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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아듀 파라다이스

[오픈토크] "영화의 친구들에게 배움을 얻는다" - 김홍준, 정성일, 허문영 대담

“영화의 친구들에게 배움을 얻는다.”

- 김홍준, 정성일, 허문영 대담


지난 3월 28일(토), 김홍준, 정성일, 허문영 평론가가 “1995-2015년 변모하는 영화의 풍경”이란 주제로 세 시간이 넘도록 영화를 둘러싼 동시대의 풍경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면 관계상 모든 대화를 옮기지는 못하지만 관객들의 질문과 답을 일부 정리했다.





관객 1│영화의 매력을 잘 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정성일(영화평론가, 감독)│편하게 대답하겠다. 옆에 앉아 있는 김홍준 선배를 1980년에 처음 만난 이후 이 사람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보면서 나 자신을 키울 수 있었다. 좋은 영화 친구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를 키운 건 절대적으로 이 우정이었다. 마찬가지로 허문영 씨의 비평을 보면서 긴장하고 배우고 있다.

이 자리에 온 여러분들은 어떻게 영화의 우정을 나누고 있는지 궁금하다. 자기 혼자서 영화에 대한 생각을 개진시켜 나갈 수도 있지만 그건 매우 드문 행진이다. 영화를 본 후 두 가지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 하나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면서 영화를 나의 뇌 속에 다시 한 번 상영하는 시간이다. 절대적인 고독의 시간. 그 다음 친구와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있다. 그때 앞으로 더 밀고 나아갈 수 있고 그때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내가 김홍준 선배와 동호회 활동을 하고 저널을 매개로 허문영 씨와 우정을 나눈 것처럼, 그리고 거기에서 성장한 것처럼 여러분들도 자생적인 모임을 통해 영화의 기쁨을 나누고 그 맛을 공유하길 바란다. 나는 그때 비로소 영화에 대한 사유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김홍준(영화감독)│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개봉작은 극장에서 보는 게 좋다. 그것도 개봉 직후, 쏟아지는 마케팅 문구에 오염되기 전에 보는 게 좋다. 그리고 VIP 시사회는 절대 가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에 최악의 환경이다. 자기 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과 섞여 기대감과 흥분으로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심지어 그때는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이 들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다.

또 영화의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이런 말까지 했다. “꼭 봐야 되는 영화는 꼭 안 보는구나.”(웃음) 사실 우리 때도 비슷했다. “<시민 케인>, 뭐, 고전이고 『사이트 앤드 사운드』 베스트 원이지” 하면서 막상 안 보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펄프 픽션>이 고전이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옛날 영화’가 <펄프 픽션>인 것이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고전 영화’라기보다는 ‘낯선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며, 시스템 때문에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며 모험을 하면 좋겠다.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소위 ‘B급 무비’를 보며 영화적 감수성과 연출 감각을 키웠다고 다들 말한다. 하지만 이건 약간 잘못된 신화이다. 타란티노가 다른 시네필과 2-30년대 미국 고전 영화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대화를 나누는 걸 본 적이 있다. 심지어 나에게 <돌아온 외다리> 등에 출연했던 예전 액션 배우 황정리 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묻기도 했다. 즉 비디오 가게에서만 교양을 섭취했다기보다는 시네마테크적 교양을 자신의 토양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관객 2│요즘은 모니터는 물론이고 스마트폰으로도 영화를 많이 본다. 이런 감상 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정성일│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아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비디오테이프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영화를 보았다. 그러니 영화를 볼 때 절박함이 있었다. ‘어쩌면 내 평생에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보는 걸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았다. 시네마테크도 없을 때였다. 필사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디오가 등장하고 어떤 영화든지 구할 수 있게 되자 영화 관람의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극장에서 볼 때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이다. 하나는 빨리감기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시보기다. 영화의 ‘명장면’만 다시 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영화에 대한 경험일까라고 반문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 경험은 일회적인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이다. 명장면은 그 앞에 나온 장면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빨리감기와 다시보기의 방식이 영화적 경험이라 불러도 괜찮은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런 건 그냥 이미지에 대한 경험이고, 시청각 기호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감흥, 또는 쇼크이지 시네마가 불러일으키는 감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내 견해이고 아직 논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 3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느끼는 것은 너무 많은데 이것을 표현할 곳도, 누군가와 나눌 수도 없을 때 괴로움을 느끼고는 한다. 그런 맥락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론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허문영(영화평론가)│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짧은 문장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온라인 공간은 양가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본다. 부정적인 면은, 누구나 짐작하시다시피, 사유가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만으로 이루어진 의견 교환은 생산적으로 발전하기 힘들다.

트뤼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두 번 보아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는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좋아할 수도 있고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다시 보아야겠다고 판단을 내린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영화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그게 영화의 마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트위터는 그런 심화 단계의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하나의 보조적 의견 교환의 장으로서 불필요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만 존재한다면 문제겠지만 대화의 출발로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이걸 기반으로 더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장만 있다면 말이다. 블로그든 웹사이트든, 카페든 그런 소통의 매체가 부족하거나 없는 게 문제이지 SNS에서 오가는 의사 교류 자체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리이오림 자원활동가

사진최미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