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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리뷰] 서울역, 입술에서 미끄러지는 음성 , 입술에서 미끄러지는 음성- 연상호 연상호 애니메이션들은 모순적이다. 사회비판적인, 현실적인 고민들을 중심축으로 하면서 막상 그 속의 인물들은 실제 인간을 모사하는데 사력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형상은 갖췄다. 말도 하고, 잠도 자고, 밥도 먹는다. 서로 죽이고 싶어 안달 난 것까지 똑 닮았다. 그런데 이 모든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형식적인 정밀 묘사에선 부자연스러운 점들이 있다. 진작 진단된 일례로는 허문영 평론가나 곽영빈 평론가가 짚어낸 ‘가면으로서의 얼굴’이 있다( 933호 ‘신전영객잔’, , "연대는 (불)가능하다!"). 연상호 애니메이션 속 얼굴은 인간의 세밀한 안면 근육을 굳이 흉내 내지 않으며 비현실적으로 급격한표정 변화를 보인다. 살아 숨 쉬는 인간과 2D 애니메이션 .. 더보기
차이밍량의 영화 속에 그려진 공간과 사람의 관계 차이밍량의 영화 속에 그려진 공간과 사람의 관계 아이들이 잠든 침대 한쪽에 걸터앉아 천천히 머리카락을 빗는 여인(양귀매). 일단 머리를 빗는 여인의 행동을 인지하고 나면 잠자는 아이들을 지나 그들 뒤의 벽에 시선이 가닿는다. 검은색 바탕에 누르스름한 세로줄 무늬가 불규칙적으로 난 벽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줄무늬는 누군가가 부러 그어놓은 칼자국 같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벽지가 벌어지면서 생긴 균열 같기도 하다. 여하간 집이라는 공간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불길하기까지 한 이 벽은 이들이 점한 공간을 비현실적인 공간 혹은 세트장처럼 보이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차이밍량이 그곳을 세트장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는지가 아니라 그곳이 세트장처럼 보인다는 것 자체다. 세트장처럼 보인다는 것은 인물이 그 공간.. 더보기
[특집] 차이밍량의 “행자” 혹은 “만주장정” 연작에 대하여 차이밍량의 “행자” 혹은 “만주장정” 연작에 대하여 차이밍량의 “행자” 연작은 현재진행형이다. 붉은 법의를 입은 맨발의 승려가 침사추이, 타이페이, 마르세유, 동경 등 도심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가로지르는 여정을 변주한 연작이다. 차이밍량은 현장 법사의 천축국 순례를 영화화하는 시대극을 염두에 뒀었지만 이 계획을 변경해 2012년부터 꾸준히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차이밍량은 “행자”보다 “慢走長征(만주장정)”이란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영화에만 머물지 않고 행위예술로 발을 내디딘 “행자” 연작은 지금까지 다섯 편이 국내에 소개 및 상영, 공연이 이뤄졌다. 전시, 연극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차이밍량의 도전을 자극하고 있는 “행자” 연작을 구성하는 총 8편의 중, 단편영화 그리고 무대극을 간략하게 소개한.. 더보기
[리뷰] 길을 헤매던 소년, 소녀가 존 레논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 다비드 트루에바의 <눈을 감으면 삶은 더 편하지> 길을 헤매던 소년, 소녀가 존 레논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다비드 트루에바의 영어 교사 안토니오는 비틀즈 아니, 그보다 존 레논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비틀즈의 노래 가사로 영어를 가르친다. 어느날 그는 교실 창문 너머로 한 학생이 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교장 신부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렇듯 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은 어른들이 가하는 물리적 폭력에 노출돼있다. 폭력의 주체가 되는 어른은 교사, 수녀원 원장, 경찰인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소년, 소녀의 사적 영역에 개입하며 훈육의 이름 아래 폭력을 당연시한다. 극 중 안토니오는 이 영화에서 위와 같은 어른들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다. 그는 아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결코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벨렌과 후안호 역시 그의.. 더보기
[리뷰]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시간 -욘 가라뇨와 호세 마리 고에나가의 <플라워> [리뷰]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시간-욘 가라뇨와 호세 마리 고에나가의 욘 가라뇨와 호세 마리 고에나가의 (2015)의 초반부는 ‘아네를 위한 꽃’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아직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의사에게서 폐경 진단을 받은 아네에게 어느 날부터 꽃배달이 온다. 남편이 보냈을 거라 생각했던 꽃은 익명의 누군가에게서 온 것이었고, 아네는 매주 같은 시간 도착하는 정체모를 꽃다발에 내심 즐거워한다. 영화는 꽃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지 않은 채 잠시 다른 부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아네와 같은 직장에 다니던 베나트와 그의 아내 로우르데스의 이야기다. 로우르데스는 베나트의 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던 중 베나트가 교통사고로 죽어버리고 만다. 로우르데스는 시어머니와 연락을 끊고 다른 남자와 살기.. 더보기
[2016 스페인 영화제] 아름다움이 주인공인 영화 - 알베르 세라의 <내 죽음의 이야기> [2016 스페인 영화제] 아름다움이 주인공인 영화- 알베르 세라의 자기 영화와 딴판으로 알베르 세라는 말이 많은 감독이다. 질문을 하나 던지면 대답이 끝도 없이 흘러나온다. 2012년 전주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한가한 일정으로 인해 심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오전 오후 내내 그와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중에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그의 열정을 감안하면 한국 관객은 그에게 박한 편이다. 어지간한 외국 영화들이 수입돼 상영되는 요즘,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소개된 7편의 세라 영화 가운데 국내에서 개봉한 작품은 한 편도 없다. 2013년 작품 도 마찬가지다. 전주에서 만났을 당시, 그는 막 영화 한 편의 촬영을 마쳤으며 곧 편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카사노바와 드라큘라가 만나는 이야.. 더보기
[고바야시 마사키 탄생 100주년 특별전] 한없이 냉혹한 결말 -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 [고바야시 마사키 탄생 100주년 특별전] 한없이 냉혹한 결말- 고바야시 마사키의 영화는 이이 가문의 저택 앞에 몰락한 히로시마 후쿠시마 가의 가신이었다는 쓰구모 한시로라는 사내가 모습을 보이면서 시작한다. 이 쓰구모라는 남자는 가문의 몰락 이후 수치스러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밝힌 뒤, 사무라이다운 최후를 위해 할복을 치를 수 있도록 저택의 마당을 빌려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이이 가문을 관장하는 고문 사이토 가게유는 이러한 쓰구모의 천명을 전해듣고는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또 기어 들어왔군...” 이 심드렁한 답변의 이유인즉 당시 에도에는 현관에 들이닥쳐 짐짓 호기롭게 거짓 할복을 맹세한 뒤, 사태를 지연시키고 미적거리면서 처치가 곤란해진 다이묘에게 돈 몇 푼을 구걸하는 하찮은 짓거리가 낭인들 .. 더보기
괴담을 다룬 일본 영화에 대한 짧은 소개 괴담을 다룬 일본 영화에 대한 짧은 소개 일본의 카이단Kaidan , 즉 괴담怪談은 도깨비나 귀신, 원귀 따위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지칭한다. 에도시대(1603~1868)에 널리 퍼졌으며 일본 전통 가면극이나 인형극을 통해 일찍이 대중들에게 보여졌다. 대부분의 괴담은 일본의 특정 지역성이나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참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원래는 에도시대의 전통적인 유령 이야기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과 같은 현대 공포영화에도 쓰이고 있는 용어이다. 괴담의 유행: 햐쿠모노가타리 hyakumonogatari kaidankai 일본에는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라는 아주 오래된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유령을 불러오는 일종의 의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