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좌담

에디터로서의 역할과 관객으로서의 역할


영화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22일,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 에디터로 참여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이 자리에서 에디터들은 각자 리뷰를 쓰면서 가졌던 고민들, 녹취를 정리할 때의 어려움들, 관객 에디터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은 종종 교차하여, ‘에디터’가 아닌 ‘관객 에디터’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그 자리를 여기에 옮긴다.


 

프리뷰와 리뷰 사이에서

박민석: 에디터 활동을 리뷰부터 시작했으니 리뷰에서부터 얘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비평 글에 익숙해져 있어서 프리뷰에 가까운 글을 쓸 때 어려움이 있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을 상대로 설득하는 것이 영화를 본 관객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 다른 분들은 어떤가?

최혁규: 자막 팀에서도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막 작업을 맡은 영화의 리뷰를 맡았다. 관객의 흥미를 어떻게 이끄느냐는 고민보다는 같은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게 조금 더 곤혹스러웠다. 자막 작업을 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으로 볼 때는 사운드만 먼저 들렸는데 그것이 이미지와 합쳐질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송은경: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리뷰를 맡았는데 이 영화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놓인 영화인 것 같다. 안 본 사람도 많겠지만 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들이라면 상당수가 이 영화를 이전에 접했을 것이다. 그래서 프리뷰와 리뷰 사이에 어디에 중점을 맞추고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김경민: 러프하게 말해서 글쓰기가 자기주장이라고 치면 프리뷰는 그것과 정보전달이 함께 가야되는 건데 그것이 좀 어려웠다. 내 글을 읽었던 다른 에디터 분들도 정보전달이 좀 빠져있는걸 지적했고 그런 걸 넣으면 서술형이 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배동미: 리뷰보다는 특집기사를 쓸 때 더 어려움을 겪었다. 댄스영화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페임>과 <플래시댄스>의 특집기사를 맡았다. 영화 상영 전까지 기한도 지켜야 되고 정신 없이 썼는데, 그래서 맘에 들지 않은 부분도 많다. 스스로 만족을 하지 못했던 글이다.

장지혜: <이터널 선샤인>의 리뷰를 맡아서 쓸 때는 고민을 많이 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영화라서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그게 좀 더 어려웠다. 반면에 스콜세지에 대한 특집기사를 쓸 때는 영화의 한 부분에 집중해서 쓰려고 하니까 오히려 글이 더 쓰기 편하더라.


시네토크

박민석: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건 경우에 따라 녹취하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정리하는 본인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영화제 시네토크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면?

장지혜: <남부군>의 시네토크에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90년대에 나온 영화였는데 당시의 얘기와 지금의 상황이 겹쳐지고 만나는 부분들이 있더라. 그래서 이걸 정리를 하면서 관객들이 별로 없었으니까 녹취 글도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경민: 이번에 에디터 업무와 별개로 시네토크 소개영상 편집일도 맡았는데, 그 영상에는 친구들이 왜 이 영화를 골랐는지에 대한 게 꼭 들어가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옛날에 봤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서 추천을 했다고 한다. 스크린으로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아직 답은 잘 모르는데, 계속 그에 대해서 생각해봤던 것 같다.

배동미: 김경주 시인의 시네토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들을 때는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는데 정리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시네토크 중간 중간에 시적인 표현들을 많이 쓰셔서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정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송은경: 저의 경우는 오승욱 감독의 녹취가 그랬다. 정리하기는 제일 힘들었지만 시네토크는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다. 관객석에서 작년과 달리 유쾌하게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서 재밌었다.

최혁규: 평론가들의 시네토크의 정리를 맡았다. 팀장님이 다 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제가 좀 욕심을 부렸다.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것도 영화 공부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게 달라붙어서 했다. 유운성 평론가와 이용철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재미있었다. 영화비평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가 강하신 분들이라 특히 그랬다.


영화제 돌아보기

박민석: 이번 영화제 상영된 영화들은 어땠는가?

송은경: <황야의 7인>이 인상 깊었다. 친구들 영화제 전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특별전을 하지 않았나. 레오네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이 그대로 나오니까 너무 좋았고 집에 가서 서부극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리뷰 쓰면서 이미 여러 번 봤지만 다시 확인하려고 <마르케타 라자로바>를 스크린으로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했다.

배동미: 영화보다는 감독들이 더 인상 깊었는데 그들에게서 정 같은 것을 느꼈다. 감독들이 처한 상황이 있지 않나. 김곡 감독 같은 경우는 <자가당착>이 개봉하지 못하고 있고 이명세 감독은 촬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는데, 그런 걸 서로 걱정해주더라. 서로 다른 영화로 만났으면서 또 그 감독의 영화 작업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그런 게 친구들 영화제의 매력 같았다.

김경민: <좋은 친구들>이 제일 인상 깊었는데 볼 때 정말 신나게 봤고 보고 나서도 너무 좋더라. 원래 갱영화나 서부영화에 편견 같은 게 있었다. 너무 마초적일 것 같고 시끄러울 것 같고. 영화를 이어폰으로 보니까 시끄러운 영화는 기피하게 되더라.(웃음) 혼자 볼 때는 우디 앨런이나 로메르 영화 같은 조용한 영화만 봤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남성성이 가득한 영화들에도 애정이 생긴 것 같다.

장지혜: 상영작들 보면 개별적으로 선택된 작품이지 않나. 공교롭게도 그 안에서 묶이는 게 있더라. <페임>이나 <플래시댄스>. <내일을 위한 길>과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묵배미의 사랑>과 <남부군>. 이런 식으로 상영작들 내에서 제 나름대로 엮일 수 있는 영화들을 찾는 것도 흥미로웠다.


인터뷰

박민석: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관객들은 여기에 어떻게 왔을지,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들을 모아줄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관객인터뷰가 이를 약간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분들은 생각이 어떠한지?

최혁규: 예전에는 에디터가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의 구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어서 안으로 뭉치면서 밖으로 퍼질 수 있는 게 있었다. 앞으로는 그런 구심점 같은 걸 에디터가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트위터를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실현되지는 않았다. 서로 수동적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다.

박민석: 관객 인터뷰 외에 아트시네마의 직원 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배동미: 직원 인터뷰는 두 분 했는데 두 분 다 영화를 많이 좋아하시고 극장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극장을 누구보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관객 에디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극장에 오랫동안 머물고 계신 분들의 말씀이 굉장히 감동적이다. 극장에 대한 사랑이나 영화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송은경: 인터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몰랐다. 김보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랑 인터뷰를 했는데 굉장히 대화가 안 이어져서 민망한 상황이 많았다.(웃음) 관객 인터뷰를 하나 실패하기도 해서 인터뷰를 어떻게 하는게 좋은 건지 방법론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다. 그리고 직원 인터뷰를 계획했던 것만큼 못했는데 영사팀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다. 필름으로 상영하는 곳은 이제 시네마테크밖에 없으니까.


관객/에디터

박민석: 이번에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면서 하고 싶었지만 못한 일도 있을 테고 아쉬웠던 점도 있을 것이다.

최혁규: 기본적으로 참여를 제대로 못해서 죄송하다. 이런 작업이 지속적으로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의무감을 가지고 할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하고 싶다고 느꼈을 때는 이런 활동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바라는 점은 친구들 영화제가 끝나더라도 관객 에디터라는 형식을 끝까지 갖고 갔으면 하는 것이다.

박민석: 우리가 그냥 에디터가 아닌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는 만큼 관객 문화에 무언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다가갈 수 있는 몇몇 기획들이 회의에서만 이야기하고 실행되지 못했는데 나 스스로 조금만 더 열심히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동미: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는 게 굉장히 좋은 기회인데 자꾸 까먹고 게을리한 부분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극장 측에서는 많은 기회를 준건데 온전히 실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김경민: 관객 에디터로서라기보다 관객으로서의 바람이 있다. 얼마 전에 상영 몇 분 전에 정전이 났던 적이 있다. 이게 만약에 상영 중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점이 극장을 자주 가다보니까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하루빨리 안정적인 환경의 극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참석 에디터: 김경민, 박민석, 배동미, 송은경, 장지혜, 최혁규

진행/정리: 박민석 에디터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시네토크

치밀한 기록이 더 큰 생명력을 가진다

- 김동원 감독이 말하는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 전투 3부작'


올해로 8회째인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주인공은 김동원 감독이다. 영화제 마지막날이었던 24일은 그가 선택한 <칠레 전투> 3부작이, 약 4시간 반 동안 상영되었다. 마지막 3부 상영 후 이 작품을 선택한 김동원 감독과의 시네토크에서는 비껴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들과 다큐멘터리가 가진 기록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동원 감독은 영화 속에 나왔던 빅토르 하라의 노래 ‘우리 승리하리라’를 찾아 관객들과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영화제 대미를 장식한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공교롭게도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첫 날의 하루 전에 의도치 않게 이 영화를 틀게 되었다. 우연처럼 상영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하셨고, 어떻게 이 영화를 어떻게 접하게 되셨고, 다시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김동원(영화감독):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처음 들은 건 86, 7년 쯤인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이 쓴 책에 남미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는데, 그 때는 볼 방법이 없었고, 90년대 지나서 책에 있던 영화들을 구해볼 수 있었다. 그 때 시네마 누보 운동과 맞물려 쓰이는 용어인 ‘제 3영화’들이 현실과 치열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라고 소개 되었는데, 사실 조악한 비디오 화질이라 그런지 (영화에 대해) 실망한 경우가 많았다. 98년도에 인권영화제를 통해 <칠레 전투>를 보았는데, 4시간 반이라는 것을 알고 겁을 먹었으나 한 번 보기 시작하니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보게 되었다. 그 다음에도 몇 번씩 보면서 새로운 디테일들이 새록새록 다가오면서 매번 나에게 큰 영화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있었던 현장들, 상계동부터 최근에 용산이나 강정 같은 곳의 주민들 얼굴이 떠올랐고 투쟁 과정들이 영화와 오버랩 되는 걸 많이 느꼈다.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이 끝까지 가졌던 희망의 크기가 지금 나에게 어느 정도의 크기로 남아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성욱: 새롭게 다가오는 디테일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이 다큐를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면.

김동원: 이 영화를 보고 영화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 얼만큼 의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는 72년부터 73년까지 1년여 동안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포함해 제 3부작이 완성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감독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1부, 2부는 주로 부르주아들의 반혁명, 즉 그들이 어떤 논리로 아이옌데를 공격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는가에 대한 논리와 과정들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반면, 노동자들과 민중의 시각에서 아이옌데 집권 하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실험들과 민중이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노동자들과 민중의 역량을 따로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1부, 2부에서는 아무런 음악이 깔리지 않는다. 구즈만 감독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1, 2부를 묘사하고 있다면 3부에서는 애잔하게 편곡된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준다. 이는 구즈만 감독의 주관적인 정서일 수 있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1부, 2부에서는 감독이 중립적이지는 않되 최대한 객관적이려 하는 태도였다고 한다면, 3부에서는 자기 속내를 마음껏 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이 자기 자신을 억누르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맨 마지막에 자기의 표현을 하긴 했지만, 그 표현마저 절제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구즈만 감독이 이 영화를 끝내고 당연히 망명을 해야만 했다. 쿠바에서 편집을 하고 세계 곳곳을 유랑하다가 95년 즈음 20년 만에 (칠레에) 돌아왔다고 한다. <칠레 전투>를 90년 초 무렵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 장면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 나오는 사람들을 몰아넣고 학살했던 국립 경기장 같은 장소들, 영화를 찍다 죽은 카메라맨인 호로세 뮬러의 가족들도 만나는 것을 엮어서 <칠레, 끈질긴 기억>을 만들었다. 그 영화도 인권 영화제에서 봤는데, 구즈만 감독은 첫 영화인 이 영화에서부터 최근의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까지도 아이옌데 시절과 혁명기의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가들은 한 가지 주제에 평생을 매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도 다른 주제의 영화들은 없는 것 같다. <칠레, 끈질긴 기억>에서 보면 젊은이들이 20년 전에 조국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이 영화를 보여주는데, 여기저기서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흐느끼기도 한다. 구즈만 감독은 역사에 대한 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평생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김성욱: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8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기록 되었던 부분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옌데 정권 시절에 구즈만 감독도 극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가, 지금은 극영화를 찍을 때가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다른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현장성 있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록이 가진 힘이 다른 다큐멘터리보다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건 이후에 ‘재구성’해나가는 게 아니라, 현장의 중심에서 기록을 해나갔다는 것 자체가 크게 와 닿았다.

김동원: 다큐멘터리는 기록을 하는 영화지만, 최근에는 기록보다는 감독의 주관성을 표현하는 데 더 많이 쓰이기도 한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대상을 제작 주체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태도인 것 같다. 그만큼 대상을 존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구즈만 감독이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지만,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절제하는 태도를 보인다. 누가 기록하느냐 보다 ‘기록됨’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일 것이다. 영상시대에는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지 않으면 글로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하더라도 묻혀진 역사가 되고 말지 않나. 요새는 ‘찍(히)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시각적으로 확인할만한 기록, 대중들이 다가갈 만한 통로가 없으면 수많은 역사들이 묻히고 만다. 칠레의 9‧11에 관한 영화들은 이 영화 말고도 많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의 무게감을 가진 기록물은 없는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옌데 집권 3년 동안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건이 어떤 변증법적인 충돌을 가지면서 전개되었는지 이 영화만큼 꼼꼼하게 찍은 기록물이 없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솔라나스 감독의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가 당시에는 더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솔라나스 감독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스타일의 힘은 강하지만 기록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 와서 평가를 하자면 솔라나스가 실험했던 화려한 수사, 강렬한 톤은 구즈만의 냉정한 톤이 가진 영화적 힘에 못 미친다고 본다. 결국 치밀한 기록이 훨씬 더 큰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리: 지유진(관객에디터) 사진: 김윤슬(자원활동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시네토크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 윤성호 감독이 말하는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지난 2월 3일,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 상영 후 이 영화를 선택한 윤성호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케이블TV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본 뒤 갑작스레 선택작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힌 윤성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세세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그 현장을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우묵배미의 사랑>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여러 번 본 건 아니다. 총 세 번 봤는데 한 번은 96년 대학생 시절 공강시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또 한 번은 케이블 방송에서, 마지막은 오늘 극장에서 본 거다.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이 영화는 90년에 나온 영화인데, 90년이라는 해는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새로운 감독들이 드러나서 신호탄을 강하게 쏘아 올리던 해인 것 같다. 80년대하고는 약간 다르다.
윤성호: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감상이 달랐다. 오히려 80년대 영화 같았다. 장선우 감독님은 90년대부터 화제에 오른 감독인데, 이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좋아하실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만드시는 동안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을 텐데 감독의 자의식이나 선택이 얼마나 반영됐을지 궁금해졌다. 이 영화의 원작 「우묵배미의 사랑」은 박영환 작가의 『왕룽일가』라는 6편의 연작소설 중 하나의 중편소설이다. 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근대와 현대가 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원작 소설이 80년대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먼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게 브랜드가 있다 보니까 배일도의 친구 역할로 최주봉 씨가 쿠웨이트 박으로 나오는데, TV에서 히트한 캐릭터를 하나 넣어달라고 부탁받은 느낌이 약간 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화해도 이상하게 비중이 많이 할애되어 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과연 장선우 감독의 모든 선택이 반영이 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든 걸 장악했다기보단 제작자나 투자자의 요구와 적절하게 수렴을 하면서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김숙현: 장선우 감독이 그 이전 세대 감독들의 자장 아래 있으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찾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들, <너에게 나를 보낸다>, <경마장 가는 길>은 이 영화와 굉장히 다르다. 오늘 보면서 여자 캐릭터들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일도의 아내로 나오는 새댁 역 유혜리 씨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비중있게 나오지 않아도 될 텐데 12살 때 과거도 나오고, 시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도 길고 섬세하다. 90년대는 민주화 이후 이런저런 창작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인재들이 영화로 모여들고 대학가에서는 페미니즘도 폭발하는 시기였다. 남녀묘사는 80년대 여성을 그리던 식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다르다.
윤성호: 그땐 저도 여성학 수업을 많이 듣던 시절이었고, 영화가 웃기고 묘하긴 했는데 불편했다. 배일도가 미싱 공장에 첫 출근하던 날, 사장이 민공례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던지고 배일도도 덩달아 더한 농담을 던진다. 그런데 민공례는 좋아 죽으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줌마들이 굉장히 걸쭉하게 리액션을 던진다. 이게 너무 낯설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까 오히려 저게 더 현대적인 것 같다. 왜냐면 가난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제한받은 여자가 자기 스토리를 만들어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구질구질하더라도 자신을 세팅한다는 게 이제야 오는 것 같다. 작년 한해 한국영화들은 나름 흥해도 되고 특별히 흠 잡을 게 없는 것 같아 부러웠다. 그러고 있다가 케이블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이런 영화 한 편을 대중영화로 만들 수 없구나, 하면서 뭔가 각성이 되고 기운을 수여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저때도 나름의 영세한 자본이나 마케팅 홍보가 작용을 했고 저때의 감독님들도 외롭게 자기 것을 지켰겠구나, 해서 지금 한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김숙현: 영화 보는데 박중훈 씨가 밥 먹는 씬이 인상 깊었다.
윤성호: 밥 먹는 장면에 테이크를 다섯 번만 갔다고 생각해보면 장선우 감독님이 박중훈 씨 괴롭히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웃음). 제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배일도와 민공혜가 기차에서 가위바위보 하면서 술 마시는 장면이다. 묘하게 귀여우면서 어설프다. 그런데 그 장면은 사실 원작에서 쉽게 지나간다. 배창호 감독님, 장선우 감독님, 이명세 감독님 이렇게 세 분을 보면, 각각 비슷한 영화인 것 같으면서도 스타일의 차이가 느껴진다. 배창호 감독님의 <꼬방동네 사람들>이 훨씬 위험한 설정이 많은데 절대 망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명세 감독님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예쁜 문방구를 만드시는 것 같고, 장선우 감독님은 망측한 걸 보여주길 좋아하시는 것 같다. 민공례와 배일도가 비닐하우스에서 밀회하는 장면도, 거기서 굳이 민공례의 팬티를 보여주시고 호떡이 팬티까지 젖어있다고 하면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사람의 어떤 부분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관객1: 감독이 영화 속 인물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것 같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장선우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게 보이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솔직히 말해서 비주류에 대한 따뜻한 감성은 한국영화가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장선우 감독만의 시선은 아닌 것 같고, 시선이나 설정 말고 캐릭터의 터치를 봐야 하는 것 같은데 장선우 감독님은 즐거워하시는 것 같다. ‘저 사람들 저렇게 굴러가는 거지, 재밌지 않냐?’ 하시면서 자기가 그린 인물들을 귀여워하시는 것 같다.

 

관객2: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한 지금 이 시기에도 이 영화 같은 걸 못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윤성호: 못 만든다는 게 아니라 대중 상업영화로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얘기다. 옆에 있을 것 같은 궁상맞은 캐릭터를 다루고 해결되지 않는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은 기획 단계에서 폐기될 것 같다. 일단 제목부터가 ‘우묵배미의 사랑’이 안 될 것 같다(웃음). 이건 한국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데이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잘 모르고 배팅했던 것들은 시행착오 같지만 그게 쌓여서 스펙트럼을 낳았다. 이젠 투자자들이 연출자들의 ‘썰’에 속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산업 문제는 문제고, 괜히 엄살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이 영화도 찍으면서 고민이 많았을 테고, 촬영조건도 훨씬 열악했을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자본과의 줄다리기는 당연히 있었겠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그런 고민을 한다.

 

관객3: 영화 속 민공례라는 캐릭터는 순수한 것 같다가도 결국엔 엄청난 선택을 한다. 공례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이 영화를 고른 가장 큰 이유가 민공례 캐릭터 때문이다.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그리고 순수하다고만 요약할 수 없는 ‘밀당’의 고수다(웃음). 자기를 발현할 만한 도구가 너무 없어서 아무것도 못 잡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기 스토리 하나 만들어 보려고, 나도 뭐 하나 잡아보려고, 내 인생에서 선택 하나 있어본 척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정리: 송은경(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시네토크

“집시들은 음악으로 숨을 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 가수 하림이 말하는 토니 갓리프의 '라쵸 드롬' 

 

지난 2월 2일, 영화 <라쵸 드롬>의 상영이 끝나고 ‘누에보 플라멩코 컴퍼니’의 열정적인 플라멩코 특별 공연이 있었다. 스크린 안에서 울려 퍼지던 집시 음악을 현실로 옮겨온 무대는 관객들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들었다. 뒤이어 가수 하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하림은 관객들을 시종일관 웃게 만들다가, 마지막에는 ‘연어의 노래’를 부르며 감동을 선사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참석하시게 된 소감은.
하림(가수): 원래 처음 친구들 영화제 있을 때부터 ‘친구들’로 있었다. 나로 하여금 영화를 고르게 해주신 건 대단한 영광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필름으로 가져다 보여주셔서 정말 행복했다. 필름으로는 처음 본다.

 

허남웅: <라쵸 드롬>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림: 학교에서 강의할 때 교재로 쓰고 있다. (웃음) 여러분들께 나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리고 싶기도 했다. 왜 앨범을 안내고 저렇게 10년 넘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10년 넘도록 여행을 하면서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는 것이니까 내 이야기인 것 같아서 골랐다.

 

허남웅: <라쵸 드롬>은 ‘좋은 길’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는 집시들이 이동하는 곳의 음악을 흡수하여 들려주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림 씨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고, 그 곳의 음악을 배우고 악기를 익히면서 자신의 음악을 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와 그 곳에서 배운 악기 또는 음악이 무엇인지.
하림: 최근에는 아프리카 쪽을 많이 갔다. 거기엔 악기가 워낙 없으니까 음악을 딱히 배우지는 않았다. 최근에 음악 쪽으로 많이 느낀 곳은 아랍문화권이다. 이집트 쪽 음악들에 흥미가 있다. 서양 음악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이집트 쪽의 음계나 리듬이 우리 핏속에 있는 ‘그것’을 건드려준다. 영화 중간에 할머니가 담배를 물고 왔다 갔다 하시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왜냐하면 우리는 노래 중간에 박수를 치는 박자에서 약간 촌스럽다고 말하는 포인트가 있다. (직접 노래하며 설명) 그게 촌스러운 게 아니라, 동양 문화권에서는 강세가 앞에 있어서 그렇다. 본능적으로 앞부분에 치는 거다. 그런 것들을 볼 때, 아랍권이 서양과 동양이 나뉘는 경계선 같은 곳인데, 나는 그 곳의 음악을 들으면서 많이 느꼈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나이 드신 분이 춤을 추고 나서, 아기를 받아 젖을 먹이는 장면을 재미있게 보았다. 음악이 특별한 게 아니라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림 씨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을 소개해 달라.
하림: 프랑스에서 길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처음에 말을 씻기고 재주넘기 하다가 쫓겨나지 않나. 중간에 친구가 벤츠를 몰고 찾아온다. 정착 집시가 있고 유랑 집시가 있다. 부자인 정착 집시가 기타 연주를 하며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철조망에 매여 있는 꽃을 보고 따라간다. 꽃으로 길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남웅: 음악이 생활 속의 낭만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하림: 집시들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하면서 위로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잘하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삶이 음악이 되는 것이고.

 

허남웅: 플라멩코가 집시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것인가.
하림: 집시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다. 유럽에 여러 민족들의 본연의 음악이 있다. 그 중에 집시의 영향을 받은 유럽음악들이 곳곳에 있다. 그 중에 하나이다. 스페인에도 여러 종류의 음악들이 있는데, 그 중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들이 음악을 굉장히 잘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음악이기도 하지만 뿌리는 집시족에서 흘러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남웅: 최근에 아랍 쪽을 여행하셨다고 했는데, 아랍 쪽에도 유목민들이 많지 않나. 유럽 집시들의 음악에 특징이 있는가.
하림: 집시 음악은 북인도 라자스탄, 즉 동양에서 출발했다. 그 쪽의 동양음악들을 보면, 아까 플라멩코도 그렇고, 음절이 딱딱 끊어지는 게 아니라 한 음절에서 여러 음이 나온다. (직접 ‘산토끼송’으로 시범) 이것을 전문용어로 멜리스마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악에도 이러한 전통이 있지만, 서양음악에는 멜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강세가 앞박자에 있다. 또 도레미로 음계가 구분이 안 간다. 피아노로 표현할 수 없는 음계들이 특징이다. (정리하자면) 꺾는 창법, 앞에 있는 악센트, 음계가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아니다. 박자도 세다 보면, 따라갈 수가 없다. 본능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이것이 집시음악을 비롯한 동양 음악의 특징이다. 토니 갓리프의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루마니아에서도 서양악기들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복잡한 음악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관객1: 영화 중반에 기도상 같은 것이 나오는데, 무슨 행사인지.
하림: 검은 얼굴의 성모마리아 주간이라고 해서, 프랑스에 있는 카톨릭 명절이다. 종교들이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그 장면에 나오는 사람들은 프랑스에 있는 집시들이었다. 그들이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연주를 하고 지하 동굴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할 뿐이다.

 

관객2: 영화를 보면 항상 남자들은 악기를 치고, 여자들은 춤을 춘다. 그것이 집시들의 룰인지. 여자들은 즉흥적으로 춤을 춘 것인지. 또 집시들은 항상 흥에 겨워서 숨을 쉬는 것처럼 음악을 하는지.
하림: 남자들이 춤을 추는 것보단 여자들이 춤을 추는 것이 더 멋있다. (웃음) 물론 남자들도 영화 속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음악으로써 숨을 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허남웅: 마지막 장면에서 벽으로 막힌 창문 앞에서 여성이 플라멩코 노래를 하는데, 음악에 담겨있는 가사 자체가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들어달라고 호소를 하는 것 같다.
하림: 영화의 결말에서는 집시들의 슬픈 혹은 피곤한 점을 부각시키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프랑코부터 히틀러까지 우리는 피해자였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감독이 오랜 시간 동안 집시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일들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중간에 아우슈비츠의 상황도 나오는데, 그 때 유대인들을 비롯한 슬라브족들, 거기에 집시들이 많이 끼어 있었다. (집시들이)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학살을 많이 당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관객3: 집시라는 말이 유럽에서 안 좋게 쓰인다는데. 정확히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무엇이 있나. 또 집시와 집시 음악에 대한 영화를 추천해주신다면.
하림: 집시라는 말은 ‘이집트 사람’이라는 말이다. 집시들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온 순례자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집시들이 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은 ‘롬’(집시 말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헤미안이라는 말은 동유럽의 지방을 가리킨다. 또 영화 추천은 토니 갓리프가 집시 출신인 자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영화들이 있다. (집시 3부작 등) 동유럽 집시에 대한 영화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들도 집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 영화들을 보면 집시들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지유진(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상영작 리뷰

숨길 수 없는 낙관성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

 

<플래시댄스>는 “제니퍼 빌즈의, 제니퍼 빌즈에 의한, 제니퍼 빌즈를 위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릴 만한 새로운 얼굴로 발탁된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되어 이후 배우 경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플래시댄스>를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80년대와 9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은 돈 심슨과 제리 브룩하이머 콤비의 첫 작품이기도 한 <플래시댄스>는 매우 단순하고 심지어 노골적인 영화다. 영화는 수시로 춤을 추는 제니퍼 빌즈의 육체를 훑으며 그녀의 풍성하고도 탄탄한 엉덩이와 허벅지를 클로즈업한다. 제니퍼 빌즈가 맡은 알렉스는 성당 신부에게 “요즘 부쩍 섹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라며 고해를 하는 순진한 아가씨이면서 동시에 식당에서 남자친구인 닉을 육체적으로 유혹하는 대담함을 보이는 캐릭터로 설정된다.
제니퍼 빌즈의 매력은 ‘남자들을 위한 노골적인 유혹의 영화’에 반감을 품는 여성관객들마저도 반하게 만들 정도다. 이 영화에서 그녀의 인상적인 장면들은 이후 숱한 영화에서 패러디 및 오마주의 대상이 되었다. 난니 모레티 감독 역시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제니퍼 빌즈에세 찬사를 바치기도 한다. 또한 <풀 몬티>에서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스트립쇼를 연습하기 전 참고삼아 보는 영화 역시 <플래시댄스>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는 존 트라볼타와 <토요일 밤의 열기>로부터 시작된 디스코 열풍을 이어가면서도 한편으로 뉴욕 브룩클린에서 유행하던 브레이크 댄스를 전세계에 전파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알렉스가 친구인 지니와 함께 거리에서 만난 ‘스트리트 댄서’는 브레이크 댄스씬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크레이즈 레그스. 그는 알렉스의 오디션 장면에서 일부 브레이크 댄싱의 대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들어진 지 딱 30년 만에 다시 보는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80년대 미국을 지배한 주요 슬로건이었던 ‘낙관성’이다. 꿈과 실력과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번도 정식 댄스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알렉스는 정식 발레학교로의 진학과 부유한 남자친구와의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공의 주역이 된다. 엉덩방아를 두 번이나 찧고 실격한 지니가 부모에게 “엉덩방아 찧는 것도 잘하더라”라며 위로를 받는 장면이나, 알렉스가 오디션 장에서 실수를 하지만 “다시 해도 될까요?”라며 즉시 재도전을 해 결국 합격통지서를 받아드는 엔딩 장면에서 이러한 낙관성은 극대화된다. 6, 70년대 꽃을 피웠던 로큰롤과 아메리칸 뉴 시네마, 그리고 ‘새로운 헐리우드’의 시대가 종말을 맞았던, 그리고 노조의 파업에 ‘대량해고’로 맞섰던 레이건 재임기의 보수적인 미국을 ‘좋았던 시절’로 느끼게 만드는 장면들인 것이다. 불과 30년의 간극에 이 영화가 더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