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3. 01:10ㆍ특별전/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
세상은 쇼다.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는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최소한 클로드 샤브롤의 생각은 그렇다. TV쇼 사회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브라운관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그의 경악할만한 가정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마스크>(1987)만 봐도 알 수 있다.
범죄소설가로 활동하는 롤랑(로빈 르누치)은 어쩐 일인지, TV쇼 사회자 크리스티앙(필립 느와레)의 전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에 크리스티앙은 흔쾌히 응하며 자신의 별장으로 롤랑을 끌어들인다. 그곳에서 롤랑이 관심을 갖는 인물은 크리스티앙의 양녀인 카트린(안느 브로쉐)이다. 실내에서도 벗을 줄 모르는 선글라스와 그에 대비되는 창백한 피부는 뭔가 비밀을 감춘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과연, 롤랑은 그녀 주변에서 감지되는 이상한 행동을 단서삼아 크리스티앙의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추적해 들어간다.
크리스티앙은 롤랑과의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한다. “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야.” 다시 말해, ‘본능적’으로 행동한다는 크리스티앙의 대사는 뒤를 캐는 롤랑을 향한 선전포고이자 은연중에 속마음을 내비친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 말은 노인들을 상대로 한 TV쇼에서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로 비칠지언정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는 것에 <마스크>의 진면목이 담겨 있다.
사실 샤브롤의 모든 영화는 이성이라는 ‘마스크’에 가려진 본능의 실체에 대한 폭로다. 그의 작품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이란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본능을 가리기 위할 때 필요한 긴급 처방에 불과하다. 특히 가족이란 울타리는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지라 폐쇄성을 띠는 까닭에 허울뿐인 인간의 이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가 연출 후반기로 갈수록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 집중하며 추악한 본능을 폭로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마스크>는 그런 샤브롤 후기 연출작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경우라 할 만한데 무엇보다 크리스티앙이 가족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허위의식이 텔레비전의 속성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은 클로드 샤브롤의 현실의식이 얼마나 첨예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다. 극중 크리스티앙처럼 미디어를 적극 끌어들여 자신을 유리하게 이미지화한 뒤 이면에서 나쁜 욕망을 드러내는 경우는 현대영화의 흔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하지만 <마스크>가 발표된 당시를 상기해본다면, 이 같은 설정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는 최근 영화들에 미친 영향으로 증명된다. 예컨대,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2010)에서 <마스크>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고립된 장소에서 전기를 쓰는 작가가 해당 인물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설정은 차치하더라도 (더군다나 <유령작가>가 원작소설을 취하고 있지만) 작가를 실체 없는 존재로 그리기 위해 미로 같은 집안의 구조와 사소한 행위를 미스터리 삼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가 닮아있는 것이다.
다만 <유령작가>가 검은 세계의 풍경에 대한 영화라면 <마스크>는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에 대한 영화다. 크리스티앙 역의 필립 느와레 얼굴이 이를 대표하는 오브제라 할 만한데, 후에 <시네마천국>(1988)을 통해 인심 넉넉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을 생각하면 <마스크>는 시대를 더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영화라 할 것이다. (허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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