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7. 20:20ㆍ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박찬욱이 추천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시네토크
1월 16일 3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상영 후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첫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 영화를 선택한 박찬욱 감독은 이 자리를 빌어 자신의 무의식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영화라고 소개하면서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더불어 그는 얼마 전 영국에서 뢰그 감독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며 뢰그와 그의 영화에 관한 흥미진진한 비사도 전했다. 테마나 이미지에 있어 박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박쥐>와도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던 그 시간을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친구들 영화제를 위해 감독님이 꼽았던 다른 두 편의 영화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그 중 <쳐다보지 마라>를 상영하게 되었는데, 이 영화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오늘 다시 본 느낌은 어떠셨는지.
박찬욱(영화감독) :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말끔히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불명료하고 모호하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가장 뛰어난 공포 영화, 또는 공포 영화 장르의 범주를 벗어나서, 가장 무섭고 아름다우며 불안한 영화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고, 저도 그래서 좋아한다. 2003년, 제가 영화제 때문에 런던에 갔을 때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마침 그 때가 영화가 개봉한지 30주년이라 깨끗한 새 프린트로 영국 전역에서 정식으로 재개봉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영국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영화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그 때의 경험이 우리 부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이 영화를 본 얘기를 하곤 한다. 요즘 들어 제 영화들을 돌이켜 보니까 이 영화에서 영향 받은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딸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복수는 나의 것>의 아버지나 <박쥐>에서 계속해서 강우의 유령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그렇다. 강우도 물에 빠져 죽고, 물에 젖은 그의 유령이 나타나자 집안도 젖어가고 축축해진다. 그것은 강우가 죽은 호수를 떠올리게 한 장치였는데, 어쩌면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서 근거한 것일지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저의 무의식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영화이다.
김성욱 : 감독님의 영화에서 ‘죽은 아이’라는 테마,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에게 나타나는 물에 젖은 아이랄지, 그리고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아이의 유괴나 죽음이 등장한다.
박찬욱 : 제가 아마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을 텐데, 누구나 그렇듯이 부모가 되면, 자신의 죽음보다도 더 끔찍하고 가장 두려운 사건으로 상상하게 되는 게 아이에 관한 거다. 저는 제가 만드는 영화에서 항상 최악의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모든 행복과 쾌락을 앗아가는 최악의 사건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다루게 되는 것 같다.
김성욱 : 초반부 장면이 인상적이다. 도날드 서덜랜드가 보고 있던 사진에 빨간 물감이 퍼지고, 아이의 죽음과 연결되어지는 장면, 액체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표현한 것 같다. 또 죽음과 색채가 연결되는데, 영화 곳곳의 붉은 색이 그렇다. 그런 표현의 방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박찬욱 : 이 영화에서 사용된 기법이란 것이 당시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몇 달 전, 런던에서 뢰그 감독을 만나 얘길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감독이 하는 말이 자신은 영화를 만들어서 개봉 당시에는 한 번도 비평적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 이 영화도 개봉했을 때 굉장히 평가가 안 좋았고 특히 미국평론가들의 혹평이 많았다. 이 영화에서 시제를 혼동시키는 것, 과거와 미래가 자꾸 현재에 끼어드는 방식은 뢰그 감독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작인 <퍼포먼스>에서도 그러한 점들이 나타난다. 특히 섹스장면에서의 크로스커팅과 플래시포워드는 영화를 처음에 봤을 때는 촬영 때부터 정해져있던 편집이었는지, 편집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인지 궁금했었다. 지금 보니 촬영단계에서 정해져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왜 그렇게 했을까. 이 영화에서 섹스 후 옷을 입고 화장하는 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굳이 그런 것들을 섹스장면에 집어넣었을까. 의도를 알기 어려운 편집인데, 감독이 직접 말하길, 그저 부부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라. 섹스라는 것이 부부에게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런 생활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고 찍었다고. 아마도 아이의 죽음 이후 부부가 처음 나누는 정사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드라마 상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에서 부부의 관계회복이라든가, 일상으로의 복귀를 환기시킨다. 더 나아가 미래가 현재에 끼어든다는 것, 미래를 보는 남자와 장님을 그러한 형식,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관객1 : 거울장면이 기억 남는데, 줄리 크리스티가 거울 보는 장면에서 <올드보이>의 미용실 장면이 생각났다. 감독님의 소견은.
박찬욱 : 이 영화가 독특하고 알 수 없는 지점은 관객을 자꾸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들면서 결말로 이끌어간다는 거다. 전 식당에서 여자가 기절하는 장면은 상징적인 죽음이 아닌가 생각했고, 그 이후의 삶이란 유령과 같은 것이라 보았다. 서덜랜드가 성당에서 떨어질 뻔한 것도 그렇고, 거울 장면도 그렇고, 경찰에 가져가는 폴라로이드 사진의 이미지도 전체적으로 유령과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결말은 그녀가 아니라 결국 남편이 죽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부부는 둘 다 유령 같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김성욱 : 영화 곳곳에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상한 시선이 있다. 초반 화장실씬도 그렇고.
박찬욱 : 영화에서 주인공을 힐끗 보거나 쳐다보고는 사라지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뭔가 안 좋은 사건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관찰당하는 그런 느낌들을 받게 된다. 화장실의 늙은 여자, 주교와 면담하고 있는 젊은 여자와 그 한켠에서 안절부절 하는 젊은 남자, 여자경찰관 통역도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형사도 그렇다. 그가 몽타주 그림을 보면서 ‘몽타주는 산 사람도 시체처럼 보이게 한다’는 말은 자매를 유령처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주교의 표정도 이상하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주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님 형사인가 싶기도 하다. (웃음) 의도적으로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로 불안을 조성한다.
관객2 :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는 제목의 의미가 뭐라 보는지.
박찬욱 : 이 영화는 본다는 게 중요한 영화다. 장님인데 무언가 보는 사람, 자신의 미래를 보는 남자가 그렇다. 또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보는 것과 시제에 관한 영화라는 걸 알려주는 제목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할까. 결론은 확실치 않지만,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부부는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말라는 말이다. 결국 서덜랜드를 죽이는 연쇄살인자가 빨간 우비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은 이 남자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이 아닐까. 그가 보는 빨간 우비는 물에 비친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그런 장면들은 계속해서 이것은 환영이고 죄의식과 연결되어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성욱 : 본다는 것과 관련해 인상적인 것은 형사가 시체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인 70년대의 영화들에서, 이상하게 본다는 것과 죽음이 많이 연결된다. 끔찍한 것을 보는 행위가 영화에서는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색깔이나 다른 사람들의 모호한 시선을 통해 중개되어 나타난다. 이런 류의 모호하고 알 수없는 영화들이 나왔던 시대의 트라우마나 공기가 연결되어있다는 생각도 좀 든다.
관객3 : 감독님의 영화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맞게 되는 죽음, 운명이 나타나는데, 이 영화도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박찬욱 : 뭔가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숙명론적인 세계관이 그 당시의 젊은 감독들에게 좀 있었던 것 같다. 데뷔작인 <퍼포먼스>라는 영화를 60년대 말에 만들었는데, 그 당시의 히피문화, 혁명에 대한 절망적인 시선이 들어나 있다. 이 영화는, 60년대를 보낸 지식인 부부가 부식되고 침몰하는 도시인 베니스에 와서 오래된 것들을 수리하고 복원하는 일을 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 암담한 전망이 이 영화에 들어있지 않나 싶다.
관객4 : 히치콕 영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박찬욱 : <현기증>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자 다프네 뒤 모리에는 히치콕의 <새>나 <레베카> 같은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각색을 너무 심하게 해서 제작자와 감독이 뒤 모리에에게 겁을 좀 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뒤 모리에가 감독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원작과 많이 바뀌긴 했지만, 자기가 처음 이 소설을 쓰면서 생각했던 이미지, 슬픔에 잠긴 부부와 베니스의 이미지가 잘 녹아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관객5 : 영화를 보면서 믿음과 우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데, 무언가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을 보여준다. 티끌이 눈에 들어가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런 우연과 시선, 티끌 같은 것들이 쌓여가는 것에서 믿음과 운명을 떠올렸다.
박찬욱 : 말씀하신 것처럼 식당장면이 인상 깊다. 남자가 창문을 여니까 문이 열리고 거기서 비롯되어서 숙명 같은 예정된 파국을 향해서 가게 된다. 분열과 붕괴, 깨지는 이미지가 계속 등장한다. 초반에 아이가 깨트리는 유리, 엄마가 읽어주는 책 제목에도 아예 단어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김성욱 : 영화에서 모자이크 조각을 붙이다가 붕괴되어 파편화되는 장면도 그렇다.
관객6 : 이렇게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셔서 감사하다. 영화가 모호하긴 하지만 결론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쳐다보지 말라’는 말은 결국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의 영역을 넘보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했다.
박찬욱 : 그럴 수도 있겠다. 영화는 뭔가 봄으로써 파국을 맞는 그런 이야기다.
김성욱 : 끝으로 관객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찬욱 : 재밌게 읽은 책 중에 <추락하는 천사들의 도시>라는 베니스에 관한 책이 있다. 바다와 소금기, 심지어 비둘기 똥에 의해 부식되고 썩어가는 베니스를 그린 논픽션이다. 가장 화려했던 유럽의 중심도시 베니스가 지금은 점점 가라앉고 붕괴되고 있는데, 이 영화도 그렇게 점점 썩어 가라앉고 있는 유럽문명에 대한 어두운 풍경을 담았다 본다.
(정리 :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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