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좌담

에디터로서의 역할과 관객으로서의 역할


영화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22일,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 에디터로 참여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이 자리에서 에디터들은 각자 리뷰를 쓰면서 가졌던 고민들, 녹취를 정리할 때의 어려움들, 관객 에디터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은 종종 교차하여, ‘에디터’가 아닌 ‘관객 에디터’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그 자리를 여기에 옮긴다.


 

프리뷰와 리뷰 사이에서

박민석: 에디터 활동을 리뷰부터 시작했으니 리뷰에서부터 얘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비평 글에 익숙해져 있어서 프리뷰에 가까운 글을 쓸 때 어려움이 있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을 상대로 설득하는 것이 영화를 본 관객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 다른 분들은 어떤가?

최혁규: 자막 팀에서도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막 작업을 맡은 영화의 리뷰를 맡았다. 관객의 흥미를 어떻게 이끄느냐는 고민보다는 같은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게 조금 더 곤혹스러웠다. 자막 작업을 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으로 볼 때는 사운드만 먼저 들렸는데 그것이 이미지와 합쳐질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송은경: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리뷰를 맡았는데 이 영화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놓인 영화인 것 같다. 안 본 사람도 많겠지만 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들이라면 상당수가 이 영화를 이전에 접했을 것이다. 그래서 프리뷰와 리뷰 사이에 어디에 중점을 맞추고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김경민: 러프하게 말해서 글쓰기가 자기주장이라고 치면 프리뷰는 그것과 정보전달이 함께 가야되는 건데 그것이 좀 어려웠다. 내 글을 읽었던 다른 에디터 분들도 정보전달이 좀 빠져있는걸 지적했고 그런 걸 넣으면 서술형이 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배동미: 리뷰보다는 특집기사를 쓸 때 더 어려움을 겪었다. 댄스영화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페임>과 <플래시댄스>의 특집기사를 맡았다. 영화 상영 전까지 기한도 지켜야 되고 정신 없이 썼는데, 그래서 맘에 들지 않은 부분도 많다. 스스로 만족을 하지 못했던 글이다.

장지혜: <이터널 선샤인>의 리뷰를 맡아서 쓸 때는 고민을 많이 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영화라서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그게 좀 더 어려웠다. 반면에 스콜세지에 대한 특집기사를 쓸 때는 영화의 한 부분에 집중해서 쓰려고 하니까 오히려 글이 더 쓰기 편하더라.


시네토크

박민석: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건 경우에 따라 녹취하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정리하는 본인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영화제 시네토크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면?

장지혜: <남부군>의 시네토크에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90년대에 나온 영화였는데 당시의 얘기와 지금의 상황이 겹쳐지고 만나는 부분들이 있더라. 그래서 이걸 정리를 하면서 관객들이 별로 없었으니까 녹취 글도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경민: 이번에 에디터 업무와 별개로 시네토크 소개영상 편집일도 맡았는데, 그 영상에는 친구들이 왜 이 영화를 골랐는지에 대한 게 꼭 들어가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옛날에 봤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서 추천을 했다고 한다. 스크린으로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아직 답은 잘 모르는데, 계속 그에 대해서 생각해봤던 것 같다.

배동미: 김경주 시인의 시네토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들을 때는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는데 정리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시네토크 중간 중간에 시적인 표현들을 많이 쓰셔서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정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송은경: 저의 경우는 오승욱 감독의 녹취가 그랬다. 정리하기는 제일 힘들었지만 시네토크는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다. 관객석에서 작년과 달리 유쾌하게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서 재밌었다.

최혁규: 평론가들의 시네토크의 정리를 맡았다. 팀장님이 다 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제가 좀 욕심을 부렸다.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것도 영화 공부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게 달라붙어서 했다. 유운성 평론가와 이용철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재미있었다. 영화비평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가 강하신 분들이라 특히 그랬다.


영화제 돌아보기

박민석: 이번 영화제 상영된 영화들은 어땠는가?

송은경: <황야의 7인>이 인상 깊었다. 친구들 영화제 전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특별전을 하지 않았나. 레오네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이 그대로 나오니까 너무 좋았고 집에 가서 서부극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리뷰 쓰면서 이미 여러 번 봤지만 다시 확인하려고 <마르케타 라자로바>를 스크린으로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했다.

배동미: 영화보다는 감독들이 더 인상 깊었는데 그들에게서 정 같은 것을 느꼈다. 감독들이 처한 상황이 있지 않나. 김곡 감독 같은 경우는 <자가당착>이 개봉하지 못하고 있고 이명세 감독은 촬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는데, 그런 걸 서로 걱정해주더라. 서로 다른 영화로 만났으면서 또 그 감독의 영화 작업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그런 게 친구들 영화제의 매력 같았다.

김경민: <좋은 친구들>이 제일 인상 깊었는데 볼 때 정말 신나게 봤고 보고 나서도 너무 좋더라. 원래 갱영화나 서부영화에 편견 같은 게 있었다. 너무 마초적일 것 같고 시끄러울 것 같고. 영화를 이어폰으로 보니까 시끄러운 영화는 기피하게 되더라.(웃음) 혼자 볼 때는 우디 앨런이나 로메르 영화 같은 조용한 영화만 봤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남성성이 가득한 영화들에도 애정이 생긴 것 같다.

장지혜: 상영작들 보면 개별적으로 선택된 작품이지 않나. 공교롭게도 그 안에서 묶이는 게 있더라. <페임>이나 <플래시댄스>. <내일을 위한 길>과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묵배미의 사랑>과 <남부군>. 이런 식으로 상영작들 내에서 제 나름대로 엮일 수 있는 영화들을 찾는 것도 흥미로웠다.


인터뷰

박민석: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관객들은 여기에 어떻게 왔을지,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들을 모아줄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관객인터뷰가 이를 약간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분들은 생각이 어떠한지?

최혁규: 예전에는 에디터가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의 구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어서 안으로 뭉치면서 밖으로 퍼질 수 있는 게 있었다. 앞으로는 그런 구심점 같은 걸 에디터가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트위터를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실현되지는 않았다. 서로 수동적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다.

박민석: 관객 인터뷰 외에 아트시네마의 직원 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배동미: 직원 인터뷰는 두 분 했는데 두 분 다 영화를 많이 좋아하시고 극장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극장을 누구보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관객 에디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극장에 오랫동안 머물고 계신 분들의 말씀이 굉장히 감동적이다. 극장에 대한 사랑이나 영화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송은경: 인터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몰랐다. 김보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랑 인터뷰를 했는데 굉장히 대화가 안 이어져서 민망한 상황이 많았다.(웃음) 관객 인터뷰를 하나 실패하기도 해서 인터뷰를 어떻게 하는게 좋은 건지 방법론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다. 그리고 직원 인터뷰를 계획했던 것만큼 못했는데 영사팀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다. 필름으로 상영하는 곳은 이제 시네마테크밖에 없으니까.


관객/에디터

박민석: 이번에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면서 하고 싶었지만 못한 일도 있을 테고 아쉬웠던 점도 있을 것이다.

최혁규: 기본적으로 참여를 제대로 못해서 죄송하다. 이런 작업이 지속적으로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의무감을 가지고 할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하고 싶다고 느꼈을 때는 이런 활동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바라는 점은 친구들 영화제가 끝나더라도 관객 에디터라는 형식을 끝까지 갖고 갔으면 하는 것이다.

박민석: 우리가 그냥 에디터가 아닌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는 만큼 관객 문화에 무언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다가갈 수 있는 몇몇 기획들이 회의에서만 이야기하고 실행되지 못했는데 나 스스로 조금만 더 열심히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동미: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는 게 굉장히 좋은 기회인데 자꾸 까먹고 게을리한 부분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극장 측에서는 많은 기회를 준건데 온전히 실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김경민: 관객 에디터로서라기보다 관객으로서의 바람이 있다. 얼마 전에 상영 몇 분 전에 정전이 났던 적이 있다. 이게 만약에 상영 중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점이 극장을 자주 가다보니까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하루빨리 안정적인 환경의 극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참석 에디터: 김경민, 박민석, 배동미, 송은경, 장지혜, 최혁규

진행/정리: 박민석 에디터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인터뷰 

"유령처럼 빨려 들어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면 좋겠다"


단골 관객 이현미 씨를 만나다!


어쩐지 낯익었다. 극장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시는 분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의 시네토크가 끝나고 막 떠날 채비를 하는 이현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언제부터 시네마테크와 인연을 맺으셨는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열심히 다닌 지는 한 2007년부터다. 그 전에는 회사일 끝나고 틈틈이 보다가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리면서’ 본 것 같다. 회계 쪽 일을 하는데, 하는 일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극장을 다니면서 자극을 많이 받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시간적 제약이 마음에 걸려 (비교적 가기 쉬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갔는데 필이 꽂히고 나니까 시간은 문제가 안 되더라. 영화를 본 후 기록을 하다보면 어느 해인가부터 개봉영화 보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월등히 많이 본다. 영화를 직접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다. 그 뒤로 마치 유령처럼 빨려 들어가 서울아트시네마를 계속 다니게 됐다.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를 보셨는지.

개인적으로 괴기영화나 피 튀기는 영화는 안 좋아해서 지난주에 상영한 <지옥인간>은 거부했는데, 그 외의 작품들은 시간표에 나름대로 체크를 해놓았으니 다 보게 될 것 같다.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무엇인가. 

시네마테크 추천작인 <내일을 위한 길>이 좋았다.


오늘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다. 일단 친구들의 선택작이고, 어느 감독이 추천했다고 하면 궁금해져서 다 보고 싶다. 특별히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가 아니라면 무조건 와서 다 보는 편이다. 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중에 그 감독의 영화를 또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사전정보가 없더라도 일단 봐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 원래는 영화만 보는 것도 힘드니까 시네토크는 안 듣고 집에 갔는데 시네토크를 듣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 의문점이 남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해주면 해소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여유가 되면 시네토크도 들으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말씀해 주신다면.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본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영화여서 살짝 졸수도 있는데 ‘이게 뭐지’ 싶어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아마 감독님이 추천하신 다른 작품도 찾아서 보게 될 것 같다.


이제까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특별전이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연합대사관에 다니고 있다. 불어를 하는 게 수월하니까, 아무래도 프랑스 영화를 제일 많이 보게 된다. 2011년 11월에 했던 <프랑스 영화 황금기 전>이 관객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좋았다. 내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같은 곳에 직접 가서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를 모아서 왕창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특별전을 다 보고 나니까 프랑스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때 ‘아, 그 영화’하고 딱 나와서 대화가 통하고 얘깃거리가 풍부해졌다. 그 점이 무척 좋았다. 관객들은 70년대 이후의 최근 프랑스 영화를 더 많이 보나보다. 그 특별전에서는 3, 40년대 프랑스 영화를 많이 틀어서인지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특별전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프로그램 한 번 할 때 필름을 외국에서 수급해 와서 2주 내지 3주 안에 다시 돌려보내야 하니까, 그 2, 3주 동안 내가 이곳에 있어야 이 영화들을 다 볼 수 있지 않나. 가끔 시네마테크가 있는 파리나 브뤼셀에 가서 보면, 같은 유럽이고 가까워서인지 필름 수급이 수월한 것 같다. 프로그램 북을 보면 어떤 감독전, 어떤 특별전을 할 때 일 년 이런 식으로 긴 시간동안 하더라. 이 사람 작품은 매주 월요일 상영 또는 첫째 주 무슨 요일, 이렇게 프로그래밍해서 그 감독 작품을 보고 싶으면 한 번 놓치더라도 이후에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도록 한다. 유럽 시네마테크에 가서도 모르는 감독이 태반인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았던 작품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관객들의 마음과 같이, 전용관이 생겨서 안정적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이 곳을 다니고 싶다. 농담 삼아 나이 들면 여기에 와서 수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드나들며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전용관이 빨리 생겨서 그 곳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필립 느와레가 나왔던, 70년대 영화인가, 예전에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인 <녹슨 장총>(한국 개봉 제목 <추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인터뷰글/ 지유진 관객에디터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들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다니엘 위예의 <화해불가>를 택했다. <화해불가>의 첫 상영 30분 전, 극장 로비에서 관객 김양미님을 만났다. 갑작스럽게 부탁한 게릴라 인터뷰에 ‘나보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낫다’며 주저했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서울아트시네마와 10년째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신 김양미님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2, 30대 때는 전공도, 직업도 영화랑 관련이 없었다. 40대 초반에 늦깎이로 영화에 입문해서 그때부터 재밌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하고, 영화 관련 책도 읽고, 문화센터에서 영화 관련 강의도 수강을 했다. 덕분에 영화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최근에는 예술영화전용관에서 극장 운영을 돕는 일도 했다. 그러다보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만 보던 예전과 달리 극장 운영 방식도 눈에 띄는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다보면 익숙해지는 얼굴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에 대해 점점 궁금해진다. 이 시간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왜 서울아트시네마에 이렇게 자주 오는 걸까, 이런 것들 말이다. 본인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 찾은 건 2003년에 주변 친구들 때문이었다. 같이 영화 강좌를 듣던 친구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허우 샤오시엔 영화를 보러 가자, 스페인 영화제 보러 가자, 계속 가자고 해서 모르고 따라왔다. 그런데 와서 영화를 보니까 이제까지 내가 보던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화들이었던 거다. 90년대 초중반 집에서 비디오로 빌려 보던 영화들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이렇게 신기하고 재밌는 영화가 있나 싶었다. 그 이후에도 예술영화전용관들을 많이 찾아다녔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왔던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도 있다. 서울에는 예술영화관이 많이 있는 편이다. 다른 영화관에서 영화 10편을 봤다고 하면 5편 정도는 재미있고, 나머지는 재미없고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영화들은 8~9편 정도가 재밌는 거다. 어떤 때는 굳이 무슨 영화를 봐야지, 이런 게 아니라 시간이 비어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들이 더 재밌는 경우들도 있다. 예를 들어 8시에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를 보러 왔는데 시간이 남아서 좀 일찍 온 김에 <공포의 변호사>를 봤던 적이 있다. 그러면 오히려 <공포의 변호사>가 더 재밌는 거다. 무슨 영화를 봐야겠다, 이런 스케줄을 정해놓고 따라갈 수도 있지만, 시간 날 때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정보 없이 봐도 재밌더라. 여기서 골라주는 영화들이 내 취향에 굉장히 잘 맞는 것 같다. 여기 오면 일단 후회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다른 영화관 갈 때는 검색을 많이 하고 가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냥 시간이 되면 간다.

2012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선택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 다니엘 위예의 <화해불가>다. 상영작 선정을 위한 투표에 참여 했는지 궁금하다.
투표에는 참여 못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게, 지난 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스트라우브, 위예의 <로트링겐!>을 재밌게 봤다. 그래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화해불가>도 재밌을 것 같았다. 또 관객들의 선택이다 보니까 왠지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편이다.

올해로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10주년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많이 늙었구나’ 이 생각밖에는 안 든다(웃음). 영화의 ‘영’자도 모를 때 서울아트시네마에 친구들 손잡고 와서 좋은 영화를 보고 감격에 겨워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주년이 됐다니까 내가 많이 늙었구나, 그 생각밖에 안 든다.

개막식 때도 그렇고 계속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만약 전용관이 세워진다면 어떤 모습의 전용관을 바라는지 묻고 싶다. 예를 들어 카페라든지, 세미나실이라든지, 공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카페나 세미나실 같은 공간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모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모임 같은 건 있었으면 좋겠다. 관객들끼리 모이는 동호회, 시네클럽,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게 있으면 관객들끼리 얘기를 하게 된다. 예전엔 영화 보고 나면 관객들끼리 옆에 있는 떡볶이 집에서 얘기도 하고 친구가 됐는데, 여기선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 같다. 그 점이 아쉽다. 나도 관객들끼리 섞이고 얘기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를 못 건다. 아는 척 하기가 어렵다. 영화가 끝나고 가는 길에 뒤풀이나 토론하는 모임이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 알게 되고, 얘기도 하고, 자주 오게 되고 그러지 않을까. 실제로 공간이 있어도 모임이 없으면 공간은 텅텅 비게 된다. 공간만 있는 게 아니라 모임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대해서 질문하겠다. 프로그램이 공개되었을 때, 이것만큼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뭔지 궁금하다. (질문을 받자 김양미 씨는 가방에서 리플렛을 꺼냈다. 리플렛에는 체크해놓은 영화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대답하기까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꼭 보고 싶은 영화 하나를 집기는 어렵고, 굳이 말하자면 특별 섹션 ‘유토피아로의 여행’의 8편이다. 그 8편의 영화들을 쭉 보고 나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을까. 책자에 나온 글도 읽어봤는데, 영화가 유토피아를 찾으면서 어떻게 유토피아로의 여행을 그리는가, 그 주제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고 싶다.

인터뷰∙글 | 송은경 관객 에디터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관객인터뷰] 시네마테크 찾은 예비 고3 조영지·이수진 양

예비 고3인 귀여운 두 숙녀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학원에서 만나 마음이 너무 잘 맞아 친구가 되었다는 두 친구는 봉준호 감독이 좋아 그의 추천작인 <붉은 살의>를 보러 와서 시네토크도 끝까지 듣고 새로운 체험을 했다고 말한다. 조영지(염광고) 양과 이수진(대진여고) 양. 이 중 영지 양은 현재 학교 방송반에서 PD로 활약하며 미래의 영화학도를 꿈꾸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친구가 다음날 생일이라 수진 양은 손수 만든 초콜릿을 선물로 준비해 놓기도 했다. 그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첫 경험은 어떠했을까? 로비에서 만난 예비 숙녀 두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알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나요?
영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있다는 소식을 아는 언니를 통해 전해 듣고 왔어요. <수쥬>도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 못 와서 아쉬웠는데, 제가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님이 추천한 영화 <붉을 살의>를 한다기에 보러왔어요.
수진: 친구가 만나자고 하더니 여기로 데리고 왔어요. (웃음)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 <붉은 살의>를 본 느낌은 어땠나요?
영지:
일반 극장에서 상업영화를 보는 것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수진: 저도 이렇게 오래된 영화를 극장에서 본 건 처음이에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영지: <붉은 살의>는 뭔가 야하려다 말고 잔인하려다 마는 것 같은데 그 사이 사이에 저를 당혹하게 하는 무엇가가 있었어요.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하겠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이나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고 좋았어요.
수진: 재밌었어요. 졸지도 않고 잘 봤어요.

봉준호 감독님은 원래 좋아했나요?
영지:
  네, 미성년자 관람 불가였지만 <마더>도 몰래 극장에 가서 봤어요. <괴물>도 보고,  어렸을 때 <살인의 추억>도 봤어요. ‘어쩜 저렇게 영화를 잘 만들까?‘ 매번 감탄하게 되요. 새로운 이야기나 생각하지 못한 점에 관해 얘기를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마더>를 보고 ’아! 모성에서도 잔인함이 느껴질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수진: 저는 딱히 팬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플란다스의 개>도 봤고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은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영지: 시네토크 때도 너무 말씀을 재밌게 잘하시고 영화를 볼 때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얘기해주시는 것이 신기했어요.

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수진:
스릴러가 좋아요. 친구들이 극장가자고 하면 스릴러를 보자고 해요.
영지: 저는 영화면 다 좋아요. 좀 너무 영화적이라서 얼토당토하진 않은 영화들 빼고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영지:
영화 보러온 사람들이 다 공부하러 온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영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를 본 것 같아요. 수진: 극장 같지 않았어요. 공기가 좀 탁하고 냄새도 좀 쾌쾌한 것이 이상했는데 색다른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서울아트시네마에 또 오고 싶은지?
영지: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면 또 오고 싶어요. 먼 거리는 상관없는데 고등학생이라 조금은 힘들 것 같지만요.

이제 고3이 되네요. 앞으로 1년 동안 공부 할 생각하니까 조금은 마음이 무거울 것 같기도 한데 대학에 가서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수진:
고3생활이 두려운 것도 있어요. 그렇지만 선배들 말 들어보니 별 것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서 덤덤한 자세로 임하려고요.
영지: 영화과 가서 연출도 배워보고 싶고 편집이나 촬영도 공부하고 싶어요. 영화과가 정말 가고 싶어서 조금은 보수적이신 제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정말 좋은 대학의 영화학과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셔서 열심히 공부해보려고 하는데 수학이 너무 어려워요. (웃음)
수진: 저는 외국어나 국제적인 일에 관심이 많아요. 국제 통상학과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정확히 무엇이 되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인터뷰·글Ⅰ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들어가는 말: 2010년 겨울, 시네마테크를 기억하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사태로부터 네 달, 계약종료에 따른 지원금 지급이 끊긴지 53일이 흘렀다. 주지하다시피 공모와 재 공모 강행에도 불구하고 응모 단체는 없었다.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집착한 결과, 영진위는 명분도 위신도 다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영진위는 분풀이라도 할 요량으로 심통을 부리고 있다. 즉 공모제 무산 이후 어떤 후속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도 중단한 것이다. 이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시네마테크 공모제 사태’를 겪으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보았고 희망을 발견했다. 그것은 관객이 시네마테크의 주인이라는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었다. 시네필의 힘으로 여론을 이끌어내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시킬 수 있으며 그릇된 행정에 일침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이 지난 4개월 동안 보여준 행동은, 적어도 이전의 행동양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점이다. 이를테면 공모제 사태 이전의 관객이 ‘시네필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이후에는 ‘시네필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혹은 ‘시네필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서 차이가 발견된다. 이 땅의 시네필이 1950년대 유럽의 그들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음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비약일까. 지금부터 지난 4개월여 동안 시네마테크 사태와 맞서온 시네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것은 지난 사건들에 대한 복기일 수 있고 환기일 수도 있으며, 다가올 또 다른 공세를 방어하는 무기가 될 수 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1. 시네필(cinephile)이란 무엇인가.

나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시네필이라는 호칭에 대해 회의를 품어왔다. 시네필이란 무엇일까? 의심할 바 없이, 영화애호가는 영화를 보는 데 그치지만, 시네필은 끊임없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포기하고 안전판 위에 정지시켜버린 논의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영화를 재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시네필이라는 단어가 이 땅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닌, 1950년대 유럽에서 발로한 영화운동의 지류로부터 탄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영화광들에게 시네필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게 적절한 일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시네필이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영화를 통해 소통과 연결과 변화까지 만들어내는 동력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이 땅의 영화광은 왠지 시네필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시네마테크 사태 초기, 정확히 말해서 2009년 2월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공모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리고 2010년, 같은 일의 반복이 예견되었을 때까지도 시네마테크의 관객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이 땅의 시네필에 대해 의문이 생긴 것도 이런 까닭이다. 대체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시네필은, 무슨 시네필? 시네마테크야 어찌되던 내가 볼 영화에 대한 걱정만 하는 게 시네필이란 말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을 때마다(황급히 달려와 영화를 보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그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을 품곤 했다. 분명 마주앉아 족보를 따져보면 알만 한 사람일 것 같은 그(들). 적지 않은 사람이 시네마테크를 거쳐 갔고 지금도 시네필이라 자칭하며 그곳을 서성이는 데, 왜 그들의 목소리는 시네마테크 사태에 보태지지 못하는 것일까. 항상 답답한 마음이었다. 혹시라도 필름으로 영화를 볼 수만 있다면 그곳이 특정한 장소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영진위의 공모가 발표된 2010년 1월 중순까지, 내 눈에 비친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의 모습은 딱 여기까지였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의심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것은 한국의 시네필은 시네마테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그 고색창연한 필모그래피를 켜켜이 쌓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유순하고 평온한ㅡ내일 당장 시네마테크가 없어진다고 해도 나는 오늘 영화를 보겠다는ㅡ태도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서울아트시네마 온라인카페에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 상영작과 기대작, 감독과의 대화 등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공세가 전부일 정도로, 시네마테크 사태에 관한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1950년대 유럽의 시네필은 어땠을까? ‘시네필의 초상’이라 불리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경우를 잠시 살펴본다. 



2. ‘시네필의 초상’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

프랑수아 트뤼포는, 한마디로 ‘살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병의 회복을 위해 영화를 찍었으며, 목숨을 걸고 영화를 사랑한 남자’라고 말하면 틀림없을 것이다(카트린느 드뉘브와의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두 영국여인과 대륙>을 찍었고 쉴 틈도 없이 <아메리카의 밤>을 촬영하면서 재클린 비셋과 염문에 빠진 후 이 영화로 고다르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트뤼포는 하루 3편의 영화와 일주일에 3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한다. 그는 열세 살에 샤샤 기트리의 <사기꾼의 이야기> 숏과 대사를 완전히 외워버리는데, 그보다 몇 년 앞서 시네클럽에 가입해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을 12번이나 관람한 열네 살의 트뤼포는, 훗날 자신이 공식적으로 게재한 최초의 영화비평의 소재를 이 영화에서 얻는다(열여덟 살에 발표된 트뤼포의 평론 데뷔작 역시 <게임의 규칙>에 관한 글로, ‘라탱 구역’ 시네클럽 회보에 쓰여 졌고 이를 주선한 사람은, 에릭 로메르였다. 당시 라탱 구역 시네클럽에는 클로드 샤브롤과 자크 리베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열여섯 살이던 1948년 10월 트뤼포는 ‘세르클 시네마’(영화중독자 서클)클럽을 개설하고는 영화상영회를 열기 시작하는데, 일요일 아침 1회를 4,000프랑에 대관하는 조건으로 ‘클뤼니 팔라스’극장과 계약한 후, 필름수급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협조를 받게 된다. 개막작으로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와 르네 클레르의 <막간> 장 콕토의 <시인의 피>가 정해졌으나, <시인의 피>는 끝내 상영하지 못했다. 트뤼포의 상영회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 그가 야심차게 기획한 프레드 니블로 감독의 1925년 작 <벤허>의 상영회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유인 즉 당일 같은 시간에 ‘노동과 문화’라는 영화클럽에서도 <벤허>를 상영하고 토론을 갖는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과 문화를 이끌던 인물은 다름 아닌! 앙드레 바쟁이었다. 그리고 트뤼포와 누벨바그의 시작을 세상에 알린 일대 사건, 즉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한 ‘경멸의 시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에 관한 소고’가 1년에 가까운 수정을 거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의 제목으로 최종 발표된 것은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었다. 이렇게 트뤼포는 1950년대 중반까지, 하루 1편의 영화를 보았고, 이틀에 한 편의 글 기고하는 평론가의 생활을 하게 된다. 영화를 제외한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각성제와 담배와 커피였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트뤼포를 비롯한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작가정책은 그들이 주장한 시네필로서의 행동양식과도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시네필’이라 불릴 만하려면, 첫째 자발적 애정을 품을 대상(감독 혹은 작품)을 스스로 결정한 후 지속적으로 지지해야 하고, 둘째 그 대상에서 비롯되는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좇으려는 욕구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 트뤼포가 평생에 걸쳐 지지했던 감독으로는 막스 오퓔스와 로베르토 로셀리니, 샤샤 기트리와 오손 웰즈를 꼽을 수 있다. 트뤼포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감독 샤샤 기트리의 촬영장을 방문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볼 때 1950년대 유럽의 시네필과 한국의 시네필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간격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트뤼포 시대의 영화광은 극장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세상과 맞섰고 자신을 세상에 내놓아 단련시키면서 운동을 이어갔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오가는 속칭 시네필이라 불리는 관객을 보면서 답답증이 가중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시네필은 그저 영화만 보면 그만인가?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3. 시네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제 와서 60년 전의 트뤼포와 오늘날 한국의 시네필에 대한 단순비교를 통해 그 명칭의 용법을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시네필이 무엇인가’에서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까지를 고민할 때, 시네마테크에 대한 무한 애정의 밀도 또한 높아질 것이란 생각이다. 요컨대 시네필은 단순히 영화를 남보다 많이 보고 많이 아는 수준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시네필은 영화를 통한 확대재생산에 참여하여 마침내 어떤 담론과 운동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쉽게 말해 자신만의 영화박물관을 짓는 것이 아닌, 영화로 발언하고 그 발언이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환경까지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부단히 움직이는 자들고 집단이다. 예컨대 고다르와 트뤼포, 혹은 로메르와 가렐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꿰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비평적 언어와 조우했고 당대 유럽사회와 영화사에 영향을 미쳤으며, 마침내 역사를 만들어왔는지를 영화계보학적으로 논쟁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그것은 영화를 보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글로 남기거나 토론과 학습을 통해 체득되어질 터이다. 그래서 시네필의 첫 째 화두는 ‘연결’과 ‘소통’이다. 남이 볼 새라 남이 먼저 알아챌 새라 고이접어 숨겨놓는 ‘밀봉’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대로 2010년 1월 중순까지의 시네마테크 관객은 ‘과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힌 영화애호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4. ‘시네마테크는 관객이 공모한다!’ 시네필의 행동의 성과와 의미

2010년 1월 말, 영화진흥위원회가 기어이 공모제를 강행하자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관객의 힘으로 시네마테크를 지켜내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1월 29일 밤 관객대표의 후원동참호소 발언을 시작으로, ‘시네마테크는 관객이 공모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후원금 모금 캠페인이 시작된다.

이러한 관객운동 혹은 시네필 행동이 갖는 의미는, 2009년 초 관객회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서명운동보다 진일보 한 것일 뿐 아니라, 단순 관람객이라는 수동적 위치에서 벗어나 관객과 시네필이 시네마테크의 주인임을 천명하는 능동적이면서 적극적인 공세였다는 데 있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집’이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는 것은 단지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위함이 아니듯이, 우리가 시네마테크를 찾는 것 또한 영화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제껏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이 단지, 고전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는 행위의 지속성에 의미를 두었다면, 2010년에 이르러는 ‘영화의 집, 공간으로써의 시네마테크’를 지키려는 노력이 병행된다.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시대임을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네필의 움직임은 외부의 관심과 시각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엄밀히 말해서 관객모금운동이 벌어지기 전까지 언론의 관심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과정에서의 의혹과 부당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간이었다고는 하나, 상영작과 감독과의 대화 등, 기획프로그램에 관한 호기심 곁들인 기사로 구색을 맞추는데 불과했다. 프레시안을 제외하고는 시네마테크 공모제의 부당성과 모순을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다루는 매체가 드물었으니, 이 땅의 언론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물론 이슈가 되기 힘들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소위 제목장사조차 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여겼을 터이다. 그런데, 관객모금 운동이 시작되면서 언론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시네마테크협의회 측이 아니라 최종수혜자인 관객이 일어섰다는 건, 언론 입장에서 볼 때 기삿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테니까. 쉬운 예로, 분유회사와 산모 사이의 분쟁 혹은 여성단체 사이의 분쟁은 식상하게 받아들여질 테지만, 만약 영아들이 분유 거부 운동을 벌인다면 언론은 앞 다투어 기사를 써댈 게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관객을 주축으로 한 모금운동이 벌어짐으로써, 즉 시네필이 능동적으로 움직임일 때 비로소 언론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라 하겠다. 이 점은 앞으로도 시네마테크에의 홍보와 이슈파이팅에 참고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시네필은 영화로 소통하고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이면서, 그러한 운동을 통해 영화의 역사(혹은 거시적 의미로 국가의 역사)와 함께 하는 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네필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시네마테크 사태는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훗날 2010년의 시네마테크를 기억할 때, 그 겨울의 한국사회와 정치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관객이 있었음을 회자하게 될 것인 즉, 시네필의 역할은 이처럼 중요하다.

맺는 말: 시네필의 역할과 기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53일 동안 공적지원을 받지 못했다. 두 달을 지원금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는 중이다. 관객의 힘으로, 시네필의 운동으로, 시네마테크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영화인과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말이다. 영진위는 상시 상영공간에 대한 지원금을 두 달 동안이나 묶어둠으로써, 영진위 사업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 길들이기를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참에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땅에 떨어진 자존심이 회복될 리 만무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서울아트시네마가 대견하고 고맙다. 심지어 성서 속 예수도 공생애에 들어가기 전 40일을 금식했고, 노아 시대의 대홍수도 40일간 비가 내렸으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금식한 기간도 40일이었다. 고난과 시련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발돋움을 위한 성서의 상징적 시간이 40일인데 비해, 서울아트시네마는 무려 50여일을 더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농담으로 듣지 마시라. 얼마나 당당하고 믿음직한 일인가. 공모제 수용에 따른 안정된 지원금수입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힘든 길을 자처한 시네마테크에, 우리가 아니면 누가 힘을 보탠다는 말인가. 여전히 시네필로서 당신이 할 일은 많다.

2010년 2월,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금운동에 앞장섰고 유독 극심했던 그 겨울의 추위와 세인의 무관심을 이겨내어, 시네마테크의 관객이 고전영화만 보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님을 알렸다. 그로인해 방송매체와 세상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상대는 변할 마음이 없고 우리도 타협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영진위가 공권력을 내세워 예산과 행정을 빌미삼아 시네마테크를 좌지우지 하려 한들 겁낼 것이 없다. 우리는 시네필의 힘을 보여주었고 관객들 스스로 그 힘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나무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나무를 해칠 수 없는 법” 이다. 관객이 흔들리지 않고 서울아트시네마에 무한신뢰를 보내는 한, 영진위의 공모제는 언제나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영화를 산업과 첨단기술의 범주 안에서 교환가치로써의 효용성에 집착하는 집단이 영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한, 언제나 위태로운 ‘사냥꾼의 밤’을 맞이하겠지만, 그것들을 극복하는 매순간마다 더해지는 견고함과 무언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일찍이 고대 아테네의 현명한 집정관 페리클레스는 “이처럼 세상의 모든 영광은 지나간다”고 말한 바 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다. 정권도 영진위도 시대의 패러다임도 이데올로기도, 그 어떤 것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반면 우리들의 시네마테크는 세월을 벗 삼고 시간을 친구삼아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그 기운을 간직한 공간이다. 시네마테크가 세상의 그 어떤 영광보다 오래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시네필의 힘이 합쳐진다면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시네필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요구되는 때이다. (백건영 영화평론가,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편집장)

* 이 글은 지난 4월 22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시네마테크 사태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연 포럼에서 시네필의 역할에 대해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이 발제한 원고의 전문을 실은 것입니다.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