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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THEQUE

필름 없는 필름 -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필름 없는 필름-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를 보면서 생각난 것들을 자연스럽게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35mm 필름으로 영화를 봤고 사진을 찍을 때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뒤 사진관에서 현상-인화를 했다. 사진과 영화를 물질로 경험한 세대다. 그런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디지털 세대라서 경험 자체가 다를 것이다. 먼저 필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 질산염 필름에서 폴리에스터 필름까지상영용 필름을 7~8 프레임 정도 잘라서 가져온 걸 나눠주려 한다. 지금 나눠드린 걸 보면 모든 장면이 거의 같은 장면일 것이다. 24프레임이 1초에 해당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꽤 긴 필름이 필.. 더보기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 <눈꺼풀> 상영 후 오멸 감독 시네토크 [오멸의 제주]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상영 후 오멸 감독 시네토크 이용철(영화평론가) 2016년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을 상영했었다. 그리고 2년 만에 감독님과 다시 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2016년 시네토크 당시 관객들 중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다. 그때는 세월호를 둘러싼 상황이나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다. 오멸(감독) 엊그제 개봉을 앞두고 시사를 하면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내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네토크를 할 때는 나도 마음이 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용철 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바로 그해 제작한 영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식 개봉은 하지 않았고 이제서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을 찍는 그 순간에도 .. 더보기
세상에 저항하기, 또는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소공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세상에 저항하기, 또는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담배 한 모금과 한 잔의 위스키를 위해서라면 집(정확히는 방)은 포기하겠다. 대개의 경우라면 이 문장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의 미소(이솜)의 셈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담배와 위스키를 사랑한다. 자신의 취향이 뭔지를 확실히 아는 미소는 가난한 현실을 이유로 들어가며 그 취향을 포기하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다. 오르는 방세를 감당하느니 오른 담뱃값을 감당하는 쪽을 택한다. 최소한의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선 그녀는 이 상황을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변명이나 합리화가 아니다. 미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또 그 생각대로 살아간다... 더보기
건들건들 느껴볼 것 - <인히어런트 바이스>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건들건들 느껴볼 것- 조연으로 출연한 조쉬 브롤린조차 처음 읽었을 때 “빌어먹을, 한 단어도 못 알아먹었다”고 토로한 바 있는 토머스 핀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가 안 간다고 불평하게 만들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제법 이름 난 비평가인 조너선 롬니조차 『필름 코멘트』에 쓴 의 리뷰에서 이 전작을 언급하면서 지독히 두서없는 영화란 뜻에서 “차라리 인코히어런트 바이스(incoherent vice)라고 불러야 한다”며 비꼬았을 정도니 말이다.이 영화를 멋지게 독해해내려는 시도는 무모한 도전으로 남겨지게 마련이다. 독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그 이상야릇한 무드에 다짜고짜 전염되어 볼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립탐정 닥(호.. 더보기
말씀의 탄생 - <데어 윌 비 블러드>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말씀의 탄생- 1898년에 시작한 영화는 1927년 대공황의 시기에서 멈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라는 시대 배경은 역사적 맥락 외에 영화사적 맥락을 환기하는 측면이 있다. 말소리가 소거된 채 숨소리와 비명, 과잉된 음향으로 채워진 약 15분간의 도입부를 통해 영화는 무성영화를 인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초기 영화의 반향으로 영화를 읽을 때 두드러진 이미지가 있다. 시축 기계가 땅에 꽂히자 땅에서 석유가 흘러나오는 모양을 클로즈업한 숏은 어쩐지 몸속에서 피가 불거져 나오는 양상을 연상시킨다. 비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검은 석유는 곧 흑백 영화의 검은 피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석유를 추출하는 것만큼이나 기계가 사람의 몸에 꽂히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 더보기
사랑의 동선 -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사랑의 동선-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만든 장편 중 가장 짧은 결과물인 는 90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멈춤 없이 내달리는 영화다.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행사 상품에 관해 문의하는 배리(아담 샌들러)의 모습으로 다짜고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문이 열리면 카메라는 결코 후진하는 법 없이 인물의 동선을 따라 사방으로 질주한다. 날렵하지만 유려하고, 재빠르되 능수능란한 속도와 테크닉으로 곧장 결말에 도달해 버리는 이런 영화를 보고 덧붙일 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저 배리라는 인물에 부여된 몇 가지 특수한 조건을 이야기하고 싶다. 가 멈춤 없이 내달린다는 말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영화는 배리에게 안정적인 거주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집 안에서 .. 더보기
모자이크 없이 감상하자 - <부기 나이트>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모자이크 없이 감상하자- 의 국내 개봉(1999.3.20) 당시 엔딩 장면에서 더크 디글러(마크 월버그)의 성기를 모자이크 처리하게 한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처사는 폭력이었다. 모든 영화가 대표작이자 마스터피스라고 할 수 있는 폴 토마스 앤더스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1997)는 제도권에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유사 가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는다. 제도권의 상식은 종종 보기 좋은 것을 상수에 두고 그렇지 않은 것을 골라내어 나쁜 것 혹은 쓸모없는 것 취급해 경계 밖으로 쫓아내고는 한다. 더크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볼까. 원래 이름은 에디 아담스. 공부 대신 나이트클럽 주방 아르바이트에, 동급생 여자와 잠자리를 나누는 게 엄마에게.. 더보기
고독의 공기 - <조용한 열정> [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고독의 공기- 19세기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긴 테렌스 데이비스의 전반부에는 어딘지 모르게 밝고 환한 기운이 감돈다. 기숙학교에서 숨 막힐 듯한 삶을 살고 있던 에밀리 디킨슨은 친애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시 쓰기 활동을 시작한다. 집이라는 실내 환경은 새로운 외부로의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하다. 개인의 삶에 대한 그녀의 강고한 철학이 보수적인 종교관을 가진 이모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큰 갈등은 빚어지지 않는다. 가족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안정감과 견고함이 적어도 한동안은 이 영화를 지배한다.그러다 영화가 시작된 지 20분 정도 경과했을 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영화는 초기 사진술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