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멸의 제주]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 <눈꺼풀> 상영 후 오멸 감독 시네토크




이용철(영화평론가) 2016년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눈꺼풀>을 상영했었다. 그리고 2년 만에 감독님과 다시 <눈꺼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2016년 시네토크 당시 관객들 중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다. 그때는 세월호를 둘러싼 상황이나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다.

오멸(감독) 엊그제 개봉을 앞두고 시사를 하면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내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네토크를 할 때는 나도 마음이 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용철 <눈꺼풀>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바로 그해 제작한 영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식 개봉은 하지 않았고 이제서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눈꺼풀>을 찍는 그 순간에도 개봉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지 못했던 걸로 알고 있다.

오멸 내 경우에는 일단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당시 우리 극단 멤버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예술한답시고 영화도 하고 연극도 하는데 이 일을 다뤄야 하지 않겠느냐, 예술가로서 할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그리고 바로 촬영부터 시작했다. 워낙 극소수의 인원들과 시작한 거라 그때는 개봉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개봉을 하고 싶어도 ‘블랙리스트’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배급사나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파장이 미칠 것 같았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개봉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세월호를 다룬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용철 블랙리스트라는 건 그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도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증거도 명확하지 않다. 심사에서 떨어지고 지원을 못 받아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심증만 가질 수 있다. ‘일반인’들은 이 문제를 정의의 문제라 생각할 수 있지만 창작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특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 오멸 감독님은 그 문제가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오멸  제주도는 4.3 이후 연좌제가 있었다. 3대에 걸쳐 국가 권력의 감시를 받고 후손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여기에 대한 제주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있다. 나도 <지슬> 이후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고, 실제로 제작하던 작품의 지원이 갑자기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극단을 운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극단이 거의 해체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 보면 정치인들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웃음). 이걸 회복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부서진 걸 다시 쌓고 싶지만 나도, 멤버들도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용철 오늘은 <눈꺼풀 메이킹>도 함께 상영했다.

오멸 제주 지역방송국에서 <눈꺼풀> 촬영 현장을 찍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틀 동안 찍겠다고 했지만 열흘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PD가 섬까지 왔고 2부작으로 만들었다. 밤 8시 프로그램이었는데 시청률이 14%가 나와서 정규 방송을 제치고 1등을 했다(웃음). 오늘 본 영상은 그 방송 버전에서 내레이션을 빼고 분량을 20분으로 줄인 것이다.

이용철 나도 잠시 촬영 현장에 있었지만 매우 즐거웠다. 그런데 그 시기가 <하늘의 황금마차> 이후 영화 제작에 대한 고민이 컸던 시기로 알고 있다.

오멸 영화 내용은 우울하고 슬픈 내용이지만 촬영을 하는 동안 모두 몸이 건강해졌다(웃음). 무인도에 혼자 있다 보니 계속 삶과 생명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하러 왔다가 우리가 치유되는 경험, 죽음을 이야기하러 갔다가 생명을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이용철 <뽕똘> 같은 코미디에도 죽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특히 요즘 오멸 감독의 작업에는 죽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오멸 죽음을 밀접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삶과 죽음이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지만 작업을 할 때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려고 한다. 한쪽 어깨에 삶, 한쪽 어깨에 죽음, 이런 게 아닐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숙제를 떠안게 되는데,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용철 지금 제주는 개발이 많이 됐고, 외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그래서 제주가 갖고 있던 어떤 신화적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오멸 감독은 여전히 신의 세계와 신화적 요소를 영화 속에서 많이 다루려 한다.


오멸 섬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가 샤머니즘 문화가 강하다는 것이다. 제주에는 ‘신구간(新舊間)’이란 게 있다. 이사를 할 수 있는, 귀신에게 허락받은 시간으로서 다들 그때 이사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해녀가 물에 들어가지 않는 기간도 있다.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이처럼 제주에서는 사람과 신이 밀접한 관계를 맺은 채 시간이 흐른다. 삶의 질문과 습관이 신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어릴 때 무덤에서 잔 적이 있다. 제주에서는 무덤이 집과 가까운 밭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일 자주 가는 곳에 부모의 무덤을 만들고, 매일 부모님의 묘를 돌본다. 이처럼 신을 대하는 태도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객 1 영화의 제목 ‘눈꺼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오멸 4.16 당시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아마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차마 눈을 감고 싶어도 감을 수 없는 그 눈꺼풀의 고통스러움을 떠올리며 제목을 정했다. 그리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 사건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는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관객 2 세월호를 다루는 게 예술가들의 의무라고 말씀하셨다. 최근 『전체관람가』에서 공개된 <파미르>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듣고 싶다.

오멸 일 주일 전에 세월호에 대한 장편 시나리오 초고를 끝냈다. 최근 제작 여건이 안 좋아져서 내가 직접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 간절해지고 있다. 올해 촬영을 시작하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이용철 나는 오멸 감독이 세월호에 너무 에너지를 쏟는 것 같아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반기지 않는 소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종종 만나 근황을 물으면 항상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신작 <인어전설>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써 공개가 됐다.

오멸 <인어전설>은 제작 중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좀 고달프게 만들었다. 장편 열 편 만드는 게 개인적 목표인데 그걸 이루는 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작업으로서의 영화,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매체로서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며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이용철 오멸 감독이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형편’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 듣는다. 블랙리스트는 어떤 사람들이 영화를 못 만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 영화를 계속 찍게 하는 힘을 줄 수 있는 건 관객이다. 곧 <눈꺼풀>이 개봉을 한다. 여러분들이 많은 힘을 주시길 바란다.

오멸 삶을 즐겁게 하는 영화도 많지만 세월호는 실제 사건이다. 그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시기가 계속 찾아오는 것 같다. 3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상을 그렇게 떠난 사건은 3천 명,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계속 파장을 미칠 것이다. 당장 나에게는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세월호의 파장은 곧 우리에게 올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월호에 대해 질문을 던져서 올바른 답을 찾고 이 사회의 바른 지표로 삼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도 말하더라. 하지만 공동체의 올바른 지표를 만들기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시 3월 31일(토) 오후 4시 <눈꺼풀> 상영 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래머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