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은 변해 가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

2012. 1. 24. 22:48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제리 샤츠버그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보그, 에스콰이어 등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미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사진 작업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는 아마도 밥 딜런의 앨범 <Blonde on Blonde>의 커버일 것이다. 그는 70년대부터 뒤늦게 영화경력을 시작했지만, 사실 당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드 팔마 같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젊은’ 감독들보다 윗세대에 속한다(그는 1927년생이다). 데뷔작 이후 그가 만든 장편 또한 모두 12편으로, 과작인 탓에 뉴 아메리칸 시네마 안에서 다른 감독들에 비해 그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었다.


그런 그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데에는 2011년 칸 영화제의 영향이 컸다. 1970년, 제리 샤츠버그가 담은 페이 더너웨이의 사진이 공식포스터에 사용되었고 ‘칸 클래식’ 섹션에서는 페이 더너웨이가 주연한 샤츠버그의 데뷔작 <Puzzle of a Downfall Child>(1970)의 복원판이 상영되어(프랑스의 비평가 미셸 시망은 이 영화를 두고 “미국영화에서 조셉 로지의 <녹색머리의 소년>(1948) 이후 가장 뛰어난 데뷔작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의 영화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이다.




1969년의 <이지 라이더>, <미드나잇 카우보이>,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70년대 미국영화에는 많은 남성 버디무비들이 등장한다. 제리 샤츠버그의 세 번째 작품인 <허수아비>(1973) 또한 대표적인 남성 버디무비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 맥스(진 해크만)와 프랜시스(알 파치노)는 함께 기차 화물칸에 몰래 올라타거나, 히치하이킹을 하며 동부로 향한다. 9년의 복역을 마치고 이제 막 감옥에서 나온 맥스는 피츠버그로 가서 세차장을 차릴 생각이고, 5년 동안 배를 타다 돌아온 프랜시스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가족을 만나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소박한 바람을 이루는 일은 쉽지가 않다. 이제는 황량한 공장지대로 바뀌어버린 곳을 바라보며 프랜시스가 말하듯, 세상은 계속해서 변해가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맥스는 왜 피츠버그에 가려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프랜시스 또한 이전의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70년대의 많은 남성 버디무비들이 그러하듯 <허수아비>에는 인물들이 돌아가거나 정착할 수 있는 가정이 부재하다. 두 인물 사이의 결속 또한 좌절되고 만다.


비관과 낙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 <허수아비>의 관조적 시선은 다른 뉴 아메리칸 시네마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다소 밋밋하거나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극중 ‘허수아비’의 의미처럼, 극적이거나 특별한 사건이랄 것 없는 여정 안에서 두 인물은 서로를 웃게 만드는 실없는 장난을 한다. 마지막 남은 성냥을 건네거나 구두 굽에 숨겨 놓은 지폐를 꺼내 보이는 제스처들이 관객 또한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동시대와 호흡하면서 사회의 주변부 인물들의 좌절된 초상을 담아내는 이 영화는 비관 대신 잔잔한 감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프렌치 커넥션>, <대부> 등 70년대에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고 있던 진 해크만과 알 파치노, 두 배우의 연기 역시 이 영화에 특별함을 더한다. (장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