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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시네토크] "회심의 순간이 매혹적이다"-오승욱 감독이 말하는 존 스터저스의 <황야의 7인>

시네토크

[시네토크] 회심의 순간이 가장 매혹적이다

- 오승욱 감독이 말하는 존 스터저스의 <황야의 7인>

 

제8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1월 20일,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1960) 상영 후 오승욱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오승욱 감독은 마치 촬영현장을 직접 갔다 온 것처럼 영화 제작 과정상의 세세한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그 즐거웠던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황야의 7인>은 한국에선 62년에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했다. 텔레비전에서도 자주 방영한 편이고, 작년엔 탐 크루즈가 이 영화를 다시 만들겠다고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영향력도 상당한 것 같다. 언제 이 영화와 만나게 됐나?

오승욱(영화감독): 저는 <황야의 7인>을 73년에 재개봉할 때 봤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거다. 당시 제목은 <평원의 7형제>였다. 파고다 극장에서 동시상영 할 때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3~4번 정도 봤다. 완전히 제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였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엔 이 영화를 먼저 보시고 <7인의 사무라이>를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고, 젊으신 분들은 원작을 먼저 보고 이걸 나중에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7인의 사무라이>를 보고 이 영화를 보면 이 영화가 미흡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이 영화도 미덕이 있다. 저는 <황야의 7인>을 먼저 보고 화질 안 좋은 비디오테이프로 <7인의 사무라이>를 봤다. 그땐 <7인의 사무라이>가 너무 길고, 재미없고,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악당은 스쳐지나가기만 하고 대사도 없다. 반대로 <황야의 7인>에선 악당역의 일라이 워락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지금 무슨 영화가 더 낫냐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7인의 사무라이>는 그 나름대로 멋진 장면들도 많고, 액션도 굉장하다.

<7인의 사무라이>와 이 영화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원작에서 사무라이와 농민의 관계는 계급적으로 상하관계에 놓인다. 그런데 <황야의 7인>에서 무숙자, 총잡이들은 농민들보다 나을 게 없다. 거기에서 이 영화의 재밌는 지점들이 생겨난다. 농민들이 총잡이들을 무서워하긴 하지만 그들을 존경하는 건 전혀 없다. 그걸 스터지스가 찾아냈고, 그래서 <7인의 사무라이>와는 다른 영화가 됐다는 게 제일 재밌고 좋은 점이다. 그리고 율 브리너가 등장하는 장면과 시무라 다카시가 등장하는 장면도 다르다. 뭐가 더 낫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여자아이의 구출은 사무라이의 명예에 관한 것이었다. 반면 여기선 떠돌이들이 인디언을 묻어주는 장면, 인종차별에 대해 깨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일라이 워락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팬이다. 스터지스가 일라이 워락을 캐스팅할 때 그는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다. 당시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로버트 본, 찰스 브론슨 등 전부 무명이었거나 단역만 하던 사람들이었다. 율 브리너만 제일 유명했다. 스터지스의 훌륭한 점은 <황야의 7인> 이후로 캐릭터를 하나하나 살리는 대단한 영화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감독이 많지 않다. 스터지스 감독은 7명의 배우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싸우게 만들었다. 저 역시 <킬리만자로>를 찍을 때 남자배우들의 경쟁심이 강해서 패가 나뉜 경험이 있다. <황야의 7인>에서 제일 힘이 셌던 건 일라이 워락 패거리 쪽이었다. 스터지스는 일라이 워락 패거리들에게 동네 깡패들처럼 행동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일라이 워락 패거리들이 무법자처럼 촬영장도 아닌 멕시코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배우들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율 브리너는 별 신경을 안 썼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왕이지만 정신상태 자체가 왕이었던 셈이다(웃음).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든 건, 일라이 워락이 ‘우린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인간들인데 왜 여기에 온거냐’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게 너무 좋았다. 총잡이들이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데 이유가 딱히 없다. 깡패들이니까 지고는 못 산다는 설정은 미국영화에서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이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미국 남성들에게 아킬레스건은 겁쟁이인 것 같다. 샘 페킨파는 미국 겁쟁이, 아메리칸 치킨을 정확히 포착해서 확대 재생산한다. 그런 면에서 존 스터지스도 그런 부분을 잘 잡아내는 사람인 것 같다. 이 때문에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다 레오네 영화에 나온다.

 

 

 

 

 

 

 

관객1: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등 모든 캐릭터가 하나하나 다 살아있는데 이런 영화가 드문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감독님이 이 영화를 리메이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한다면 누구를 캐스팅 하실지 궁금하다.

오승욱: 액션영화 감독이라면 누구나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하는 꿈을 가져봤을 거라 생각한다. 저도 그랬지만 배우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율 브리너는 안성기로 하고 싶다. 퇴락하고 늙은 깡패 느낌으로. 스티브 맥퀸은 생각이 잘 안 난다. 대배우들이 다 모이면 볼만할 것 같다. 스터지스는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한 몇 개만 주문하고 배우들을 다 내버려뒀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고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는 로버트 본 역이다. 리메이크하면 로버트 본 역에다가 더 많은 씬을 추가하고 싶다. 로버트 본 역은 사실 배우들이 제일 하고 싶어 하는 역이다. 저는 영화가 망가져도 로버트 본 역에 일곱 씬 정도를 만들고 싶다. 그 다음이 찰스 브론슨이다.

 

관객2: 딱히 질문은 아니고, 재개봉할 때 제목이 <평원의 7형제>로 바뀐 이유를 당시 어느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처음 개봉할 땐 무명이었던 배우들이 나중엔 다들 스타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마치 이 사람들의 신작이 나온 것처럼 해서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진가가 발휘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 영화를 스카라 극장에서 본 것 같다.

오승욱: 내가 언제 어디서 이 영화를 봤나 얘기하는 게 재밌다. 요즘은 아니지만 옛날 영화광들의 로망은 개봉 첫날 첫회 아니겠나(웃음).

 

김성욱: 이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와 다른 점은 총잡이들이 농민들에게 배반당해서 쫓겨나는 설정이다. 결말은 비슷하지만 굴절이 있는데, 감독으로서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승욱: 불균질하다고 할 수도 있고, 관객들에게 설득이 안 되면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을 돌이켜 먹는다는 것, 회심, 자기가 갖고 있는 걸 버리는 그 부분이 매혹적이다. 회심을 하는 것. 어떤 상황 속에서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서 치고 나가는 게 너무 매력적이다. 그 회심들이 저한텐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