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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

카오스: 페데리코 펠리니의 미술

[영화사강좌1]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들려주는 펠리니의 미술세계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지난 16일 저녁 8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마련한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시작되었다. 총 5회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의 첫 강연자는 이탈리아 영화와 미술에 조예가 깊은 한창호 영화평론가. <사티리콘>을 중심으로 그가 들려준 펠리니의 미술에 관한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한창호(영화평론가) : 오늘 강의는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를 좁혔습니다. 하나는 <사티리콘>이라는 작품 자체가 영화사에서 익숙한 작품이 아니라 먼저 <사티리콘>에 대해 잠깐 설명을 드리고, 그 다음에 미술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오늘 저와 같이 보신 <사티리콘>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티리콘>이라는 작품은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원작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영화에서 나타나듯이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지만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각 에피소드들을 연결할 수 있는 토대는 엔코르피오라는 인물인데, 엔코르피오가 애인인 지토네를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벌이는 모험과 투쟁이 이어집니다. <사티리콘>은 로마시대의 정통적인 문학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비극이 문학으로 대접받았는데,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티리콘, 즉 satire-풍자에 관련된 코미디이기 때문에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문학은 아니었습니다. <사티리콘>은 로마시대 하층민들의 일상과 그들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에로스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어떻게 보면 펠리니의 주제와도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사티리콘>의 줄거리를 공간 중심으로 나누면 크게 12개의 에피소드로 구분됩니다.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공간은 로마의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숨므라’라는 지역으로 엔코르피오도 그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공간은 베르나키오의 극장입니다. 로마시대의 사람들은 스펙터클에 대한 욕망이 대단했습니다. 손목이 잘리는 기이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극장에서 엔코르피오가 지토네를 찾습니다. 세 번째는 엔코르피오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나치는 공간입니다. 이 장면에서 펠리니는 로마시대의 싸구려 매춘구역을 어떤 식으로 형상화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네 번째 공간은 로마시대의 미술관입니다. 이 미술관에서 엔코르피오는 노시인 에어모프를 만나 트리마치오네라는 대부호의 향연에 함께 갑니다. 다섯 번째로 중요한 공간인 트리마치오네의 저택은 성욕과 식욕에 관련된 모든 욕망이 전부 드러나는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여섯 번째 주요한 공간은 리카를 둘러싼 공간입니다. 리카는 해적이자 이탈리아 남쪽 타란토 지역의 폭군입니다. 일곱 번째 시퀀스는 자살하는 귀족의 시퀀스입니다. 로마의 공화정을 지지하는 귀족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살합니다. 그 다음 여덟 번째 시퀀스는 불칸입니다. 엔코르피오와 아실토는 성적인 만족을 모르는 여성을 위해서 봉사를 하고 난 후, 불칸에서 남녀동체인 아기신을 만납니다. 그 다음 가는 곳이 아홉 번째 시퀀스이자 아홉 번째 공간입니다. 웃음의 신이 있는 마을, 미로가 나오는 공간, 그리고 미노타우로스가 나오는 곳입니다. 엔코르피오는 이 공간에서 미노타우로스와 결투를 하고 결국 패합니다. 열 번째 시퀀스에서 엔코르피오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쾌락의 정원으로 옮겨지지만 그의 병은 낫지 않습니다. 열한 번째 시퀀스에서 마녀 오로티아에게 간 엔코르피오는 그녀와 관계를 맺으며 치유됩니다. 마지막은 에어모프의 배를 타는 엔코르피오의 시퀀스입니다. 엔코르피오는 에어모프가 이미 죽은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에어모프의 몸으로 식인의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에어모프의 몸을 먹지 않고 그의 배를 타는 것으로, 배를 타고 배 안에서 내레이션 하는 것으로, 그리고 말을 하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지금 본 12개의 에피소드가 원작 <사티리콘>의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에서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으로 결말이 구성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 것인가가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고 또 펠리니의 고민이었습니다. 이 주제를 통해서 펠리니가 왜 <사티리콘>을 선택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영화계에는 단테의 <신곡>을 영화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항상 있었습니다. 펠리니가 환타지를 형상화시키는 데 굉장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펠리니에게 자주 접근을 했습니다. 그러나 펠리니는 단테의 지옥편을 영화로 만들어도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합니다. 후에 다시 의뢰를 받은 작품이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입니다. <사티리콘>은 비극이 아닌 풍자극이라 펠리니와 더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펠리니가 <사티리콘>을 선택하는 데 작용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티리콘>에서 특히 극장 시퀀스와 저녁향연 장면은 펠리니가 지옥편을 영화화했을 때 창조했을 이미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늘 거절하기는 했지만 단테의 <신곡>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펠리니에게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부담을 느껴서 일단 거절했지만 <사티리콘>을 통해서 <신곡>을 연출할 때의 작업방향에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특히 그 두 개의 시퀀스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원래 펠리니는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전쟁 때 이십대 초반이었던 펠리니는 미군들의 캐리커쳐 같은 것을 그려서 돈을 법니다. 펠리니가 영화제작에서 디자인 요즘 말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된 것은 1957년에 <카비리아의 밤>을 만들 때입니다. 이 작업에서, 펠리니는 디자이너 피에로 게라르디를 만납니다. 펠리니가 피에로 게라르디를 만나서 미술에 눈을 뜨게 됐고 피에르 게라르디가 펠리니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피에르 게라르디와 만나면서 펠리니의 영화는 절정기에 도달합니다. <달콤한 인생>, <8과 2분의 1>, <영혼의 줄리에타>. 펠리니는 영화의 전체적인 컨셉을 게라르디와 상의했습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의상까지 책임지면서 옷과 장소를 통일시킨 경우는 피에르 게라르디가 대표적입니다.

만약 이번 회고전에서 단 하나의 작품을 봐야한다면 <8과 2분의 1>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8과 2분의 1>에서도 볼만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굉장히 많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펠리니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어린 펠리니가 목욕하기 싫어서 도망을 다니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침대에서 뛰어 놀던, 이성이 들어오기 전 굉장히 행복했던 혹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유아기를 다루는 그 시퀀스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의 장면에서는 공원에서 아들의 애인을 보고 곤란한 나머지 판타지로 들어가는 시퀀스입니다. 판타지는 아랍계의 할렘인데, 모든 여자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남자인 자신를 위해 봉사하는 그 공간의 디자인은 여성들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부엌과 목욕탕 등이 중심공간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부엌이라는 공간, 여성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부엌과 식당은 미술에서는 17세기 바로크 시절의 네덜란드 장르화의 고정된 공간입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떠올리면 기억이 날 겁니다. 그 공간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여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이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장르화의 표준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스탠다드한 표면이 <8과 2분의 1>의 디자인에 인상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피에르 게라르디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영혼의 줄리에타>에서의 여성 패션을 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감독들 중에서 패션에 관해서는 영화사를 통틀어서 루키아노 비스콘티가 최고입니다. <영혼의 줄리에타>에서 펠리니의 세련된 패션 감각이 드러나지만 비스콘티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다른 점은 비스콘티는 대단히 프루스트적이라는 것입니다. 재현할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실보다 더 이상화해서 재현하기 때문에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다시 말해 죽은 대상에 대한 애도를 하는 것이 비스콘티 영화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의상만 봐도 눈물이 나는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펠리니 영화에도 대단히 세련된 의상이 등장하지만 그 의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사티리콘, 그러니까 풍자입니다. 옷을 가지고도 웃깁니다. 이 점이 역시 탁월한 광대였던 펠리니의 큰 특징입니다. 오늘 같이 봤던 1969년작 <사티리콘>을 만들 때 펠리니는 다니노 도나티라는 마에스트로를 만납니다. 지옥과 같지만 숭고미가 있는 공간으로 자신 영화의 미술 프로덕션 컨셉을 잡아갈 때, 펠리니는 바로 <사타리콘>을 출발점으로 뒀습니다.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왜 펠리니는 정신없을 정도로 미술사를 끌어와서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이전의 작품에서도 조금씩 그런 경향을 보였지만 특히 <8과 1/2>부터 펠리니는 전통적인 영화 만들기와 완전히 결별합니다. 그래서 <8과 1/2>부터는 스토리, 내러티브를 풀어놓습니다. 인과관계에 따른 논리적인 소위 할리우드식 웰메이드가 영화의 한계를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펠리니는 영화의 한계를 한정짓는 것을 거부하고, 영화라는 매체는 스토리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한계를 멀리 확장시켜준다고 생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8과 1/2>을 만들면서 펠리니는 스토리를 풀어놨습니다. <사티리콘>은 1960년대의 반영성을 드러내는 작품인데 미술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음악은 많은 경우에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내러티브를 보완하는 장치로 쓰였습니다. 다시 말해 음악 자체가 내러티브와 동일했는데, <사티리콘>에서 펠리니는 미술을 내러티브를 보완하기 위한 수직적인 상하관계의 보완장치로서가 아니라 미술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은유적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적인 영화 만들기 즉 히치콕이나 존 포드와 같이 수학적으로 앞뒤가 딱 맞는 그런 영화들에 굉장히 갑갑증을 느꼈고, 그렇게 만들어서 영화의 표현이나 한계를 축소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미술을 은유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종합시키는 것은 관객의 몫입니다. 그래서 60년대 이후의 모더니즘 영화들에 펠리니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집니다. 펠리니는 광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영화 형식 자체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었고, 중요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최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