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2. 17:20ㆍ회고전/에릭 로메르 회고전
[에릭 로메르 회고전]
“편집자의 역할은 감독의 눈이 되어주는 것이다”
- 마리 스테판 감독과의 대화
에릭 로메르 영화의 편집자이자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마리 스테판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지금도 로메르와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따뜻한 미소와 차분한 어조로 로메르와 로메르의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월 26일(수)부터 29일(토)까지 진행한 네 번의 시네토크 행사 중 두 번의 대화를 정리해 보았다.
◆ 4월 26일(수) <여름 이야기> 상영 후 ◆
김성욱(프로그램 디렉터)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맞아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로메르의 후기 영화인 <겨울 이야기>에서 유작 <로맨스>까지 모든 작품을 편집한 분이다. <비행사의 아내>를 보면 중간에 잠깐 등장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여성이 기억날 것이다. 바로 그분이 마리 스테판 감독이다.
스테판 감독은 3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다른 얘기를 나누다가 로메르의 영화를 편집한 분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때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이번 기회에 이렇게 서울아트시네마에 초대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은 몇 번 있지만 로메르와 관련된 행사에 오신 건 처음으로 알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소감을 먼저 듣고 싶다.
마리 스테판(영화감독) 이 자리가 너무 좋고 행복하다. 몇 년 전에도 에릭 로메르의 회고전을 했다고 들었다. 그때 로메르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에 직접 보낸 편지를 봤다. 그건 정말 드문 일이다. 로메르 감독은 극도로 비밀스러운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어떤 ‘마케팅’적 요소를 쓸모없다고 생각했었다. 본인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직접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는 건 서울아트시네마를 정말 특별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김성욱 그 편지를 2001년에 받았었다. 나도 정말 편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웃음).
로메르 감독과 스테판 감독의 공식적인 첫 작업은 <겨울 이야기>이지만 그전부터 친한 관계를 맺었던 걸로 알고 있다. 처음 어떻게 로메르와 만났는지 듣고 싶다.
마리 스테판 나는 이 만남을 운명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네클럽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누벨바그 감독들의 영화를 좋아했다. <쥴 앤 짐>, <히로시마 내 사랑> 같은 영화를 좋아했다. 당연히 프랑수아 트뤼포와 알랭 레네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파리에서 30년 정도 사는 동안 트뤼포와 레네는 만날 수 없었지만 로메르와는 같이 영화도 만들고 친해졌다.
이후 우리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나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다시 파리로 혼자 떠났다. 그곳에서 에릭 로메르의 영화 강의를 들었다. 그때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은 거의 이론 수업이었다.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금방 학교를 나왔고 친구들과 함께 무작정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는 로메르의 영화사인 로장주에 가서 예산서와 관련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좀 보여달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갔었고, 당연히 비서가 나를 막았다(웃음). 그렇게 번호만 남긴 채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바로 로메르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오라고 했다. 그 즉시 로장주 사무실로 다시 갔다.
사무실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어린 학생이었다. 그때 로메르는 <갈루아인 페르스발>을 준비하면서 배우들과 대본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우 캐스팅 때문에 어떤 연극을 보러 갈 거라며 거기에 나와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당시 프랑스어를 거의 할 수 없었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날 로메르와 함께 공연을 보는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당시 로메르의 영화를 편집하던 세실 데쿠지(Cécile Decugis)의 보조 편집자로 들어갔다. 세실 데쿠지는 로메르는 물론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의 감독과 작업을 한 편집감독이다. <네 멋대로 해라>를 편집한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당시 두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지만 그런 분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 고민 없이 편집 보조 일을 시작했다. 또한 프랑스에 계속 살기 위해 고정적인 직업이 필요하던 나에게 정말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당시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서 <갈루아인 페르스발>(1978)의 펀딩을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었다. TV 방송국의 투자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특이한 영화였고(웃음),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그후 로메르는 규모가 큰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 다음 작품으로는 적은 예산으로 <비행사의 아내>(1981)를 찍었다. 현장에는 조명도 거의 없고 사운드 감독 한 명과 촬영감독 한 명이 있었다. 거리에서 영화를 찍던 초기 누벨바그의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로메르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출연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겨울 이야기>의 도서관 장면에 나오는 엑스트라는 대부분 로메르의 학생들이다. <비행사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우연히 내 친구와 함께 그 장면에 잠깐 출연할 수 있었다.
김성욱 스테판 감독은 <여름 이야기>의 편집은 물론 세바스티앙 에름(Sebasiten Erms-에릭 로메르의 E와 R, 마리 스테판의 M과 S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편집자 주)이란 이름으로 음악에 참여하기도 했다. <여름 이야기>의 작업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마리 스테판 로메르 감독은 <여름 이야기>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영화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자전적인 영화로 보아도 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20대 당시 모습과 정확히 같다고 말했다. 갈팡질팡하면서 결정을 못 내리는, 그리고 여성과의 관계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모습들 말이다. 이 작품은 로메르 감독이 40년 동안 갖고 있던 시나리오를 거의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찍은 영화이기도 하다.
로메르 감독과 꾸준히 같이 작업하는 사람은 4~5명 정도다. 나는 편집을 맡았지만 작곡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 또 물론 차도 같이 마셨다. 우리는 가족 같은 팀이었다. 팀원들은 그의 영화 작업을 위해 시간을 비워두었고, 로메르는 시나리오를 미리 써서 긴 시간 동안 준비하는 스타일이었다. 캐스팅을 할 때는 1년 정도의 시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배우와 작업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거의 매일 만나서 차를 마시며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리허설을 했다. 시나리오 완고는 배우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그들의 말투에 충분히 적응한 뒤 나왔다. 그리고 이 완고는 촬영 버전과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일치했다.
관객 1 영화 초반부에 해수욕장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았다.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어떻게 그런 장면을 찍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마리 스테판 배우들이 아니라 진짜 그곳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을 촬영했다. 로메르는 영화 현장의 스탭 수를 철저히 제한했다. 우리가 보는 흔한 현장과는 다르다. <여름 이야기>의 경우에는 촬영감독 한 명, 필름 로딩하는 스탭 한 명, 사운드 감독 한 명, 붐 마이크 담당 스탭 한 명, 그외 모든 일을 담당했던 스크립터 한 명이 있었다. 그리고 로장주 소속의 PD도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달리(dolly)도 밀어야 했다(웃음). 햇빛을 싫어했던 로메르는 그늘에서 리허설을 했고, 리허설이 끝나면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배우와 촬영감독과 현장에 가서 동선을 짰다.
처음 카메라를 설치하면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하지만 거기 카메라를 계속 놔두면 사람들이 관심을 끄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그리고 로메르는 카메라 옆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채 손으로 신호를 주며 연출을 했다. 사람들이 영화를 찍고 있다는 걸 눈치 못 채는 경우도 많았다. 행인이 물어보면 ‘나는 영화감독이 아니라 영화과 교수고, 학생들과 실습 중이다.’라고 말했다(웃음). 한 번은 우리 스탭이 캐나다에서 온 다큐멘터리 촬영팀이라고 둘러대려고 나보고 명함을 준비해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관객 2 편집감독으로서 편집에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홍콩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자란 스테판 감독님은 로메르와는 세대 차이도 있고 문화적 차이도 있었을 것 같다.
마리 스테판 우리는 워낙 가족 같은 팀이라서 어떤 작업을 할 때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지 않는다. 동시에 감정을 많이 쓰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나는 내 딸, 내 사위와 함께 7년째 함께 영화일을 하고 있다. 이런 특별한 관계에서는 오히려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이건 나의 작업이기 때문에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의 개인적 배경에 대해 질문을 하셨는데... 본인이 자신을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남성들의 세계에 속한 여성, 캐나다에 사는 중국인. 이런 식으로 자기를 프레이밍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라온 배경이 어떻든 꼭 싸워야 하는 각자의 전투를 갖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내가 얻는 도움은 없었고 거의 악영향만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다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회라 힘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정말 내가 ‘다양성’을 가진 얼굴이라면 거기서 이득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그건 자신의 의지이고 모든 건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누군가 내 말을 듣게 하는 건 나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메르는 항상 젊은 사람들과 일했다. 영화계에서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은 안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본인보다 젊은 사람들, 영화를 처음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았기 때문에 로메르와 작업하며 세대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로메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작업할 때 그들이 나를 ‘로메르 밑에서 일하는 어린 여자’로 보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관객 3 최근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녹색 광선>과 관련해 강연을 했다. 한 관객이 편집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그는 로메르의 영화에서 편집이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리 스테판 링클레이터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웃음). 로메르를 비롯한 누벨바그 감독들이 훌륭한 건 오늘날까지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링클레이터, 노아 바움백 등 많은 동시대 감독들이 로메르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에는 자신을 ‘로메르의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감독들도 있다.
<녹색 광선>은 매우 즉흥적인 영화다. 하지만 이런 영화일수록 편집실에서 할 일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나리오가 이렇게 완벽한데 편집을 할 게 있냐고 묻기도 한다. 시나리오대로 찍어서 순서대로 붙이면 끝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연출과 편집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이런 질문은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의 첫 번째 대사부터 여섯 번째 대사를 이런 방식으로 찍고, 그 다음 대사들은 저런 방식으로 찍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사이에 나올 수 있는 편집의 조합은 무수히 많다. 숏과 숏을 붙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알면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로메르의 영화에는 편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편집으로 만들어내는 리듬과 편집만이 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존재한다. 로메르는 편집을 정말 좋아했고, 항상 편집에 대해 고민하는 감독이었다.
◆ 4월 27일(목) <가을 이야기> 상영 후 ◆
김성욱 로메르의 영화를 볼 때마다 대화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대화 장면을 어떻게 촬영하고 편집하는지 궁금하다. 편집자로서 로메르와 공유하는 가장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마리 스테판 로메르의 영화는 상당 부분 대화에 집중한다. 로메르는 스토리를 쓴 후 대사까지 다 써야 시나리오가 끝난다. 그의 작업 방식은 이렇다. 대략의 스토리를 쓴 다음 배우를 먼저 만난다. 이건 엄밀히 말해 ‘캐스팅’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전에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을 다시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배우들이 시간이 맞으면 그 배우들과 함께 스토리에 대해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자세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배우들이 말을 하는 방식에 감독이 익숙해지면 이걸 캐릭터에 적용시켜 시나리오를 다시 쓴다. 결국 배우와 캐릭터가 실제로 할 법한 말투로 대사가 만들어진다. 그 이후에는 대사를 전혀 바꾸지 않는다.
로메르는 대화를 나눌 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찍는 걸 좋아한다. 로메르의 테마 중 하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다. 말을 하지만 진실은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반응이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로메르는 절대 카메라를 두 대 쓰지 않는다. B 카메라가 없다. 한 대의 카메라로 모든 대화 장면을 찍는다. 일단 말하는 사람을 쭉 찍고, 다시 처음부터 듣는 사람을 쭉 찍는다. 듣는 사람의 표정도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김성욱 이 영화는 마리 리비에르의 얼굴로 영화가 끝난다. 다른 영화들과는 끝내는 방식이 좀 다르다.
마리 스테판 감독들은 영화를 만드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 검열을 한다. 나는 편집자의 역할은 감독의 눈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로메르가 마지막 장면의 소스를 나에게 전달하면서 ‘분위기 좋은 예쁜 장면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편집실에 혼자 남아 촬영본을 보다 보니 마리 리비에르의 어떤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를 바라보는데, 멀리 있는 뭔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한테는 그 표정이 명확히 ‘후회’의 감정으로 보였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내린 선택을 후회하는 표정처럼 보였다. 그래서 여러분이 방금 보신 것처럼 마지막 장면을 편집했고, 쉬다가 돌아온 로메르는 그 장면을 보고 매우 좋아했다. <가을 이야기> 개봉 때는 로메르가 특별히 모든 극장에 공지를 하기도 했다. 마리 리비에르의 얼굴이 담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상영관에 불을 켜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렇게 캐릭터에게 의미를 만들어 주는 것이 편집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1 개인적으로 <내 남자 친구의 여자 친구>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호흡이 느렸는데 이 영화부터 호흡이 빨라지고 공간을 사뿐사뿐 옮겨다니는 경쾌한 느낌이 난다. 그리고 <영국 여인과 공작>과 같은 에릭 로메르의 역사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리 스테판 역사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로메르를 젊은 남녀의 연애물을 만든 감독으로 많이 기억한다. 하지만 로메르는 역사물을 꾸준히 만들었다. 로메르가 원래 하던 작업의 방향을 바꿔 역사물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욕망이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계속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로맨스>도 역사물이고 <삼중 스파이>도 역사물이다. <로맨스>에는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요소들이 있으며 <삼중 스파이>에는 진실에 대한 테마,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타인은 절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테마가 들어있다. 이건 로메르가 계속해서 다루어온 테마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역사물을 만든 게 아니라, 항상 그런 인물, 그런 테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받고 로메르의 영화가 정말 느린지 고민을 해보았다. 나는 로메르의 모든 영화가 같은 리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사가 많은 편이라서 사람들은 로메르의 영화가 느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장면들이 밸런스 있게 일정한 속도를 갖고 있다. 물론 요즘 나오는 상업 영화의 속도와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로메르의 영화를 볼 때마다 놀라는 건 영화 속 모든 숏이 그 자리에서 스토리를 진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지점에서 컷을 잘라야 하는지를 로메르에게 배웠다. 그의 숏은 정확한 지점에서 끝난다. 절대 길게 끌지 않는다.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감정적 클라이맥스가 끝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이미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숏을 몇 초 더 지속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 몇 초가 나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로메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로메르는 어떤 인물이 움직이는 행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거의 집착 수준이었다. 한 인물이 여기에서 저기까지 여섯 걸음으로 간다면 그 여섯 걸음을 다 보여주는 게 규칙이었다. 사실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지키기 힘든 규칙이다. 그래서 <로맨스> 때는 몇 걸음을 속이기도 했는데, 그때가 되어서야 로메르는 내가 속인 걸 알면서도 그 편집을 그냥 넘어가 주었다.
이동 장면의 리듬에 대해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로메르는 사람들이 이동하며 방문하는 장소들을 짧은 두세 개의 연속된 컷으로 보여주는 걸 좋아했다. 많은 영화에서 이런 편집을 볼 수 있다. 이런 편집의 리듬은 현대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관객 2 계절 연작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마리 스테판 실리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일단 <봄 이야기>(1990)로 계절 연작을 시작했다. 그런데 로메르는 영화 한 편을 준비하는 데 보통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봄 이야기> 다음에는 <겨울 이야기>(1992)를 찍었고, 다시 1년 반 정도 걸려서 <여름 이야기>(1996)를 찍었다. 순서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정해졌다. 그리고 <가을 이야기>는 그 시기의 포도밭을 찍어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린 것도 있었다.
관객 3 로메르의 인물들은 항상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로메르의 영화는 ‘버퍼링’이 없는 경제적인 영화란 생각도 든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비교해볼 수도 있고,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에 나오는 침묵의 순간과도 비교해볼 수 있다.
마리 스테판 로메르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대화들은 매우 잘 쓰여져 있다. 실제로 그는 대화를 매우 좋아했고, 영화에서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반대도 있다. 그는 좋은 영화란 모든 대사를 제거해도 화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영화라고 자주 말했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만으로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캐릭터의 감정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로메르의 영화는 소리를 끄고 봐도 그들의 표정과 동작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로메르는 무성 영화를 좋아했다.
한국이나 대만의 독립영화 중에는 가만히 있는 카메라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로메르는 절대 그런 경우를 허용하지 않았다. 항상 프레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 로메르의 영화는 느리지 않다. 모든 숏이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관객 4 로메르 감독이 편집의 테크닉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무엇인지 듣고 싶다.
마리 스테판 풍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풍경과 배경. 이를테면 <가을 이야기>의 망가진 마을, 시골길을 달리는 차들의 숏 같은 것들이다. 로메르는 그런 장면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몸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걸 보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이동 숏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대화의 경우에는, 로메르는 대화 장면을 탁구 시합처럼 편집하지 않는다. 소위 ‘토킹 헤드’ 방식이 아니다. 많은 영화들이 말하는 사람을 먼저 보여준 다음 듣는 사람을 보여준다. 하지만 로메르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 사람의 표정에 머무르는 순간이 많다. 카메라가 이 사람 저 사람을 왔다갔다하며 혼란을 주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관객 5 로메르 감독님의 영화 속 인물들은 왠지 화를 안 낼 것 같다(웃음). 로메르의 캐릭터와 실제 로메르 감독님이 얼마나 닮았는지 듣고 싶다.
마리 스테판 보통 화를 낸다고 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걸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로메르는 조용한 목소리로 ‘아 그래? 네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 모르겠니?’ 이런 식으로 말한다(웃음). 하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기만 해도 충격을 받고는 했었다. 평소의 로메르는 매우 젠틀하다. 나는 무화과 과자를 좋아했는데 편집실에 올 때 일부러 그 과자를 사오기도 했다. 사람에게 불편한 내색을 비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스탭들이 로메르에게 익숙해져서 다른 감독과 작업을 할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다른 감독들 중에는 자신이 감독이란 사실을 너무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진정한 감독이 되는 길은 모든 일에 화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당황한다. 이게 전부 로메르와 오랜 시간 일했기 때문이다.
정리 l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 l 주민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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