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6. 17:21ㆍ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배창호 감독이 데뷔작부터 연달아 11편의 작품을 함께한 배우 안성기는 이번 영화제에서 <깊고 푸른 밤>을 선택했다. 예정과는 다르게 배창호 감독도 시네토크에 함께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오랜 시간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만큼 감독과 배우의 관계 이상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덕분에 감독과 배우의 첫 만남부터 27년이 지나 다시 보는 <깊고 푸른 밤>까지 즐거운 추억을 꺼내듯 이야기가 오고 갔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안성기(배우): 러브신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웃음) 힘들었다. 웬 폭력이 이렇게 많고 왜 담배를 그렇게 피워댔는지. 그때는 담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거슬리는 것도 있지만, 하여튼 관객들 핑계 삼아 오랜만에 영화를 보게 되어 좋았다.
배창호(영화감독):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다시 만나 봬서 반갑다. <깊고 푸른 밤>은 4년 전 특별전 때 보고 다시 보게 되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깊고 푸른 밤>은 1985년 3월 1일 명보극장에서 개봉해서 7월 31일까지 49만 명을 동원했다. 당시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가 42만 명이었다. 이어 코리아극장에서도 상영되어 10월 13일까지 관객 수 60만 명으로 당시 방화사상 최다 관객 수를 동원했다. 처음 이 영화 작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 대중적으로 흥행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영화 들어갈 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안성기: 영화의 성공은 누구도 모르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몇 가지 좋은 요소들은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젊은이 이야기가 당시 소재로는 새로웠고 해외 올 로케이션으로 찍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미국 가서 제대로 허가 다 받고 찍었다. 경찰이 길 다 막아주고. 좀 더 제대로 찍었기 때문에 좋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당시 한국영화의 큰 문제점이 칼라와 사운드 문제였다. <깊고 푸른 밤>은 네가 현상을 미국에서 했고, L.A.의 광량이 풍부했기 때문에 화면상으로도 굉장히 좋았다. 이러한 점이 가장 기대가 됐었다. 자랑 같지만 나하고 배창호 감독하고 최인호 선배하고 하면 당시 대부분 잘 됐다.(웃음)
배창호: 그렇게 흥행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기획 때 이 작품의 구상안이 여러 개 있었는데 가장 대중적으로 편안하게 접근했다. 이 정도면 많이 대중적이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관계자들 보기엔 더 흥행작처럼 보이진 않았었다. 하지만 입소문으로 단관에서 꾸준히 가게 됐다.
안성기: 우리 스태프가 15명이 안됐다. 엔딩 타이틀이 이렇게 짧게 올라가는 영화 요즘에는 보기 힘들다.(웃음) 그나마 중복된 게 있는데도 짧았다. 15명 인원으로 이런 영화를 찍었다는 게 대단히 놀랍다고 생각을 한다.
김성욱: 안성기 선생님은 배우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이 몸의 단련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안성기 선생님의 몸의 느낌, 동물적인 에너지가 강하다고 느꼈다. 오늘 다시 보면서 백호빈이란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안성기: 전체적으론 부끄러운 느낌이다. 연기의 톤이 좀 들쑥날쑥한 걸 많이 느꼈다. 너무 의도적으로 많은 표현을 했다. 지금 시선으로 보니 좀 더 감춰줬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있다. 그땐 그게 최고인줄알고 했다.(웃음) 그런데 <깊고 푸른 밤>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이런 식의 연기를 한 작품은 없었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평소에 못 보던 저의 모습을 많이 보실 것 같다. 나도 약간은 낯선 느낌이 있다.
김성욱: 배창호 감독님 영화중에선 가장 에너지틱한 인물이 백호빈이 아닌가 싶다. 복합적인 인물이다. 영화 첫 장면이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시작 안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추가했다고 들었다.
배창호: 구성상으로도 첫 시나리오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을 처음부터 강하게 이끌어오기 위해선 그 앞에 인물들을 보여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촬영 중간에 삽입했다. 백호빈이란 인물은 아메리카 드림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서 결국 광기에 젖고 마는 남자다. 그런 배역을 안성기 씨가 했기 때문에 관객이 좀 더 인간적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 거다. 백호빈 또한 욕망을 추구하지만 외로움의 흔적이 있는데, 인간의 집착과 허상에 관한 이야기를 안성기 씨가 잘 표현해주었다고 본다. 요즘은 이런 배우가 거의 없다. 안성기 씨가 배우로서 아우라가 좋다, 멋있다, 감탄을 하면서 봤다.
안성기: 영화 촬영할 때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차를 몰고 아내의 카세트를 듣는 장면을 찍으러 밴 2대, 승용차 1대, 고장 굉장히 잘나는 소품 차 직접 몰고 갔는데 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컨테이너 차들이 쫙 있었다. 로버트 드 니로 나온다고 했었나, 아무튼 유명한 배우가 나와서 촬영을 하고 있다고.(웃음) 근데 그 규모가 너무너무 어마어마해서 마음이 우울했다. 그 우울한 게 바로 아내가 보내준 테이프를 듣는 장면으로 이어져서(일동 웃음), 그 생각만 해도 연기가 제대로 됐다.
김성욱: 당시에 한국영화에선 쓰지 않은 카메라의 촬영 기법들이 눈에 띈다. 개봉당시에 화제가 됐던 360도 패닝이라든지 크레인을 쓴 장면들도 많았다.
배창호: 장비들은 현지에서 렌트해서 썼다. 미니크레인이 나오는데 촬영부 두 사람이 그걸 다 움직였다. 조감독도 재작년 작고한 곽지균 감독 혼자였고. 장비가 많아서 애를 먹었다. 더 좋은 장비를 동원할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 만족했다.
김성욱: 오늘 보시면서 어느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나?
배창호: 역시 백호빈이 미국을 향한 집념이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 미국국가 부르는 장면들이랄지. 마지막에 자기도 부인에게 배반당했다는 걸 알고 광기에 젖는 웃음, 그런데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벗어나면 좋겠지만 그 굴레에서 회전하는 모습이 인간이니까 그런 안타까움을 느낄 때의 장면이 좋았다.
관객1: 영화에 인종, 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여러 이슈나 인간적 관점이 있는데 감독님은 어떤 관점으로 만드셨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처음에 모티브를 갖고 어디로 달려간다 했을 때 <깊고 푸른 밤>은 파멸이다, 라고 정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상에 대한 집착과, 외로움과 소외를 견디지 못하는 두 사람이 화해 없이 부딪치면 파멸로 갈수밖에 없겠다 생각했다. 마지막에 제인을 살릴까, 깊고 푸른 사막에 가만히 얼어붙은 듯이 찍을까도 생각했는데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게 당시로선 좀 어려웠다. 그래서 확실하게 파멸로 갔다. 내가 낭만주의자였다면 인물을 살리려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27년이 지나서 이 소재로 찍으라하면 또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30대 초에, 한국영화 형편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연출이었다고 본다.
관객2: 당시 쓰이지 않던 카메라 워크가 쓰였다고 했지만 미국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섞여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360도 패닝이 굉장히 한국적이고 클리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헬기 샷이나 지평선을 달리는 차 장면은 미국적인 느낌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원형이동은 그 당시 내가 본 한국영화중에서는 없었다. <적도의 꽃> 때는 휠체어로 한 게 처음이었다. 미국에 가니까 원형이동차를 처음으로 빌릴 수 있어서 한국영화로는 처음 시도를 했을 것이다. <깊고 푸른 밤>의 몇 장면은 유럽영화도 좋아했지만 미국영화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세대로서 콘티 짤 때 파편처럼 남아 있었던 거 같다.
관객3: 백호빈의 한국 아내가 우편물을 편지가 아닌 테이프를 보내온다. 의도된 건지. 또 백호빈 극중 이름이 그레고리 백인데, 원작소설에도 그 이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당시 외국에 가면 육성으로 테이프로 보냈었다. 나도 7~80년대 케냐에 있을 때 어머니, 아버지, 조카 노래까지 다 테이프로 녹음해온 것을 들었다. 원작엔 아마 없을 거다. 부인 얘기는 거의 다 오리지널로 만든 거니까. 그레고리 백은 시나리오과정에서 나왔나 싶은데, 약간 유머를 넣고 백호빈의 성격, 자아 현시적인 들뜬 모습을 맞추기 위해서 넣었다.
김성욱: 당시에는 의상소품담당이 없어 안성기 선생님 본인이 직접 조달했다고 들었다.
안성기: 전부 내가 입던 옷들이다.(웃음) 특히 누런 깃 얇고 헐렁한 와이셔츠는 당시 좋아했던 옷이었고, 청바지도 몇 개 있었는데 제일 붙고 헐은 것을 입었다. 가죽잠바는 배감독하고 같이 미국에서 산거 같다.
배창호: 따로 부서가 없었다. 의상, 분장, 소품도. 감독, 조감독 같이 했다. 마지막 두 여인이 바에서 마주칠 때 백호빈이 좀 어두워진다. 안성기 씨가 눈 밑을 좀 까맣게 분장 하면 어떨까 해서. 분장도 연기자가 직접 했다.(웃음)
관객4: 수많은 영화 중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사에 획을 그어서, 혹은 지금 현재 사회를 읽을 수 있고, 영원히 변치 않는 인간의 관계적인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든지.
안성기: 그렇게까지 의미를 두니 힘이 든다. 그냥 보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다.(웃음) 배창호 감독님의 4년 전에 전작전할 때 ‘봤는데 지금도 좋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본지 25년이 됐다. 개인적으로 일단 궁금했다.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린다기보다는 그때 여러 가지 좋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맞는 건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관객5: 안성기 배우님께 드릴 질문인데, 지금도 터프가이나 악역이 제공된다면 하실 의향이 있는지, 혹은 그런 제안이 오신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안성기: 주제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히 있는 그런 역할은 몇 번 했었다. 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살인을 했지만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묘사가 돼서 악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그런 인물들은 좀 했는데 단순 악인의 모습은 좀 하기 힘들어한다. 그리고 구태여 그것을 배우의 한계라고 느끼지 않는다. 좋은 인물로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김성욱: 작년에 출간된 안성기 선생님 평전에서 80년대 영화에 출연하면서 했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시대가 나의 얼굴을 요구했었다. 그런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 있었다.’라는 말이다. 안성기 선생님 올해 환갑이시다.(웃음) 나이 얘기하면 안되는데, 저희가 안성기 선생님 특별전을 해볼까 생각했었다. 제목은 아까 그 문장을 따서 ‘시대의 얼굴’ 이렇게 생각을 해봤다.
안성기: 7~8편정도 나름대로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관객들이 손을 안 들어 준 영화들이 좀 있다. <킬리만자로> 같은 작품들 말이다. 그런 영화를 모아서 같이 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김성욱: 그럼 올해 하는 걸로 하겠다.(웃음) <흑수선> 이후로 두 분이 같이 작업을 안 하셨는데,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분이 또 작업하는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이런 기대와 희망이 있다.
배창호: 그런 마음은 충만히 있는데 잘 아시다시피 영화 기획이 작가적 자세보단 자본의 틀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많으니까. 늘 하는 얘기지만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영화로 안성기 씨와 함께 하려다보니 시간이 걸리는 거다. 곧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안성기: 최근에 <부러진 화살>을 통해 정지영 감독님과 20년 만에 만나 하는 게 현실이 되다보니 언제든지 다시 만나서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날을 예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부러진 화살>도 저예산으로 했다. 기존의 큰 영화를 하는 투자 쪽에 기대지 않아도 작품성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언제든지 좋은 영화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감독 힘내요.(웃음)
정리: 김휴리 | 에디터
사진: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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