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솔리니의 <마태복음> - 대화의 영화

2010. 2. 24. 16:58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얼핏 보면 이 영화의 감독이 파솔리니라는 사실은 모순이다. 맑시스트이며 무신론자가 만든 ‘예수’에 대한 영화? 파솔리니는 데뷔작 <아카토네>에서는 빈민과 포주의 이야기를, 두 번째 작품인 <맘마 로마>애서는 창녀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옴니버스 영화 <로고파지>에서 연출한 <백색 치즈> 에피소드로는 로마 카톨릭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하기도 했다. 그에게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종교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신화적 세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녔으며, <마태복음> 또한 그런 관심의 발로이다. 그리고 이 과정엔 파솔리니가 <마태복음>의 서두에서 영화를 헌정했던 ‘교황 요한 23세’의 존재가 있다. 사실 <마태복음>은 파솔리니 개인의 프로젝트라기보다는 당시 개혁주의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던 바티칸의 요구에 파솔리니가 예술적으로 부응한 결과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1958년 77세의 나이에 교황에 선출되어 영화가 완성된 1964년엔 이미 세상을 떠난 요한 23세는 20세기 카톨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관념이 아닌 현실에서의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었고 교황에 선출된 후 과거 그 어떤 종교 지도자보다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그의 화두는 ‘대화’였다. 그는 세상과의, 다른 종교와의, 첨예한 현실과의 대화를 원했다. 파솔리니 같은 인물이 <마태복음>을 만들 기회를 얻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은 ‘대화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무신론자 파솔리니가 예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표면적으로는 요한 23세에 대한 신뢰와 경의였을 것이다.



그는 신을 믿지 않지만 종교적 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그가 카톨릭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종교가 가지는 제도적 위선 때문이다). 그는 “영화가 만들어진 지 2, 3년 후에 다시 보았을 때 이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도 카톨릭적인 요소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말하며 이 영화가 “신화적 서사시의 절정”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파솔리니에게 종교라는 것은 신비주의 혹은 신화적 세계에 대한 이끌림과도 같다. 그가 점차 네오리얼리즘과 결별하게 된 것도 네오리얼리즘 영화엔 신화적 요소가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파솔리니는 예수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구성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는 2천년 전에 있었던 신화의 사실적 재현에 염두를 두었다. “나는 성서의 예수 이야기에, 지난 2천년동안 기독교인들이 가했던 해석을 더하고 싶었다.” 예수의 이야기를 담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수많은 캐릭터를 극화하는데 영화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결과 예수의 입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말은 절대로 대사에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독특한 효과를 거둔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성서를 읽을 때 느끼는 장엄함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파솔리니는 성서의 신성함 때문에 무력화되지도, 맑시스트로서의 신념 때문에 성서로부터 일탈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직 마태복음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파솔리니는 무엇보다도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종교적 정통주의와 경건주의로부터 예수의 이야기를 구원해 다시 민중들에게 되돌아주려 했다. 만약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접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강렬한 경험으로 기독교인이 되진 않겠지만 2천 년 전에 살았던 예수라는 신화적 인물에 대해서는 영원히 잊지 못할 느낌을 영혼에 새기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파솔리니의 소박한 소망이다.
(김형석 영화 칼럼니스트)

▶ 김지운의 선택 <마태복음> 상영일정
1월 19일 (화) 16:00
1월 31일 (일) 15:00 상영 후 시네토크_김지운
2월 5일 (금) 13:00

 
* 이 글은 문화학교서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카탈로그에서 필자의 동의 하에 부분 발췌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