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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Review] 잠 못 드는 밤은 한 꺼풀의 성장이 되고 - 빌 오거스트의 <정복자 펠레> 는 19세기 말 덴마크의 집단 농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스웨덴에서 늙은 아버지와 함께 덴마크의 작은 항구도시로 이민 온 소년 펠레는 집단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곳에서의 삶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펠레는 바다를 건너는 배 위에서 아버지에게 ‘아이들이 일하지 않고 종일 놀기만 하는 곳’을 원하지만 그의 소망은 이내 좌절된다. 그들이 도착한 농장에서 그들은 축사의 한편에 거처를 마련하고 끊임없는 노동을 부과 받는다. 19세기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였다. 농업 국가였던 스웨덴은 산업혁명과 함께 봉건 제도가 붕괴되면서 농촌의 빈곤화가 일어났고 많은 스웨덴인들이 기근에 시달리다가 덴마크나 미국 등지로 이주해야 했다. 영화 속 펠레와 그의.. 더보기
[Review] 영웅 없는 스파이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존 부어맨의 <테일러 오브 파나마> 다수의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안티-본드’ 영화에 출연한다면? 첩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가 그 영화의 원작과 각색에 참여했다면? 존 부어맨의 (2001)가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는 파나마를 배경으로 운하운영권을 둘러싼 음모와 거짓을 그린다. 이제 막 파나마로 발령을 받은 영국비밀정보국(MI6)의 요원 앤드류(피어스 브로스넌)는 고위 인사들의 양복을 재단하는 해리(제프리 러쉬)에게 접근한다. 파나마에 정착한 영국인 재단사 해리는 그동안 거짓으로 꾸며낸 자신의 과거 경력을 기반으로 삶을 꾸려왔는데, 그런 해리의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앤드류는 그 사실을 빌미로 파나마 운영권을 둘러싼 고급 정보들을 캐내올 것을 요구한다. 평범한 재단사가 엉뚱하게 꾸며낸 정보.. 더보기
[Review] 시대의 몰락과 비참을 담아내는 편견 없는 시선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 이모션즈(Emotions)의 'Best of my love'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며 영화의 제목 '부기 나이트'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화면 가득 들어온다. 오프닝 크레딧의 일부이면서 영화 속 클럽이 위치한 동네의 실제 간판이다. 시작과 동시에 흘러나오던 음악은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며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데도 볼륨이 줄지 않고 이어진다. 이 흥겨운 노래는 영화 의 시작을 알리는 테마곡이자 인물들이 만나는 클럽의 배경음악이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는 파티가 펼쳐지는 낯설고 시끄럽지만 어딘가 신나 보이는 신세계에 툭 던져진다. 그리고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1977)는 (1996)로 데뷔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두 번째 작품이자 시대의 요란을 유난 맞지 않은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다. .. 더보기
[Review] 죄절된 부르주아의 만찬 -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루이스 부뉴엘의 (1972)은 부르주아의 계급적 허위의식을 냉소적으로 풍자한다. 영화는 6명의 부르주아들이 그들만의 의식인‘만찬’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다. 놀랍게도 이 부르주아들은 티타임까지 포함하여 총 8번의 좌절을 겪는다. 그들은 시간을 착각하거나 때로는 시의적절치 못한 성적욕망으로 약속을 위반한다. 그런가 하면 갈망하던 만찬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식사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에 의해서 만찬이 중단되기도 하는 등 만찬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수없이 고배를 마신다. 게다가 영화에는 중심 내러티브와 상관없는 꿈 이야기가 세 차례나 삽입되고 부르주아가 꾸는 꿈이 세 차례 덧붙어있다. 6명의 부르주아가 하릴없이 들판을 걸어가는 극적맥락과 긴밀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시퀀스가 또.. 더보기
[시네토크] 큐브릭은 진정한 작가다 겨울비가 내리던 저녁, 의 이준익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지난해에 를 추천한 이준익 감독은 올해는 평소에도 자신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곤 했던 스탠리 큐브릭의 를 선택했다. 이준익 감독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영화에 담긴 의미가 여전히 새롭다며, 전쟁과 이념 대결구도를 풍자한 큐브릭의 작가적 행보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시네토크 현장을 소개한다. 이준익(영화감독): 이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는 극단적인 작품이다. 내게는 중요한 영화라 이 작품을 추천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택했는데 많이 와주신 것 같아 다행이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 작년 연출 후 상업영화계 은퇴를 선언 하셨다. 그 이후로 힘들게 보내실 줄 알았는데, 좋게 보내신다고 들었다. 어떻게 지.. 더보기
[Interview]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나의 스무 살을 보낸 곳 김아라양은 지난 한 해 영화과 진학을 준비하면서 꾸준히 서울아트시네마의 자원 활동을 해왔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와 만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서울아트시네마에서의 활동을 ‘스무 살 나의 첫 시작’이라 말하는 김아라양과 이야기를 나눴다. 자원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작년 4월, "B영화의 위대한 거장 3인전” 때부터였다. 지금은 매주 금요일 행사지원을 하고 있고, 가끔 일손이 부족할 때 와서 돕고 있다. 자원 활동을 하기 전에도 시네마테크에 자주 왔었나? 그 전에는 서울아트시네마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대해 알고만 있었다. 영화과 진학을 마음먹었었고, 재수를 시작하면서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때 마침 자원 활동가 모집 공고가 나서 지원하게 됐다. 자원 활동하면서 입시 준비하는 시간.. 더보기
[Review] 세상은 변해 가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 제리 샤츠버그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보그, 에스콰이어 등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미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사진 작업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는 아마도 밥 딜런의 앨범 의 커버일 것이다. 그는 70년대부터 뒤늦게 영화경력을 시작했지만, 사실 당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드 팔마 같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젊은’ 감독들보다 윗세대에 속한다(그는 1927년생이다). 데뷔작 이후 그가 만든 장편 또한 모두 12편으로, 과작인 탓에 뉴 아메리칸 시네마 안에서 다른 감독들에 비해 그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었다. 그런 그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데에는 2011년 칸 영화제의 영향이 컸다. 1970년, 제리 샤츠버그가 담은 페이 더너웨이의 사진이 공식포스터.. 더보기
[Review] 프랑수아 트뤼포의 '쥴 앤 짐' - 윤리란 발명이며 창조다 지난여름, 『분노하라』는 한 프랑스 노투사의 짧은 외침이 담긴 책이 한국에 출간되면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단 몇 십 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가 프랑스에서만 60만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되었는데, 레지스탕스 정신의 현대적 부활을 요구하는 이 책에서 저자(스테판 에셀)는 흥미롭게도 트뤼포의 영화 에 대해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세 살 때 그의 어머니(엘렌 에셀)가 아버지(프란츠 에셀)의 절친한 친구인 앙리 피에르 로셰(원작 소설 『쥴 앤 짐』의 저자)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된 경험을 밝히면서 이후 그가 견지하게 된 윤리관을 이렇게 밝힌다. “제 입장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와 산다는 것은 거슬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사랑에 동의했으니까요. 아버지는 이를 비도덕적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