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펠리니에 관한 '애프터 토크'

지난 6월 25일 저녁 8시, 펠리니의 <8과 2분의 1>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서울아트시네마가 인산인해를 이루던 날 저녁,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극장 근처 카페에서는 관객들끼리 모여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애프터 토크 자리가 있었다. '펠리니, 광대예찬'이라는 이름을 달고 진행된 이 행사는, 2010년 들어서부터 서울아트시네마의 소식지 및 웹블로그에 글을 기고하던 관객에디터들이 주체가 되어 준비하고 많은 다른 관객들을 초대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총 15명 정도의 관객들이 모였다. 비록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미리 발제를 준비해온 관객들이 있었다. 발제자들의 발제 후, 이와 관련된 내용 및 그 외 몇 가지 다른 관심사들에 대해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유쾌하면서도 진지했던 애프터 토크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펠리니 광대예찬를 위해 모인 관객들의 간략한 자기소개가 있은 후, 본격적인 애프터 토크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관객에디터 김수현 씨가 맡았다. 사회자는 애프터 토크 자리를 마련한 취지에 대해 짧게 언급한 후, 자신이 준비해 온 '화려한 스펙터클과 소란 뒤의 애잔함'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낭독했다. 발제는 자신에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펠리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서 이 자리를 준비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됐다. 주된 내용은 펠리니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축제 장면들의 스펙터클함이 펠리니의 어린 시절의 경험인 버라이어티 쇼와 서커스에의 매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펠리니 영화에 꼭 등장하는 아이들, 펠리니가 여성을 보는 시선, 그리고 펠리니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의 에피소드적인 특징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란스럽고 스펙터클한 펠리니의 영화 뒤에 남는 비극적인 면모와 초라한 현실에 대한 묘사가 대중문화로서의 영화가 가진 속성과 연결되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으로 양석중 씨는 '펠리니, 방랑하는 카메라'라는 제목의 발제를 진행했다. 펠리니에 대한 몇 가지의 주관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풀어낸 발제였다. 그는 우선 '젤소미나'의 얼굴을 개인적인 의미에서 고전영화의 절대 쇼트이며 고전영화의 이름이기도 하다며 줄리에타 마시나를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과 겹쳐놓았다. 다음 키워드는 서커스. 그는 서커스야말로 기술, 정확성, 그리고 즉흥성의 혼합물이며 화려한 공연 뒤에는 반복된 훈련과 억압, 채찍질, 신체의 구속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펠리니는 서커스 화려함 뿐만 아니라 그 기저의 어두움도 거의 대등하게 다룬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였는데, 사실적 표현을 중요시하는 네오리얼리즘 영화들과 펠리니 영화의 환상성을 대조하면서, 이러한 펠리니의 환상성이야말로 영화의 근간이며, 카메라는 온전한 진실을 보여줄 수 없고 지연된 사실의 일부, 프레임의 조각을 드러낼 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키워드는 발제의 제목이기도 한 '방랑하는 카메라, 펠리니'였다. "네오리얼리즘의 맹아는 전쟁 전, 파시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어서 대전 이후 패전 상태의 이탈리아에서 만개했다. (......) 펠리니의 영화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동시대의 네오리얼리즘 작가들이 전후의 이탈리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제시했다면, 펠리니의 영화들은 전후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집이 있더라도 마치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 같다." 발제는 펠리니의 인물들에게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오며, 이것이 인생 자체가 회한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펠리니 특유의 네오리얼리즘의 한 면모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마지막 발제자인 장지혜 씨는 '떠나는 인물들과 그들이 꾸는 꿈'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발제는 로마를 동경하는 시골 소년 펠리니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을 겹쳐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펠리니 영화에서 꿈과 현실은 서로 다른 층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백인추장>의 여주인공 완다의 "현실은 우리의 꿈 안에 있지만, 때로 그 꿈은 깊은 구렁이기도 하죠"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달콤쌉싸름한 현실 안의 꿈, 혹은 꿈 안의 현실은 이후 <달콤한 인생>에서 보여주는 로마의 모습과도 닮아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비텔로니>의 마지막에 마을을 떠나는 인물인 모랄도가 남기는 특별한 여운에 대한 언급으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이렇게 세 명의 발제가 끝난 후, 나머지 시간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 혹은 자신만의 관심사를 가지고 펠리니에 대한 자유로운 난상토론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펠리니를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토론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광대예찬'에 가까웠던 시간이었다. 첫 번째 나온 토픽은 펠리니 영화의 매력과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로 펠리니 영화의 시각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오갔다. "쇼트들의 집합이 만들어내는 시네마틱한 볼거리의 단순한 힘이 펠리니 영화의 힘인 것 같다"라는 의견이 있었고, "<로마>에서 사창가의 장면과 성직자 패션쇼 장면이 연달아 나오면서 대비가 주는 충격이 컸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어서 펠리니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어디에서 위안을 얻을까'라는 점에서 성직자과 창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편 어차피 눈을 통해 매혹되는 것이 영화의 속성이라면, 펠리니 영화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에게 일종의 시각적 최면을 건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일상적으로 꿈꾸는 환상적인 부분들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나올 때, 그 쾌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미지 하나하나는 화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내러티브가 워낙 파편적이어서 영화를 보다보면 자주 졸게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펠리니 영화는 특정 부분의 인상이 덩어리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펠리니 영화의 엔딩이 주는 매력과 힘에 대해 언급하는 관객이 많았으며, 또한 펠리니 영화의 엔딩이 죽음의 느낌이 많이 들어서 슬프게 다가온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영화사 흐름 속에서 본 펠리니의 환상성과 리얼리티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초기영화에서의 볼거리적인 특성부터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이야기에의 종속으로 영화가 발전해온 과정, 이에 대비해 극적인 드라마를 구성하면서도 현실성을 담아내려 노력했던 네오리얼리즘, 그리고 이와는 또 다르게 초기영화적인 볼거리들을 에피소드로 나열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전시하여 관객에게 쾌감을 주는 펠리니의 특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펠리니와 알프레드 히치콕과의 비슷한 점에 대해 지적한 관객도 있었다. 이미지에 매혹된다는 설정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의 영화는 이미지에 대한 매혹성을 주관적인 시점숏과 주관적인 카메라 워킹, 특히 트래킹 숏을 통해 표현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 매혹된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데, 펠리니는 뭔가 도덕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면 히치콕은 늘 죄의식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달라진다. 이와 함께 이미지의 매혹을 여성성의 미스터리와 연결시키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길>에서의 젤소미나 캐릭터에 대한 경이로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의 시나리오와 감독과 배우의 어떠한 관계를 통해 그러한 놀라운 연기가 나왔을까'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배우가 그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만 가능한 연기였다는 것이다. 젤소미나가 잠파노를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폭력 때문에 종속되어 떠나지 못하는 관계였던지에 대한 궁금증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다른 관객은 <길>의 캐릭터들은 이태리 민담에서부터 온 "미녀와 야수"와도 같은 정형화된 캐릭터들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얼굴만 떠올려도 울컥해진다는 관객 등 그녀의 연기에 대한 예찬이 끊이질 않았다. 다른 관객은 펠리니가 사람의 마음을 잘 보고 있으며 그러한 내면적인 것들을 잘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지적했는데, 후기작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아닌 시각적인 표현성 자체가 더 강해진다는 의견이었다.


한편 개개의 영화들은 좋아하는 작품은 많은데, 그래도 이상하게 펠리니 라는 감독에 대한 어렴풋한 반감이 든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가령 <오케스트라 리허설>의 사회주의 혁명 같은 폭동 후 마에스트로의 전체주의적인 지도 아래서 다시 화합을 한다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러고 보면 펠리니의 영화 중에서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작품이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다른 관객은 이태리 사회는 모든 죄를 무솔리니에게 지우고 파시즘의 시대가 종식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 아직 파시즘이 완전히 척결된 것이 아니며 펠리니 자체도 이러한 양가적인 측면을 아직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편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 드러나는 파시즘이 오히려 너무 뻔한 우화가 아닐지 고민해보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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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강좌2]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말하는 펠리니의 초기영화들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8일 저녁 8시 그 두번째 시간에는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네오리얼리즘과 페데리코 펠리니'란 제목으로 펠리니 초기영화에 대한 열띤 강연을 펼쳤다. 무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홍성남(영화평론가):
오늘 강의에서는 우선, <달콤한 인생>까지의 펠리니 영화의 중요한 논점들, 네오리얼리즘과의 관계,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을 보는 관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달콤한 인생>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전반적인 영화사나 펠리니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어떻게 봐야 할 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달콤한 인생>과 <8과 2분의 1>이후의 영화들을 먼저 보게 되면 펠리니가 네오리얼리즘과 관계가 없고, 꿈과 환상을 영화로 멋지게 구현한 감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펠리니는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적인 감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와 <파이자>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고 시나리오도 썼습니다. 로셀리니 감독은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로케이션 촬영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제약들과 영향들을 적극 수용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개방적으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펠리니는 여기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도 얘기합니다. 한편으로 펠리니는 5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이탈리아 영화사들에서 작업하면서 이 시스템의 이점을 최대한 누린 감독이기도 합니다. 펠리니는 예술적 야심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예술적 통제력을 발휘하고자 했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현실과 굉장히 가깝게 세트를 만들어 놓고, 공간과 연기하는 배우들을 통제했습니다. 펠리니의 영화작업은 중반 이후로 가면, 한편으로는 규정된 시나리오나 이야기, 그리고 시공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면서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것이 펠리니의 영화제작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길>은 개봉 당시 귀도 아리스타르코라는 당대 이탈리아의 유명한 맑시스트 비평가로부터 비판받은바 있습니다. 이 비평가는 네오리얼리즘의 위기와 관련해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놨습니다. 같은 해에 개봉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는 리얼리즘이 역사 속으로 보다 진실하게 들어간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센소>는 에밀 졸라식의 자연주의로부터 발자크식의 리얼리즘으로 발전하면서 네오리얼리즘을 보다 풍요롭게 꽃피우고 있다고 보았던 반면, 네오리얼리즘이 위기를 맞아 하강이나 추락을 하게 될 경우, 그 시나리오의 악한은 펠리니가 될 것이며, 이 때 예로 든 영화가 <길>이었습니다. <길>의 외양은 네오리얼리즘적인 영화 같지만, 판타지나 기억, 종교적인 믿음 쪽으로 퇴행하는 영화라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펠리니는 이 비평가와 자신의 네오리얼리즘의 시각은 다르다면서 반박했습니다.

<길>을 네오리얼리즘적인 영화인 비토리아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비교해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두 영화 다 표면적으로는 로드무비에 가깝습니다. <자전거 도둑>은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는 과정에서 단순히 거리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당시 로마의 많은 제도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 당시 사회에 대한 분석이 있는 것입니다. <길>은 사회적인 분석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전거 도둑>은 당대 로마라고 하는 분명한 시공간 개념이 있는 반면, <길>은 이 점이 불분명합니다.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길>에서 보이는 인물은 계급, 사회, 역사 속의 전형적인 인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전거 도둑>은 현실에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반면 <길>의 인물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포크드라마인 <꼬메디아 델라르떼>에서 끌어왔습니다. 인물의 캐릭터는 미리 설정되어 있고, 영화 속에서 진화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잠파노는 야수, 젤소미나는 사랑, IL MATO(the Fool)는 상상력, 교육, 계시로 볼 수 있습니다. 펠리니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의 사회적 현실을 담는 것보다 인물의 영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리얼리즘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면 펠리니는 사물을 투과해서 그 안을 보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카비리아의 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동일한 상황이 반복됩니다. 펠리니의 많은 영화들, 특히 초창기 영화들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일종의 대구를 이루는 순환구조입니다. <길>이나 <달콤한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비리아의 밤>은 처음-중간-끝이라는 관습적인 드라마 구조가 없습니다. 대신에 느슨한 에피소드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카비리아라고 하는 인물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로 연결되었는데, 그 안에서도 리듬이 보입니다. 첫 장면에서 카비리아가 희망을 갖고 있었다가 그것이 무참히 깨지는 과정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강도가 세지면서 반복됩니다. 카비리아가 환상을 가졌다가 그 환상이 깨짐으로써 환멸을 느끼게 되는 구조들이 매 에피소드에서 이어집니다. <카비리아의 밤>에서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공간과 환타지적인 공간이 병치되는데 비해서 <달콤한 인생>에서는 네오리얼리즘적인 공간은 뒤로 물러나고 상류층의 공간이 전면에 오게 됩니다. <카비리아의 밤>은 펠리니의 영화적인 이동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비리아는 자신에게 결혼의 희망을 품게 했던 사람에게서 무참하게 배반을 당하게 됩니다. 땅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의 리얼리즘 영화라면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났을 텐데, 아주 짧은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카비리아는 어두운 공간에 누워 있다가 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게 됩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카비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야겠다”라고 하는 듯한 태도로 미소를 짓고, 카비리아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처음에 영화 속에서 나오던 음악은 영화음악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은 영화 감독이 신처럼 되어 카비리아에게 은총을 내리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보든 영화 감독이 영화 속 인물에게 내리는 은총이라고 보든, 이 장면은 자연스럽지 않고 인공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장면을 마치면서 펠리니의 영화세계는 네오리얼리즘과 단절을 하고, <달콤한 인생>의 세계로 오게 됩니다. <달콤한 인생>은 같은 해 개봉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함께 이탈리아 영화의 예술적인 위신을 고양시킨 영화이자, 현대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콤한 인생>은 대중문화적으로, 또 라이프스타일의 측면에 있어서도 굉장한 반향을 일으킨 영화입니다. 우리는 방탕하고 과도하고 스펙타클하고 사치스러운 영화스타일을 두고 ‘펠리니적인’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시초가 된 영화도 역시 <달콤한 인생>입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들, 불경하게 여겨지는 이미지들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예수상이 현대 문명의 이기인 헬리콥터에 의해서 끌려가는 장면, 영화 곳곳에서 상류층 사람들을 다루는 태도때문에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이나 기독교, 카톨릭 관련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거의 포르노그래피다”라고 비판받았습니다. <달콤한 인생>도 에피소드들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졌고, 각각의 에피소드는 자족적인 세계를 보여줍니다. 에피소드들마다 상승과 하강, 쾌락과 피로, 환락의 밤과 새벽 등 리듬이 있습니다.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을 바라보는 펠리니의 시선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실례가 영화 속 실비아(아니타 에크버그)를 바라보는 펠리니의 시선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진 환상을 충족시켜준 인물이 아니타 에크버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니타 에크버그는 연기를 하는 배우라기보다는 자기 육체를 이용하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펠리니가 아니타를 바라보는 시선은 백치같은 여자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이 아닙니다. 펠리니는 유명한 트레비 분수의 장면을 찍으면서 구경 온 관중들에게 “이 여자같은 아름다운 여자를 어디서 본 적 있습니까? 나는 어떤 서커스에서도 보여주지 못했었던 화려한 장면을 보여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한편 아니타 에크버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펠리니적인 여성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아니타 에크버그야말로 펠리니 영화의 에센스가 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펠리니적인 여성은 그 이미지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성에게 우리의 어떤 바람이 투사됐나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편, 펠리니는 이데올로기, 도덕이나 종교적 가치, 전통적인 관습 등이 붕괴하는 시대를 비판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 마르첼로처럼, 그런 세계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파졸리니는 펠리니가 판관이 되어 옳고 그름을 보여주지 않고, 그 세계에 거리를 두지 못한 채 자신이 거기에 빠져들어간 공모자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 펠리니는 <달콤한 인생>을 재밌으면서도 약각은 심각한 코미디로 그려냈습니다. 코미디적인 감수성은 펠리니의 많은 영화 속에 드러나는 굉장히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8과 1/2>도 창작자의 고뇌가 느껴지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코믹한 측면이 많습니다. 실제로 펠리니는 이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에 “지금 나는 코미디 영화를 찍고 있다”라는 문구를 붙여놨다고 합니다. <달콤한 인생>은 펠리니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펠리니는 뤼미에르적인 측면을 벗어나서 조금 더 멜리에스적인 세계로 도약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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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사기꾼들>


<길>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펠리니는 일 년 후인 1955년에 사기단의 범죄를 다룬 <사기꾼들>을 발표한다. 전작 <길>이 페데리코 펠리니라는 작가를 각인시킨 것과 달리, <사기꾼들>은 ‘1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싸구려 범죄스릴러라는 비평가들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고 흥행에 참패했다. 뿐만 아니라 1964년까지 국제배급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펠리니의 이야기 소재가 변화하는 특징적인 단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펠리니적인 분위기가 집적된 작품이라 말해지기도 한다.

영화는 나이든 리더 아우구스토를 주인공으로 사기꾼 일당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아우구스토 패거리의 사기는 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한다. 주교복장을 하고 나이든 여자를 속이거나 행정 관료로 가장해 빈민가 사람을 갈취하는 등 사기행각과 관련된 에피소드에는 전쟁의 여파와 이탈리아 민중의 피폐한 삶이 드러난다.


네오리얼리즘의 계보를 따르고 있지만 이 영화는 시적인 리얼리즘과 거리를 두고 있는 작품이다. 궁핍한 삶의 조건을 말하면서 현실의 거친 모습을 담아내는 기본정신이 <사기꾼들>을 관통한다. 맨손으로 농사일을 돌보는 시골 농부, 열악한 빈민가의 상황, 쉬는 시간도 없이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보여주는 방식은 네오리얼리즘의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사기꾼들>은 네오리얼리즘과 구별된다. 이것은 주로 늙은 사기꾼 아우구스토로 분한 브로데릭 크로포드의 연기로 성취된다. 우울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는 아우구스토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근심한다. 펠리니는 인물의 고독한 심경을 명암대비가 두드러진 조명으로 처리한다. 파티에서 홀로 앉은 아우구스토의 옆얼굴이 반 정도 어둠에 가리거나, 그의 모습을 그림자 실루엣으로 처리한 장면들은 리얼리티를 포착하기 위해서 인공성을 지양하고 자연광, 야외촬영, 핸드헬드를 요구한 네오리얼리즘과 차이를 보인다. 캐스팅단계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나타난다. 펠리니는 늙은 사기꾼 역할의 강렬하고 비극적인 얼굴을 육화하기 위해 처음에 험프리 보가트를 기용할 생각이었다. 당시에 보가트가 폐암을 앓았기 때문에 크로포드를 기용했다. <모두가 왕의 부하들>(1949)의 포스터에서 그의 얼굴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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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 기념 오프닝나이트 열려


지난 10일 오후 5시 30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길>(1954) 상영을 시작으로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의 서막이 열렸다. 페데리코 펠리니 탄생 9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회고전에서는 펠리니의 모든 장편 연출작을 포함하여 총 22편의 영화가 상영되는데, 이는 그의 영화 전작에 가까운 것으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펠리니 기획전 중에 가장 큰 규모의 영화제다.

<길> 상영 이후 저녁 8시부터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장편 데뷔작인 <다양한 불빛>(1950)이 상영되었는데, 영화 상영에 앞서서는 이번 회고전 공동주최사인 주한 이탈리아문화원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간단한 오프닝 나이트 행사도 열렸다. 이 자리에는 루치오 이조(Lucio Izzo) 주한 이탈리아문화원 원장과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참여해 관객들에게 이번 회고전을 기획하게 된 취지와 의미에 대해 발언을 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모든 감독들은 펠리니처럼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그렇게 한 사람은 펠리니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루이 말의 말을 인용하며 펠리니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높였다. 이번 회고전은 1년에 걸쳐 준비되었으며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및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이 이탈리아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의 협조 아래 진행되었다. 특히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은 비스콘티 회고전 때에도 서울아트시네마에 도움을 준 바 있다. 이탈리아 문화원의 루치오 이조 원장은 관객들에게 “펠리니의 전작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며 “처음 소개되는 작품도 많은 만큼 이번에는 가능하면 펠리니의 전작을 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에게 감사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서울아트시네마가 이탈리아의 다양한 영화를 소개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번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을 맞아 펠리니의 다양한 작품 세계와 그의 작가 정신을 심도 깊게 살펴보고 이해해 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 읽기’라는 영화사 강좌도 개설한다. 이번 강좌는 전작에 가까운 그의 영화를 보며 부가적으로 논쟁적 감독인 펠리니의 영화세계까지 깊이 있게 탐구해볼 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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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


<카비리아의 밤>(1957)은 <길> 이후 줄리에타 마시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길>과 <사기꾼들>에 이어 ‘구원 3부작’으로 명명되었던 작품으로, 펠리니는 세 작품의 상징들을 통해 인간 사이의 교감과 신에 대한 질문을 보여주었다. 세 영화는 모두 펠리니의 개인적인 공간과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다. <길>의 서커스(유랑민)와 <사기꾼들>에서 단역들의 종교적 상징, 그리고 <카비리아의 밤>의 매춘부(매음굴) 등 세 영화의 중심 테마는 모두 펠리니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지나왔던 특정 공간과 추억들이 담긴 자전적 설정이다. <카비리아의 밤>은 초기 펠리니의 작품 중 가장 명료한 공간 이동이 이뤄지는 작품이다. 매음굴과 거리의 이미지가 의도적으로 반복된다. 또한 이 영화는 전작들에 비해 주인공을 극으로 치닫게 만드는 강렬한 드라마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길>은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당시의 유행 사조였던 네오리얼리즘에서 떠나려 했던 작품이었다. <카비리아의 밤>은 그런 펠리니의 방향을 더욱 확고하게 다져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네오리얼리즘이 표방한 현실의 구성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감성을 영화에 불어넣는 방법을 찾았다. <카비리아의 밤>에서 펠리니는 가난과 같은 외부의 영향으로 조금씩 무너져 가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카비리아는 사랑과 순수를 결코 놓지 않으려는 강인한 인물이다. 그녀에 기생해 괴롭히는 폭력적인 남성들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카비리아는 감상적이고 끊임없이 희망을 갖는 긍정적 미래를 바라보는 인물이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카비리아는 마지막 희망, 그리고 마지막 기적의 상대인 오스카를 만난다. 거듭되는 악몽이 두려웠던 카비리아는 오스카를 경계하지만, 그의 끈질긴 구애 앞에 결국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을 속삭였던 오스카도 사랑의 힘에 이끌려 카비리아를 원한 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고, 카비리아는 홀로 외딴 지방에 남아 구슬픈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살던 마을을 벗어나 방황하던 카비리아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음악의 유혹에 이끌려 울음을 삼키고 웃음을 짓는다. 카비리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기생해야했던 남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딛고 일어나야만 하는 그녀의 ‘광대적 삶’을 함축적으로 묘사한다. 카비리아의 웃음은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종교적 해답을 발견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펠리니의 ‘신성’으로 이어진다. 웃는 자는 곧 깨달음을 얻은 자이며, 자기치유의 권한을 단독으로 부여받은 사람이다. 카비리아는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세상을 향해 웃음 짓는다. 이 마지막 숏은 펠리니의 초기작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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