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4. 13:19ㆍ회고전/탄생 120주년 존 포드 회고전
[지상중계]
“존 포드의 다른 영화들도 상영해 달라고 항의해야 한다”
- 영화평론가 태그 갤러거와의 만남
지난 9월 14일(일), 미국의 영화평론가 태그 갤러거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존 포드의 영화 세계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그가 직접 편집해 만든 영상을 본 뒤 관객들의 질문이 다시 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이날 자리는 감독 존 포드에 대한 훌륭한 배움의 자리인 동시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영화를 대하는 그의 열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방금 본 50분 정도의 영상은 태그 갤러거 씨가 직접 만든 것으로, 하나의 비평이자 독특한 형식의 강의이기도 하다. 이제 바로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오늘 만남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먼저 태그 갤러거 씨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라고 밝힌 <역마차>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역마차>는 1939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존 포드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영화를 굉장히 많이 만들었다. 1939년에는 네 편, 1940년에는 두 편, 1941년에는 두 편을 찍었다. 일 년에 두세 편씩 영화를 찍은 셈인데 태그 갤러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욕망의 시기”를 시작한 시점의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영화평론가)│사실 이 비디오에서 보여드린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답변 중 하나이다. <역마차> 같은 경우는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발명이라 생각한다. <역마차>를 보면 모든 것이 새롭다. 어떻게 12명이 넘는 많은 인물들을 표현하는가, 어떻게 그 많은 인물들 간에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가 등이 모두 완전히 새로우면서 조화로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회화 작품이나 음악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와 똑같은 것 같다.
사실 평론가에게서 있어 가장 어려운 질문은 그것을 왜 좋아하냐는 것이다. 사실 평론가는 싫어하는 이유에 대답하는 것이 훨씬 쉽다. 내가 존 포드에 대해 책을 쓴 이유도 수년 동안 들어온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어떤 것을 좋아할 때 그것이 아름답고 멋지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늘 어떤 구체적인 이유를 대야 한다. 이런 것들을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정말 답하기 어렵다. 여러분들은 왜 어려운 질문만 하는가(웃음).
김성욱│그런데 태그 갤러거 씨는 처음에 나와 만났을 때 존 포드 영화 중 무엇을 좋아하냐고 질문했었다(웃음).
관객 1│존 웨인이 존 포드의 영화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 배우인지 궁금하다. 또는 존 웨인의 연기 중 어떤 요소가 그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드는지 알고 싶다.
태그 갤러거│사실 존 포드에게는 여러 명의 주인공이 있다. 그중 첫 번째 인물이 해리 캐리다. 존 포드는 해리 캐리와 1917년부터 1921년 사이에 21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존 포드는 해리 캐리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 제작의 비밀은 항상 눈 속에 있는데 왜냐하면 눈으로는 모든 감정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해리 캐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가 항상 느긋한 방식으로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해리 캐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다가오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는 배우였다.
존 포드는 존 웨인에게 해리 캐리의 이러한 특징들을 연기하라고 조언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비평가들 사이에서 가장 환영을 받았던 것은 소위 메소드 연기였다. 그런데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 메소드 연기를 제일 못한다고 평가받은 배우 중 하나가 존 웨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존 웨인의 연기에 대한 커다란 오해라고 할 수 있다. 한쪽에서 코끼리가 춤을 추고 한쪽에서는 핵폭탄이 터지는 와중에 존 웨인이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면 사람들은 코끼리나 핵폭탄이 아닌 존 웨인을 볼 것이라고 확신한다. 존 웨인의 연기 방식은 존 포드가 지도했던 굉장히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해리 캐리는 존 포드에게 연기뿐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영향을 주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홀로 떠나가는 것들이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존 포드와 해리 캐리는 사막에서 같이 캠핑을 하거나 하면서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존 포드는 자신이 해리 캐리와 보냈던 상황들을 영화에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1910년대 초기만 해도 감독, 배우, 작가, 촬영 감독 등은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함께 생활했다. 이것이 할리우드 이전의 영화 제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존 포드는 시간이 지나 영화 산업의 지형도가 변해감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포드의 영화를 보면 워드 본드나 헨리 폰다 같은 배우들이 지속적으로 출연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 포드가 지향한 공동체 정신이었다. 배우나 감독, 촬영 스태프들이 맺고 있는 관계와 그 속의 감정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장 르누아르 감독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
관객 2│존 포드 영화와 관련해 ‘정치적 올바름’의 맥락에서 인디언에 관련된 논쟁이 반드시 일어난다. 나도 친구들에게 <역마차>를 자주 변호하곤 했다. 태그 갤러거 씨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을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존 포드를 ‘변호’하는지 듣고 싶다.
태그 갤러거│나는 <역마차>에서 인디언을 그린 방식이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변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디언에 대한 표현 때문에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가 있다면 오히려 <역마차>가 아니라 <수색자>일 것이다. <수색자>의 인디언은 악당으로서 훨씬 잔인하게 묘사된다. <역마차>에서의 인디언이 개척 시대에 존재하는 어떤 위험일 수밖에 없다면 <수색자>에서의 인디언은 더 위험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수색자> 또한 인디언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백인들이 인디언에 대해서 갖고 있던 정신병적인 반응, 혹은 극단적인 차별들을 탐험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파치 요새>와 같은 영화들을 보면 인디언이 승리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인디언은 백인의 거짓말에 맞서는 굉장히 고귀하고 용감한 인물들로 묘사된다. 사실 나는 지난 50년간 존 포드를 변호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만을 토로하던 사람들을 5년 내지 10년만 기다리고 나면 그때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곤 했다.
관객 3│요즘도 ‘모뉴먼트 밸리’가 서부극의 어떤 상징으로써 등장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모뉴먼트 밸리를 처음 촬영지로 삼은 것이 존 포드가 아닐까 싶다. 어떠한 계기로 존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에서 촬영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모뉴먼트 밸리가 모든 서부영화에 등장한 것은 아니고, 동시에 모든 존 포드의 영화에 나온 것도 아니다. 존 포드는 모뉴먼트 밸리뿐 아니라 그와 비슷해 보이는 장소를 선정하기도 했다(그 중 하나가 <웨건 마스터>에 등장한다). 그렇지만 <역마차>에서의 모뉴먼트 밸리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존 웨인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뒤쪽으로 암석들이 쭉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그리스의 성전 같은 느낌을 주면서 정신적 힘까지 보여준다. 또한 암석 자체가 스스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존 포드가 특히 모뉴먼트 밸리를 좋아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정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처음에 말했듯 왜 어떤 것을 좋아하냐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존 포드 영화 속 모뉴먼트 밸리를 좋아한다면, 그 장면을 볼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존 포드의 영화 속 장소들을 감상하는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회화의 배경 속 성이나 계곡, 강 같은 것들은 그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로 기능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존 포드 영화 속의 모뉴먼트 밸리도 영화 속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자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역할을 한다(특히 <역마차>에서). 안토니오니의 <자브리스키 포인트>에 나오는 죽음의 계곡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참고로 존 포드 서부극의 로케이션에 대해 궁금하다면 카를로 가바첵 Carlo Gaberscek 이라는 사람이 쓴 책들을 추천한다.
관객 4│존 포드의 영화 중 ‘이것이 존 포드의 영화구나’라며 의식하고 본 첫 번째 영화가 무엇이었나. 그리고 그때의 감상이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사실 나도 모른다(웃음). 나는 십대 시절 텔레비전에서 수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크레딧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심지어는 어떤 배우가 나오는지도 관심이 없었고 특히 감독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같이 지냈던 룸메이트는 감독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이름을 대면 그 친구가 그 영화의 감독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었다. 그 감독이 바로 존 포드였다. 나는 존 포드를 알기 이전에 존 포드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성욱│존 포드가 무르나우의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그 전에 독일 표현주의가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하지만 간단하게 존 포드가 무르나우에게 영향을 받은 것만 이야기한다면 분위기를 이용해서 인물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조명 같은 요소도 중요하지만 특히 움직임에 있어서 아들을 기다리는 워드 본드의 연기를 떠올려 보자. 그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 벌떡 일어나기보다는 천천히 성경을 덮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런 느린 움직임은 나에게 마치 조각품들이 일어나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것이 바로 존 포드가 무르나우에게서 직접적으로 받은 영향이 아닌가 한다.
관객 5│<역마차>를 보면서 이 영화가 소위 ‘클래식’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동시에 얼마나 클래식과 거리가 먼지 새삼 느꼈다. <역마차>의 고전성에 대한 당신이 생각이 듣고 싶다.
태그 갤러거│사실 나는 고전적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해리 캐리가 아들인 해리 캐리 주니어와 함께 <역마차>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그때 해리 캐리는 아들에게 “저것도 옛날에 했던 거야!”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이처럼 <역마차>가 만들어지기 20년 전부터 여러 번 반복되었던 것들을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재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마차>는 그 당시에 매우 현대적인 영화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인 관념에서 존 포드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의 영화에서는 살인 행위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동시대 감독이었던 하워드 혹스와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가령 <웨건 마스터>에서 주인공은 사람을 죽이고 난 뒤 총을 던져 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살인에 환호하는 것은 존 포드의 영화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역마차>의 링고는 예외이다. 하지만 링고는 복수를 하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즉 야성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황야의 결투>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안에서는 야성의 법칙과 문명의 법칙을 동시에 사용한다. 가령 와이어트 어프는 연방 보안관이라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개인적인 복수에 나선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를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상원의원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그렇게 위대한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사람을 살해한 이유는 단순히 여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변호사였기 때문에 스스로 법적인 대상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성의 법칙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 미국의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야성에서 이루어지는 부패 위에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관객 6│장 마리 스트라우브는 존 포드야말로 가장 브레히트적인 감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태그 갤러거│<아파치 요새>를 보면 많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매우 고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훌륭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명령을 받고 어느 순간 인디언들을 죽이러 떠난다. 포드에게 있어 이러한 행동들은 특히 군인들에게 일반적이다. 군인은 포드에게 명예로운 존재들이지만 동시에 사람을 죽여야 하는 근본적인 모순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이 존 포드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생각한다. 존 포드는 항상 사악한 사람들이 사악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 사악한 것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었다. 이러한 이중성이야말로 생생히 살아있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트라우브가 존 포드를 브레히트적이라고 했던 것은 <아파치 요새>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한 말이다. 선한 군인으로 등장했던 존 웨인이 사악한 군인으로 등장했던 설스데이의 모자를 쓰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그 장면에 대해 스트라우브는 존 웨인이 결국 억압하던 자의 의상으로 갈아입으며 관객들의 감정이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감독이 의도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예전에 스트라우브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실험영화가 무엇이냐는 주제가 대두되었다. 그때 스트라우브는 “실험영화란 <롱 그레이 라인>(1955)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롱 그레이 라인>에는 대포에 앉은 남자가 대포알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의미심장한 것은 대포는 남자의 성기, 그리고 대포알은 고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남자의 성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영화 안에서 이곳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끊임없는 실망과 패배의 반복이 이루어지면서 두 개의 충돌되는 의미가 연결된다. 스트라우브는 비엔나의 어떤 미술관으로부터 평화의 벽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한쪽 벽 전체를 방금 이야기한 <롱 그레이 라인>의 그 장면으로 묘사하였다.
김성욱│추가적으로 답변하자면 <아파치 요새>의 마지막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에 반대했던 존 웨인을 결국 전쟁에 나서게 만드는 힘의 정체다. 그 알 수 없는 힘은 군대 혹은 국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공동체의 파멸을 이야기하는 영화로 남는다.
관객 7│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혹시 존 포드 영화에서 싫어하는 영화나 덜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
태그 갤러거│대체 이런 것을 왜 듣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웃음). 내가 싫어하는 장면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도노반의 산호초>에서 워터 스키를 타는 장면이다.
김성욱│존 포드가 1894년생이라서 탄생 12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을 하게 됐다. 그런데 1894년생 감독 중에는 또 다른 감독도 있다. 킹 비더, 레오 맥커리 등 말이다. 1890년대생 다른 감독과 비교해 존 포드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 영화’라고 했을 때 존 포드를 즉각 떠올리는 것처럼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존 포드를 꼽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태그 갤러거│1894년에 태어난 감독으로는 조셉 폰 스텐버그나 장 르누아르도 있다. 미국 영화에 대해 생각할 때 ‘미국인’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먼저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결국 백인이라는 것이, 더 나아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미국적인 감독을 대라고 하면 나는 킹 비더와 하워드 혹스를 꼽을 것이다. 킹 비더가 신실한 사람을 대표한다면, 하워드 혹스는 매우 세속적인 욕망을 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존 포드는 아일랜드계의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이들과는 아주 다른 이방인이었다. 당시 아일랜드계 천주교 신자들은 흑인이나 멕시코, 아시아계의 사람들처럼 무시를 받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아이리쉬 카톨릭’의 특성은 그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존 포드는 역시 아이리쉬 카톨릭이었던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는 자신이 완벽하게 미국인라고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객 8│최근에 비디오 에세이 제작이 영화 비평이나 영화 연구의 한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책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다시 비디오로 제작할 때 어떤 것들이 가장 흥미로웠고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묻고 싶다.
태그 갤러거│처음에는 DVD에 수록하기 위해 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25개 정도의 영상을 만들었다. 영화라는 시각적인 예술을 비평하면서 사진이라든지 영화 속 이미지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비효과적인 방법이다. 마치 음악을 비평하면서 악보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500자 정도를 줄거리 설명에 할애해야 하고, 또 장면을 설명하는 데 글자를 낭비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독자들은 그것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라며 매도한다. 하지만 직접 화면을 보여주며 비평을 하면 독자들이 금방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비평에 있어 비디오는 의견을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을 왜 다른 비평가들은 사용하지 않는지 오히려 궁금하기도 하다(웃음).
김성욱│존 포드에 대한 책도 썼지만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에 대한 책도 썼다. 두 감독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태그 갤러거│두 사람은 모두 천주교 신자이다(관객 웃음). 지금 여러분은 모두 웃으셨지만 이것은 굉장히 진지한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매주 성당에 가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그들의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은 모두 카톨릭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사람이 모두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고민하는 방식이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로셀리니 감독 역시 무르나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더 많은 공통점이 생각나지 않는다. 1년 후에 다시 와서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웃음).
김성욱│오늘이 존 포드 특별전의 첫날이다. 마지막으로 태그 갤러거 씨의 인사말을 듣겠다.
태그 갤러거│오늘이 첫날이라면 이번 상영작들을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다 보길 바란다. 그리고 존 포드는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걸 다 보여주지 않는다. 여러분은 존 포드의 다른 영화들도 상영해 달라고 이 극장에 항의를 하고 데모를 해야 한다!
정리│이상연 자원활동가
사진│곽혜원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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