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인물과 시대에 대한 고민이 영화의 스타일로 이어진다”

- <산쇼다유> 상영 후 임흥순 감독 시네토크



김성욱(프로그램 디렉터) -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임흥순 감독을 초대했을 때, 임흥순 감독은 가장 먼저 미조구치 겐지의 <산쇼다유>에 대해 언급했다.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뭔가?


임흥순(감독) -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2014년도다. <위로공단>을 만들던 때였고, 여성들의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영화 안에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다. 그런 와중에 조감독이 이 영화를 추천했다. 그때 미조구치 겐지라는 감독을 처음 알았다. <산쇼다유>를 보고 나서야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됐다. <산쇼다유>를 보면서 당시에 내가 고민하던 것들과 비슷한 지점을 풀어내는 것에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책이든 영화든 작품을 볼 때 줄거리보다는 분위기, 하나의 장면 등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영화를 볼 때 하나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다시금 공부하고 싶어 선정했다.


김성욱 - <위로공단>을 만들 때 고민했던 부분이 뭔가?


임흥순 -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념>의 경우에는 할머니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갔었다. 워낙 오래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그런데 <위로공단>에서 다루는 여성의 고통은 현재도 진행되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괴롭다. 그런 고통의 끝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을 보여주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산쇼다유>는 비슷한 문제를 분위기나 감정으로 전달하는 면이 있어 흥미롭게 봤다.


김성욱 - <산쇼다유>를 보고 하나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았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떤 이미지인지?




임흥순 -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놀란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위로공단>을 제작하던 당시에 내가 고민하던 부분을 이미지로 만들고, 그걸 전달하는 게 가능하구나 싶었던 장면이 있어 놀랐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지난 1월에 다시 한 번 <산쇼다유>를 봤다. 그런데 처음 봤을 때 기억했던 그 이미지가 다시 보니까 없더라. 생각해보면 영화의 시간을 압축해서 기억하고 있던 것 같다. 세 번째로 봤을 때는 다시 그 이미지가 보였다. 중반부에 엄마가 등에 업혀 올라가고, 언덕에서 지팡이를 들고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왜 그 장면이 가장 인상이 남았을까 생각해봤다. 앞뒤의 이야기, 음악들, 그리고 비참한 상황들이 뭉쳐 하나로 몰려왔던 거 같다. 이 영화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김성욱 - 영화를 보면 말한대로 특정한 이미지에 대한 느낌이 정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임흥순 감독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 분위기 등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임흥순 -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영화를 좀 찾아보고, 감독이 살아온 배경을 보면서 많이 공감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50년대의 시대적인 상황과 정서를 잘 담아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여성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비슷하게 영화에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여성들에 대한 죄책감 같은 정서에 많이 공감했다. 또 현재의 우리 사회와 많이 연결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 흥미로웠다.


김성욱 - <산쇼다유>를 봤을 때 내가 가장 큰 충격적인 느낌을 받은 건 바닷가에서 어머니와 이별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가족, 사람들과 분리되어지는 순간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서두에서 아버지와의 이별과 이어 어머니와의 이별이 나오고, 영화의 주인공인 두 사람도 결국 이별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어머니와 아들이 재회하긴 하지만 영화의 모든 부분이 결별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분리와 폐쇄, 탈출할 수 없음, 재회라는 것이 강한 느낌을 줬던 작품이다.

이 영화는 특히 소리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여러 소리가 혼재되어 날카롭게 들려오고, 영화 전반에 어머니의 노래가 인상적으로 들려오기도 하다. 연출을 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의 소리, 음향, 노래에 대해선 어떻게 보셨는지.


임흥순 - 아무래도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음향에 많이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면서 음악 작업을 하게 되다보니 좀 더 듣게 되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 진행한 작품은 탈북여성들과 함께하는 영화였는데, 음악감독에게 미조구치 겐지의 음악을 참조해달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일본 영화의 오묘한 느낌들이 많이 전달됐던 거 같다. 상류계급의 사람들이 가진 문서, 책과 대비해서 활자로 이루어지지 않은 민중들의 목소리, 이야기, 노래가 이렇게 이어져서 내려오는구나 싶었다. 노동요 같은 노래 속에 이전 사람들의 생각, 행동들이 함께 이어져 내려온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부분에 흥미가 있다.


김성욱 -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안쥬가 자살하는 순간이다. 죽음의 순간과 사라짐의 순간이 동시에 찾아오는 잔혹한 순간이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시적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잔혹한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녹아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하나의 영화에서 구현된다. 동시에 이 장면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물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이야기의 맥락 안에서도 다른 결로 가는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임흥순 - 너무 예상치 못한 장면이라 놀라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죽어야만 다시 사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여성 노동자들 같은 경우도 오빠,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면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다음 생을 기약하는 희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뿐 아니라 미조구치 겐지의 <양귀비>(1955)도 그랬고, <우게츠 이야기>(1953)에서도 그랬다. 죽음 이후에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들을 들으면서 ‘여성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나’ 그런 생각들을 했다.


김성욱 - 영화를 보면 안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끌리고, 즈시오는 반대로 아버지의 목소리에 이끌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해방, 평등사상 같은 정책이나 이념의 말이다. 두 명의 주인공이 부모와의 결별을 체험하면서 한쪽은 어머니의 노래로, 한쪽은 아버지의 말을 따라서 움직여간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내용적 주제를 생각해보면 노예제 안에서의 잔혹함, 사회적 평등성이 부각된다. 그러면서도 주제와는 별도로 한편으로 어머니의 노래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들은 전반적으로 남성에 대한 반감이 느껴진다. 대개 아버지로 묘사된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그린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아버지의 묘사는 조금 달라 보인다. 오가이 모리의 원작은 산쇼대부라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개과천선해 노예제를 없애는 내용인데, 영화에서 산쇼대부의 비중은 거의 없다. 아버지의 잔혹한 모습이 산쇼대부로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임흥순 - 그런 점에서 미조구치 겐지의 삶이나 배경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누구나 이런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버지의 폭력적인 면모에 반감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별로 없는 반면에 어머니에 대한 정서는 좀 달랐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큰 역할을 하는데, 남성성을 더 만들어야 하고, 아닌데도 맞는 척 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작업 세계나 직장에서도 구조 자체가 위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들의 고통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김성욱 - 산쇼라는 공간은 말하자면 수용소 같은 곳이다.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이 허용되는 장소면서, 결코 살아서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장소다. 그런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게 노래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에 어떤 여성이 가사일을 하다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안쥬와 즈시오에 관한 어머니의 노래였고, 그 노래를 듣고 주인공은 어머니가 아직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즈시오와 달리 안쥬는 끊임없이 탈출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노래는 폐쇄성의 경계를 넘어서게 하는 존재다. 시각적인 것은 폐쇄되어 버리니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여전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소리, 노래, 음향이라고 생각한다. 안쥬가 물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에 어머니의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내용적으로만 보면 무척 신파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전설의 고향’같은 내용이다.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것인데, 영화적 스타일을 보면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엔딩에서 카메라가 휙 올라와서 바다를 비추는 장면이 지금 보면 별로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50년대 프랑스 평론가들은 그 장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 인간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자연으로 확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놀랐던 것 같다. 신파적인 내용을 현대적인 영화적 스타일로 보여준다는 면이 이 영화에 흥미를 갖게 만든다.


관객 1 - <비념>이나 <위로공단>을 제작하실 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느낌을 영화에 옮길 때 고민하는 게 있다면 어떤 부분이었는지?


임흥순 - 다른 작품을 참고하기는 하지만 답습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런 스타일이 그냥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인물에 대한 고민들, 시대상황에 대한 고민이 얼마만큼 깊어지느냐에 따라 형식이 정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인물에 대한 고민, 이해, 공감을 높이려고 하고, 최대한 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비념> 같은 경우도 죽은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꿈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면 그걸 가져오기도 한다. 계속 미술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몸에 체화되거나 기억으로 쌓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사람과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관객 2 - <산쇼다유>를 보면서 신파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꼈던 부분이 많았다. 소리가 묘했다. 듣기 좋은 소리와 듣기 불편한 소리가 혼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소리가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죄의식을 자극한다고 생각했다. 


임흥순 –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는 죄의식도 분명 있지 않았을까. 감독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들을 작품으로 계속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그런 부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관객 3 - 대중적으로 성공한 다큐멘터리들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다큐멘터리를 말도 안 되게 적은 사람들만 본다는 사실이 놀랍다.


임흥순 - 작업하는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 흥행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숙명이기도 하다. 일단 첫 번째는 극장에 많이 걸리지 않는다. 돈이 안 되면 관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독립영화에서 만 명 넘는 건 상업영화에서 천만 넘는 것과 비슷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김성욱 - 최근에 제작 환경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작품수가 많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한 사람이 정해진 시간에 볼 영화들은 한정되어 있는데, 볼 영화는 많다. 게다가 독립적인 환경에서 제작한 영화는 유통 시장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배급에 의해서 희생되는 영화들도 나온다.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얘기를 하자면, 민간 극장의 수가 너무 적다.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극장의 90% 이상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 멀티플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50% 정도다. 나머지는 기업이 아닌 민간 극장이다. 그러니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극장의 자율성이 큰 편이다. 민간 극장의 몰락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이후 작업이 궁금하다. 


임흥순 - 작년에 안양시의 공공예술 프로젝트(APAP)를 통해 탈북 여성들과 함께 <려행> 이라는 장편 하나를 만들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전의 작품들은 3년 정도 시간을 들였는데 이번에는 6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만들었다. 또 하나의 작품은 <환생>이라는 작품을 편집중이다. 촬영은 90% 이상 마쳤다. 베트남과 이란에서 촬영했고,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올해 안에 보여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정리 l 황선경 관객에디터

사진 l 주민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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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