -'미국화'된 껍데기의 비극

2015. 2. 2. 15:06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한창호 평론가의 선택 - 토니 마네로 Tony Manero

2008│97min│칠레│Color│35mm│청소년 관람불가

연출│파블로 라라인 Pablo Larraín

출연│알프레도 카스트로, 암파로 노구에라, 파올라 라투스


“<토니 마네로>는 우리와 비슷한 현대사를 가진 칠레의 영화다. 두 나라 모두 여전히 군사독재의 트라우마가 악몽처럼 출몰하는 현대를 살고 있다. 게다가 미국 대중문화에 어쩌면 무방비로 노출된 환경도 비슷하다. 그런 조건에서 발생하는 비극이 흥미로웠다.”



‘미국화’된 껍데기의 비극




파블로 라라인의 영화에 주목한 것은 우선 그의 국적인 칠레 때문이다. 물론 2000년대 들어 남미 영화들이 선전한 것도 흥미를 유발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남미의 영화 열기는 지금도 브라질, 멕시코 등으로 확산되며 여전히 뜨겁다. 그런데 굳이 칠레 영화인 까닭은, 그 나라의 정치와 우리의 그것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군사정부의 오랜 독재, 그 아래서의 경제 성장, 마침내 들어선 민주주의 정부, 하지만 여전히 악몽처럼 출몰하는 독재시대의 트라우마 등은 두 나라가 공동으로 경험하고 있는 현대사다.


<토니 마네로>(2008)는 그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수작이다. 그해 신인들의 영화축제인 이탈리아의 토리노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파블로 라라인의 화려한 집안도 알려졌다. 부친은 칠레 보수정당의 당 대표와 상원의장 등을 역임한 유명 정치가이고, 그의 모친은 칠레의 재벌 집안의 딸이자 주택도시개발 장관을 역임한 정치가다. 말하자면 보수 명망가 집안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가 32살 때 만든 두 번째 장편인 <토니 마네로>는 집안의 정치성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을 갖고 있다.


‘토니 마네로’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주인공인 존 트라볼타의 영화 속 이름이다. 이 영화가 배급된 1978년이 <토니 마네로>의 시간적 배경이다. 그때는 피노체트 군사독재의 공포가 살벌했다. 도로에는 소총을 맨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고, 또 정보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공포감을 조성한다. 우리의 과거와 대단히 닮아 있어 기시감이 들 정도다. 주인공인 중년 남자 라울은 변두리의 술집에서 변변찮은 쇼를 하며 돈을 버는 ‘건달’인데, 존 트라볼타의 디스코를 본 뒤 마치 복음을 들은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거의 매일 <토요일 밤의 열기>를 반복해서 보고, 트라볼타의 대사는 거의 다 외우고, 트라볼타의 흰색 정장을 신주 모시듯 걸어놓고, 음료는 역시 그처럼 ‘판타Fanta’만 마신다. 심지어 자신이 누구냐고 물으면 ‘토니 마네로’라고 소개한다. 말하자면 라울은 껍데기만 ‘미국화’된 칠레의 은유다. 빔 벤더스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1976)에서의 유명한 대사, 곧 “여긴 미국 문화의 식민지” 같은 상황이다.



마침 칠레의 TV에선 ‘닮은 사람 찾기’ 쇼가 인기리에 진행 중이다. 토니 마네로를 찾는 프로그램이 예고됐고, 라울은 자기가 1등을 하리라 상상한다. 그런데 그는 이미 52살이며 춤 실력도 트라볼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가 춤추는 술집의 무대는 영화 속의 네온 조명이 번쩍이는 유리 바닥의 화려함과는 한참 거리가 먼 촌스러운 수준이다. 라울의 황량한 삶의 풍경은 16mm의 거친 필름에 제대로 기록돼 있다. 라울은 트라볼타처럼 화려해지고 싶다. 우선 마룻바닥을 유리로 바꾸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라울은 오직 그 돈을 구하기 위해 뭐든지 다 할 참이다. 이를테면 정보경찰의 폭력에 정신을 잃고 쓰려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구하기는커녕,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시계를 벗기고 목걸이를 떼어낸다.


말하자면 <토니 마네로>는 파탄지경에 이른 어떤 남자의 정체성, 곧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오인하고 있는 남자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만 모를 뿐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는 트라볼타 근처에도 못 갈 정도로 볼품없는 남자다. 그 오인된 정체성이 국가의 정체성까지 암시하는 것은 물론이다. 영화가 긴장 속으로 치닫는 건 라울의 반대편에선 칠레의 정치적 비극이 매일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한쪽에선 디스코의 향연이 펼쳐지고, 또 TV에선 미국의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대중적인 쇼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선 반정부 유인물을 들고 가던 시민이 누군가에게 맞아 강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다. 전세계로 전파된 미국 문화는 라울 같은 껍데기들을 양산했고 이것이 칠레의 비극이라고 라라인은 생각한 듯하다. 사실 그 비극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한창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