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9. 11:05ㆍ2014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누아르 탐정, 멜랑콜리한 방랑자
로버트 알트만의 <기나긴 이별>(1973)은 1970년대에 되살린 필름 누아르다. 1953년에 발표된 레이먼드 챈들러의 후반기 동명소설이 원작인데, 흔히 이 소설은 작가의 초기 작품인 『빅 슬립』, 『안녕, 내 사랑』과 더불어 챈들러의 3대 작품으로 꼽힌다. 독자들은 먼저 영화화됐던 『빅 슬립』과 『안녕, 내 사랑』을 더 좋아했지만, 챈들러는 『기나긴 이별』을 ‘자신의 최고작’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자전적인 내용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기 때문일 터다. 이 소설의 주요 테마처럼 챈들러는 실제로 알코올중독에 시달렸고, 그리고 글쓰기의 장벽(writer’s block)에 부딪혀 작가로서의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당시에 아내가 오랜 병환 때문에 점점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소설은 시종일관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다(아내는 결국 소설 발표 1년 뒤 죽는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자전적 내용이 포함돼
영화가 발표될 때인 1973년에 로버트 알트만은 이미 작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야전병원 매쉬>(1970)로 칸영화제에서 감독 특유의 형식으로 황금종려상도 받았다. 할리우드의 관습인 인과율의 서사를 지양하고, 중층적인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하며, 수많은 캐릭터들을 복합적으로 제시하는 알트만의 형식은 지금도 ‘알트만적인 앙상블’(Altmanisque ensemble)이라고 불리며 여러 작가들에 의해 찬양되고 있다. 사회풍자적인 내용도 매력적이지만, 반관습적인 알트만의 독특한 형식 자체가 1970년대 진보적 영화 미학의 한 상징으로 해석된 까닭이다.
그런데 <기나긴 이별>은 알트만 고유의 스타일과는 약간 다른 작품이다. 우선 주요 인물이 다수가 아니라, 필립 말로우라는 한 명의 뚜렷한 주인공으로 제시돼 있다. 그리고 사립탐정인 그가 범인을 찾아가는 비교적 단일한 스토리가 필름 누아르라는 익숙한 틀 속에서 전개된다. 말하자면 알트만 특유의 복합적인 구조의 작품은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이별>은 ‘안티 할리우드’(anti-Hollywood)의 기수가 만든 작품답게, 과거의 전통적인 누아르와는 구분되는 알트만 특유의 인장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먼저 ‘도시의 외로운 남자’인 주인공의 성격이 변했다. 대개 필름 누아르의 주인공이라면 험프리 보가트를 떠올린다. 냉정하고, 능숙하고, 반영웅적인 카리스마의 남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엇 굴드가 연기한 필립 말로우는 누아르 영웅의 남성이 아니다. <기나긴 이별>의 유명한 도입부인 ‘고양이 먹이 구하기’ 시퀀스에서 그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10분 정도 이어지는 일종의 프롤로그인데, 말로우는 새벽 3시에 고양이에 의해 잠이 깼고, 그 시간에 고양이의 먹이를 사기 위해 24시간 마트에 가는 시퀀스다.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입에 문 그는 한밤중에 고양이의 먹이를 사야 하는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며 투덜대는데, 그러고도 마트에 가서는 점원에게 핀잔만 들을 뿐 원하는 물건도 사지 못하는 한심한 남자다.
말하자면 누아르의 일반적인 주인공과는 판이하게 다른 ‘소심한’ 캐릭터가 <기나긴 이별>의 필립 말로우다. 이를테면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1946)에서 상대방을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째려보던 험프리 보가트 같은 누아르 영웅과는 너무 다르다. 누아르 주인공의 캐릭터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프롤로그로서의 도입부는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1967)가 유명한데,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냉정한 프로페셔널의 성격을 연기하던 알랭 들롱의 그 모습과도 한참 다른 경우다. 말하자면 알트만은 10여 분에 이르는 긴 도입부를 통해 누아르 영웅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한순간에 깨버린 것이다.
네오 누아르(Neo Noir)의 선구작
이 남자가 알코올중독인 유명 작가와 그의 미모의 아내가 연루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게 주요 스토리다. 말로우는 새벽에 고양이 먹이를 산 뒤, 오랜 친구를 만나 급히 그를 멕시코까지 데려다준다. 그런데 그 친구의 아내가 타살된 사실이 알려지고, 말로우는 꼼짝없이 살인 혐의자의 도주를 도운 의심을 받는다. 친구를 위해 묵비권을 행사하며 경찰서에서 버티는 사이 이번에는 그 친구마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불과 며칠 사이에 친구 부부가 모두 죽은 것이다. 말로우는 음모가 있을 것이란 의심을 하고, 사건의 내막을 캐기 시작한다. 사건의 열쇠를 바로 그 알코올중독 작가와 그의 아내가 쥐고 있다.
자, 이제부터 말로우의 수사를 따라갈 준비를 하면 된다. 그런데 말로우는 사건의 해결도 보가트처럼 박력 있게 끌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기나긴 이별>의 스토리는 무슨 미로를 헤매듯 복잡하게 진행된다. 사실 영화가 종결된 뒤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계속 남을 정도로 이야기는 얽혀 있다. 그런 모호한 전개 때문인지 발표 당시에 <기나긴 이별>은 알트만의 다른 대표작인 <야전병원 매쉬>나 <내쉬빌>(1975) 등과 비교할 때 관객의 큰 환대는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미로 같은 내러티브도 지금은 바로 그 시대, 곧 베트남전쟁의 악몽이 남아 있는 1970년대의 정치 분위기를 은유하는 것으로 수용되기도 한다. 밤의 미로 속에 빠진 악몽이 곧 바로 그 시대의 감성이라는 것이다.
말로우의 막막한 감성은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주제곡 ‘긴 이별’로 보강되는데, 바로 그럴 때 관객은 더욱 현실적인 동일시의 기제에 빠지기 쉽다. 말하자면 누아르 영웅 험프리 보가트의 필립 말로우가 허구라면, 평범한 남자 엘리엇 굴드의 말로우는 현실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그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밤거리를 혼자 걷는 막막함이 과거에는 알트만의 소수팬들에게만 지지를 받았다면, 지금은 바로 그런 점이 <기나긴 이별>의 매력으로 수용되고 있는 셈이다. 리얼리티가 있다는 것이다. <기나긴 이별>은 과거의 누아르 관습에 변화를 가져왔는데, 발표 당시에는 약간 낯설었지만 지금은 대개 새로운 미학의 출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네오 누아르’(Neo-Noir)의 선구작으로 꼽힌다.
한창호 / 영화평론가
<기나긴 이별> 1/29(수) 17:00 상영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
1973│112min│미국│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로버트 알트만 Robert Altman
출연│엘리엇 굴드, 스털링 헤이든, 니나 반 팔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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