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네바캉스 서울 - 작가를 만나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싶었다.”

- <꼬마돼지 베이브 2>, <옥자> 상영 후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


정지연(평론가) 오늘 동시 상영으로 <꼬마돼지 베이브 2>를 추천한 이유가 궁금하다.

봉준호(감독) 김성욱 프로그래머랑 ‘돼지 영화제’를 해보자고 얘기를 했다. 돼지에 관한 영화의 리스트를 쭉 늘어놓고 고민했다. 동시 상영을 염두에 두고 세 편의 영화(<P짱은 내 친구>, <레저백(Razorback)>)를 추천했고, 그중 이 영화를 틀게 됐다. <옥자>가 지난 시드니영화제 폐막작이었는데 조지 밀러 감독이 보러 오기도 했다. 식사도 함께 했었다. 오늘 이 영화 상영한다고 얘기도 드렸는데 답장은 아직 없다(웃음).

정지연 <꼬마돼지 베이브 2> 역시 도시로 간 돼지 얘기다. <옥자>를 준비할 때 영감을 준 측면이 있나?

봉준호 오늘 아주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봤다. 처음 본 건 2000년 중반이었다. 1편도 크게 히트했지만 2편을 더 좋아한다.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지 않았나 싶다. <옥자>에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처연하고 어두운 정서가 깔려 있는데 <꼬마돼지 베이브 2>의 전체적인 느낌이 <옥자>에 영향을 준 것 같다.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는 옥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옥자도 말을 할 수 있으면 어땠을까.

정지연 옥자가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봉준호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미자만 알아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알 길이 없다.

정지연 아이디어의 단계에서 <옥자>는 처음에 어떻게 구체화됐는지 듣고 싶다.

봉준호 2001년도에 <플란다스의 개>가 완전히 실패하고 절망의 늪을 헤매던 시절에 ‘둔자’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산골에서 살던 애가 집 뒤에서 엄청난 산삼을 발견해서 그걸 팔러 도시에 가는 이야기였다. 산골에서만 평생 자란 애가 거래를 하러 가면 도시의 이상한 애들이 막 사기치려고 들러붙지 않겠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상한 모험극 구조의 시놉시스를 썼었다. 하지만 너무 재미없어 보여서 컴퓨터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2010년에 <설국열차>를 준비할 때 ‘옥자’라는 동물이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엄청 큰데 억울하게 생긴 동물. ‘슈퍼 토마토’나 ‘슈퍼 연어’처럼 품종을 개량한 생물에는 큰 게 많다. ‘벨지안 블루’라는 거대 소도 있다. 크다는 것에서 시작해 점점 식품 산업 쪽으로 생각이 뻗어나갔다. 거기에 동물을 파트너로서 둔 둔자라는 산골 소녀가 더해졌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옛날에 어느 산골 소녀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와 둘이 산에 살던 분인데 지상파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그걸 계기로 이동통신사 CF를 찍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러다 어떤 강도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지금 그분은 비구승이 된 걸로 안다. 그 사건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정지연 <설국열차> 다음 바로 <옥자>를 구상한 건가.

봉준호 2010년에 서우식, 김태환 프로듀서와 스토리라인을 고려하고 써 놓은 시놉시스가 있었다. <설국열차>를 찍으러 체코에 가야 했으니 그분들이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예비 작가가 시나리오도 쓰고 그랬다.

정지연 <옥자>는 <괴물>의 연장선에서 보이는 측면이 있다. 다만 괴물은 말 그대로 괴물로 호명되고, 옥자는 일종의 식구처럼 느껴지면서 제품으로 호명된다. 감독님이 <괴물>을 염두하고 발전시킨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괴물> 때에는 한국 CG 기술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건가.



봉준호 이번에는 한국과 미국 팀이 섞여 있었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10년 사이에 엄청 달라졌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소프트웨어는 많이 개발되면서 상향 평준화됐다. <꼬마돼지 베이브 2>를 마침 봤는데, 거기서 리드 애니메이터였던 에릭 드 보아(Erik-Jan de Boer)가 여러 경력을 쌓다가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를 구현한다. 그분이 오스카를 받을 때 나는 <옥자>의 CG를 누가 해야 할까 고민하던 상태였다. 조금만 허술해도 스토리가 성립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이 10분 이내로 이 캐릭터가 CG라는 걸 잊어야 했다. 그래서 드 보어를 만났다.

옥자 말고도 이 영화에는 고난이도의 그래픽을 사용해야 할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뉴욕 퍼레이드 장면. 실제 뉴욕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화면 속의 모든 것이 CG였다. 옥자 외의 다른 CG는 모두 한국 팀과 함께했다.

정지연 소녀와 슈퍼 돼지의 아이디어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있다. 미자는 <괴물>의 현서를 닮아 보였다.

봉준호 모든 배우들은 다 고유한 세계가 있다. 둘 다 연기를 잘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는 하다. 안서현 양은 굉장히 어른스럽고 강인한 면이 있다. 어느 집안이나 만만하지 않고 말을 신중히 걸어야 할 것 같은 애들이 있지 않나. 안서현 양에게도 의도하지 않아도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다.

정지연 촬영을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과 했다. 해외 거장들과 많이 작업했던 분이다.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봉준호 다시 <설국열차>로 되돌아간다. 영화 편집이 다 끝나고 나면 영화의 색을 만져주는 굉장히 중요한 스탭이 있다. <설국열차>의 컬러리스트가 이반 루카스(Yvan Lucas)라는 분이었다. 프랑스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한번 만나보라고 소개해줬다.

정지연 <설국열차>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필름 영화이고,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디지털 작업이다. 다리우스도 필름 작업을 많이 했던 걸로 안다.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작업하면서 어떤 매혹이나 한계를 느꼈나?

봉준호 처음에는 35mm 필름으로 하려고 했다. 나도 촬영감독도 필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미국에는 아직 필름 현상소가 남아 있다. 타란티노와 J.J. 에이브람스, 크리스토퍼 놀란을 비롯한 감독들이 코닥이랑 거래를 했다고 한다. 1년에 일정량의 필름을 생산해 주면 그걸 책임지고 소비하겠다는 계약. 나는 뭐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디지털로 해보니까 의외로 좋더라(웃음). 선과 악을 나누듯 ‘필름은 선, 디지털은 악’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어떤 새로운 미학을 발견하느냐의 문제다.

어쨌든 필름으로 촬영하기로 했는데 영화가 투자에 난항을 겪다 결국 투자자가 넷플릭스로 결정됐다. 감독의 최종 편집권을 보장하고 모든 걸 지원해 준다더라. 그런데 회사 원칙이 디지털 4K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이 모두 지키는 원칙 같은 거다.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협상도 하려 했는데,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안 되는지 10페이지짜리 서류를 보내주더라. 그래서 그냥 디지털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필름이 안 된다고 하니 다리우스가 ‘알렉사 65’라는 카메라 기종을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그 카메라는 해상도가 6.5K다. 학교에서 선생이 머리가 왜 이렇게 기냐고 하면 그 다음 날 삭발하고 오는 애들 있잖나. 다리우스가 약간 그런 기질을 갖고 있다. 그걸로 뉴욕의 어떤 실험영화 감독과 작업해 봤다고 했다. 나도 호기심이 났고, 테스트 촬영을 했다. 시네마틱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카메라로 하게 됐다. 강원도의 자연을 찍을 때 그 위력이 잘 살아난다.

정지연 예전에 김우영 촬영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카메라를 다룰 줄 아는 누구를 붙여도 잘 찍을 거라고 말하더라. 감독의 머리 안에 저런 이미지들이 있지 않으면 그런 화면이 잘 안 나온다고 말했었다.



봉준호 콘티나 프레이밍, 이동은 직접 설계하긴 하는데, 빛, 색깔, 질감 같은 건 촬영감독의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도 김형구 촬영감독의 해석이 많이 들어가 있다. 송강호 씨가 논으로 돌아왔을 때, 콘티에는 없었는데, 김형구 감독이 제안했던 하이앵글이 있다. 그런 상호작용이 많이 있다.

영화에서 옥자가 300숏 정도 나오는데, VFX가 연관되는 장면은 정말 미리 설계한 대로 가야 한다. 전체 예산에서 CG 장면이 몇 컷이 나올 수 있는지 미리 계산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싼 출연료를 가져간 건 옥자다.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옥자가 나오는 장면은 계획한 대로 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못 바꾼다. 다른 드라마의 숏들은 다리우스와도 함께 많이 얘기했고, 그때그때 변동시킬 수 있었다.

정지연 넷플릭스가 1차 윈도우이다 보니 개인 미디어의 스몰 스크린으로 상영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미장센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봉준호 사실 우리는 일부러 무시했다. 물론 이렇게 큰 예산의 영화를 감독 마음대로 찍게 해준 넷플릭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웃음).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걸로 보는 관객들을 좌절하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익스트림 롱 숏으로 찍은 것들, 가령 무덤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미자는 거의 점처럼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보면 미자가 안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보다 포기하게 만드는 거다(웃음). 극장에서 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여기저기서 GV를 하고 있다. 편하게 집에서 볼 수 있는데 극장까지 찾아와 준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옥자>의 30만 관객들은 나에게 거의 3000만의 느낌이다.

정지연 본의 아니게 감독님이 한국의 넷플릭스 전도사가 됐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이론에 관심이 많은데, 스몰 스크린의 확산과 함께 영화의 서사 구성이나 미장센이 달라질 거라는 논의를 많이 한다. 롱 숏, 롱 테이크는 극장의 미학이라서 <옥자>에서 많이 쓰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강원도의 풍광이 바로 나오더라.


봉준호 극장 하는 분들이 위협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되더라. 가정용 4K 프로젝터가 나오기 시작했고, 가격대도 점점 내려가는 중이다. 먼 미래를 보면 분명 극장에 위협이 된다. 그렇지만 이건 TV가 처음 나왔을 때도 느꼈던 것이다. 극장은 나름대로 다른 카드를 내놓을 것 같다. 결국 극장과 스몰 스크린이 공존할 거라고 보는데 경쟁의 양상은 훨씬 복잡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를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특정 기간은 있으면 좋겠다. 여전히 넷플릭스에 감사하면서 이야기하자면(웃음), 일정한 기간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는 개인이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집에서 보면 전화를 받느라 멈출 수 있고, 배고프면 멈출 수 있다. 감독이 상영 시간 동안 장악하려고 했던 리듬을 끊기 쉽다. 감독 입장에서는 극장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정지연 영화에서 조금 의아했던 건 미자 캐릭터다. 감독님 영화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장르적인 이야기 속에 탈장르적인 캐릭터들이 있었다. 한국적인 경험에서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파워가 있었다. 근데 미자는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게 의아했다.



봉준호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뻔뻔해지는지, 나는 그게 너무 사실적으로 보였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는 아이인데 마음이 급하면 트럭에도 올라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신 관객들이 마음의 준비는 해야겠다 싶어서 미자가 산을 막 내려오다가 미끄러지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런 시퀀스에서 관객들에게 일단 학습을 시킨 다음, 유리창을 부수고 트럭 위로 점프를 한다(웃음). 통유리를 부수는 장면 같은 건 만화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사실적으로 보았다. 안서현 양에게도 “너 이게 이상하니?”라고 물어보면 “아뇨”라고 대답했다. “부수는 거죠 뭐” 이런 식으로 반응해서 좋았다.

정지연 지하상가 장면에서 가장 큰 활력을 느꼈다. 감독님 영화에서 지하공간, 폐쇄공간은 상징도 많고 중요한 공간인 것 같다. 인터뷰를 보니 그중 상당수가 세트 촬영이라고 하더라. 그게 세트일 거라고 생각은 못했다..

봉준호 세트와 실제 공간이 섞여 있다. 처음 흑인 미군 병사가 놀라는 장면의 계단은 대전이다. 그 다음 상가에 들어온 뒤부터는 회현 지하상가다. 상인협회의 협조를 받아서 새벽에 이틀 밤 동안 어렵게 촬영했다. 회현 지하상가에서 옥자가 코너를 딱 돌면 배우 이정은 씨가 있다. 거기부터는 남양주 세트장이다. 회현 지하상가를 복제하다시피 만든 다음 다 때려 부쉈다. 실제 상가에서는 그렇게 파괴적인 장면을 찍을 수 없다.

정지연 후반부의 무수한 돼지들은 마치 수용소처럼 보인다. <설국열차>에서 하층 계급의 이미지도 그렇고, 수용소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봉준호 축산업이 실제로 그렇다. 한 마리의 소는 ‘동료’들이 도살장에서 계속 죽어나가는 동안 비육장에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먹으며 6개월간 살을 찌운다. 그리고 결국 도살장으로 들어간다. 콜로라도에 있는 대형 도살장에 견학을 가서 봤는데, 차로 20분을 달려도 계속 소들이 나온다. 점점 살을 찌우면서 건물 가까이로 가는 거다. <옥자>의 그 장면도 이런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한 거다. 대신 철조망에는 약간 아우슈비츠의 느낌을 넣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식량 생산인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홀로코스트다. 동물의 입장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묘사했다. 참고로 <설국열차>의 꼬리칸은 2차 대전 당시 가장 시설이 안 좋은 포로수용소나 난민 캠프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정지연 그동안 감독님 작품의 엔딩에는 윤리적 불안의 이미지가 보였다. 불안의 순간에서 영화가 종결되는 느낌이 강했다. 이번 영화는 롱 숏으로 밥을 먹는 장면으로 끝난다.

봉준호 항상 끝이 찜찜하다고 싫어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비난은 평생 짊어져야 할 것 같다. 옥자도 무사히 돌아오긴 했는데 영웅의 귀환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자가 완전히 파괴가 되어서 돌아온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애매하고 찜찜한 부분을 느끼면서 찍었다. 다시 찾은 평화인데, 불안한 평화 같다. 새끼돼지는 나중에 추가한 거다. 원래는 마당에서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에릭 드 보아가 그렇게 제안했다. 옥자와 미자는 수만 마리의 다른 옥자들을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두고 왔다. 거기서 겨우 한 마리를 데려온 건데 화면에 같이 잡히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CG팀 입장에서는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건데 적극적으로 제안해 주니 정말 고마웠다.



관객 1 폴 다노와 제이크 질렌할을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간 이 배우들이 보여주지 않은 모습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서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 <괴물>과 달리 좀 비약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봉준호 폴 다노를 10여 년 전쯤 처음 만났다.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 제조하시던 폴 라저(Paul Lazar)가 소개시켜 줬다. 그때 폴 다노는 무슨 이상한 인디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더라. 처음 만났을 때 한국 감독들 이름을 줄줄이 댔다. 아시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영화광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많이 맞는 역이 많다. 멍청이, 괴짜, 이상한 놈, 실패한 덕후의 느낌. 그런데 눈빛이 깊고 예쁜 느낌이 있다. 그런 게 영화에서 잘 살아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묘한 아름다움을 찍고 싶었다.

서사 전개의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했으면 더 재밌었을 수도 있는데, 결말 템포에 급급하다 보니(웃음). 어릴 때 좋아하던 영화 중 나사의 달 착륙 음모론을 다룬 <카프리콘 원>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데 마지막에 테리 사발라스(Telly Savalas)라는 개성파 배우가 다 해결해 버리는 영화다. 그런 걸 어릴 때부터 보면서 쾌감을 느꼈다. 게다가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사람이 엄청 지쳐서 쉬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런 것에 감상을 방해받을 수도 있다.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관객 2 뉴욕 회의실 장면에서 배경으로 쓰는 소음들이 인상적이었다.

봉준호 최태영 엔지니어가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미자를 초청하기로 하고 틸다 스윈튼이 좋아할 때 엘리베이터 소리가 ‘띵동’하고 난다. 처음에는 뭔가 너무 만화 같고 노골적인 것 같아 싫었는데, 점점 너그러워지면서 받아들였다. 과하다고 생각해서 빼달라고 한 것도 있긴 한데 나머지는 좋은 아이디어들이라서 받아들였다. 그 장면은 공간도 미니멀하고 여백이 많다. 사운드의 디테일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상황이라 판단했다.

관객 3 인물들의 묘사나 관계가 일반적인 선악 대립 구도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스티븐 연은 거짓 통역을 하기도 하고, ALF는 옥자의 구조를 도와주지만 옥자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봉준호 워싱턴에서 실제 ALF 멤버들을 만났다. 이들의 기본 취지는 나도 이해하지만 방법적으로 과격한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타인의 사유재산을 파괴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취지를 지지하지만 당신들을 슈퍼히어로처럼 그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들을 희화화하거나 ‘괴짜’로 묘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폴 다노가 폭력을 싫어한다면서 스티븐 연을 패는 건 모순적이지만 나름 이유는 있다. 미자가 바라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입체적이라기보다는 사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미자가 옥자에게 팔이 물려 있을 때 폴 다노가 옥자를 때리려고 한다. 실제 멤버와 이야기를 했을 때 자기도 그럴 것 같다고 얘기를 하더라. ALF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결국 상식의 연장선상에서 그 지점에 도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는 동물운동이나 채식주의를 유난 떤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인간도 살기 힘들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동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인간도 사랑할 수 있는 거라 본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여러 관점이 있는데 아직은 각 문화권마다 차이가 크다. ALF의 멤버들 안에서도 차이를 두고 싶었다. 실버가 토마토를 안 먹겠다고 하니까 같은 멤버들도 그를 약간 이상하게 바라본다.

실제 유전자 관련 식품업자들도 만났었다. 그분들은 인류의 식량 위기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영화에서 틸다가 소시지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괜찮은 식품이지만 대중들이 하도 유전자 조작 식품에 공포가 크기 때문에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대사는 그녀의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나의 입장은 옥자, 미자와 ALF의 편이지만 이 대사를 통해 미란도 쪽에도 최소한의 변명의 여지를 주려고 했다.

관객 4 엔딩크레딧에 ‘옥자 목소리’가 따로 있더라. 녹음 과정이 궁금하다.

봉준호 세 명의 이름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녹음실에서 후시 녹음한 이정은 배우, 뉴질랜드에만 있는 돼지의 소리를 보내준 사운드 디자이너인 데이브 화이트헤드. 그리고 연기와 실제 돼지 소리의 소스를 가지고 디지털적으로 최종 변경한 최태형 감독. 60%는 실제 돼지의 소리가 들어갔고, 감정이 담긴 장면은 이정은 배우가 한 게 많다.




관객 5 후반에 미자가 금돼지를 주고 옥자를 사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이 장면을 구상하게 된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다.

봉준호 그 신은 2015년에 완성한 초고부터 있었다. 금돼지의 출발은 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는 옥자와 미자를 떼어놓고 싶어한다. 변희봉 배우 세대의 어르신들은 동물에게 정도 주지만 그 정을 끊을 때는 되게 단호하다. 이름 부르면서 키우던 개를 복날에 잡아먹기도 한다. 영화에도 할아버지가 미자 앞에서 돼지 그림을 그리고 안심, 등심, 이런 얘기를 해버리지 않나. 그리고 미자에게 옥자 대신 금돼지를 준다. 처음부터 미자는 그게 탐탁지 않아 금돼지를 던져 버린다. 하지만 이걸 언젠가 쓸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서는 나중에 따로 금돼지를 챙긴다.

관객분이 이야기한 그 거래 장면에서는 미자가 낸시의 수준에 맞춰준 것처럼 보인다. 낸시라는 인간은 대화나 설득이 불가능한 사람, 자본주의의 가장 천박한 형태가 의인화된 사람이다. 미자는 그런 사람을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었을 거다. 자존심이 있는 아이로서 미자가 낸시 수준에 맞춰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자는 비록 거래를 했지만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왠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덜 찝찝하더라. 그게 미자의 이상한 성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지연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봉준호 오늘도 시나리오를 쓰다 왔다. 기생충은 안 나오고, 인간의 감정에만 충실한 영화다.


일시 8월 5일(토) 오후 3시 10분 <옥자> 상영 후

정리 황선경 관객에디터

장혜진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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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