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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주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시네토크] <인톨러런스> 권해효 배우와의 대화 "좋은 연기는 보는 순간 바로 구분할 수 있다"

“좋은 연기는 보는 순간 바로 구분할 수 있다”

<인톨러런스> - 권해효 배우와의 대화


권해효(배우) 사실 시네토크가 있을 줄 알았으면 이 영화를 선택 안 했을 텐데(웃음). 그래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으니 뿌듯하시죠?

김성욱(프로그램디렉터) 이 영화는 텔레비전 앞에 붙어서 2시간 반 넘게 보기 힘들 것 같다. <인톨러런스>를 추천했을 때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추천한 이유를 듣고서야 이 영화의 제목이 ‘불관용’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피스라는 ‘미국 영화의 아버지’가 만든 영화로만 알고 있었는데, 영화의 진정한 주제가 불관용이다.

그리피스 감독이 1875년생이다. 태어난 지 140주년이고,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는 거의 100년이다. 그리고 곧 그리피스의 생일(1월 22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100년 전의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시네마테크가 아니라면 보기 힘들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는데 맞는 말 같다. 듣기로는 권해효씨가 1985년에 이 영화를 16mm 필름으로 봤다고 했는데, 그때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다.

권해효 영화사적 의미, 또는 역사적 의미는 요즘 인터넷 뒤지면 다 나와 있으니 내가 설명드릴 게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5년에 영화 개론 수업을 들었다. 그때 학교 편집실에서 16mm 필름으로 이 영화를, 그것도 40인치도 안 되는 정말 작은 화면으로 봤다. 딱딱한 책상에 앉아 중간중간에 필름 릴 바꿔가면서 거의 4시간 동안 봤다. 자다 깨도 요람 흔들고 있고, 자다 깨도 요람 흔들고 있고(웃음). 징글징글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1916년에 저런 대단한 영화가 있었구나라는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큰 스크린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 역시도 오늘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말 다 볼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잘 봤다. 30년 전에는 너무 졸았었다(웃음).

김성욱 나도 학교에서 세계영화사 수업할 때 이런 영화를 틀 생각은 전혀 못한다. 학생들이 관용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권해효씨가 영화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1985년이면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권해효 재수를 해서 1학년 때였다. 정작 <인톨러런스>를 봤던 영화 개론 수업은 F를 받았다(웃음). 4학년 2학기 때 재수강을 해서 겨우 졸업했다.

사실 나에게 영화나 연기가 익숙한 건 아니었다. 요즘은 어릴 때부터 이 직업을 꿈꾸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 회계학과 원서를 사서 오는 길이었는데 버스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 친구가 연극영화과를 간다는 거였다. 친구가 한 번 해보자고 해서 바로 다음 날 원서를 사서 넣었다. 참고로 한양대를 간 이유는 실기가 없었기 때문이다(웃음).

대학 1학년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생활이었다. 만나본 적도 없던 영화들이 나를 흥분시켰고, 불란서문화원, 독일문화원 등을 찾아다니며 영화 보고 밤새 술 마시는 생활을 했다. 자연스럽게 영화 스텝으로 일을 시작했고, 군 제대 후 운 좋게 연기를 시작했다.


김성욱 이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가 증오와 편협이 어떻게 사랑과 관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가다.

권해효 좀 궁금하다. 물론 전작인 <국가의 탄생>에 제기됐던 문제, 즉 인종주의 혐의를 무마시키기 위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정작 오늘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마지막 엔딩 시퀀스를 향해 달려가는 엄청난 교차 편집과 속도감이었다. 바로 이것을 위해 그리피스가 이 영화를 만들었고, 그 뒤에 덧붙여진 수사 같은 교훈적인 말들은 단지 그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이 사람이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이런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아시다시피 1895년에 관객들이 처음 보았던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은 이미 스펙타클이었다. 그리고 <대열차 강도>나 <달나라 여행> 같은 영화들로 이어졌고, 그리피스는 영화의 문법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로만 듣다 오늘 직접 보니 다들 어땠는지 궁금하다. 100년 전에 저런 엄청난 편집과 클로즈업은 정말 어마어마하지않나.

게다가 당시 물가를 고려했을 때 이 영화가 깨지지 않는 제작비 기록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보시다시피 어마어마하다. 당시 CG도 없었을 텐데, 정말 살벌하다(웃음). 무대뽀라고 해야할까, 어떻게 저런 세트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

그리고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영화 예술의 원형들이 이 영화 안에 들어있다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프랑스 중세나 이집트 신전의 모습들이 지금도 그리피스의 영향 아래 놓여있다는 느낌이다. 당시 흥행에는 비교적 실패했다고 들었는데, 저 자막만 없으면 좋았을 것 같다(웃음). 왜 이렇게 설교를 했을까.

보시는 내내 많은 분들이 1916년의 한반도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한일병합이 1910년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연해주, 만주, 일본으로 갔던 시기에 할리우드에선 이런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인톨러런스>에 받았을 문화적 쇼크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은 우리가 ‘고전’으로 접하지만 당시 이 영화는 ‘예술적 가치’를 가장 앞장서서 고민하고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김성욱 무모한 느낌마저 든다. 바빌론 성 장면 같은 것을 보면 엑스트라가 2천명 넘게 동원됐다. 그 장면에서 배우가 ‘병사 1’로 연기하는 느낌은 어땠을까.

이 영화의 제작비화랄까,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 만든 <굿모닝 바빌론>(타비아니 형제, 1987)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 물론 그리피스도 나오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영화를 찍는 것은 성당을 만드는 것과 거의 같은 일이다. 무명의 사람들이 만든 성당이 나중에 가치를 갖게 되는 것처럼 영화 역시 수없이 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세운 ‘성당’과 같다는 것이다. 결국 몇 명의 배우와 몇 명의 주요 스탭으로만 기억되지만 영화에 진정으로 ‘참여’한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권해효 내가 처음 배우로 참여했던 영화는 대학 4학년 때 사할린과 일본 등지에서 찍었던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였다. 그 영화를 찍으러 사할린에서 40일간 지냈다. 당시 강제 징용 장면을 찍기 위해 재러 고려인들 수백명이 함께 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단순히 엑스트라로 참여한다는 것 이상의 감동을 느낀 적이 있다. 그분들은 이 땅에도 동포가 살고 있고 아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알아주길 바랐을 것이다. 비록 영화의 흥행은 실패하고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많이 사라져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인톨러런스>를 보면서도 당시의 무모한 제작비와 엄청난 흥행 실패가 떠올랐다. 이 영화 이후 그리피스는 경력의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결국 100념 넘게 살아남아 지금도 우리가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잘 보존되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네마테크가 참 소중한 것 같다. 당장 내가 19년 전에 출연했던 <진짜 사나이> 같은 영화는 필름 상태가 최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톨러런스>를 보며 제일 부러웠던 것은 100년 전의 영화를 이렇게 생생히 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였다. <명자 아끼꼬 쏘냐>도 다시 상영될 기회가 있다면 지금의 관객들에게 다른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얘기가 딴 곳으로 새버렸다(웃음).

김성욱 ‘불관용’이라는 제목과 관련해서 보면 그리피스라는 감독 자체가 불관용의 대상이 되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말씀하신 대로 <국가의 탄생>에 대한 비판이 <인톨러런스>를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그리피스 감독이 1948년에 사망한 후 53년에 ‘그리피스 어워드’가 만들어졌다. 영화 예술에 공헌한 감독에게 부여하는 상이었는데, 그게 1999년에 사라졌다. 바로 <국가의 탄생>에 나타난 인종차별적 문제 때문이었다.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런 상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 이유였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같은 영화인들은 반대를 하기도 했다. 할리우드를 만든 감독 중 한 명이 그리피스인데, 살았을 때도 흥행 실패로 할리우드에서 쫓겨났고 이제 다시 한 번 추방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피스라는 사람을 희생자로 내세운 셈인데, 그런 면에서 그리피스는 불관용과 관용을 둘러싼 상징적인 인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권해효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그리피스와 당시 시대가 갖고 있는 보수적인 태도들이 보일 때도 있다. 이를테면 여성의 사회 바로잡기 운동 같은 것을 묘사하는 장면들. 지금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선 그런 사건들을 조금 비판적으로 그린다. ‘나이가 든 여자는 성적 매력이 감소하면서 딴 짓을 한다’ 이런 말이 나올 때는 한참을 웃기도 했다.

김성욱 그런 맥락에서도 ‘관용’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선 굉장히 뛰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작품이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정치적 견해 상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이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이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감독이 그리피스이고, 그런 영화가 <인톨러런스>이다.

권해효 그리피스가 말하는 관용은 한국에서의 ‘똘레랑스’ 담론과 함께 생각할 때 좀 불편한 지점도 있다. ‘불관용-관용’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진 자, 힘있는 자의 태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마치 ‘내가 봐줄게’라고 하는 것 같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우리가 한 번이라도 사상의 자유를 누린 적이 있는가. 말로만 안 뱉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관용’의 개념에 대해서는 좀 더 비판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영화 작업할 때 감독과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한 경우가 거의 없다. 연극의 경우에는 그럴 때가 많다. 하지만 영화를 할 때는 기껏해야 어떤 장면에 대해 서로 설득하려하는 선에 그칠 뿐이다. 철저하게 제작자, 투자배급사의 틀 안에서 초 단위로 컨트롤 되는 상황에서 영화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감독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을까.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최소한의 토론 시간마저 줄이는 경우가 많다. 소위 ‘할리우드 시스템’인 것이다. 술 마시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우가 감정을 잡을 시간 조차 갖기 어렵다. 굉장히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일이 드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걸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현명하게 잘 견디려 노력하고 있다(웃음).

김성욱 그리피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폄훼하는데 영화가 등장한 후로 미국의 술 소비량이 얼마나 줄었는지 보라고. 사람들이 술 먹을 시간에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영화가 도덕적, 정신적으로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얘기했던 분이 공식적으로 영화를 못 만들게 되니 알콩중독자가 되버렸다. 아이러니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성공의 시기와 몰락의 시기를 겪는다. 배우들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을 것 같다

권해효 그런 면에서는 배우가 비교적 덜한 것 같다. 영화든 문단이든 화단이든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 2-30년씩 응축된 문제들을 계속 고민하다 어느 순간 탁 터트리며 등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가가 몇 십년씩 한 작품을 계속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반면 감독의 활동 사이클이 상대적으로 짧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배우는 나이가 들 때마다 그 나이에 맞는 배역을 새롭게 맡을 수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비교적 덜한 편이다. 20년 간 ‘무명’으로 계속 활동한 배우도 다시 새롭게 대중에게 등장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창작자들을 ‘익숙함’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데 배우는 그 익숙함을 ‘플러스’로 이용할 수도 있다.

김성욱 연기와 관련해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특히 무성영화를 볼 때 배우들의 ‘연기’를 느끼기 힘들다. 잘한다, 좋다, 괜찮다, 정도이다. 지금 21세기의 배우로서 100년 전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권해효 확실하진 않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연기라는 걸 해보지 않은 아이에게 연기를 시키면 지금 <인톨러런스>의 배우들처럼 할 것 같다. 본능적인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서양식 연극 매체에서 감독, 연출의 영역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건 아무리 길게 잡아도 150년 정도 밖에 안 된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실주의 연극에서 극작과 연출의 힘이 세진다. 그 전에는 쭉 배우의 시기였다. 배우가 대충 줄거리만 갖고 마음대로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고 노래 부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사형대에 선 젊은 청년의 연기가 굉장히 모던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 당시에도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인지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싸고 좋은 건 없다. 정말 좋은 와인은 아무리 와인을 모르는 사람이 마셔도 바로 좋다는 걸 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좋은 연기는 보는 순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영화 이전에, 연극 무대에 선 배우들이 가급적 목소리를 멀리 퍼지게 하려고 턱을 치켜들고 객석 상단을 향해 외치는 방식. 그리고 조명이 없던 시절에 ‘풋 라이트’ 앞에서 몸의 정면을 다 드러내는 방식. 이런 게 몸에 배어 있는 배우들이 이전에 하던 방식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그런 느낌이 있다. 최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 영화 속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선다. 대화를 할 때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하신다. 그게 ‘본능’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배우로서 몸을 늘 관객에게 오픈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계신 것이다.

김성욱 당시에는 마운틴 걸이 인기 있지 않았을까?

권해효 아. 굉장히 발랄하다.

김성욱 방금 이야기하신 사형대에 올라가는 애인은 연기 폭이 넓다. 건달이었다가 회심하고, 다시 살인자로 몰려 사형대로 올라간다.

권해효 배우도 오해하고, 연출도 오해하고, 관객도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배우가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이다. 사실 배우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극중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앞에 앉아 계신 분에게 “너 나가!” 라고 한다면(웃음), 이때 내 목적은 적합한 방법을 사용해 저 분을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보여주는게 목적이 아니란 뜻이다.

일일드라마를 보면 엄마와 딸이 싸우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때 딸은 “그 남자랑 결혼 못 해”라며 펑펑 울고 소리를 지른다. 이런 장면의 많은 경우가 시청자에게 어떤 느낌을 주지 못 하는 건 그 배우가 상대를 설득해야한다는 목적을 잊은 채 단지 멋지게 소리 한 번 질러보려고 악만 쓰기 때문이다.

아까 그 배우가 “연기 폭이 넓다”라고 했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기 폭이 넓은 것이 아니라 그 장면에서 요구하는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햄릿의 슈퍼 오브젝트, 햄릿의 목표는 죽은 선왕의 복수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은 목표가 따라온다. 그건 바로 나의 복수심을 적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전제 하에서 배우의 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중 하나가 햄릿의 ‘미친 척’인데, 우리는 그 미친 행동의 묘사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 배우의 목표는 미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적에게 복수심을 숨기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좋은 연기의 디테일이 살아난다. 배우 뿐 아니라 관객들도 이런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그 장면의 목적을 이해하는 배우들이 있다. 송강호 같은 배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오달수 역시 자기가 그 장면에서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배우다. 그리고 관객은 이들이 등장하는 순간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이 좋은 배우이고, 또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배우들만큼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좀 이상하지만(웃음), 극상의 최고점에 도달한 배우들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치 기타 코드는 다 잡을 줄 아는데 정말 잘 치는 사람들은 적은 것, 그리고 “체르니30”을 누구나 한 번씩 쳐본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제 다들 한 단계씩 올라간 것 같고, 또 그것을 넘어선 모습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김성욱 또 다른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 이자벨 위페르와의 작업이다. <낯선 나라에서>에서 영어로 연기를 하기도 하셨는데, 외국배우와 외국어로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권해효 불편했다. 게다가 그거 찍을 때 워낙 일정이 바빠서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찍는 식으로 했었다. 거기다 홍상수 감독님이 촬영 직전에 대본이...(웃음) 예를 들어 10시에 모인다고 하면 8시 30분 정도에 스텝들이 모여 감독님을 기다린다. 드디어 문이 빼꼼 열리고 “다 썼어” 하면 조연출이 대본을 들고 복사해서 나눠준다. 10, 20분 사이에 그걸 외우는 건데, 그게 매력이 있다.

보통 연기를 할 때 그 장면에 대한 각자의 태도와 해석이 있지 않나.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바로 직전에 대본을 준 뒤 그 상황에서 토씨 하나 틀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요즘은 애드립도 많이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배우가 극도로 그 대사에만 집중을 하게 된다. 소위 어떤 ‘짓’을 하지 않는다. 뭔가를 더 만들어낼 틈도 없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만 집중하다보면, 정말 그 말의 목적들이 살아나면서 아무 것도 아닌 말들이 돌처럼 쌓여지며 뭔가가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느낌이 생긴다. 그게 홍상수 감독의 특기이고, 배우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굉장한 자유를 느낀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영화의 캐릭터로서 대사를 열심히 뱉어내는 것. 그래서 좋다.

이자벨 위페르의 작업에서 힘들었던 것은, 그 분이 예순살, 나와 띠동갑이다(웃음). 그런 분께 수작을 거는 것이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었는데 정작 프랑스 관객들에게는 묘하게 재밌게 느껴졌다고 하더라. 자기들이 사랑하는 쉰아홉의 배우에게 어려보이는 동양 남자가 키스하자고 덤비는 것 말이다. 어쨌든 대단한 분이었다. 변산반도에서 보름 동안 거의 매일 해물 칼국수만 드셨는데(웃음), 빵이랑 치즈, 페리에, 커피를 서울에서 사가지고 갔더니 매우 좋아하셨던 일이 기억 난다.

관객1 배우가 목적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역할에 맞는 배우의 고유한 해석이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감독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배우의 영역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감독과 의견이 다를 경우 어떻게 해야하나.

권해효 그 장면에서의 목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능동적인 자세다. 관성에 의한 연기가 아니라 그 장면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감독 조차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을 배우가 자신의 연기로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감독은 거친 것을 원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게 더 맞는 것 같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감독에게 맡기는 것도 있다. 특히 영화 전체의 흐름에 대한 이해나 감독이 생각하는 편집의 템포, 가령 사운드 편집에 있어 소리를 지른다거나 하는 것들. 이런 구체적인 장면의 연결을 위해 다른 것을 제안하면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대부분은 리허설을 거치며 다 조율한다. 한 가지 이유로만 움직이는 배우는 없다. ‘목적을 수행한다’는 것은 훨씬 더 디테일한 것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두루뭉술하게 감상만을 내세우는 연기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힘들다. 관객이 울어야 하는데 자기가 먼저 우는 장면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부분은 안타깝지만 배우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없다.

사실 반항해본 적도 있다. 1996년도에 개봉한 <진짜 사나이>의 엔딩 장면 같은 경우에 나는 6개월 동안 끝없이 싸웠다. 감독, 촬영감독 모두와 싸웠다. 나는 그 엔딩에서 죽는게 너무 싫었다. 왜 한국영화는 이렇게 모두 죽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엔딩 장면 찍기 전날 밤에 서울로 도망가 버렸다(웃음). 그래도 감독은 다른 사람 팔만 슬쩍 나오게 해서 죽은 걸로 마무리했는데, 이건 사실 내가 월권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어쨌든 적극적으로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걱정하시는 것처럼 배우들이 일방적으로 끌려가거나 하는 건 아니다.

관객2 <인톨러런스> 이후 영화의 일부 장면을 따로 편집해 <바빌론의 몰락>이란 영화를 다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권해효 100퍼센트 그리피스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리피스는 <인톨러런스>를 만들기 전 몇 년 동안 약 50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5분, 10분 짜리 영화를 계속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들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가 <인톨러런스>에 다 녹아있다. 트래킹 숏, 디졸브, 교차편집, 플래시백, 클로즈업, 사운드와 템포에 맞춘 편집까지. 이 영화가 러시아, 유럽으로 전해지며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바빌론의 몰락> 역시 온전한 그리피스의 영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1914년 이탈리아에서 <카비리아>란 사극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피스가 그 영화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권해효 그 영화에 자극을 받아서 더 잘 만들려고 했던 거다.

김성욱 그 당시에는 제작기간 3주가 일반적이었는데, 이 영화는 2년 정도 걸린 초대작이었다. 그 시절 이탈리아가 만들던 거대 사극영화에 대항하는 할리우드의 역작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굿모닝 바빌론> 같은 영화를 보면 이 영화의 반전 메시지가 1차대전 당시의 국내 여론과 충돌해 흥행에 실패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리고 전쟁 이후 몰락하던 유럽의 영화 산업과 패권을 새롭게 잡으려하던 할리우드의 전략 등, <인톨러런스>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와 힘의 충돌이 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궁금했던 것이 배우는 배역이 주어지기 전까지 일상에서 어떤 준비를 하는가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쌓아나가는지.



권해효 글쎄, 자기 고유의 것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그 이야기, 그 장면의 목적을 찾아나가면 대개 90퍼센트 이상 좋은 연기라 봐도 좋을 것이다. 음, 평소에는 그냥 논다(웃음). 그런 면에서 반성할 것도 있다. 발레, 그림, 노래를 하시는 분들은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그러니까 배우가 참 특이한 직업이다. 외국의 배우들도 실제로 어떤 노력을 평소에 하는지는 모르겠다(웃음). 늘 하는 얘기는 ‘조율’돼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조율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 배우에게 더 와닿는 말은 ‘갈증’, ‘목마름’이다. 그런 게 있을 때 연기하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전업 연기자 생활을 한 지 25년이 넘어가는데 초반에는 많이 불안했었다. 작품이 끝나는 순간 잠재적 실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세법상으로는 개인사업자이다. 그런 묘한 위치에 놓여있다보니 불안함 자체를 가급적 즐기려고 한다. 그게 다음 작품을 할 때 좋은 에너지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있다. 재작년부터 촬영한 <소수의견>은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인데 지금 개봉을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나온 좋은 영화인데 이런 영화 한 편 극장에 걸리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 그렇게 아침에 신문 펴 놓고 한숨 쉬는 것 정도를 제외하곤 잘 견디고 있다. 또 <쎄시봉>(김현석)도 개봉을 앞두고 있고, 재밌을 것 같다.

김성욱 영화로 또 극장에서 만나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이 <진짜 사나이> 개봉 20주년이다. 10주년 때 우리 극장에서 상영을 했었는데, 20주년에도 상영하면 어떨까.

권해효 파티를 한 번 해볼까.

김성욱 생각보다 재밌는 영화다.

권해효 생각보다 재밌다는 말은 참 걸린다(웃음).

김성욱 극장에서 보면 깜짝 놀랄 거다. 20년 전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권해효 20주년 행사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 번 해보자. 10년 전 그 기획이 굉장히 재밌었다. 1996년은 한국영화사에서 특이한 해였다. <진짜 사나이> 같은 괴짜 같은 영화가 나왔는가 하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같은 작품도 나왔다.

김성욱 눈 내리는 데 무사가 앉아 있는 영화 <은행나무 침대>(웃음). 김기덕 감독의 <악어>도 나왔다.

권해효 <미지왕>(김용태, 1996)이라고 ‘미친 놈 지가 무슨 왕이라고’도 개봉했고, <축제>(임권택)도 개봉했다.

김성욱 김홍준 감독의 마지막 작품 <정글 스토리>도.

권해효 아주 특이한 해였다. 그게 왜냐면, 영화사 중심에서 갑자기 프로듀서의 시대로 옮겨가는 시기였었다. 그래서 영화사들이 생각이 참신한 프로듀서를 만나기 시작했고, 그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목적으로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생각지 않은 영화들이 툭툭툭 튀어나와서 결국 영화사들이 망한다(웃음). 이러면 이야기가 또 길어진다. 마무리 짓자.

김성욱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가 다시 생각난다. 무모한 기획에 과감한 투자. 하지만 영화사에 남았다. 오늘 자리해주신 관객 분들, 권해효 씨께 감사드린다.


정리ㅣ백지원 자원활동가

사진ㅣ장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