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3. 13:09ㆍ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뽕똘>, <어이그 저 귓것>, <이어도>까지 본격 제주도 영화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오멸 감독이 일본을 오가는 바쁜 일정 중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제주도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어도>는 전작의 유쾌함과는 정 반대로 깊은 무게감을 지닌 영화였다. 같은 주제로 벌써 또 다른 영화 촬영을 끝마쳤다는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공간들이 아직 4.3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 작품이 언제나 궁금해지는 오멸 감독과의 <이어도> 상영 후 이어진 2월 ‘작가를 만나다’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까지 공연 때문에 일본에 있다가 어제 귀국하셨다. <이어도>는 정말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최근에 봤던 어떠한 한국영화보다도 강력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마지막에 나오는 건 하나의 노래인지 자막이 뜰 때 잠깐 나왔는데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다.
오멸(영화감독): 제주도 시인인 고정국 시의 일부분에 박순동이라는 친한 후배가 곡을 붙였다. 가사가 워낙 힘들어서 멜로디만 만들어두고 도저히 곡을 못 붙이겠더란다. 그래서 멜로디를 계속 밤새도록 틀어놓고 읊조리면서 자기 연습실에서 MP3로 곧바로 녹음을 한 거다. 8분이 좀 넘는 곡이다. 그게 원곡인데 앞에 몇 초 정도 간주를 1시간 20분으로 늘렸다.
김성욱: 시는 영상으로 봤을 때는 4.3사건을 다룬 것 같다.
오멸: 맞다. 1948년에서 54년까지, 제주도에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약 3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이 학살되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쓴 시다.
김성욱: 영화전체의 느낌과 이미지는 시와 노래에서 대부분 착상된 건가?
오멸: 아니다. 원래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영화 찍기를 준비하던 중 이 음악을 듣게 되었다. 원래 저런 형식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음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가는 배에서 듣다가 뜬눈으로 밤을 새게 되었다. 그때 썼던 시나리오를 이 음악이 싹 가져가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영화처럼 선명한 영상들이 스쳐가서 이 음악 자체가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모든 다른 계획을 포기하고 이 음악 하나만 사운드로 써야지 하고 작업 했다.
김성욱: 최근에 촬영을 다 마친 영화도 4.3사건이 주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각별할 거라고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에게 있어서 4.3은 어떤 의미인지.
오멸: 솔직히 대학 때까지 4.3이 그렇게 큰 사건인지 몰랐다. 워낙에 쉬쉬했던 일이라서 부모님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페스티발을 한 8년 정도 운영하며 가는 데마다 마을 주민들한테 4.3 관련한 얘기를 듣게 되는 거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국제공항 활주로에서도 아직 시신 발굴이 안 되어 있다. 많이 아시는 전방폭포도 그렇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곳들이 많은 분들의 피가 뿌려졌던 곳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간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침묵)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서.. 이 이야기만 하려면 계속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름이 구름으로 덮이는 장면이 있는데, CG를 쓴 게 아니다. 군인헬멧을 조연출이 안 가져와서 2시간 거리에 다녀와야 했다. 촬영이 미뤄지다가, 두 번째 테이크에 갑자기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다 덮었다. 그 순간, 바람도 구름도 햇빛도 억새, 모든 것들이 우리가 찍는 걸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4.3과 관련된 작품을 또 하고 있는데, 4.3 영혼들이 있다면 공간, 자연, 바람들이 기억했다가 우리와 만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성욱: 아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한 컷도 없었던 것 같다. 혹시나 아이도 죽은 게 아닐까, 엄마가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후반부에 군인이 등장한 후 아이는 사라진다.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오멸: 우선은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실제 아이를 감히 쓸 수가 없었다. 촬영하는 내내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아이는 살아있는 대상일까 죽어있는 대상일까, 있나 없나,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보여준다, 안 보여준다를 떠나서 누군가는 허술하다 볼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또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라는 얘기도 한다. 실제로 엄마는 서로를 마주보는 포즈로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서 아이는 거울일 수도 있다. 찍으면서 나름대로 아이한테 이어도라고 이름 붙였다. 희망의 공간인 거다. 그런데 실제 아이가 있다면 제주도 사람들한테는 희망이었으니까.
김성욱: 단순하게 자연을 찍었다는 느낌을 초과하는 느낌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겠다는 몇몇 장면이 있는데 물질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발자국이 있고, 들어가고 나서 순간적으로 커트가 되고 나서, 뭔가를 끌고 나오는 자국이 선명하게 남고 여인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그 이후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보여준다. 말씀하신대로 하면 풍경 안에서 남겨져있는 흔적을 담아내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여인이 항아리에서 뱀인지, 구렁인지를 빼서 던지는 순간이 있다. 뒤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앞으로 있을 위험이나 불안이 강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오멸: 우리나라 시골 정서는 그러지 않을까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한 집 당 한 마리의 구렁이가 산다고 했다. 집 뱀이라고 집을 지키는 구렁이이다. 그런데 어린 엄마는 삶의 무게를 이제야 체험하고 있다. 우리도 아직 뱀을 경계의 대상으로 알고 있지 않나. 할머니들은 품고, 그냥 둔다. 아직 미숙한 어린 엄마가 대처하는 방안은 뱀을 몰아내는 것이다. 집을 지킨다는 개념의 구렁이가 물독에 빠져 죽어있는 건 전체에 대한 암시로 작업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집 안에 제일 가까이에 있는 동물이라 생각했다.
관객1: 제주도에 최근에 다녀온 느낌과 겹쳤는지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 계속 영화가 흔들리는 것에서 배를 타고 뭔가를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주도민의 시선이라기 보단 타지의 시선이라고 느껴지는 게 있었다.
오멸: 장면 하나하나 어떻게 앵글을 잡을지 초반에 고민했을 때, 사진 찍듯 하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된 건 카메라가 5Dmark2였기 때문이다. 사진기로 찍는데 영화처럼 액션을 화려하게 하기보단 사진처럼 앵글을 잡아보자, 했던 거다. 그런데 조금 흔들리면 배처럼 그런 무빙이 생긴다. 그걸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닌데 카메라감독이 이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핸드헬드로 작업하면서 바라보는 사람의 호흡을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엔 장비가 부족해서 무게중심을 못 맞췄다. 그러다보니 초반에 다른 때보다 움직임이 과하다.
관객2: 흑백으로 찍은 이유와 대사가 하나도 없는 이유가 궁금하고, 해녀 물질하러 가기 전에 우뚝 서있는 장면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오멸: 해녀의 그 모습은 어떻게 보면 제주도가 갖고 있는 이미지 중에 불편한 모습이다. 예전에 선데이 서울 이런 잡지들을 보면 해녀들이 저런 포즈로 달력에 있는 사진이 있었다. 제주도 해녀의 모습을 비하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영이라는 친구를 바라볼 때 어떤 때는 비참해 보이는 장면에서부터, 그 장면에선 달력사진처럼 작업을 해서 해녀의 고단한 삶을 다른 눈으로 보는 모습으로 표현을 하려 했다. 그리고 흑백은 40년대 누군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여건상 흑백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더 솔직한 답변은 칼라로 시대극을 찍으면 감당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전공이 한국화여서 흑백이 갖고 있는 색의 깊이는 무한하다고 알고 있다. 소리 역시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바람소리와 음악소리에 영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묻어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영이가 우는 장면이 있다. 편집하는데 계속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더라.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없어서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8분으로 가는 과정의 다리라고 치면 말을 많이 아낌으로써 8분의 가사에 힘을 더 실어주기로 했다.
관객3: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중간에 2~3초 정도 암전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오멸: 여자와 군인이 만나는 첫 장면, 그 순간의 통증이 지금 살아오고 있는 시점까지 지속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만남의 순간을 돌아보면 체험했던 분들에겐 숨이 끊길 것 같은 지점이 아닐까. 그래서 유일하게 그 지점만은 암전을 주었고, 소리를 끊고 정적을 주어서 시작점에 대한 개념으로 작업했다.
김성욱: 영화에서 아이가 하나의 이어도라고 하면, 보이지 않으니 부재하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면 정말로 부재하거나 사라지게 되거나 빼앗기게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부재하는 남편의 느낌이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이 되고, 학살의 느낌이 아이에게 더 집중이 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이와 남편을 다 잃게 되는 상황이지 않나. 전자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좀 더 약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의 설정이 있었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에 군인이 여인의 시점에서 굉장히 분명하게 보여 지고 있는데, 그 부분도 어떻게 할지도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
오멸: 군인이 나오는 장면들도 이야기에서 보면 부담이 되는 상황인데, 이 역시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으로 맞이하자고 했다. 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뭐였냐면 드라마로 이야기로 전달을 해 주는 게 아니라 이미지가 중첩 되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드라마의 줄기를 강화시킨다기보다 이미지의 중첩을 주면서 드라마를 찾을 수 있는 방법, 그쪽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지가 주는 힘은 시간을 초월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에 대해서 설명이 모호하거나 굳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이미지 안에서 유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군인에 대한 건 솔직히 돈 있으면 뒤에 아주 SF로 하고 싶었다. (웃음) 영화의 끝 지점을 ‘왜 이 긴 시간 동안 참아왔는데 이게 나타나지’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또 뒤에 가사가 있으면 좋겠다, 없으면 좋겠다, 말이 많았다. 선명하게 얘기하자, 끝 지점에 오면 명쾌하게 밝히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그렇게 작업했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최근에 촬영을 끝낸 4.3사건 관련 작품 제목이 특이하다.
오멸: 가제가 <꿀꿀꿀>이다. 가제여서 제목이 바뀔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왜 돼지우는소리냐 하도 많이 들었다. (웃음) 동양철학에 보면 십이지신에 용은 십이지신의 다른 동물들의 형체를 가진 동물이고, 돼지는 다른 동물의 기운을 흐르게 하는 동물이라 한다. 조지오웰 보면 돼지가 대장으로 나오는데 그만큼 영리한 동물이다. 그런데 그 기운을 이제 용한테 뺏겨서 바보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돼지가 울 때 평소에 꿀꿀꿀 하며 울지만, 죽을 때는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표현하지 않나.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다른 여러 가지 동물의 울음을 섞은 소리라고 한다. 다른 동물들의 고통을 합친 소리이다. 이게 제주도민들의 울음소리이다. 어감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응어리진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말 못하고 살아왔다. 그 응어리진 울음을 <꿀꿀꿀>이라고 가제를 붙여 놨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 느낀 것들에 다가서려고 하다보니까 제주도라는 섬을 많이 다루게 된다. 제주도를 바라보실 때 관광지로 많이 바라보시긴 하는데, 요즘 강정도 그렇고 여전히 통증이 있는 섬이니까 다른 시선으로 보아주셨으면 한다. 여행자의 눈으로 와주시면 좋겠다. 여행자는 삶에 대한 관심이 많은 눈으로 걸어 다니니까. 제주도를 다른 눈으로, 애정 있는 눈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정리: 김휴리(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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