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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5 베니스 인 서울

[2015 베니스 인 서울] 삶이 나아질 거란 희망을 버려 - 클라우디오 칼리가리의 <그렇게 살지 마라>

[2015 베니스 인 서울]



삶이 나아질 거란 희망을 버려

- 클라우디오 칼리가리의 <그렇게 살지 마라>




“나쁜 짓을 하지 마라 Don’t Be Bad”, 물론 당연히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말이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클라우디오 칼리가리(1948-2015) 감독의 유작인 <그렇게 살지 마라>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묻는 영화다. 1995년,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 비토리오와 세자레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다. 둘은 현재 마땅한 직업 없이 주로 마약과 관련된 범죄로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비토리오는 에이즈에 걸린 어린 조카 때문에 큰 금액의 병원비를 계속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비토리오는 더 큰 범죄에 손을 대며 ‘한 방’을 노리고, 반면 세자레는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함께 다른 삶을 꿈꾼다.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 정도가 지나면 위와 같은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대략 파악이 된다.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친구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또 다른 친구. 이들의 선택은 처음에는 작은 차이를 만들 뿐이지만 결국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의 솜씨는 그렇게 특별한 편이 아니다. 감독이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아카토네>와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에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두 영화의 생생한 에너지나 집요한 디테일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떤 장면은 너무 감상적으로 흘러가 민망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약속한 듯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심드렁해질 즈음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과거와 비교해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세자레의 진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현재 세자레는 공사장의 인부로 일하는 중이다. 일은 힘들고 돈은 전보다 적게 벌지만 그는 현실에 비교적 만족해한다. 그러나 어느 날, 세자레의 애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는 옛 동료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착하게만 보였던 어린 아들이 돈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토록 힘들게 어둠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세자레의 가족들은 다른 행복의 기준을 갖고 있었고, 현실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세자레의 주위 환경은 이미 한 개인의 도덕적 개심으로 바뀔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이 냉정한 현실 인식이 비토리오의 비극적인 최후보다 더욱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다. 비토리오의 죽음은 전형적인 장르적 클리셰 안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세자레의 막막한 미래는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아이, 즉 미래를 상징하는 세 인물이 처한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첫 번째 아이인 비토리오의 조카는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었고, 결국 고통스럽게 죽는다. 두 번째 아이인 세자레의 양아들은 철이 들자마자 축구 카드를 버리고 마약에 손을 댄다. 그는 어쩌면 비토리오와 같은 삶을 살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는 갓 태어난 비토리오의 아들이다. 물론 이 아이는 아직 어리고, 그가 나중에 어떤 삶을 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살지 마라>의 세계 속에서 이 아이가 바른 삶을 살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물질적 가난은 불행과 직결되며,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영화 속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 나아질 거란 희망은 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 비극적인 결론이기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클라우디오 칼리가리 감독의 지금 이탈리아에 대한 이와 같은 통렬한 진단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김보년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