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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5 베니스 인 서울

[2015 베니스 인 서울] 아슬아슬한 줄타기 - 알베르토 카빌리아의 <풀밭 위의 양>

[2015 베니스 인 서울]



아슬아슬한 줄타기

- 알베르토 카빌리아의 <풀밭 위의 양>



<풀밭 위의 양>(알베르토 카빌리아)의 복잡한 내용을 억지로나마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린 레오나르도는 같은 반 친구였던 유대인 아이와의 만남 이후 열혈 반유대주의자로 성장한다. 그는 예수의 죽음을 비롯해 모든 사회 문제의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고 믿기 시작하고, 결국 유대인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레오나르도는 진지하다. 그는 성경까지 고쳐버리고(유대인-프리 버전), 유대인이 연관된 은행(즉 거의 모든 은행)과 거래를 끊는다. 여기에 그쳤다면 레오나르도는 단순한 괴짜로 남았겠지만 그는 천재적인 수완과 타고난 운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유대인을 괴롭히는 내용의 만화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거나 유대인이 먹을 수 없는 돼지고기 요리를 개발해 사업적 성공을 거두고, 유대인 비방 전용 키보드를 만들거나 이스라엘 국기를 간단히 태울 수 있는 ‘묶음 상품’을 기획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고, 이에 충격을 받은 레오나르도는 결국 모습을 감추고 만다.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유대인, 팔레스타인인, 네오 나치, 이주노동자 등등-은 광장에 모여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찾는다.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영화의 내용이 실제로 이렇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신선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은 형식이지만 감독은 그냥 시치미를 떼고 이 형식을 계속 밀어 붙인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은 사라지고 감독의 장난기와 풍자 정신만이 남는다. 진지하게 따지고 들면 내적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장면이 부지기수지만 이는 큰 흠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풀밭 위의 양>은 논리적 인과 관계보다 거짓말을 태연하게 늘어놓는 감독의 태도 자체가 더 중요한 작품이다.

그때 이 영화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한다. 하나는 현재까지도 은밀하게 퍼져 있유대주의를 조롱하는 것이다. 감독은 레오나르도의 행보를 통해 유대인의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를테면 어린 레오나르도가 유대인의 전통 음악을 들으며 (문자 그대로) 거품을 무는 장면 등은 효과적으로 반유대주의의 부조리함을 고발한다. 인종주의에 대해 굳이 정색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현재 이스라엘의 외교-군사적 행보를 넌지시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간접적이지만 동시에 직접적이다. 감독은 별도의 설명 없이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레바논, 아랍 문화권과 분쟁을 일으키는 장면을 그냥 보여준다. 즉 인종주의와는 별개로 현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처한 갈등을 미화하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출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과 맞물려 더욱 날카로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사실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현재 이스라엘의 외교적 행보를 비판하는 건 매우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감독 역시 이를 “금기”이자 “예민한 주제”라고 밝힌다). 그러나 알베르토 카빌리아는 그 외줄 아래에 ‘농담’이라는 안전막을 펼친다. 혹시 균형을 잃더라도 이 모든 건 그냥 짓궂은 농담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태우기 위해 광장을 채운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결국 실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연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비록 그 많은 심각한 사안들을 끌어들인 뒤 마지막까지 싱거운 농담으로 귀결시키는 가벼운 태도는 약간의 피로감을 남기지만, 감독은 그렇게 해서라도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 아슬아슬한 수다를 떨고 싶었던 것 같다. <풀밭 위의 양>이 가진 미덕 중 가장 돋보이는 것 역시 감독의 이러한 과감한 시도 그 자체이다.


김보년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