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7. 20:57ㆍ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나의 영화는 린치처럼 어렵지 않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폭력의 역사>(2005) DVD 코멘터리에서 이례적으로 데이비드 린치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데이비드 린치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얻은 무한대의 자유, 그러니까 <인랜드 엠파이어>(2007)로 나아가기 전 <로스트 하이웨이>(1997)와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의 '몽환적 린치 월드'를 거치며 '디지털적' 방법론을 모색하다가 결국 디지털 이미지에 안착한 그의 현재에 대한 얘기였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블루 벨벳>(1986)과 <트윈 픽스>(1992)의 공간에서 여전한 악몽의 미로를 펼쳐놓지만 보다 더 내밀한 심연으로, 그리고 크로넨버그가 언급한 현재의 린치와 가장 가깝게 다가 선 첫 번째 작품이다.
명성과 부를 누리고 사는 색소폰 연주자 프레드(빌 풀먼)는 의처증에 시달리다가 아내 살해혐의로 체포된다. 그리고 자동차 정비공 피트(발타자 게티)는 폭력배 보스의 정부로부터 유혹을 받아 살인을 저지른다. 패트리샤 아퀘트가 그 두 여자를 함께 연기하며 전반부의 후반부의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 프레드와 피트 역시 장면을 뛰어넘어 역할을 바꿔 혼란을 가중시킨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킴 뉴먼이 말한 것처럼 시놉시스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는 “영화는 내러티브의 논리를 매 순간 파괴하면서 상호 모순적이고 불가해한 사건들을 즐기고 있다”고도 덧붙인다. <블루 벨벳>(1986)과 <트윈 픽스>(1992)처럼 필름 누아르 플롯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스트 하이웨이>에서는 의도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플롯에 매혹된다.
말하자면 <로스트 하이웨이>는 과거의 린치와 현재의 린치를 잇는 가교다. 어둠의 힘 앞에서 무기력한 빌 풀먼은 <블루 벨벳>의 카일 맥라클란의 또 다른 버전이며, 패트리샤 아퀘트는 앞서 역시 <블루 벨벳>이나 <트윈 픽스>에서 목격했던 학대받고 살해당하는 여성 캐릭터의 변주다. 하지만 <로스트 하이웨이>는 기존의 린치 월드로부터 히치콕의 <현기증>(1958)과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지나 또 다른 악몽의 세계, 더욱 끝없이 부유하는 이미지들과 만나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조금씩 어긋나는 시간, 그리고 과감한 생략과 비약 속에서 혼란은 가중되지만 그 이미지와 사운드의 놀라운 향연은 ‘영화’ 그 자체의 경계와 대면하게 만든다. <포지티프>의 미셸 앙리는 <로스트 하이웨이>를 두고 “영화가 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경계가 되는 그 어떤 것에 접근한다는 매우 강한 느낌을 준다”고 썼다.
데이비드 린치가 <로스트 하이웨이>에 대해 가장 최근에 한 얘기는 그가 쓴 에세이집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방>에 아래와 같이 실려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O.J.심슨 재판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영화는 그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돼 있을 것이다. 심슨을 보고 놀란 점은, 그가 미소도 짓고 때론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그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태연히 골프를 치기도 했다. 나는 한 인간이 정말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삶을 이어갈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공포를 회피하려고 마음이 스스로 기만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인 ‘심인성 기억상실’이라는 말을 접하게 됐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그런 심리현상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글|주성철 씨네21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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