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 - 윤리란 발명이며 창조다

2012. 1. 24. 22:4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지난여름, 『분노하라』는 한 프랑스 노투사의 짧은 외침이 담긴 책이 한국에 출간되면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단 몇 십 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가 프랑스에서만 60만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되었는데, 레지스탕스 정신의 현대적 부활을 요구하는 이 책에서 저자(스테판 에셀)는 흥미롭게도 트뤼포의 영화 <쥴 앤 짐>에 대해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세 살 때 그의 어머니(엘렌 에셀)가 아버지(프란츠 에셀)의 절친한 친구인 앙리 피에르 로셰(원작 소설 『쥴 앤 짐』의 저자)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된 경험을 밝히면서 이후 그가 견지하게 된 윤리관을 이렇게 밝힌다. “제 입장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와 산다는 것은 거슬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사랑에 동의했으니까요. 아버지는 이를 비도덕적인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저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과는 거리를 두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도덕이란 타인들과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말하자면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트뤼포는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로셰의 원작 소설에 매혹되었고 일찍이 작품의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엘렌 에셀과 프란츠 에셀, 앙리 피에르 로셰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 그의 자전적 소설에 대해 트뤼포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현대 소설 가운데 하나”라며 “미에 관해 끊임없이 새로운 윤리를 반복 부여함으로써 아무런 충돌 없이 서로에 대한 감동적인 사랑을 이루어간다”고 공개적으로 극찬했다. 그러나 자신의 첫 영화에 대한 고민으로 <쥴 앤 짐>의 영화화 계획은 계속 연기되었다. 데뷔작 <400번의 구타>로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 차기작 <피아니스트를 쏴라>로 굴곡이 심한 실패를 맛본 트뤼포는 그 즈음 다시 만나게 된 잔 모로에게서 위안을 찾으며 미뤄온 각색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 트뤼포는 카트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언어와 문학에 대해 조예 깊은 대화를 나누며 돈독한 우정을 쌓는 친구인 쥴과 짐에게 카트린은 ‘하나의 출현’이었다. 셋이 처음 한 자리에서 만나던 날 남장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갔던 장난 같은 에피소드부터 그녀는 역할의 전위를 암시하며 이들 사이의 관계를 끝없이 맴돈다. 카트린은 모든 규범에 앞서 자유의지와 동등함을 내세우며, 때마다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불쾌함을 느꼈을 때 기꺼이 세느강에 몸을 던지는 것처럼 카트린은 세간의 인습에 온몸으로 투항한다.


이들 관계에서 카트린은 절대적이며, 반박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녀는 관계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자신의 순수함 감정에 이끌리는 순수한 여인이다. 그만큼 카트린은 두 남자 앞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자이기도 하다. 카트린은 이전에는 웃는 법이 없었다며 쥴과 짐을 만나 비로소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셋이 함께 있음으로써 완성된 형태를 갖춘 듯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카트린의 표정 변화를 트뤼포는 가장 아름답게 포착해낸다. 그 덕분에 카트린의 잔상은 아련한 회상처럼 오래 기억된다.




전쟁이 끝난 뒤 짐이 돌아오며 다시 만나게 된 셋은 급격한 관계의 전환을 맞는다. 쥴은 짐에게 카트린과 새로이 결혼해 줄 것을 요구한다. “짐! 그녈 사랑하게, 그녀와 결혼하게. 내가 그녈 볼 수만 있게 해주게.”라고 쥴은 간청한다. 쥴은 오로지 카트린을 잃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한다. 이제 쥴에게 그 자신의 사랑은 비교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카트린의 연이은 변덕에 신뢰할 수 없는 짐은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약혼녀에게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짐은 ‘우린 생의 원천을 가볍게 여겼고 패했다’며 어떤 열패감을 확인한다. 짐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 카트린은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구조와 규범에 항거한다. 트뤼포는 이 영화에 대해 ‘외설스러우면서도 대단히 도덕적인 멜로드라마’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앞서 스테판 에셀이 말했던 것처럼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데에 대한 오래된 동의일 것이다.


영화 <쥴 앤 짐>은 트뤼포와 잔 모로가 함께 한 사실상의 첫 작품이다. 이후 트뤼포는 카트린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잔 모로에 대해 “카트린이란 인물을 잔 모로는 우리의 눈앞에 실재하는 설득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냈다”며 “무분별하고 도를 넘어서고 격렬하지만 무엇보다 경배할 만한 인물로, 한마디로 말해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영화의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당시 트뤼포는 라 가르드-프레네에 있는 잔 모로의 집에 몇 차례 머물렀다고 한다. 그곳은 트뤼포에게 일종의 은신처가 되었다. 이 시기 동안 트뤼포와 잔 모로는 창조적인 교류를 나누며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플로랑스 말로의 회고에 따르면 이미 그곳에 <쥴 앤 짐>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쥴 앤 짐>은 트뤼포와 잔 모로의 관계와 체험을 동시에 드러낸 영화이기도 하다. (장미경 | 에디터)


1.19(목) 13:00
1.26(목) 17:30
2.11(토) 19:00 상영후 배우 윤진서 시네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