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몬테이로를 말한다" - 페드로 코스타 감독, 유운성 영화평론가, 김성욱 대담

2013. 6. 10. 11:20특별전/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와 친구들

“몬테이로를 말한다"

- 페드로 코스타 감독, 유운성 영화평론가, 김성욱 대담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11주년을 맞아 주최한 “몬테이로와 그의 친구들“의 ‘친구들’ 중 한 명인 페드로 코스타 감독과의 대담이 5월 11일(토) <노란 집의 추억> 상영 후 이어졌다. 감독과의 개인적 친분을 넘어서 몬테이로의 영화를 진심으로 아낀다고 밝힌 페드로 코스타는 뒷자리에 앉아 관객들과 영화를 함께 본 후 느리지만 힘있는 말투로 몬테이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스페인의 감독 빅토르 에리세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에 대해 ‘우리 시대의 영원한 이단자’라 했고, 세르주 다네는저주받은 시인’이라고 말했다. 몬테이로에게 내려진 이 저주는 한국에서도 여전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대담은 한국에서 몬테이로와 그의 영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 있는 자리이다. 그리고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포르투갈의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함께 자리했다는 점이다. 코스타 감독이 몬테이로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몬테이로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노란 집의 추억>(1989)이 개봉했을 때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데뷔작인 <피>가 나왔다.

 

페드로 코스타(영화감독) : 몬테이로는 영화감독일 뿐 아니라 포르투갈이 낳은 최고의 비평가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위대한 작가이자, 음악애호가, 시네필, 감독, 좌파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영화를 다시 보며 확실히 느낀 것은 그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영화감독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데뷔작 <피>를 만들고 있을 때 몬테이로는 이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몬테이로가 이 영화의 후반작업을 할 때 나 역시 <피>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동료로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서로의 영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당시 나의 영화를 보며 “영화가 너무 아름답다. 보다 추하게 만들어라”고 몬테이로가 소리치던 것이 기억난다(웃음). 오늘 그의 영화를 보면서 그 말이 생각났다. 낡은 프린트로 보아도 여전히 그의 영화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몬테이로가 특별한 감독인 것은 그의 방대한 지식과 사랑, 관심이 영화가 아니라 인간을 향했기 때문이다.

<노란 집의 추억>은 굉장히 슬픈 영화다. 이 영화에는 사람들, 아이들, 동물 그리고 거리에 대한 애정이 있고, 거기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몬테이로는 이런 거리에서 태어나 이런 이들과 함께 살았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잊어버렸을 때도 그는 결코 잊지 않았다. 이 영화는 몬테이로의 자전적인 영화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 그의 실제 삶에서 따온 것이다. 청소부였던 그의 어머니, 정신병원에 입원한 일, 건강에 대한 부분 등 모든 것이 그렇다. 그는 리얼리스틱한 감독인 동시에 잔인한 감독이기도 했다. 몬테이로는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다. 나는 몬테이로 감독을 존경했고 또 매우 좋아했다. 지금도 나는 그와 자주 마주친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처럼, 유령으로서의 그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굉장히 그립다.

 

좋은 의미에서 그와 그의 영화는 도발적이었다. 그는 항상 문제가 있는 곳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리, 가장자리에 있었다. <노란 집의 추억>은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주연을 겸한 첫 번째 영화다. 그는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이나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을 굉장히 존경했다. 그런데 그는 영화에 자신의 몸과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편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배우로서의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자신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아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오고 가며>(2003)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몬테이로의 영화다. 이 영화 촬영 당시 그는 이미 매우 아픈 상태였다. 이 영화에는 감독 몬테이로와 인간 몬테이로가 함께 보인다. 아마 이런 영화는 없을 것이다. <노란 집의 추억>에 나오는 리스본은 내가 태어난 도시이고, 몬테이로는 리스본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역시 이 도시를 매우 좋아했다. 굉장히 슬픈 사실은 이 영화의 아이들, 여성 그리고 거리들이 이제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몬테이로와 같은 감독은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수가 없다. 안토니우 헤이스(António Reis)나 최근에 세상을 떠난 파울루 호샤(Paulo Rocha) 같은 감독을 대체할 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몬테이로는 루이스 부뉴엘을 굉장히 존경했다. 부뉴엘은 “당신이 영화를 만들 때는 스크린으로 하여금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몬테이로의 주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그것에 대해 말한다. 몬테이로는 매우 리얼리스틱한 전통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매일의 삶에 대해, 돈과 사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의 영화는 우리가 잃어버린 놀라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위대한 리얼리스틱한 감독이었다.

 

유운성(영화평론가) : 몬테이로는 포르투갈 영화의 전통을 고려해 볼 때 매우 독특한 영화를 만든 인물이다. 포르투갈 영화에는 특유의 멜랑콜리한 무드가 있다. 그런데 몬테이로의 영화에는 그런 멜랑콜리를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는 밝음과 따뜻함이 항상 존재한다. 한국에서 몬테이로의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종종 저지르곤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그의 (그리고 그의 영화의) ‘변태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세계에 내재한 관능성, 밝음, 따뜻함,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전해주는 흥분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적으로 끌어들인 몇몇 에로틱한 장치들을 단순히 ‘변태성’이라고만 표현하는 것이 아쉽다. 게다가 그의 대표작 군(群)을 이룬다고 이야기되는 ‘주앙 드 데우스’ 3부작이 몬테이로의 전부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여정>(1978),

<실베스트르>(1981) 그리고 <바다의 꽃>(1986) 같은 매우 탐미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들이 있고, 11일이라는 굉장히 짧은 기간에 촬영을 마친 <라스트 다이빙>(1992)처럼 핸드헬드 촬영으로 현행성(actuality)을 극대화시킨 영화도 있다. 몬테이로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를 실험한 사람이다.

 

페드로 코스타 감독께 질문드리고 싶다. 1980년대 이후에 국제적인 주목을 얻은 포르투갈 영화들을 보면 풍부한 영화사적 교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의 10대 시절, 그리고 몬테이로가 데뷔한 시기인 1970년대 포르투갈에서 어떤 식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들이 소개되고 또 수용되었는지 궁금하다. 당시 감독님은 다른 감독들과 어떤 식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는지 말씀을 듣고 싶다.

 

페드로 코스타 : 1979년에 영화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시네필도 아니었고, 포르투갈 영화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 내가 진짜 영화를 알게 된 것은 몇몇 스승들 덕택이었다. 주앙 베나르 다 코스타의 영화비평, 안토니우 헤이스의 영화 등에 매료되었다. 몬테이로와 헤이스는 서로의 영화에 대해 감탄했다.  올리베이라와 파울루 호샤의 영화도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들의 영화를 보며 나도 이 나라에서 나의 언어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유운성 : 한 가지 더 질문드리고 싶다. 포르투갈 영화 안에서 유독 노년의 형상들을 많이 접한다. 몬테이로의 영화나 감독님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포르투갈의 영화 안에서 유독 노년의 테마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는 노년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동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페드로 코스타 :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늙어 있었다(웃음). 글쎄, 잘 모르겠다. 영화라는 것은 모두 개별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큰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모든 것이 많이 변했고, 요즘 젊은 감독들도 많이 바뀌었다. 아마 한국도 그렇지 않을까. 요즘 영화 만들기는 쉽지 않다.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1970년대 포르투갈에는 영화 산업이라는 것이 없었고, 상업영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우리 같은 감독들에게는 천국이었다. 세르주 다네는 포르투갈은 굉장히 개인적이고 독특한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운성 : 몇 년 전 21세기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모든 영화, 장-뤽 고다르의 몇몇 영화와 더불어 지아 장커의 <플랫폼>, 스와 노부히로의 <M/OTHER>, 몬테이로의 <오고 가며>를 꼽았다. 몬테이로의 영화 중 <오고 가며>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페드로 코스타 : <오고 가며>를 만들 당시 몬테이로는 이미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마주하고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굉장히 용기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하늘을 바라보는 몬테이로 감독의 이미지가 굉장히 아름답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굉장히 도메스틱(domestic)한 영화다. 언젠가 존 포드는 인터뷰에서 “사실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는 부엌에 관한 영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몬테이로는 바로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거실이나 부엌의 공간을 다루는 위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오고 가며>에는 사랑과 잔혹성이 공존한다. 잔혹성에 뒤이어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다.

 

유운성 : 오늘 이야기했던 몬테이로, 올리베이라, 파울루 호샤, 안토니우 헤이스 같은 포르투갈 감독들, 그리고 주앙 베나르 다 코스타와 같은 영화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적 교감을 나누며 성장한 감독 가운데 한 명이 페드로 코스타 감독인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모두 세대가 다르다. 오늘날 한국의 시네필 커뮤니티와 비교할 때 가장 아쉬운 것이 이런 점이다.

페드로 코스타 : 방금 말씀하신 분들이 지금은 모두 돌아가셔서 슬프다. 물론 올리베이라 감독님은 영원히 사실 것 같다. 이틀 전에 전화를 했는데 아침 조깅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웃음). 존 포드나 드레이어, 오즈 같은 감독들은 어떤 신화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몬테이로는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었다.

 

 

정리장지혜 관객에디터

사진김윤슬, 주원탁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