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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 최호적시광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자객 섭은낭> 리뷰 - 은은하고 애틋하게 흔들리는

은은하고 애틋하게 흔들리는

- <자객 섭은낭>




자객은 별 말이 없다. 주로 말을 하는 건 그녀의 스승으로 보이는 옆의 다른 여자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유려하고도 절도 넘치며 예사롭지 않은 숏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다. 여객이 스승의 명에 따라 말에 탄 어느 사내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무협영화에 흔히 있을 만한 순간이지만, 그 리듬과 무드와 절제미에 순간 놀라게 된다. 대사는 없고, 간결한 동작만이 있으며, 인과관계는 없고,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정서만이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이 첫 장면을 되돌아보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감상의 자세가 이미 여기에 드러나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침묵하는 주인공 캐릭터를 서사가 아닌 (캐릭터의 사소한 동작부터 카메라 이동이나 프레임 변경을 모두 포함한 단어로서의) 운동 속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느낄 것인가?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은 이 점을 고민하게 하는 무협영화 아닌 무협영화다.


이야기를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당나라 시대, 섭은낭은 한 여승에게 위탁되어 자객으로 자란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인정에 약한 그녀를 지켜보던 여승은 그녀에게 위박의 절도사 티안지안을 살해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런데 그는 그녀가 어릴 적 결혼을 약속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상대다. 그를 죽일지 말지 내내 망설이던 그녀는 끝내 칼날을 거두고 발길을 돌린다.

의아한 건 섭은낭이 그렇게 행동하는 까닭이 티안지안을 깊이 사랑했거나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인지, 단순한 인정 때문인지, 그들 관계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인지,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단 사실이다. 때때로 몇몇 인물들이 장황한 대사를 통해 그녀의 과거사와 현재의 선택에 대한 긴 해제를 달아주긴 하나, 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감정을 찾아 느끼려고 하면 완전히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준다. 대신 이야기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라도 화면의 숨결과 촉감, 밀도와 리듬을 통해 무언의 감정을 전달받고자 자신의 감각을 열어둔다면 어렴풋이 어떤 감정이 만져지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객 섭은낭>은 알려고 하면 도무지 알아지지 않고 느끼려고 하면 한없이 느껴지는 영화다.



숨 막힐 것처럼 압도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티안지안이 자신이 아끼는 후궁의 침실에 들러 자신이 처한 위험과 그녀에 대한 애정을 밝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면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장면의 공기다. 은은히 흔들리는 여러겹의 반투명 천들 사이로 둘의 모습이 선명이 보였다 뿌옇게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것이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섭은낭의 시점 숏인 것은 나중에야 알 수 있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실을 알기 전에 이미 그 화면의 애틋한 정서에 흠뻑 젖어들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그 감정은 커튼 뒤에 가려져 있던 섭은낭의 존재가 드러남과 동시에 더욱 깊어지게 된다. 가닿고 싶지만 가닿을 수 없는 거리, 혹은 초월해야 하지만 초월할 수 없는 거리. 섭은낭과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사이에 놓인 그 아득한 거리를 이 장면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결과 떨림과 밀도의 공기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허우 샤오시엔은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를 통해 느끼게 한다.

이후경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