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전

2층집 금발 소녀의 은밀한 매력 [영화읽기]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많은 평자들이 이 영화가 명백히 루이스 부뉴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문득 오즈 야스지로가 떠올랐다. 아니 더 정확하게 오즈 야스지로의 2층 방에 살고 있는 과년한 딸들이 생각났다. 2층에 살고 있는 오즈의 딸들과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의 그녀들이 2층의 공간으로부터 사라지는 결정적 순간의 도래를 기다리는 통과자이며, 영화의 내러티브는 결국 그녀들이 오즈적인 ‘無'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영화의 금발 소녀 역시 오즈의 딸들처럼 결혼할 시간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창문을 열고 자기를 그 2층 방에서 데리고 나갈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부름을 건.. 더보기
경계와 침입으로의 여행 [영화읽기] 클레르 드니의 인간의 기억은 어디에 있을까? 뇌, 아니면 심장? 심장이식은 단순한 장기이식과는 달리 어떤 경우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심장과 함께 육신이 쇠락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늙은 남자의 몸에 새로운 심장이 이식된다. 이 착상은 클레르 드니가 장 뤽 낭시의 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드니의 (2004)에서 남자(루이)에게 이식된 심장은 몸에 침입한 이물질과도 같다. 프랑스의 한적한 교외지역의 대자연에 위치한 그의 사유지에 이상한 사람들이 몰래 침입하는 것처럼, 이식수술을 의뢰했던 여자가 수술 이후의 남자의 삶에 계속해서 유령처럼 출몰한다. 그에게 이식된 심장은 그의 몸에 침투했고, 그의 정신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서 매우 불온.. 더보기
영화의 21세기, 미래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www.cinematheque.seoul.com)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8주년을 맞아 ‘영화의 21세기, 미래의 시네마테크’를 테마로 오는 25일까지 일주일간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를 개최한다. 지난 2002년에 개관한 비영리 극장인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8년간 상업과 유행에 따라 소멸하고 사라지는 영화들, 문화적 가치와 예술성을 지닌 고전들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영화의 고전과 상당수의 예술 작품들을 극장에서 온전하게 감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영화들 또한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해 있다.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 상당수가 아직 우리들에게 제대로 도착하.. 더보기
운동적 스펙터클로 추상화된 역사의 변혁 미클로슈 얀초의 세계 [2] 미클로슈 얀초는 역사적으로 분출되었던 ‘혁명/반혁명, 억압/피억압’의 사회구조를 인간의 폭력성과 권력에의 집착, 그리고 이에 대항한 인간성의 해방과 자유라는 테마를 통해 그려냈다. 그가 이런 테마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했던 영화적인 장치들은 너무나도 독창적이어서, 그 자체로 ‘얀초의 세계’라고 불렸다. 특히 얀초의 스타일을 특징지으며 영화 전체를 구축해내는 것은, 패닝과 트래킹이 수반된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이뤄진 롱테이크와 광활한 자연풍경을 담아내는 하이앵글의 롱숏이라고 할 수 있다. 얀초의 영화는 분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주된 영향으로부터 시작되어 6, 70년대에 걸쳐 전개되었던 일련의 경향인 ‘정치적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들과 맥락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으며, 이런.. 더보기
억압된 유토피아를 내밀하게 관찰하는 시네아스트 미클로슈 얀초의 세계 [1] 미클로슈 얀초는 1921년 헝가리 버크 지방에서 태어나 법률과 민족학 공부를 거쳐 부다페스트 영화연극 아카데미에 진학했다. 그가 아카데미를 통해 영화를 처음 만나고 만들게 만든 계기가 된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고, 얀초는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룬 다양한 단편들을 만들어냈다. 1950년대 초, 얀초는 조국을 여행하면서 헝가리라는 국가와 헝가리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곧 1958년 얀초의 첫 장편영화인 라는 작품으로 이어졌다. 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까지 얀초는 기록영화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다큐멘터리와 실험적인 단편영화들을 제작해왔던 얀초에게 전쟁 후에 만난 아카데미 시스템은 자국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중.. 더보기
헝가리의 거장 미클로슈 얀초, 서울 착륙 Jiff in Seoul: 미클로슈 얀초 특별전 오는 11일부터 16일까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혁명적 시학을 완성한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는 헝가리의 거장 ‘미클로슈 얀초’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4월 29일 개막하는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작품 중에서 ‘포커스’ 섹션의 ‘오마쥬: 미클로슈 얀초 특별전’을 서울에서 소개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Jiff in Seoul: 미클로슈 얀초 특별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전주국제영화제’의 포커스 섹션은 새로운 영화미학을 제시한 시네아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회고전 및 각종 특별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그 중에서도 ‘오마쥬’라는 신설 프로그램은 세계영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장 감독의 대표작을 .. 더보기
칼의 고통이 진짜 고통이었던가 [영화읽기] 엘리아 카잔의 (1955)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영화에서도 등장인물인 보안관 샘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카인은 아벨을 죽인 뒤 여호와를 떠나 에덴의 동쪽에 있는 놋으로 갔다고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자막을 통해 이 작품의 지리적 배경이 사리나스와 몬터레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담 트라스크(레이먼드 매시)의 농장은 에덴이고 아담을 떠난 케이트(조 반 플리트)가 바를 운영하면서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몬터레이는 놋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착한 아론(리처드 다바로스)은 아벨, 비뚤어진 칼(제임스 딘)은 카인이라고 봐도 될까? 아마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케이트와 아담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좀 .. 더보기
자연적 공간을 삼키는 미국적 이상 [영화읽기] 엘리아 카잔의 엘리아 카잔의 (1960)은 미국의 이상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광활한 미대륙의 거친 자연을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제어해 나가는 정부(에서 파견된 인물)의 고난이 영화에 역동성을 부여하며, 그런 과정에서 개인들, 집단들 혹은 개인과 집단은 끊임없이 서로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결국 갈등은 해소되어 함께 더 나은 국가를 일구어 나가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물론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끌고 나가는 주요 인물들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관계로 나아간다. 이런 전개에서 영화적인 장치로 본토 대륙과 섬,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고 있는 강이라는 공간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영화의 초반에 노파의 섬은 본토 대륙에 못지않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