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라프스키 방법론과 에이젠슈테인의 견인 몽타주
2011. 11. 5. 13:37ㆍ시네클럽
러시아 영화감독 알렉산더 미타 마스터클래스
지난 10월 15일 오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알렉산더 미타 감독의 내한을 기념해 그의 영화를 함께 보고, 그의 특강을 들을 수 있는 '알렉산더 미타 마스터클래스'가 열린 것. 그의 1969년작 코미디 영화인 <빛나라, 내 별이여(Gori, Gori Moya Zvezda)> 상영 후 그가 직접 '스타니슬라프스키 방법론과 에이젠슈테인의 견인 몽타주'를 주제로 들려준 특강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알렉산더 미타(영화감독): <빛나라, 내 별이여>는 젊은 예술가가 접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코미디다. 연극을 하는 사람, 영화를 하는 사람, 그리고 화가 이 세 사람이 예술에 있어서 자신의 길을 찾는 이야기이다. 특히 화가의 캐릭터는 권력이나 주위 환경으로부터 굉장히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내면의 자아를 창조적으로 구현하려고 하는 인물이다. 화가를 연기한 올렉 에프레모프는 당시 러시아 연극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의 연극에 종사하고 있었고, 영화를 하는 역할의 예브게니 레오노프는 코미디 분야에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배우였다. 이 영화는 우리 직업상의 일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권력으로부터의 억압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행동하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돈을 실제로 전달하는 것은 관료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메타포는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메타포는 주인공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이루는 것으로, 어떻게 공포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관객1: <빛나라, 내 별이여>의 어떤 면이 그 당시 소비에트 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가.
알렉산더 미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묘사 방식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선 이 영화가 맞게는 얘기했는데, 뭔가 자기들 방식과 맞지 않는 방식, 권력층에서 생각하는 방식과 유사하지 않은 방식으로 얘기했던 것이다.
관객2: 화가 캐릭터를 말이 없는 인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알렉산더 미타: 최근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화가 중에도 퍼포먼스 등 많은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이전 세대는 사실 말을 통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그리고 나면 그것으로 끝내고, 그것을 말로 다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영화 속 화가는 말로 그림을 설명하거나 하는 것과는 상반된 스타일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소비에트 시절에는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것과 상반되는 인물라고 할 수 있다.
알렉산더 미타: 영화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알아야한다. 언급해야 되는 것들과 언급하지 말아야할 것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소비에트 권력이 영원할 것이고, 공산주의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야함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런 것에 해가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엔 침묵해야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 간의 반목이 있다는 것을 말하면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하나의 계층만 있어야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관료들이란 쓸모없는 존재들라는 것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 어떤 것에 대해 침묵해야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가 다뤄도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어떤 미로를 헤매며 자기 영화가 가위질 당하지 않도록 애를 쓰게 된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가리키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묘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백군, 적군은 비유적인 표현인데, 일종의 예술에 대한 적이라고 볼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예술이 권력에 봉사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예술의 적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 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을 때, 백군은 다들 이해도 못하고 싫어할 테니 그만두라고 말한다. 이는 영화가 개봉될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겪었던 상황이기도 하다. 히틀러가 조약 체결을 위해 소련을 방문했을 때, 메이어홀드에게 <니벨룽겐의 반지>를 연출해보라고 했다. 메이어홀드는 이를 거절했고, 이때 스탈린은 그가 권력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 후 메이어홀드는 체포당해 고문을 당했다. 그 다음으로 에이젠슈테인에게 제안 했는데, 그는 연출에 동의했다. 사실 가장 위대한 바그너의 오페라를 가장 훌륭한 극장에서 훌륭한 단원들과 연출한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다. 게다가 이는 히틀러의 방문을 기념한 공연이었다. 에이젠슈테인의 입장에서는 국가로부터의 주문이었기 때문에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예술가와 권력의 관계가 그만큼 복잡하고, 단순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분명하다. 20세기 연극의 가장 혁명적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메이어홀드가 죽게 된 원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빛나라, 내 별이여>는 이러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명랑하게 얘기하려고 했던 것인데, 당시 러시아 당국은 그것이 뭘 뜻하는지 이해한 것이다. 여러분들이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일 여러분들에게 이것이 유쾌한 코미디로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진부한 것이 아닌, 가능한 독창적인 것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영화의 진정한 의미는 ‘비극적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만든 사람들끼리 내부에서 부른 이 영화의 제목은 ‘메이어홀드에 대한 진혼곡’이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이 영화를 14개의 견인몽타주로 구성했다고 하셨다. 에이젠슈테인의 견인몽타주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모호하고, 복잡한 개념이기도 하다. 감독님이 이 영화에서 구성하신 몽타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인지, 그리고 에이젠슈테인의 견인몽타주 개념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알렉산더 미타: 에이젠슈테인은 연극계에서 약간 이단아였다. 그는 고전 희곡을 가지고 마치 일련의 서커스를 연출하듯 연출했다. 그는 일련의 번호를 매긴 공연에 각각의 번호와 견인 명칭을 붙였고, 이는 관객에게 일정한 정서적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의 집합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정서적’ 이란 표현이 아닌, ‘사회적으로 방향 지워진’ 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에이젠슈테인은 관객들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던 것이다.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 가면서, 연극에서 출발했던 에이젠슈테인의 견인몽타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개념이 되어, 오늘날에도 계속 얘기 되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창조해내었다. <빛나라, 내 별이여>에서 이를테면 주인공이 화가를 만나는 장면에서, 화가는 나무에 달린 사과에 색을 칠하고 있고, 카메라는 사과 보다는 화가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그가 자신의 희망이나 창작 세계 안에 존재함을 나타내는데, 바로 이러한 것을 ‘견인’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 한 인물은 영화를 틀면서 자신이 그에 대해 설명하는데, 세 번에 걸쳐 같은 영화에 대해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청중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하고, 다른 청중들에게는 다르게 얘기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이야기를 다 모으면 자기 예술을 배반하는 것에 대한 견인 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이 잔 다르크에 대한 퍼포먼스를 했을 때,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고, 연기도 잘 안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성숙하지 않은 혁신’에 대한 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감정적인 순간에 있어서 각각의 장면들은 관객들과의 접촉을 상당히 고려한 것으로, 배우의 견인의 형태로 고려되었다. 이는 에이젠슈테인의 방법론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4: 견인적 요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견인몽타주’와 내용적인 면에서의 ‘견인’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감독님 작품을 보면 견인몽타주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견인에 대한 부분을 모두 몽타주 안에 포함시키시는 건지 궁금하다.
알렉산더 미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에이젠슈테인에 있어서도 분명하게 순수한 몽타주를 찾기 어렵다. 견인적인 것이 있고, 약간의 틈이 있고, 다시 견인적인 나오는 식이다. 영화에서 사실 견인몽타주에 가장 가까운 것은 서스펜스 장르에서 볼 수 있다. 행위가 본질적으로 진행될 때 관객의 긴장도 올라가게 되는데, 뭔가 기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단절되면 견인효과가 생긴다. 긴장을 높였다가, 잠시 틈을 줬다가, 다시 진행하는 그러한 방식은 히치콕의 대표적인 작품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서스펜스라는 것 자체가 견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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